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줄리와 줄리아(Julie & Julia, 2009)

Whitman Park 2022. 2. 21. 08:10

살아가는 동안 성공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직장내 승진이든, 썸타는 사이의 사랑고백이든, 주식투자든 아니 로또 당첨이든 자기가 바라는 결과를 상상하면서 흐뭇해 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 전에 본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 영화는 여러 모로 시사적이었다.

LIFE 잡지의 사진자료실에서 일하던 소심한 주인공 월터 미티가 돌연 모험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경희대 경영대 회사법 시간에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주인공의 책임감과 성실성을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몇 장면을 보여준 적도 있다. 월터 미티(Ben Stiller 분)가 LIFE 종간호 표지사진 필름을 잃어버린 까닭에 그 사진작가(Sean Penn 분)를 세계 곳곳으로 찾아 다닌다는 스토리였다.

 

그런데 이 영화의 매력은 다른 데 있었다.

평소에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던, 화산 폭발 위험으로 주민 소개령이 내린 아이슬란드 오지[1]를 찾아가고 히말라야 설산의 눈표범을 기다리며 며칠 밤을 지새울 수 있을까? 영화 속에서 월터는 사진작가가 그곳에 가 있다는 말을 듣고 역사적인 종간호(終刊號) 표지를 망칠 수 없다며 모험을 벌였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표지사진은 월터가 사진 필름을 찾아서 확인하는 장면을 찍은 것이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이러한 성공방정식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바로 미국에서 프랑스 요리 선풍을 일으켰던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 1912 - 2004)의 성공담을 소개하면서 40년 후의 줄리(영화 <Hillbilly Elegy>에서 약물중독의 어머니 역을 맡은 Amy Adams 분)라는 미국 여성이 좁은 아파트 주방에서 줄리아의 524가지 레시피를 따라 해본다[2]는 <줄리와 줄리아>(Julie & Julia, 2009)라는 영화였다.

 

* 영화 "줄리와 줄리아"의 포스터. 줄리아 차일드의 말투며 제스추어를 완벽하게 재현한 메릴스트리프는 골든글로브 등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출처: Wikipedia

 

영화에서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거니와 줄리아 차일드(Meryl Streep 분)는 프랑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중년의 키다리 미국 여성이었다.

2차 대전 중 아시아 지역의 OSS 부대에서 일하다가 10년 연상의 시인 폴 차일드(Stanley Tucci 분)를 만나 결혼한 줄리아는 1948년 파리 미국 대사관의 공보관으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도착한다. 미식가인 남편이 데리고 간 루앵의 유서깊은 레스토랑에서 생전 처음 프랑스 요리를 맛보며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파리에 도착해서는 프랑스 요리를 직접 만들기 위해 르 코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 등록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학원에 다니는 사람은 전문 요리사(chef)가 되려는 남성들이기에 가정주부인 줄리아는 열외가 되기 일쑤이다. 첫 시간에 칼 쥐는 법부터 틀렸다고 지적을 받지만 집에 돌아와 양파를 산처럼 썰어놓는 등 맹연습 끝에 제일 우수한 요리 실습생이 된다.

 

* 워싱턴DC 스미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 그대로 옮겨다 놓은 줄리아 차일드의 주방. 출처: Smithonian Museum

 

Occasion + Power of execution

성공의 첫 단추는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다. 줄리아는 파리 아파트에 도착해서도 "베르사이유 궁전 같네요" 하고 감동을 금치 못한다. 줄리아는 처음 맛본 프랑스 요리의 미각과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전문 요리학원에 등록도 하고, 영어로 된 프랑스 요리책이 전무하다는 것을 알고서는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요리에 감동한 사람은 많아도 직접 만들어보고 레시피 요리책을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Tenacity + Feedback

줄리아가 프랑스인 친구들과 요리책을 만들지만 순조롭게 출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몇 군데 원고를 보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툇자를 맞았다.[3]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무엇이 잘못되었나 생각하고 처음 시작할 때의 컨셉을 되새긴다. 그것은 “가정부 없는 미국 중산층 가정에서 주부 혼자서 만들 수 있게 쉽게 쓴 요리책”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합 8년에 걸쳐 원고를 전면 개고하였다.

