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스(Youth, 2015)

Whitman Park 2022. 2. 21. 08:05

삶의 위기에 처한 노인들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칸 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영화 <유스(Youth)>가 우리나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적잖이 화제를 모았다. 우선 매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는 다보스에 가까운 알프스 산록의 비젠(Wiesen) 소재 스위스 5성급 호텔이 무대이다. 게다가 마라도나 같은 여러 유명 인사가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가 “심플 송”을 불러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에는 호텔 투숙객만큼 다채로운 사람들이 등장하여 관심을 끈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 같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다니는 배불뚝이지만 신기에 가까운 (테니스) 공차기 실력을 보여주는 왕년의 축구스타 마라도나 (호텔 담 밖에는 그의 사인을 받으려는 수많은 팬들이 몰려와 있다), 로봇 분장이 아닌 제 얼굴 출연을 위해 히틀러 배역을 맡기로 했다가 단념하는 헐리웃 배우, 비웃음을 사던 끝에 마침내 공중부양을 보여주는 선승, 산에서 내려와 호텔에서 암벽타기 지도를 하는 알프스 산악 안내인, TV를 보며 댄스 연습과 스트레칭 운동을 하는 마사지사 등 비유와 상징이 많은 영화이다.

그리고 느닷없이 미스 유니버스가 그곳을 찾아와 스파에서 알몸으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온다.[1]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 관람불가’[2]가 될 것으로 보았으나 2015년 칸 영화제 개막작이었다는 유명세 탓인지 우리나라에서도 ‘15세 이상 관람가’[3] 등급을 받고 노컷으로 상영되었다.

 

영화의 줄거리

평생 친구이자 사돈지간인 70대의 두 노인이 등장하여 각자 사연을 풀어 나간다. 그들은 20년 이상 이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 온 터였다. 은퇴한 음악가 프레드 벨린저(마이클 케인)는 매니저였던 딸 레나(레이첼 와이즈)를 데리고 휴양차 호텔에 투숙했다. 한편 노장 감독인 믹 보일(하비 케이틀)은 젊은 스탭들과 함께 호텔에 머물면서 회심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거듭하며 다음 영화 제작 준비로 부산하다. 그때 영국 왕실의 칙사가 프레드를 찾아와 엘리자베스 여왕의 탄신일에 그의 대표작인 “심플 송” 공연의 지휘를 요청한다. 그의 평생공로를 기려 기사(Knight) 작위를 수여한다는 제안을 하지만 그는 은퇴했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프레디와 마지막 걸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스탭들과 혼신의 힘을 다하는 믹은 서로 닮은 듯하면서도 대조적이다. 그 외에도 새로운 배역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로봇 연기자와 미래의 유명 댄서를 꿈꾸는 마사지사, 고도비만으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사는 축구 스타 마라도나 등이 호텔에서 함께 지낸다. 어느 이른 아침 프레드와 믹이 스파 온탕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홀연히 전라의 미스유니버스가 나타난다. 두 노인은 그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나?" 이야기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진다.

 

*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Dreams>의 '하나 마쓰리' 장면.
* 영화감독 믹은 자기가 연출했던 영화의 주인공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푸념을 듣는다. 구로사와의 <Dreams>에 대한 오마쥬였다.

 

막역한 사이인 프레드와 믹은 노년에 처한 자세는 달라도 화려했던 과거를 아쉬워한다. 그러나 얼마 남지 않은 미래를 생각할 때는 우울해진다. 프레드의 딸 레나가 믹의 아들인 남편이 영국의 팝스타[4]와 외도를 해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고백할 때 프레드는 딸과 소원했음을 깨닫는다. 자기가 "심플 송" 공연을 거절한 이유는 이 노래는 왕년의 명 소프라노였던 엄마만이 부를 수 있는데 지금 베니스의 요양병원에 치매 환자로 있으니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프레드와 믹은 호텔 밖 알프스 산기슭을 같이 산책하면서 각자 과거를 회상한다. 지난 20년이 마치 어제 일어난 일 같다. 믹은 그가 연출했던 수많은 영화의 주연배우들을 상상 속에서 만나[5] 그들에게서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한편 프레드는 풀을 뜯는 젖소들의 워낭소리를 악기소리로 알아 듣고 손을 흔들며 지휘를 한다.

