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오늘 그래미/아카데미상 소식과 함께 '할머니' 이야기 들으셨나요? 작년에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을 석권하면서 금년에도 국민들의 기대치가 크게 높아졌어요. 우리보다 인구나 국력이 큰 일본에서는 "어쩌다 한 번"인데 우리나라는 "거의 매년"인 셈이예요.
금년에는 영화 "미나리"[1]와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 등이 그래미상, 아카데미상을 수상할지 여부가 우리의 관심을 모았지요?
P: 그래미상의 경우 아쉽게도 한국 아니 아시아 가수 최초로 ‘베스트 팝 그룹/듀오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오른 BTS의 수상은 불발로 그쳤어요. 하지만 유독 저의 관심을 끈 기사는 베스트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 부문에서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3)이 그래미상을 받았는데, 그에게 오닐이라는 이름을 물려준 할아버지 할머니의 공이 크다는 사연이었습니다.
G: 용재 오닐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유명인사 아닌가요? 그의 출생 및 성장 과정이나 용재(勇才, brave & talented)라는 이름을 갖게 된 사연도 많이 알려져 있지요.[2]
P: 네, 그래서 용재 오닐의 할머니 뿐만 아니라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 가정의 애환을 그린 영화 "미나리(Minari)"의 할머니 역으로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받은 윤여정, 그리고 같은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로 오른 영화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에서 할머니 역을 맡은 글렌 클로스 모두 공통점이 있어요.[3] "미나리"는 리 아이삭 정(한국명 정이삭) 감독이 실제로 겪었던 가족사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하지요. 세 분의 할머니 모두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소 보여주었다고 하겠습니다.
G: 영화 "힐빌리의 노래"에서도 할머니가 용재 오닐의 경우처럼 주인공이 노래로 성공할 때 뒷바라지를 해주셨나요?
P: 용재 오닐의 출생에는 가슴 아픈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주의 백인들만이 사는 시골 동네에서 동양인 용모를 가진 리처드 오닐이 얼마나 놀림감이 되었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지요. 이 어린 아이에게 음악에 비상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일랜드 이민자인 할머니가 바이올린을 제대로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 멀리 시애틀, 캐나다까지 차를 몰고 데리고 다니셨다고 해요. 여든이 넘어서까지요. 그리고 리처드 오닐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기대 이상으로 잘 했다고 합니다. 악기를 비올라로 바꾼 것은 15살 노스 캐롤라이나로 음악 유학을 떠난 뒤였다고 해요.
G: "힐빌리의 노래"에서는 뭘 눈 여겨 봐야 하지요?
P: 아 참, 제가 전에 한번 말씀드렸지요. 힐빌리는 우리나라 '시골 촌놈' 식으로 미국 애팔라치아 산맥 서부의 왕년에 철강공업과 석탄산업이 발달했던 지역 사람을 낮추어 말하는 것이라고요. 여기서 노래는 엘레지, 슬픈 노래(哀歌)라는 뜻이니까 미국의 러스트벨트(Rust Belt, 살기 좋은 선벨트와 대비가 되는 산업이 쇠락한 지역을 일컫는 말)에 사는 사람의 살림살이가 곤궁하고 비참해진 현실을 드러낸 영화입니다. 동명의 원작 -- 예일대 로스쿨 출신 변호사의 회고록(Memoir)은 2016년 도날드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되었 때 미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역 사람들의 표심을 공략하는 트럼프의 선거전략을 이해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어요.
G: "개천에서 용 났다"는 흙수저의 미국 사회 성공기가 공통점인가요?
P: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용재 오닐의 그래미상 수상, 윤여정과 글렌 클로스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선정으로 할머니들의 눈물 어린 가르침과 지극정성이 만인의 찬탄과 칭송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손주가 장한 일을 해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G: 사실 할머니가 부모가 못하는 양육을 대신 해주는 사례가 우리나라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조손(祖孫)가정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미스터 트롯 정동원 군의 할아버지 이야기도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P: 용재 오닐의 할머니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어린 손자를 끊임 없이 격려해 주시며 장거리 레슨에도 한 마디 힘든 내색이 없으셨다고 해요. 힐빌리의 노래에서는 문제 많은 엄마가 방치하다시피 한 외손주 J.D.를 거두어 키우시면서 탈선하지 않도록 "네가 장차 무슨 사람이 되느냐는 지금 너의 선택에 달려 있다"라고 일깨워주셨다 해요. 한국의 할머니가 몸소 보여주신, 어느 곳에서나 물만 가까이 있으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는 '미나리 원더풀' 정신은 말할 것도 없지요.
