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 2>(2024)를 보았다.
처음엔 어디까지 역사적 사실(fact)이고 무엇이 꾸며낸 이야기(fiction)인지 궁금했다.
영화를 보자마자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고 인공지능(AI) 검색을 하여 궁금증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한 친구가 말한 대로 '헐리우드 판 무협소설/영화'이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스펙타클한 장면을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 그가 말했다. "<와호장룡> 영화를 보면서 주윤발이 대나무 숲에서 춤추듯 칼 싸움을 하는 것이나 장쯔이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중력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흠을 잡더냐"고 하며 웃었다.
그런에 영화의 중심 무대인 로마의 콜로세움을 여러 번 가본 적이 있기에 나름대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 위대한 역사유적과 관련된 상세한 정보는 백과사전을 참조하면 된다. 하지만 TV 예능 프로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모는 없으나 신비한 잡학사전) 같은 지식일지라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리라 생각한다.
▶누가 왜 로마 한복판에 원형경기장을 만들었나?
콜로세움의 자리는 본래 네로 황제의 궁전이 있던 곳이었다 . 그 전에는 로마 도심 주거지역이었는데 서기 64년 로마의 대화재가 일어났을 때 네로 황제가 민가를 허물고 화려한 황금 궁전과 인공 호수, 정원을 건설하면서 기존 수로를 개축하여 엄청난 양의 물을 이곳으로 끌어들였기에 로마 시민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상상 이상의 폭정을 일삼던 네로가 살해되고 몇 사람의 군인 황제에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른 베스파시아누스는 네로의 궁전을 헐고 그 자리에 거대한 원형 경기장을 짓기로 결정했다.
원형 경기장의 건설은 황제의 땅이었던 공간을 다시 로마 시민들에게 돌려준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베스피아누스는 로마 시민들에게는 부담을 1도 지우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유대 전쟁에서 빼앗아온 전리품으로 건설비를 조달하고, 노동력은 유대인 전쟁포로 10만여 명을 동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로마 시민들이 좋아할 검투사 경기와 이국적인 동물들과의 싸움를 관람할 수 있도록 근처에 검투사 양성 학교와 부속 건물을 차례로 건설했다.
▶콜로세움의 건설비와 노동력은 어떻게 조달했나?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유대 군사가 마침내 항복하였다.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마사다 요새로 빠져나간 뒤였다. 2년에 걸쳐 힘겹게 공성전을 벌였던 로마 장병을 위로 격려할 속셈이었는지 티투스 장군은 사흘에 걸친 약탈과 주민 학살을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헤롯 왕이 황금 빛으로 빛나는 성전을 지었어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뜨려지리라"(마태복음 24:2) 하신 예언이 허망하게 실현된 순간이었다. 성전의 돌들이 모두 금으로 도장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바빌론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약탈 당했다가 페르시아 고레스 왕에 의해 돌려받았던 성전의 수많은 금은 보화(에스라서 5:12,13)는 고스란히 로마 군대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티투스 개선문의 부조에 이 장면을 묘사). 티투스는 이것을 재원으로 원형 경기장 건설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콜로세움은 응회암, 석회암 외에도 목재, 콘크리트, 타일과 같은 재료로 지어졌다.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에 비견할 만한 엄청난 대역사(大役事)에 필요한 노동력은 어디서 구했을까?
로마 황제는 유대 전쟁의 유대인 포로들과 콜로세움 공사에 차출한 노예 및 죄수들을 시켜 로마에서 2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큰 석재를 옮겨 왔다. 그리고 로마인 건축 전문가들의 철저한 감독 하에 최신 공법에 의한 공사를 수행하였다. 3층으로 설계된 지하 시설에는 물자와 동물을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노예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까지 설치했다고 한다.
오래 전 중앙아시아를 여행할 때 키르기스탄의 수도 비슈케크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콘서트홀이 생각났다. 그 때 가이드는 이 건물이 2차대전 당시 소련군에 포로로 잡혀간 일본군 포로들의 노동력으로 건설되었다고 하면서 일본인 관광객들은 이 사실을 알고 이 근방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콜로세움에서는 어찌하여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많았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시작된 건설공사는 그의 사후 79년에 장남인 티투스 황제에 의해 3층까지 완성되었다. 그 사이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로 나폴리 인근의 신도시 폼페이가 흔적도 없이 지상에서 사라지는 大참사가 일어났다.
