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는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라 해도 표를 예매하기 전에 다른 관객의 후기를 꼭 읽어본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보는 것이 자신의 기호나 가치관에 부합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티켓 값이 아깝지 않아야 영화관에 간다는 것이다. 이 점은 이 영화를 볼 때 절로 확인이 되었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얼마 안 있어 관객과의 대화(Guest View: GV)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GV가 있는 줄도 모르고 표만 사서 들어온 사람은 나이든 우리 일행 뿐이었다.[1]
노르웨이의 요아킴 트리에(1974~ ) 감독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2021) 로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바 있다. 그가 각본에도 참여하고 연출을 맡은 영화〈센티멘탈 밸류〉는 얼핏 그 제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영화는 도입부에서 아버지 구스타브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扮) 의 할아버지가 새로 짓고 대를 이어 살았던 집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이 집이 사람처럼 감각이 있다면 무슨 말을 기억할까? 딸이 나레이터가 되었을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부싸움을 하는 것을 '소음'이라 표현했고 아버지가 스웨덴으로 떠난 후엔 집의 부피가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벽난로를 통해 들려오는 다른 방의 대화 소리는 어린 소녀들이 감당하기엔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는 언니 노라(레나테 레인스베)가 옆에 있으니 든든했지만, 노라는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할머니가 그 집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신 것, 심리상담가인 어머니가 정작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를 해소하지 못하고 이혼한 것 등은 집 정원 뒤의 사잇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듯이 회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미리 예고를 하고 코엑스 Megabox에서의 GV에 나온 유명 YouTube 인플루언서 두 분(김은하와 허위수)은 가족내 불화와 소통부재로 고통 받는 등장인물 중 누구에게 감정이입(empathy)이 되었냐는 질문부터 하였다. 그 만큼 왕년에 날리는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 구스타브와 두 자매 안나와 아그네스의 관계가 관객들이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게 비쳤던 까닭이다.
우리 역시 자녀들과 소통이 안 되는, 아니 소통이 없는 아버지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영화관 출구 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If You Give an Answer to Your Viewer, Your Film will Simply Finish in the Movie Theatre.
But when You pose Questions, Your Film Actually Begins after People watch It.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
2025 칸 영화제 대상(Grand Prix, 황금종려상은 이란 영화가 수상)에 이어 2026 아카데미 작품상 등의 유력 후보작[2]이라는 것만 알고 이 영화를 픽(pick)했던 우리에게는 영화의 메시지나 캐릭터들이 온통 의문부호 투성이였다. 그런데 묘한 기시감(deja vu)이 드는 것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많은 부분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
여기서는 스포일러가 될 만한 이야기는 빼고 왜 이 영화가 볼 만한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영화 〈센티멘탈 밸류〉의 줄거리를 알고 싶다면 이곳을 탭하고 비밀번호 42MzAxNj 를 입력하세요.
이 영화는 단순히 '가족의 불화와 화해'라는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유서 깊은 집을 무대로 하여 이 방 저 방에서 일어났던 사건들로 인해 아버지와 딸, 두 자매 사이에 반목과 소통부재, 관계의존성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 몰입하게 하는 것은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언니 노라 역의 레나테 레인스베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아버지 구스타브 역의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의 인간적인 연기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헐리웃 스타 엘 패닝은 북유럽 특유의 차분한 정서에 스며들기 어려운 외부인의 시선을 보태준다.
특히 미국 영화제(Deauville American Film Festival)가 열린 프랑스 노르망디 도빌의 해변에서 구스타브가 헐리웃 스타 레이첼 켐프(엘 페닝)를 전격 캐스팅하는 장면은 그 성사 여부가 영화제작비를 대줄 투자자를 유치하는 관건이기에 관객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배역은 구스타브가 처음부터 장녀 노라를 염두에 두었던 만큼 관객들의 마음이 불편해진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 배역은 레이첼이 스스로 물러나고, 마음이 돌아선 노라가 맡게 되어 영화는 순조롭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오슬로 국립극장의 무대 뒤와 객석을 보여주는가 하면 고풍스러운 저택을 무대로 벌어지는 극적인 상황이 연극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장면 장면이 그 자체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듯했다.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나치 점령 때 비롯된 트라우마(trauma)의 代물림, 이로 인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 자매 간의 미묘한 경쟁과 의존심리, 그리고 각자 상처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은 국적을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감상의 포인트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겨울의 밤이 긴 북유럽의 영화 답게 여러 가지 생각할 게 많았다.
그래서 마치 되새김질하듯이 Gemini의 도움을 받아 Q&A 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o 연극배우에게 무대공포증이 있다면?