 

* 미식가인 폴은 장신의 줄리아가 프랑스 요리에 필수적인 "버터요 자기 삶의 호흡"이라고 말했다. 출처: Netflix

 

Timing + Fortune

성공방정식의 세번째 변수는 타이밍이다. 이른바 '운때'가 맞아야 한다.[4]

줄리아의 프랑스 요리책은 제1권이 1961년에 가까스로 출판이 되었으나 그것이 미국 주부들의 취미생활 정도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인 수요에 정확히 부합하였기 때문이다.

 

1960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파리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재클린 부비에 (Jacqueline Lee Bouvier, 1929-1994)가 퍼스트 레이디가 되자 미국 상류층에는 프랑스식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줄리아의 프랑스 요리법 마스터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는 미국의 평범한 주부들도 프랑스 요리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국 가정의 안방을 차지한 TV에 1963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줄리아의 TV 요리교실 The French Chef 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줄리아의 소탈한 모습과 유머러스한 설명은 프랑스 요리 못지 않게 엔터테인먼트 소재가 되기에 충분했다. 그 선풍은 1970년대 컬러 TV시대가 되면서 더욱 거세어졌다.

 

인생의 성공방정식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자유롭게 꿈(Day dream)을 꿀 수 있다. 그 꿈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느냐는 각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상의 성공방정식[5]을 정리해 본다면 《꿈 × χ = 성공》에서  χ = (어떤 계기를 실천으로 옮기는 힘) + (일단 세운 목표를 피드백 해가며 끈기있게 지속하는 집념) +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 행운) 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월터 미티도 그가 장기근속했던 LIFE의 최종호를 망치지 않도록 표지사진 필름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가 포기하지 않고 전세계로 사진작가를 쫓아 다녔기에 마침내 그가 바라던 사랑까지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목표로 삼은 것은 사진작가와 연락이 닿을 수 있는 회계담당 여직원 셰릴의 메시지였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의 여정을 블로그에 계속 올려놓았기에 전세계 독자들이 그를 아낌없이 성원했다는 점이다.

* 2002. 8. 25자 줄리의 블로그 첫째 날 화면
* 줄리아 레시피를 따라 해서 유명해진 줄리 파월 출처: dandelionwebdesign

 

이것은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를 따라 했던 줄리 파월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요리가 취미는 아니었지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프랑스 요리 레시피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근하는 의미에서 "The Julie/Julia Project" 블로그를 시작한다. 틈틈이 그 과정에서 겪었던 힘들고 어려운 일을 솔직하게 써서 올린 탓에 직장 상사로부터 면박도 당하지만 수많은 독자들이 그녀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바로 9.11 테러 사건으로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던 미국 사회에 9.11 뒷처리 담당자가 만들어 올리는 블로그는 가정주부는 물론 온 국민의 관심사가 되고도 남았던 것이다.

 

Note

1]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아이슬란드 산지에서 월터가 롱보드를 타고 질주하는 2분 가량의 Longboard scene이다. 이 장면을 보면 어느 누구도 주민들이 모두 떠난 텅 빈 마을에 당도한 월터가 헛수고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꿈을 꾸어도 이룰 수 없는 일을 그가 멋지게 우리 대신 완수해 주었기 때문이다.

