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디세이〉(2026)의 색다른 해석

Whitman Park 2026. 8. 26. 10:00

2026년 최대의 화제작이라고 일컫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를 보았다.

영화를 같이 본 아들 내외는 너무 재미있었다면서 IMax 영화관에서 한 번 더 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3시간이 넘는(러닝타임 173분) 대작이라 부담이 되었고 또 '영화 속의 법률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감상평에 이른바 '제우스의 법' 외에는 따로 할 이야기도 없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대신 궁금했던 사항을 영어 Wikipedia와 Gemini를 통해 해결하는 식으로 심도 있게 스크린이 아닌 텍스트를 통해 감상을 해보기로 했다.

 

그 결과 10여 가지 궁금한 사항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원전 8세기에 「일리아스」 와 함께 오디세이아」 대서사시를 남긴 호메로스의 위대함[1]이 새삼 느껴졌다. 그리고 전쟁 영웅으로 칭송을 받던 한 인간이 안팎의 위기에 처하여 속절없이 무너져 방황을 일삼고, 결국 자기를 기다리는 가족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알 수 있었다. 「오디세이아」가 역사적 사실이냐 신화의 기록이냐 하는 논쟁은 부질없는 일이고 이 점을 대형 화면에 웅장한 스케일로 보여준 놀 감독에게는 존경의 염(念)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의 줄거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와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원천[1]으로 알려져 있고, 그 배경이 된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10년에 걸친 토로이 전쟁도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어 있다.[2]

더욱이 영화 〈오디세이〉가 롱런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 소개는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그 대신 이 영화 감상평에 필요한 범위에서 오디세우스의 여정과 고향 이타카에 당도할 때까지의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해변에 상륙했으나 트로이 철옹성 앞에서 전황은 지지부진하였다. 그러나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등 양측의 용장이 모두 죽고난 후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분)가 제안한 토로이 목마 계략이 성공하여 성을 함락시키고 트로이는 멸망하고 만다.[3] 

*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오디세우스는 부하들과 여러 척의 배에 나누어 타고 귀국 길에 오른다. 그러나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어느 모르는 섬에 상륙한다. 그러나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포세이돈의 아들)의 동굴에 들어갔다가 그의 눈을 멀게 한 후에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완전 실명한 키클롭스의 기도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노여움을 사 오디세우스 일행은 위기에 처한다. 이후 식인 거인족 레스트리구네스, 사람을 돼지로 만드는 마녀 키르케의 섬(1년 간 체류), 아름다운 노래로 선원들을 미혹시키는 세이렌의 섬,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등을 거치는 동안 모든 부하와 배를 잃고 출항 후 3년 동안 신들의 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 오디세우스는 바다의 요정 칼립소(샤를리즈 테론 분)의 섬 오기기아에 표착하여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로터스 열매를 먹으며 7년의 세월을 보낸다. 칼립소로부터 영생을 누리고 자기와 함께 살 것을 제안받지만, 그는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타고 갈 배 뗏목 조각을 모은다.

* 10년이 되던 해 제우스의 도움으로 칼립소를 떠나 파이아케스족의 지원을 받고 마침내 이타카에 도착한다. 그러나 성 안에 페넬로페(앤 해서웨이 분)에 대한 구혼자가 108명이나 있다는 말을 듣고 걸인으로 변장하여 성에 들어가 그들을 모두 소탕한다.

 

놀런 감독은 상영 시간의 제한으로 원작의 에피소드 중에서 키르케 섬에서의 체류, 칼립소 섬에서의 7년 등 상당 부분을 압축하거나 환상 기법으로 각색했다. 신들이 직접 개입하여 오디세우스를 억류하고 방황하게 만들지 않고, 오디세우스가 전쟁 중에 체험한 무차별 집단학살(genocide)에 대한 트라우마 및 환영으로 인해 스스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미뤘던 것으로 재해석했다.

 

여기서 놀 감독 특유의 시공간 편집 기법과 촬영 후 편집담당인 제니퍼 레임과의 협업을 통해, 단순히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귀향길이 아니라 입체적인 지도처럼 비선형적(非線型的) 연출기법으로 이를 재구성했다.