노라는 연극의 개막을 알리는 음악이 우렁차게 울릴 때 단순한 긴장을 넘어선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다. 평소의 완벽주의 성격에 관객의 시선에 극도로 예민해진 탓이다. 이러한 공황발작(panic attack)은 영화가 전개됨에 따라 영화계의 거장인 아버지에게 독자적인 예술가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압박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스태프에게 자기를 때려달라고 말한다. 관객들도 깜짝 놀라지만 주저주저하던 그가 화난 아버지처럼 뺨을 때리자 그제서야 안정을 되찾고 무대로 나가 무사히 연극을 마치고 관객들로부터 박수갈채와 환호를 받는다.
정신의학적으로도 공포에 질려 정신이 현실과 분리되는 해리(解離) 증상이 나타날 때에는 강한 물리적 통증을 가함으로써 정신을 즉각적으로 현재의 육체로 되돌린다고 한다.
o 노라가 미혼인 이유
노라가 동생 아그네스와는 달리 가정을 이루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의 뺨을 때렸던 극장 스태프와 하룻밤 정사를 벌이는 것을 보면 노라에게는 부모에게서 비롯된 '정서적 불안정성'과 '회피적 애착' 때문에 마음의 갈피를 못잡는 것 같다. 어머니와 대판 싸우고 무책임하게 가족을 떠난 아버지 구스타브에 대한 증오와 부성애 결핍 증상은 노라가 남성을 깊이 신뢰하고 관계를 지속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동생 아그네스의 삶을 '평범하고 지루한 것'으로 치부하며 자신의 고립은 예술적 순수함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영화에서는 그녀가 타인과 깊이 엮이는 것을 두려워하며, 관계가 깊어질 수록 스스로 관계를 파괴하는 방어기제로 표출이 된다. 그렇기에 아버지 구스타브가 노라를 위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며 각본을 건네주자 읽어보지도 않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것이다.
o 벽난로를 통한 엿듣기
노라의 집에는 벽난로가 있다. 어린 시절 부모가 목청을 높여 싸울 때면 그 자리를 피해 다른 방으로 갔는데 그 방에서는 집안의 연결된 벽난로 통로를 통해 부모의 싸우는 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리고 자신들에 대한 냉소적인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노라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내뱉는 독설이나 가족을 짐짝처럼 여기는 발언을 들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겉으로는 점잖고 평온하게 보이는 일상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가식적인 것인지 너무나도 일찍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은 노라를 '관찰자'(Observer)적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세상과 직접 부딪히기보다 한발 물러나 타인의 진심을 의심하고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려는 냉소적인 인간이 되었다. 또한 타인의 대화를 몰래 듣는 행위는 그녀가 자연스럽게 연극 배우가 되도록 이끌었다. 하지만 타인의 삶을 흉내 내고 연기하는 데는 능하였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게 만들었다.
o 구스타브가 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
구스타브는 젊은 시절 영화감독으로서의 야망과 예술적 자유를 쫓아 가족을 버리고 스웨덴으로 떠났다. 뭐든지 이론과 공식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심리치료사(psychotherapist)인 부인에게 넌더리가 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 집에 얽힌, 말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었다. 악몽을 떨치듯이 스웨덴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영화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도빌 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기리는 회고전이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으로 왕년의 영광를 되찾고 자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영화를 만들고자 前부인이 세상을 뜨자마자 옛날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주연 역할을 제안한 노라에게 거절을 당하고 인기 헐리웃 여배우에게 그 역을 맡기자 노라와 아그네스 자매한테는 아버지가 너무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것으로 비친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속죄하기는커녕 이 집으로 한 몫 잡으려 하는 아버지가 혐오스럽기조차 하다. 더욱이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 집을 처분한다면 아그네스는 당장 이 집에서 나가야 하니 더욱 야속하기만 하다.

o 할머니 카린의 자살 동기
노라의 할머니 카린이 이 집의 골방에서 천정에 목을 매달고 극단적 선택을 한 표면적인 이유는 나치 점령기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나치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결국 동지를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아들인 구스타브의 눈을 통해 더 깊은 내면을 조명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자신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들이 전후 사회의 아무일도 없었던 듯한 위선 속에 묻히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학교에 가는 어린 아들을 배웅하고 나서 스스로 세상을 떠나 버린 어머니를 회고하면서 구스타브는 결말을 바꿔놓는다. 그가 쓴 새 영화 시나리오에서는 학교에 간다고 집을 떠났던 아들이 휴대폰을 놓고 갔다며 집에 되돌아 오게 만들어 어머니가 미수(未遂)에 그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o 구스타브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했나?