흉흉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그 이듬해 장장 6개월에 걸친 콜로세움 완공 기념 개막식에는 9,000마리가 넘는 맹수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귀했던 밀로 만든 빵까지 무상 배급하여 '빵과 서커스'(라틴어: panem et circenses)라는 포퓰리즘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콜로세움은 티투스 황제가 2년 만에 열병으로 죽은 후 그의 동생인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개축되어 지하 터널이 생기고, 좌석 수도 크게 늘어났다. 콜로세움에서 실제로 모의 해전을 벌였는지 여부는 별첨 블로그 기사 참조.
▶로마 제정 시대에 검투사는 과연 인기가 많았나?
콜로세움이 세워진 후에는 검투사 경기가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로마의 정복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정쟁포로는 끊임없이 양산되었고 그중에서도 체격 좋고 무술이 뛰어난 사람은 검투사로 선발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정 기간 검투사 훈련과 매너 교육을 받은 후 경기장에서 연승를 거듭할 때에는 일종의 스포츠 선수 또는 엔터테이너로서 관중 분만 아니라 로마 시민들의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러니 귀부인들이 장 생긴 검투사를 은밀히 자기 집으로 불러내는 일도 많았다 . 그런 까닭에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아들인 콤모두스 황제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정을 일삼을 때 황후가 인기 검투사와 사통하여 닣은 아들이 아닌가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검투사 경기를 구경하는 관중들이 생사를 좌우할 수 있었나?
원형 경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창검과 그물망으로 싸우는 검투사들은 노예 신분이므로 정식 재판을 받을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 경기를 관람하는 대부분은 로마 시민들이기에 그 날의 경기 양상을 보고 군중심리에 좌우되기는 했지만 승자로 하여금 패자의 목숨을 빼앗거나 살려두도록 했던 것이다.
콜로세움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많을 때에는 5만 명이 넘었으므로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칠 때에는 비록 황제라 할지라도 군중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도 로마 관중들리 리키우스가 검투사 경기를 벌일 때 관중은 살리라고 외쳤지만 카라칼라 황제는 신의 뜻이라며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관중이 살리라고 외치자 리키우스 역시 관중의 뜻을 따랐음에도 즉각 현장에서 항명(抗命)이 문제 되지는 않았다.
로마 역사상 티투스는 가급적 군중의 의사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한 황제였다. 티투스가 유대인의 반란을 평정하고 로마에 개선할 때 유대 헤롯왕의 딸로서 아그립바 2세와 공동으로 통치하던 버니게 공주(사도행전 25:23)를 약혼녀로 대동하고 왔다. 그러나 원로원과 로마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외국인 왕비는 클레오파트라 한 사람으로 족하다며 결혼에 반대를 하자 티투스는 슬그머니 약혼을 철회하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이 실제로 크리스천 박해 장소로 쓰였나?
기독교가 로마 제국에서 공인되기 전에 포악한 황제는 수시로 제국 내의 크리스천들을 체포하고 구금했다.
그러나 여러 소설이나 영화에서와는 달리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콜로세움 경기장에 끌어내 맹수의 밥이 되게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기독교 박해 시대에 수많은 순교자가 생겨났지만 처형 장소는 콜로세움이 아니라 막시무스 대전차경주장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18세기에 어느 교황이 그동안 방치되어 있던 콜로세움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았던 장소였음을 주장하고 이 곳을 성역화할 것을 지시했으나 당시에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성지로 지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역대 교황들이 콜로세움이 박해 시대의 순교자들을 추념하는 장소로 여기고 중요시한 것은 사실이다.
최근 들어 콜로세움은 사형제 폐지를 호소하는 국제적 캠페인 장소가 되었다. 로마 시에서도 사형제도가 폐지되는 나라가 나올 때마다 그날 하루 콜로세움을 비추는 야간 조명의 색깔을 흰색에서 금빛으로 바꾼다.
▶검투사 경기가 끝날 때 주인공이 바닥의 모래를 손에 쥐는 까닭은?
전편에서 주인공 막시무스가 처자가 기다리는 고향집에 돌아가는 꿈을 꿀 때에는 밀밭의 여문 이삭을 손으로 만지면서 가곤했다.
콜로세움 경기장의 바닥은 경기가 벌어질 때마다 핏자국이 낭자했으므로 신속한 뒷처리를 위해서는 입자가 굵은 모래나 마사토를 썼다고 한다. 손으로 왕모래를 집었을 때의 감촉이 말 이삭을 손바닥으로 터치할 때와 비슷하였으므로 감독이 이 장면을 꼭 삽입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주인공이 피튀기는 검투사 생활을 청산하고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는 열망을 나타내는 일종의 메타포(metaphor)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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