즉, 3개의 시간축을 교차시키는 '다층 서사구조'를 취하여, 시간선 A (현재)에는 이타카의 왕비 페넬로페와 왕자 텔레마코스(톰 홀랜드 분)를 배치했다. 오디세우스의 부재 속에서 구혼자들의 침탈에 맞서고 권력 다툼을 견뎌내는 모자(母子)의 시점이다. 이 시간선은 비교적 정속으로 흘러가며, 관객에게 오디세우스가 돌아와야만 하는 명확한 당위성과 긴장감을 부여한다.

시간선 B (과거로의 회상)는 오디세우스가 전쟁 중 경험한 참상, 잔혹한 학살, 그리고 트로이 목마의 승리 직후 느꼈던 허무함을 보여준다. 시간은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그가 바다 위에서 생사의 위기를 맞닥뜨릴 때마다 환각처럼 되살아난다.

시간선 C (여정)는 오디세우스가 키클롭스, 세이렌, 칼립소의 섬 등을 거쳐 지나가는 10년 동안 죄책감을 덜어내는 심리적 방황의 시간이며 시간선 A, B와 교차 편집하였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에서 법과 규범이 나오는 것은 제우스 법(Xenia)이 유일하다. 20세기의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전쟁이 일어나면 집단학살은 다반사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인류에 대한 범죄로 보고 금지하는 규범조차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준수되었던 '나그네 환대(크세니아)'는 단순한 친절이 아니라, 문명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법적 의무였다. 신이 나그네로 변장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자신이 타지에서 길을 잃었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안전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무너지고 로마 제국 시대에 사법 시스템과 여관, 도로망 등 공공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1~2세기경부터는 문명국의 에티켓이나 관습으로 퇴화했다.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황금률로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는 말씀이 나오는데 크세니아에서 직접 유래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은 동서양(유대교의 율법, 유교의 공자, 그리스의 크세니아 등)을 막론하고 인류가 문명 사회를 이룩한 보편적 윤리관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원작과는 달리 아테나, 포세이돈, 제우스 등 신들이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놀런 감독은 신의 존재를 '자연의 위력'이나 '인간의 광기' 같이 비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나 세이렌의 유혹을 괴물이 아닌, 전쟁 트라우마를 겪은 오디세우스와 그 부하들의 환각(hallucination) 내지 거친 환경에서의 생존 위기감(survival crisis)으로 재해석했다.[4]

결말 부분에서 원작은 오디세우스가 염치없고 무례한 구혼자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신의 정의를 실현하는 통쾌하고 잔혹한 영웅주의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영화는 씁쓸한 여운이 남긴다. 오디세우스는 무례한 구혼자들을 모두 처단했지만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자리를 할 수 없다는 허무감과 죄책감에 그들의 명복을 빌러 다시 떠나는 것이다.

 

* 힙합 뮤지션인 트래비스 스캇이 음유시인으로 등장하여 호메로스의 원작 비슷하게 현대적인 랩으로 불렀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것은 프레임 내 액자식 구성 (Story within a Story)이다. 오프닝 신에서 고대 그리스 같이 연회장에서 음유시인(aoidos)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5] 원작에서 오디세우스가 과거의 표류기를 고백하는 구성을 취했던 것처럼 놀런 감독은 옛 이야기를 전하는(Storytelling) 식으로 만들었다. 화자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현실로 되돌아 나오는 입체적인 구성법이다. 관객은 오디세우스가 겪는 시련이 실제 일어난 일인지, 그의 왜곡된 기억이나 전쟁 트라우마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호메로스는 10년에 걸쳐 여러 신과 영웅들이 서로 싸웠던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지략과 용맹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약점이 많았던 오디세우스가 신탁(Oracle)을 받은 대로[6] 오랜 방황 끝에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반면 놀 감독은 앞서 말한 것처럼 고전 서사를 비선형적으로 만들어 "왜 오디세우스는 10년 동안 고향에 가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에 현대적·심리적 개연성을 부여하였다. 단순히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방해 때문이 아니라, 전쟁 범죄에 대한 죄책감과 고향으로 돌아갈 자격이 없다는 심리적 방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귀향길이 순탄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뒤로 갈수록 오디세우스의 10년은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 지연과 치유의 시간'으로 치환해서 보게 된다.