드디어 믹은 각본을 완성하고 영화 주연을 맡기기 위해 그가 스타덤에 오르도록 이끌어준 평생지기 브렌다(제인 폰다)를 호텔로 초청한다. 브렌다가 배역을 수락하면 즉각 촬영을 개시할 참이다. 뜻밖에도 그녀는 믹에게 좋은 영화는 만들긴 틀렸으니 돈 되는 TV 드라마나 찍자고 모멸에 가까운 제안을 한다. 믹은 기대감의 절정에서 실망한 나머지 프레드가 보는 앞에서 창밖으로 뛰어 내린다.

 

의욕이 넘치던 친구가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하고 세상을 떠나자 프레드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베니스에 가서 '심플 송'의 영감을 주었던 스트라빈스키의 묘를 찾은 후 치매에 걸려 두문불출하는 그의 아내를 위로한다. 그리고 나서 런던으로 돌아간다. 당초 거절했던 “심플 송 3번”을 여왕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지휘대에 오른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반주, 바이올린(빅토리아 뮬로바)의 독주 그리고 소프라노(조수미)의 성악이 각기 다른 듯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 은퇴한 음악가는 소의 워낭소리를 듣고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지휘를 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우리나라 봉준호 감독과 나이도 스타일도 비슷한 이탈리아의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그러므로 영화의 매력적인 요소를 모두 담아냈고, 세계 최고급 호텔의 이모저모를 속속들이 보여주었다. 여기에 투숙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유함에도 제각기 고민거리를 안고 스파와 요가, 마사지 등을 통해 활력을 되찾고자 애쓴다. 물론 믹처럼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레나 같이 파경을 맞은 부부도 있다. 그 호텔에서 일을 마친 후 땀 흘리며 춤 연습을 하는 마사지사, 공중부양을 위해 끊임없이 단련을 거듭하던 수도승도 마침내 꿈을 이룬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예술가들이 스위스 호텔에 머물며 소설을 쓰고 음악을 작곡했다. 예컨대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주인공이 연인 캐서린과 재회한 후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스위스의 호반에 정착한다고 썼다. 결혼 실패 후 우울증에 빠진 차이콥스키는 레만 호반 몽트뢰(Montreux)에 있는 호텔에서 요양하던 중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다. 록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 역시 몽트뢰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고 마운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다. 그의 사후에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 몽트뢰 호반에 세워졌다.

 

그렇다면 영화 속 알프스 산록의 호텔에서 무엇이 두 노인의 삶을 갈라놓았을까?

노년의 두 주인공 프레드와 믹은 화려했던 과거 속에서 젊음 즉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지 고심한다. 프레드는 사랑하는 딸의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것을 보고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반면 믹은 자가발전의 열정에 취해 있었으나 믿었던 여배우가 그것을 깨뜨리자 그만 절망해버리고 만다.

 

칸느 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에서 격찬을 받았던 이태리 출신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은 그것을 Youth — 젊음, 성적 욕망 또는 미래를 보고 젊게 사는 활력 —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젊음(Youth)을 되찾으려면 멀리서 찾지 말고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라고 주문한다. 그 호텔에서 활력을 되찾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심플 송'을 불러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로 올랐다.