아버지 구스타브의 代물림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알아본 것은 아그네스였다. 어렸을 적에 언니 대신 아버지의 영화를 찍었는데 그때 평화롭던 들판에서 나치 경찰에 쫓기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기차를 타고 탈출하는 소녀의 역할이었다. 이 장면은 구스타브가 찍고 있는 '영화 속 영화'의 한 장면이자, 가족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공포의 시각화였다.
역사학자인 아그네스는 나치 점령하의 기록보관소를 찾아가 할머니에 관한 기록을 모두 열람하면서 큰 충격에 빠진다. 할머니가 어떤 고문을 당했을지 상상을 하다가 지금 그녀와 언니 노라가 겪고 있는 심적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잠긴다.
이것은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옛날 아버지 구스타브가 겪었을 고통이 대물림되는 게 아닐까 싶어 처음엔 아들의 출연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건네준 새 영화 각본에서는 그 장면이 다르게 처리된 것을 알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그리고 언니를 찾아가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할 것을 간곡하게 설득한다. 대물림의 트라우마는 어느 용기 있는 가족이 나서서 끊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o 나치 점령기 비밀문서의 공개
노르웨이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나치 부역 및 점령기 기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했다.
1999년 정부 차원에서 나치 점령기 당시 유대인 자산 몰수 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며 관련 자료들을 공공 기록보관소(National Archives)를 통해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 후 국가 안보와 직결된 극소수의 정보를 제외하고는 95% 이상의 관련 정보가 공개되었다.
특히 2010년대 들어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일반 시민들도 당시의 재판 기록이나 비밀경찰 자료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노르웨이 국민들이 나치 점령하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부역과 저항'이라는 단순 도식이 아니라 도덕적ㆍ인격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반대로 나치 독일과 협력했던 '국민연합(NS)' 당원들의 자녀들이 전후 사회에서 겪은 차별과 박해 역시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터부시되었으나 지금은 과거사로 묻어두는 분위기이다.[3] 카린의 사례와는 달리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에 자살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도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자살률이 높진 않아도 일조량 부족으로 인한 계절성 우울증이나 개인적 정신건강 문제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o 영화의 분위기와 뭉크 작품과의 시각적 연결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평소 "영화는 시각적인 리듬이자 심리적인 풍경화"라고 말하곤 했다. 그의 영화가 주는 특유의 서늘하면서도 뜨거운 공기는 노르웨이가 낳은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의 화풍과 매우 닮아 있다는 평가가 있다.
뭉크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사춘기(Puberty)'를 보면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소녀의 내면적 공포와 존재론적 불안이 어둡고 강렬한 색채로 표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요아킴 감독의 이 영화는 오슬로의 차가운 푸른 빛과 집 안의 어둡고 폐쇄적인 구도를 통해 이를 시각화하고 있다.
o 영화 촬영에서 하차한 배우에 대한 보상
이 영화에서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애써서 캐스팅한 여배우가 촬영을 그만두겠다고 할 때였다.[4]
구스타브는 자신의 시나리오 주인공으로 노라를 염두에 두었지만 거절당하자 도빌 영화제에서 만난 헐리웃 스타 레이첼에게 주연 역할을 제안한다. 레이첼은 구스타브의 예술 세계에 적잖이 감명을 받은 터였고, 구스타브는 그녀의 '스타 파워'를 이용해 투자자를 유치하려는 실리적인 목적도 있었다.
레이첼은 노르웨이로 건너와 금발 머리도 염색하고 대본 리딩에 임하는 등 촬영을 준비하지만 원작이 가진 미묘한 북유럽의 정서에 자신의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또한 영어로 번역된 대사를 읽으면서 가족 내의 복잡한 역학관계에 비추어 자신은 결코 노라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우아하게 물러난다.
이런 경우 헐리웃의 관례에 따르면 배우가 제작자 측의 사정이나 합의 하에 하차할 경우, 보통 출연료의 일부를 '위로금'(Holding fee 또는 Kill Fee라 함)으로 지급한다. 정확한 액수는 계약마다 다르지만, 레이첼 같은 톱스타라면 수십만 달러에서 출연료의 10~20% 정도를 위로금으로 받거나, 향후 해당 영화의 수익 지분을 일부 보장받는 방식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투자 제안을 받았던 구스타브의 동료가 촬영장에서 감독의 손을 잡고 미소짓는 모습은 이 문제가 원만하게 해소되었음을 보여준다.[5]
o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자전적 영화인가?
