전시

韓中 근현대 회화 비교 감상기

Whitman Park 2025. 1. 17. 11:35

COVID-19 거리두기가 해제된 후 고등학교 친구들과 매달 한 번씩 모여 인문학 테마를 놓고 토론(DG23 Forum 회장 강완)을 하고 있다. 1월은 방학이지만 오프라인으로 모임을 갖기로 하고 주말이 아닌 평일에 미술 전시회를 함께 보는 일정을 잡았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동양화와 민화를 감상하는 요령을 공부하였던 만큼[1] 우리의 안목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점검해 보는 좋은 기회다 싶었다.

마침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한중 수묵화(水墨畵) 전시회가 2월 16일까지 열리는 중이었다. 모임 장소 예약 등 총무를 맡고 있는 정훈 박사가 12시에 현대미술관에 가는 것으로 인터넷 예약을 하고 우리는 11시에 시청 앞 음식점에 모여 점심 식사부터 했다.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스케이트 링크가 설치되어 어린이들이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광화문과 시청 앞을 달구었던 시위대가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에 이 날은 대한문 앞도 한가로워 보였다.

덕수궁은 서울의 도심에 있지만 일단 경내에 들어가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한겨울이라서 사람도 별로 없고 고즈넉하였다.

미술관에서는 마침 12시 도슨트 해설이 진행 중이어서 우리 일행도 그 설명을 들어가며 전시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 덕수궁 현대미술과 앞에 모인 DG23 포럼 회원들. 왼편에서 두번째가 강완 회장

 

전시회의 주제는 "한국과 중국의 수묵화를 비교해보면 특별한 아름다움[別美[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취지인 것 같았다.

지난 12월 내가 오사카 미술관에 갔을 때에도 도쿄와 파리의 현대미술관과 콜라보로 같은 주제의 미술작품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번 현대비술관의 전시회는 같은 주제와 대상, 재료를 가지고 한국과 중국 두 나라의 화가들이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관객들이 비교 감상해보라는 기획 의도로 여겨졌다.

 

* 이도영, 기명절지 (器皿折枝, 1925)
* 이영찬, 정선 구미정(九美亭, 1992)
* 노수현, 望금강산 (1940, 이건희 컬렉션)
* 후페이헝, 깊은 산 좁은 길 (1926)

 

작품 전시는 입구에서 오른쪽은 한국 작가, 왼쪽은 중국 작가로 나누어 2층에서는 근대, 3층에서는 현대로 구분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아래층에서는 서양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 두 나라의 화가들이 전통적인 수묵화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엿볼 수 있었다.

전통 산수화나 인물화에 반드시 들어있던 한문 글씨[跋文]는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회화에서 똑립된 서예(書藝)로 발전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서양화 공부를 하고 돌아온 화가들이 일부 실험적인 작품활동을 벌인 것도 알 수 있었다. 

 

* 쉬베이훙, 전마(戰馬, 1942)
* 김기창, 군마(群馬, 1955, 이건희 컬렉션)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한국의 화가들은 주로 왕실 도화서에서 활동하면서 중국의 화집을 보고 중국풍의 관념 산수화를 많이 그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두 나라의 수묵화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그린 안견과 같은 천재 화가가 출현했고, 조선 후기에 가서는 겸재 정선과 김홍도, 신윤복 같은 풍속화가가 활동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왕족, 대갓집 양반, 기녀들을 그리면서 과감한 채색을 도입했고 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산수화나 화조도 같은 그림을 소장하려는 사람이 늘어나 화공들도 바빠졌다. 그만큼 한국의 수묵채색화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었던 것이다.

 

* 빅레햔. 노점 (1956)
* 이유태, 인물일대-탐구(A Pair of Figures - Inquiry, 1944)

 

* 이응노, 구성 (1973)
* 서세옥, 사람들 (1988)

 

윗층에서는 앵포르멜, 포스트 모더니즘 같은 서양의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두 나라 화가들은 붓 터치가 강렬해지고 색채가 좀더 화려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화가들은 다수의 소수민족, 이념의 영향력 아래 농촌이나 광산에서 노동하는 여인, 이국적인 무희, 도시 건축현장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여러 사람이 벽화를 그리는 장면이나 경제특구에서 초고층 신축 아파트가 올라가는 현장을 지켜보는 일가족의 모습 등이 이채로웠다.  

 

* 안중식, 백악춘효(白岳春曉, 1945)
* 치바이스, 연꽃과 원앙 (1955)

 

* 우쭤런, 고비사막의 길 (1979)
* 양즈광, [죽은 남편 대신 들어온] 광산의 새로운 일꾼 (1972)
* 판제쯔, 석굴 예술의 창조자 (1954)
* 황안런, 경제특구 대지의 새로운 현(弦) (1982)

 

한국 화가의 작품과 중국 화가의 작품을 번갈아가면서 감상하노라니 1900년대 전반에는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러나 뒤로 갈 수록 붓놀림이라든가 채색을 쓰는 면에서, 또 추상성의 정도에 있어서 크게 달라진다고 느껴졌다.

요즘 시국이 하수상하여 이런 전시회보다도 광화문과 법원 앞 시위 현장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예술작품의 전시 교류를 통해 서로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아 장래의 꿈나무들이 쑥쑥 자라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전시되어 있는 한국화 74점과 중국화 74점이 대표적이라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양국의 화단이 서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보았다. 