Note

1] 이 영화 포스터에서 70대의 두 노인네가 스파에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미스 유니버스가 올누드로 나타나 유유자적하게 입욕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두 노인은 젊은 여자가 ‘지상에 강림한 여신’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라의 뒤태만 보일 뿐인데 이 장면이 음란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 장면을 내세운 영화 포스터를 이 블로그에 실었다가 ‘청소년 유해’ 사진이라는 이유로 기사 전부가 '블라인드' 처리되고 일주일간 로그인 이용제한을 받은 바 있다. Tistory 관리자에 대하여 이 장면을 포함해서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고, 두 노인의 심리변화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사진이라고 소명했음에도 소용없었다. ‘밀로의 비너스’ 조각 전신상이 중고등학교 미술책과 학용품 커버에 실려 있고 노출이 심한 모델이 청소년들이 열광하는 레이싱이나 모터쇼의 가이드를 하는 실정임에도 우리나라 포털은 엄격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듯하다. 혹자는 실제로 필터링 작업을 수행하는  AI 클린 봇이 도덕주의 세례를 받고 머신러닝을 마쳤기에 융통성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2] 인터넷 상에서 음란물과 폭력물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로 정보통신망의 이용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 7에 의하여 규제 대상이다. 따라서 사회통념상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이른바 '음란물'은 정보통신망에 올리면 형사처벌되고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Internet service provider: ISP)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11년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이기도 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P 교수는 동 위원회가 ‘음란물’로 판정해 삭제 조치 한 남성의 성기 사진 등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면서 과연 이런 게시물이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고, 보는 이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것”인지를 반문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곧바로 해당 게시물들을 내리고, 대신 여성의 성기를 그린 구스타브 쿠르베의 유화 “세상의 기원(Origin of the World)”을 올려 방통심의위의 심의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급기야 검찰에 의해 전기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된 P 교수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10월 항소심에서 표현의 자유가 인정되어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7년 10월에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2017. 10. 26. 대법원 1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사진들이 과도하고 노골적인 방법으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음란물이라고 보았지만, 게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 및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돼 사회윤리 및 통념에 비춰 용인될 수 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대법원 2017.10.26. 선고 2012도13352 판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인 피고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은 성적인 각성과 흥분이 존재하고 성적 일탈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으며 남성중심적인 성관념의 발로에 따른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고 있어 음란물에 해당한다. 그러나 사진들의 음란성으로 인한 해악은 이에 결합된 학술적ㆍ사상적 표현들과 비판 및 논증에 의해 해소되었고, 결합 표현물인 게시물을 통한 사진들의 게시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 간의 법익균형성이 인정되어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그 배후에 놓여 있는 사회윤리 내지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게시물의 전체적 맥락에서 사진들을 음란물로 단정할 수 없다.

 

3] 필자 역시 이 판결문에 터잡아 한국에서 처벌되는 각종 음란죄를 설명하면서, 과도한 노출도 아니고 스토리 전개의 필요와 예술성의 관점에서 위 영화의 장면 스틸 사진을 청소년들은 많이 보지 않는 KoreanLII의 Obscenity 항목에 올렸다. 문제의 장면이 삭제되지 않은 채 이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 가’ 등급을 받은 것도 필자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다수라는 반증이었다.

 

 

4] 감독은 단역에 불과함에도 독특한 퍼포먼스와 개성적인 목소리를 자랑하는 영국의 가수 팔로마 페이쓰(Paloma Faith 위의 사진)를 출연시켰다. 프레드의 외동딸(레이첼 와이즈)과의 불화를 조성해 믹의 아들이 이혼하게 만드는 상간녀의 역할이었다. 오프닝 장면에서도 영국 맨체스터의 4인조 밴드 (Retrosettes Sisterband)가 부르는 유명한 "You Got the Love" 노래 장면이 나온다.

 

5] 70대의 두 노인이 알프스 산기슭을 산책할 때 서로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의욕 넘치는 영화감독은 지금까지 자기가 연출했던 영화의 주인공들을 만나 항의성 고백을 듣는다. 이 장면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꿈(Dreams)>(1990) 중의 '과수원' 편에서 사정없이 베어진 복숭아 나무들이 '하나 마쓰리(花祭)'의 인형으로 바뀌어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위의 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을 오마쥬한 것이다. 반면 은퇴한 음악가는 풀어놓은 소들의 워낭 소리를 들을 때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지휘를 하는 등 차츰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나리(Minari, 2020)  (0) 2022.02.21
줄리와 줄리아(Julie & Julia, 2009)  (0) 2022.02.21
인페르노 (Inferno, 2016)  (0) 2022.02.21
The Lucky One (2012)  (0) 2022.02.21
기적(Miracles from Heaven, 2015)  (0) 202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