노르웨이의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우리나라의 봉준호 감독처럼 재능이 많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영화감독이다.
그가 이 영화처럼 레나테 레인스베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있다. 이 영화에서 레나테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 뭐든지 해보고 싶어하는 의학도 율리에 역을 맡아 2021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획득했다.
이와 같이 요아킴 감독은 사랑, 야망, 추억, 정체성에 관한 실존적 질문을 다루는 영상을 즐겨 만들기에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영화감독인 구스타브가 자신의 가족사를 영화로 만들며 재기를 꿈꾼다는 설정은 영화라는 매체가 개인의 삶을 치유(healing)할 수 있는지 묻는 요아킴 감독 자신의 오랜 자전적 고민이 투영된 게 아닌가 싶다.

Note
1] 인문학 주제에 관심이 많은 고교 동창들이 매달 한 차례 모여 한 사람이 발표를 하고 서로 토론을 하는 Forum을 3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Forum 회원들 스스로도 이렇게 오래 지속할 줄은 몰랐다. 다수의 회원이 대학 전공이나 직업이 이공계 분야에 속함에도 미술과 문학, 역사, 철학의 주제를 골라 연 1회 이상 발표를 하고 있다.
금년 2월에는 설 연휴가 있어 방학을 하기로 했으나 번개팅으로 모여 〈센티멘탈 밸류〉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2] 〈센티멘탈 밸류〉가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내역은 Wikipedia에 잘 정리되어 있다.
작품상, 감독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는 2026 아카데미상은 금년 3월 15일 미국 LA에서 열릴 예정이다. 아카데미 상은 투표단의 표결로 결정되는 만큼 작금의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음에 비추어 화해(reconciliation)의 제스처로서 노르웨이 영화와 제작진, 배우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가능성도 있다.
3] 이 영화에서는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아그네스가 정부 기록보관소에 찾아가 할머니에 관한 기록을 열람하고 실제 그 기록(물론 카린과 비슷한 옥고를 치른 다른 여성 레지스탕스에 관한 기록)을 영상에 담아 보여주었다.
전후 노르웨이에서는 남아공이나 독일처럼 대대적인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국가적 캠페인으로 벌이진 않았다. 오히려 사법적 단죄와 점진적인 명예회복의 길을 택했다. 정부는 전쟁 직후 나치 부역자들에 대해 매우 엄격한 사법 처리를 단행하여, 부역 혐의로 약 4만 5천 명을 기소하고 단죄했다.
2012년 당시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나치 점령기 유대인 체포 및 이송에 노르웨이 경찰이 가담한 것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최근에는 전쟁 당시 독일군과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Lebensborn에서 태어난 우생학적인 '나치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보상 절차를 밟는 등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4] 이 대목에서 느낌이 똑같았던 영화는 〈유스(The Youth)〉(2015) 이다.
스위스의 어느 고급 리조트 호텔에서 노장 감독 믹 보일(하비 케이틀 扮)은 젊은이 뺨치는 열정으로 생애 마지막 걸작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주연으로 모셔온 여배우(제인 폰다)가 老감독을 보고 정색을 하며 "이젠 좋은 영화 만들기는 틀렸으니 돈 되는 TV드라마나 찍자"고 하자 크게 실망한다. 표정이 일그러진 그는 평생의 말벗 친구(오케스트라 지휘자 역의 마이클 케인)가 보는 앞에서 창밖으로 몸을 던지고 만다.

5] 이 영화의 감상후기를 이야기하면서 Forum 회원들 사이에 'Sentimental Value'의 정확한 해석을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영화를 본 사람은 '감정의 부채'란 말이 와 닿는다고 했으나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래도 '가치' 또는 '가격'이 맞지 않느냐고 의문을 표했다. 나는 구스타브의 입장이 되어 영화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 집을 '시세'에 맞게 팔려고 내놓았으니 Market Value와 용례가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던 가족간의 정서적 갈등에 주목해야 한다. 당사자들이 영화를 같이 만들면서 갈등이 많이 해소되었으므로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냈다는 의미에서 '마음의 빚갚기'란 뜻을 내포한 '감정의 부채'로 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살짝 들여다본, 영화 Sentimental Value의 줄거리 (0) | 2026.02.22 |
|---|---|
| SAS 특수부대: 라이징 오브 블랙 스완 (2) | 2025.09.22 |
| 예외적인 스파이 스릴러 영화 〈아마추어〉(2025) (9) | 2025.08.15 |
| 영화 Gladiator II를 보는 재미 (1) | 2024.11.27 |
| 시민 덕희 (2024) (4) | 202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