사냥을 할 때에도 곧바로 화살을 쏘기 전에 활시위를 튕김으로써 사냥감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사람이 트로이 목마라는 속임수를 써서 수많은 트로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죄책감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그러므로 10년의 방황은 고향에 돌아갈 준비가 되지 않은 자의 '심리적 유예 기간'이었다.

전쟁과 집단학살의 트라우마를 겪은 오디세우스에게 키르케와 칼립소는 쾌락과 영생, 안락을 제공했다. 오디세우스가 이들 섬에 오래 머물렀던 것은, 현대인이 지친 현실을 피해 가상의 공간이나 타성에 탐닉하는 '만성적 미루기'(Procrastination)와 닮아 있다.[7]

 

*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돕는 아테네 여신은 그의 눈에만 보이는데 오디세우스 내면의 양심, 죄책감을 상징한다.

 

오디세우스는 지혜로운 영웅이었지만 동시에 오만함으로 인해 스스로 비극을 초래한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폴리페모스)의 굴에 갇혀 절대정명의 위기에 처했다. 오디세우스는 지략을 발휘해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 아니다(Outis/Nobody)"라고 속이고 키클롭스에게 술을 먹여 잠들게 한 뒤 눈을 찔러 멀게 하고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를 타고 무사히 바다로 나아간 오디세우스는 승리감에 도취되어, 절규하는 키클롭스를 향해 외친다. "키클롭스여! 만약 누군가가 네 눈이 어떻게 멀었냐고 묻는다면, 이타카의 왕,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가 네 눈을 뽑았다고 말하라!"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명성과 이름을 뽐내고자 오만(Hubris)이 가득찬 나머지 신의 도움과 운이 따랐음을 잊었던 것이다. 신의 응징(Nemesis)은 즉각적이었다. 포세이돈은 아들의 기도를 받아들여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에 무시무시한 풍랑과 시련을 퍼부었다.

결국 오디세우스의 10년 표류는 단순히 재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선을 넘은 오만에 대해 신이 내린 혹독한 대가였다.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앞에서 자신을 "아무도 아니다(Nobody)"라고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오만한 자아를 완전히 깨뜨리고 겸손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데 필요한 10년의 시간이었다.

 

크리스천의 관점에서 본 〈오디세이〉

 

Note

1] 그리스 신들은 로마 신화에도 그대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름을 혼동하기 쉽다. 오디세우스도 라틴어 표기는 율리시스(Ulysses)이며, 제임스 조이스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방황하는 주인공의 하룻 동안 말과 행적, 내면의 생각을 기록한 현대소설에 상징적으로 그 이름을 붙였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출정하면서 충직한 신하 멘토르(Mentor)에게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부탁하는데 이것은 '멘토링'의 어원이 되었다.

그리고 서울대 김헌 교수는 그리스어 발음에 충실하게 영어식 표기인 오디세이(Odyssey)를 '오뒷세이아'라고 일컫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선교사들이 맨처음 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제우스를 '쓰스', 그의 전령 헤르메스를 '헤메'(사도행전 14:12), 트로이를 '드로아'(사도행전 16:8)라고 음역한 바 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가 다스렸던 이타카(Ithaca)라는 지명이 미국 뉴욕주에도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 놀러갈 때면 이타카에 들러 핑거 레이크 호반에서 경치를 보면서 점심을 먹곤 했다. 이타카에는 아이비 리그의 대표 격인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가 있어서 학문 하는 길의 출발지와 목적지로 적합한 이름이라 생각되었다.

 

2] 트로이(Troy)는 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 반도에 위치한 고대 도시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신화 속의 성곽으로만 알려져 있다가 독학으로 고고학을 공부한 독일의 하인리히 쉴리이만의 노력으로 트로이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고대 도시임이 밝혀졌다. 여러 차례의 전쟁과 지진, 해일로 파괴와 건설을 거듭했던 여러 층의 도시가 한 자리에서 발굴되었다.