 

* 영화 '월터 미티'에서 화산폭발 소개령이 내려진 아이슬란드 산골의 롱보드 질주 장면. 출처: YouTube

 

2] 나이 서른 문턱의 줄리 파월(1973 - )은 퀸즈에 있는 냄새 나는 피자가게 2층의 좁은 아파트에서 고고학 잡지 편집자인 남편과 부대끼며 사는 직장여성이다. 그라운드 제로 재건을 위해 설립된 남부맨해튼개발공사(LMDC)가 9.11 테러사건 피해자를 위해 운영하는 콜센터에서 일한다. 이러한 따분한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줄리는 1년간 500개가 넘는 줄리아의 레시피를 따라 해볼 작정으로 새로 블로그를 열었다(위의 사진). 맨처음 댓글 단 사람이 텍사스에 사는 모친이리 만큼 친구와 가족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새벽잠을 줄이고 밤 늦게까지 프랑스 요리에 도전하면서 꾸준히 블로그 과제를 수행한다. 별 반응도 없는 블로그를 작성할 때마다 마치 허공에 대고 소리 지르는 기분이 들었고, 나중에는 블로그 아이디어를 제공한 남편조차 그녀에게 질린 나머지 집을 뛰쳐 나간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 각종 매체의 인터뷰 및 출판 요청이 쇄도한다. 2005년에는 Julie and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 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고, 2009년에는 줄리아의 회고록 My Life in France 과 함께 대본으로 쓰여 메릴 스트리프 주연의 영화 Julie & Julia 로도 만들어졌다.

 

3] 사실 많은 화제작이 초기에는 편집자들에 의해 거절당하는 일이 많았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The Firm, Pelican Brief 등을 쓴 존 그리샴 변호사의 경우 처음 탈고한 법정 소설 Time to Kill 이 15군데 출판사로부터 연속 거절을 당했다. 그러던 끝에 한 출판사가 일단 5천부만 인쇄한다는 조건으로 수락하여 간신히 빛을 볼 수 있었다. 존 그리샴은 그의 부인이 "내가 재미있게 읽었으니 이 소설을 좋아할 독자는 분명히 있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흑백갈등을 다룬 Time to Kill 은 두 번째 소설인 The Firm (야망의 함정)이 소설과 영화로 성공한 다음에야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신인배우 매튜 매코너히를 주연으로 기용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존 그리샴은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원작료로 60억원을 받았다고 해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 반 고흐, 아를의 론강 위로 별(큰곰자리 북두칠성)이 빛나는 밤, 1888.

 

4] 필자는 이 블로그를 통해 1853년과 1860년에 태어난 3명의 화가에 대해 주목한 바 있다. 반 고흐(네덜란드), 칼 라르손(스웨덴), 알폰스 무하(체코 보헤미아)는 모두 1880년대와 1890년대에 파리와 그 주변에서 활동했고 각기 인상주의, 자연주의, 아르누보로 일세를 풍미한 화가들이었다. 그러나 각자 세상의 인정을 받고 세인의 존경을 받은 시기는 서로 달랐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고흐는 바로 이 '운때'가 맞지 않아 생전에는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다가 사후에야 서간문학과 미술의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의 생전에 작품이 한 점밖에 팔리지 않은 까닭에 네덜란드 정부가 고흐의 작품을 보관하고 있던 유족으로부터 고스란히 영구임대를 받아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바로 앞에 세운 반고흐 미술관에서 상설 전시하고 있다. 반면 다른 두 사람은 초년엔 고생을 좀 하였지만 살아 생전에 자기 나라에서 온갖 영예와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5] 인생의 성공방정식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책은 서울대 윤석철 교수의 「삶의 정도」가 아닌가 생각한다. 老교수님은 당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인생의 교훈을 목적함수와 수단매체의 관계로 요약해서 말씀하신다.

우리가 살면서 구사하는 여러 수단매체가 훌륭해도 목적함수가 모호하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목적함수는 부단한 자기 수양과 미래 성찰을 통해서 축적된 교양과 가치관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목적함수가 정립되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매체는 사이클로이드 곡선(Cycloid curve)처럼 우회축적의 방법으로 형성하고 축적해야 한다. 수단매체는 장기간에 걸친 축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필자가 10년째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인터넷 법률문화 백과사전인 KoreanLII 사이트는 목적함수가 명확함에도 아직 수단매체에 해당하는 동역자도, 자원도 없이 갈길이 요원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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