G: 그러니까 할머니의 정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빛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손주가 성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P: 그것도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입신양명(立身揚名) 정도가 아니라 그 사연을 책이나 영화, 음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 알리는 것이라면 이 세상 손자들이 크게 부담(?)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할머니 밑에서 제대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목표를 크게 잡고(Aiming high) 단순한 출세가 아니라 "할머니가 나를 위해 얼마나 고생를 하셨는지 세상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겠다"(Let'em know it)는 포부를 갖는다면 좀더 "확실한 동기부여(motivation)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G: 영화 <미나리>에서는 윤여정을 보고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손주가 쏘아부친 말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 할머니는 '힐빌리'의 할머니처럼 손주들이 평생 가슴에 새겨둘 만한 무슨 말씀을 하셨던가요?
P: 굳이 찾자면 미나리밭에 갔을 때 손주가 뱀을 향해 돌을 던지려 하자 할머니가 말리시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덜 무서운 법"이라고 하신 것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어록보다는 할머니의 말씀과 행동이 손주들의 마음에 각인[4]이 되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겠지요.
Note
1] Minari는 제작비 2백만 달러의 저예산 독립영화인 데다 한국어 대사가 80%나 되는 영화라서 천문학적인 제작비에 액션과 화면이 현란한 헐리우드 영화와는 비교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남자주연 스티브 연의 말처럼, 헐리우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여러 부문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는 사람이 많다.
2] Yoon J Kim, "The Inspiring Life of Grammy-Nominated Violist Richard Yongjae O’Neill", CM (Chracter Media - Asian Americans in Entertainment), July 16, 2013.
3] 2021년 4월 25일(미 현지시간) LA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170명의 한정된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윤여정(74)이 국내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스카 트로피 시상자인 브래드 피트에게 ‘미나리‘ 제작사인 플랜B의 대표 피트 씨를 이제서야 만나게 됐다면서 “영화 찍을 때 어디 있었느냐”고 유머러스하게 수상 소감을 시작했다. 그리고선 어떻게 글렌 클로스와 같은 대배우하고 경쟁할 수 있겠느냐며 글렌 클로스의 훌륭한 작품을 많이 봐왔다고 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도 역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면서 고상한 체(snobbish)하는 영국인들이 자기를 인정해줘서 기쁘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자기 이름을 "윤여영"이라고 부르는 유럽 사람들을 용서해주겠다고 말해서 참석자는 물론 전세계의 시청자들을 웃겼다. 시상식이 끝난 후 LA 총영사관에서 황금빛 오스카 트로피를 앞에 놓고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윤여정이 김여정(?)이 될 수 있겠느냐며 전과 다름없이 연기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4] 영화 Minari의 각본을 쓴 정이삭 감독은 실제로 야채 농장에서 자랐다는데, 외할머니가 물가에 씨를 뿌리신 미나리가 무럭무럭 자라고, "뱀도 보이는 것은 덜 위험하다"는 말씀이 마음에 새겨졌던 것 같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쓸모없는 숫병아리는 불에 태워지며, 자기네가 살고 있는 트레일러 집에 살던 사람이 권총 자살했다는 것과 나뭇가지로도 지하수맥을 찾을 수 있다(water divining)는 점이 아니었을까? 또한 우리에겐 당연해 보이지만 미국의 관객들이 놀란 것은 몸도 불편하신 할머니가 창고를 치우고 쓰레기를 태우려다가 제때 진화를 못하고 큰 불을 낸 것, 금방 헤어질 듯 싸우던 부부가 큰 사고를 겪고나서 물질적 피해가 엄청남에도 서로 아무일도 없었던 듯 화해한 것, 할머니가 손주들에게 화투를 가르치고 서로 놀리면서 재미있게 화투를 치는 장면이었을 듯 싶다.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난 후 왜 한인 교포들이 대도시의 한국 이민교회에서 탈출(escape)했다고 하는지, 할머니가 미국 교회에 가서 딸이 낸 연보돈을 다시 회수한 의도는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갔다. 한편으론 아칸소에서는 한국인 소비자 대상의 채소 농장이 과연 성공했을까, 이 영화를 계기로 한국의 화투와 고스톱이 K-게임으로 세계에 유행을 타지 않을까 자못 궁금해졌다. 그런데 화투는 일본의 비디오 게임 메이커 닌텐도(任天堂)가 원조이고 지금도 만들어 팔고 있다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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