이들 작품은 중국 베이징에서도 전시된다고 하는데 여기에 일본의 근현대 작품까지 가세한다면, 19세기 일본 우끼요에 풍속화의 유럽 화단 습격 사건처럼, 아주 흥미로울 것으로 여겨졌다.

 

* 김아영, 옥인동 (1978)
* 이종민, 봉천가는 길 - 해빙 (2011)
* 추이진, 노방 (怒放, In Full Bloom, 2019)의 일부
* 천룽 저우뤄란, 회오리바람 (1983)
* 천졘, 가을걷이 (2010)
* 예첸위, 인도 바라타나타얍 춤 (1962)
* 랴오빙슝, 자조(自嘲, 1979)
* 리보안, 루좡 노인 (1981)
* 진메이성, 수확이 충성한 채소밭 (1955)
* 이숙자, 작업 (1980)

 

* 천쯔런, 윤곽선으로만 그린 白수선화

 

* 류하이쑤, 붉은 연꽃과 비취색 깃털의 새 (1979)
* 천즈포, 기쁨을 알리는 까지 (1956)
* 장스잉, 봄 불가의 흰원숭이 (1995)
* 손동현, 팝계 왕의 초상 (P.Y.T. 2008)
* 천수런, 딩후(鼎湖) 폭포 (1936)
* 류강, 인자요산 (仁者樂山, 2017)
* 린룽성, 장마철 (2009)
* 박대성, 금강전도 i (2000)
* 추이젠, 설산 (2017)
* 후밍저, 영원 (2008)

 

근자에 와서 한국의 동양화는 서양화 못지 않게 원색의 칼라가 등장하고 추상적인 형상을 그린 작품이 많아졌다.

종이에 먹을 주재료로 써서 가는 붓으로 섬세하게 그린다는 것 말고는 서양화와 구별하는 의미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이것을 잘만 이용한다면 서양 사람의 눈에는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색다르게 비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이응노 화백이 파리를 무대로 서양의 화단에서 활동했던 것처럼 한국의 수묵채색화도 동아시아(Far East)에 머물 이유가 없어보였다. 

 

* 김보희, 향착(向着, 2013)
*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감상하는 관람객들
* 전시작품을 보고 나온 홍승철 회원과 정훈 총무
* 석조전과 을씨년스러운 덕수궁 분수대를 배경으로 미술관 계단 위에 선 필자

 

덕수궁에서 나와 돌담길을 걸을 때에는 이곳이 도심 속 문화 예술의 거리로 변모하였음을 새삼 발견하였다. 

전에는 못보았던 '왜곡된 거울 속 난장이'처럼 착시효과를 보여주는 조각 작품이 지나가는 행인들로 하여금 미소짓게 만들었다.

우리 포럼 회원들은 정동극장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오늘 본 전시작품들의 감상평을 서로 나누었다. 

 

* 정동카페에 앉아 한중 수묵화 감상 후기를 나누는 포럼 회원들. 맨왼쪽과 세번째가 각각 조선 민화와 옛그림 강의를 했던 정훈 총무, 박찬경 교수

 

Note

1] DG23 Forum (Naver 밴드 비공개)을 시작한지 어느덧 2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다루었던 주제는 다음과 같다. 회원은 연 1회 이상 주제 발표를 해야 하므로 입회 희망자가 많지 않다.

 

제 1회  2022.12.19  박훤일 '에스더 왕비의 죽으면 죽으리라'
제 2회  2023.01.18  박찬경 '서양 미술과 누드'
제 3회  2023.03.19  정    훈 'Value Life in Value Nego
제 4회  2023.03.19  이기룡 'Mind & Matter'
제 5회  2023.04.16  임대순 '마음으로 찍는 사진'

 

제 6회  2023.05.21  김동욱 '스토아적 삶의 권유'
제 7회  2023.06.18  홍승철 '팀 활동의 가치'
제 8회  2023.07.16  강    완 '가장 작은 무한'(Minimum Infinity)
제 9회  2023.09.17  박훤일 'AI GPT의 활용' (관련기사)
제10회  2023.10.15  박찬경 '현대인이 알아야 할 와인 I'

 

* 이진주, 볼 수 있는 21의 일부. 이정배블랙 수제물감으로 광목 위에 그렸다.
* 조환, 無題(2018): 전시 작품 중의 유일한 조형물 - 솔가지
* 이은실, The Inside of 'Into the hole-details' (2009). 제목도 그러하고 호랑이 꼬리 Tiger tail 같은 게 뭔가 일을 낼 것만 같다.

 

제11회  2023.11.19  장성구 '중화(中華)란 무엇인가'
제12회  2023.12.17  ' 보르헤스의 미학'

제13회  2024.01.21 박찬경 '와인 II'

   2024.02  포럼 모임은 강완 회장의 혼사로 갈음
제14회  2024.03.17  정   훈 '역설계를 활용한 글쓰기'(Decoding Greatness)

제15회  2024.04.21  이기룡 'Who do you think you are?'

 

제16회  2024.05.19  임대순 '문화유산 고려청자'
제17회  2024.06.16  홍승철 '창의력에 관하여'
제18회  2024.07.21  정    훈 '페기 구겐하임의 삶과 예술'
제19회  2024.09.22  박찬경 '조선의 옛그림 1'
제20회  2024.10.20  박찬경 '조선의 옛그림 2'

 

제21회  2024.11.17  박찬경 ' 조선의 옛그림 3'
제22회  2024.12.15  정   훈 '조선 민화의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