성경 사도행전에서는 '드로아'라는 지명으로 나오며,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헬라인 의사 누가와 함께 유럽으로 건너간 항구 도시였다. 1차 대전 당시에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상륙작전을 폈으나 오스만 투르크의 케말파샤 장군에게 대패한 '갈리폴리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한국 기업이 단기간에 세계 최장(주경간장 2023m)의 현수교 차나칼레 대교를 성공적으로 건설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3] 용감무쌍한 트로이 전사들은 그리스 연합군에 맞서 10년이나 성을 지켰다. 그러므로 그리스를 뛰어넘어서야 했던 로마는 트로이의 유민들이 그리스 군대를 피해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와 로마를 건설했다는 건국신화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서부 명문대인 써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는 투구를 쓴 트로이 전사(Trojans)를 대학교의 상징물(emblem)로 쓰고 있다. 본래 1912년 열악한 여건 속에서 막강한 상대팀을 이기라는 염원에서 미식축구팀의 로고로 만들어 썼으나 대학교와 학생들이 학교의 상징물로 쓰기를 원하여 그후 USC의 정식 엠블럼으로 채택되었다. 그밖에 미시간 주립대는 스파르타의 전사 투구를 마스코트/상징물로 쓰고 있다.

 

4] 헐리우드 영화 중에눈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군인이 전쟁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환영, 정신착란, 극심한 심리적 혼란 속에서 범죄나 폭력에 휘말리는 스토리를 다룬 것이 여러 편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영화는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 2007), 〈너는 여기에 없었다〉(You Were Never Really Here, 2018), 〈체리〉(Cherry, 2021) 등을 꼽을 수 있다.

호아킨 피닉스가 제70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너는 여기에 없었다〉 영화는 어린 시절 부친의 폭력과 참전했던 걸프전 전장의 기억, 그리고 FBI 시절의 트라우마로 심각한 PTSD를 앓고 있는 전직 군인 '조'가 주인공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환각과 환청, 강박적인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사적 제재(해머를 이용한 폭력)를 통해 실종된 아동을 구출하는 비밀 청부업자로 살아간다. 어느 날, 유력 정치인의 어린 딸을 구출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사건에 개입하지만, 사건 배후에 거대한 음모와 거물급 범죄 조직이 얽혀 있음을 알게 된다. 환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극심한 정신착란 속에서도 아동을 구하기 위해 폭력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한 남자의 파괴적인 심리를 감각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5]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처음 시작할 때 "무수한 사람들의 도시를 파괴하고 방황했던 그 다재다능한 사람에 대해, 뮤즈여 제게 노래하소서"라는 신을 향한 기도문(Proem)을 소리 높이 외친다. 오프닝 신은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 갇혀 있고, 이타카에서는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장면이다.

 

*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고 환대하지만 그의 본심을 알고선 귀향을 막지 않는다.

 

6] 오디세우스가 신탁을 받은 곳은 아테네 사람들이 주로 찾았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이 아니었다. 그가 마녀 키르케의 섬에 있을 때 하도 답답한 나머지 산 자가 들어갈 수 없는 하데스(저승의 지하세계)의 입구에 찾아가 문의했다. 하데스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가 일단 고향 이타카로 빈손으로 돌아가겠으나 아내 페넬로페를 괴롭히는 구혼자들을 처단한 뒤 포세이돈의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들어가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면서 그곳에서 포세이돈에게 큰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키르케와 관계하여 낳은 아들의 손에 죽음을 맞으리라는 섬뜩한 예언을 덧붙였다.

 

7] 바로 이 대목에서 미국의 정신과의사 조너선 셰이 박사는 「아메리카의 오디세우스」 (Odysseus in America) 라는 저서를 통해 '전쟁 참전 용사들의 사회 복귀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극복 과정'을 체계화했다.

즉, 망각이라는 회피(로터스 열매를 먹는 자들 = 로토파고스)는 참혹한 기억을 잊기 위해 알코올, 약물, 혹은 현실 도피적 쾌락에 빠지는 '감정적 마비 및 회피(Avoidance)'를 상징한다. 또한 오만과 과잉 경계 (키클롭스/폴리페모스)는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과도한 경계심과 공격성이 일상 복귀 후 통제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감정의 격절 (키르케와 칼립소 섬)은 겉으로는 안전하고 평화롭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심리적 성장이 멈춰버린 '정서적 고립 및 정체 상태'를 뜻한다.

놀런 감독의 오디세이아 분석심리학 영상은 오디세이아 서사를 분석심리학 및 현대 철학의 타자성 관점과 결합하여, 주인공이 마주하는 외적 시련과 내면의 그림자를 포용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전문적으로 풀이하고 있는 점에서 참고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