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007 카지노 로얄 (2006)

Whitman Park 2024. 7. 14. 11:40

IP TV의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007 카지노 로얄>(2006)을 후반부만 보게 되었다.

아주 오래 전에 오리지널 <카지노 로얄>(1967)을 본 적이 있다. 그 영화는 이언 플레밍 원작인 동명의 소설을 두 번째 영화한 것으로 남자 주연은 데이비드 니븐, 우디 앨런, 여자 주연은 어슐러 안드레스가 맡았 었 다. 그래서그런지 스파이 액션 영화라기보다 카지노에서 큰 돈을 걸고 포커 게임을 하는 희극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반면 2006년 리메이크판은 근육질의 뇌섹남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데뷔작이고 아주 재미가 있어서 처음부터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뒤져보았지만 어디서도 VOD를 찾을 수 없었다. 

따로 DVD를 소장하지 않는 한 다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노 타임 투 다이>(2021)를 끝으로 007 영화에 더 이상 출연하지 않는다고 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영화의 줄거리

알바니아의 프라이빗 뱅커 르 쉬프(매즈 미켈슨)는 테러리스트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로 날아가  LRA 반군의 지도자로부터 거액의 비자금을 받아 크게 불려주기로 약속한다. 그가 믿는 것은 시세폭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공매로 팔았다가 주가가 떨어진 다음에 매도한 물량만큼 사서 채워주는 것이므로 그 차액만큼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르 쉬프는 그가 잘 아는 테러리스트에게 항공우주업체인 스카이플릿의 신형 항공기를 격추시키라고 말한다. 그리하면 이 회사의 주가는 폭락할 테니까.

그 사이 영국 정보국 MI6 요원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는 큰 공을 세우고 살인 면허(license to kill)를 취득하고 007요원으로 승격한다.

제임스 본드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문제의 테러리스트를 감시하던 중 그가 눈치채고 도망가자 필사적으로 그를 쫓기 시작한다. 본부로부터 그를 생포해 와야 한다는 밀명을 받은 터라 쉽게 총을 쏘아 붙잡을 수도 없다. 007 영화의 묘미라 할 수 있는 생사를 오가는 숨가쁜 추격전이 고층건물의 공사현장에서 벌어진다. 테러리스트가 Nambutu(가상의 국명) 안으로 피신하자 천신만고 끝에 그를 붙잡지만 이내 경비병들에게 포위 당하고 만다. 그를 살려둘 수 없었던 본드는 투항하는 척하면서 그를 쏘아죽이고 혼란한 틈을 타서 대사관에서 빠져나온다.

 

영국 첩보원이 공적인 장소에서 민간인을 살해했다는 뉴스가 퍼지면서 본드는 런던 본부로 소환되어 M(주디 덴치)으로부터 심하게 질책을 당한다. 작전에서 배제되었음에도 본드는 테러리스트의 휴대전화를 통해 모종의 중요한 거래가 바하마 나소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직감하고 바하마로 향한다. 거래의 상대방은 현지의 그리스계 사업가 드미트리오스이다. 일단 그의 포커 게임에 참여하여 그가 내건 고급 승용차 애스턴 마틴을 차지하고 매력적인 그의 아내를 유혹하여 몇 가지 비밀을 알아낸다. 드미트리오스는 죽은 테러리스트 대신 다른 사람을 르 쉬프에게 소개해주고 그로 하여금 공항에서 신형 항공기를 목표로 폭발물 테러를 일으키게 할 작정이다. 이러한 사실을 MI6의 M에게 보고한 후 공항에서 폭발물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신형 항공기가 폭파되는 것을 지켜봐야 하느냐, 아니면 본드가 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느냐 일대 활극이 벌어진다. 결과는? 아슬아슬하게 신형 항공기는 무사하였고 항공기를 향해 돌진하던 유조차 안에 있던 본드가 현행범으로 체포된다. 그 대신 무사할 줄 알았던 테러리스트가 폭발물이 터지면서 즉사하고 만다.

 

문제는 르 쉬프가 공매도 작전이 실패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는 점이다. 르 쉬프는 손해를 본 아프리카 고객의 돈을 되찾기 위해 묘안을 짜낸다. 바로 발칸 반도의 몬테네그로 고급 카지노 호텔 Casino Royale에서 리 쉬프의 장기(長技)인 텍사스 홀덤 포커 게임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르 쉬프의 계획을 간파한 M은 그가 게임에서 지면 아프리카의 LRA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영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할 것이라 믿고 MI6 최고의 포커 플레이어인 본드를 대회에 참가시킨다. 본드는 자금을 관리할 영국 재무부 회계관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와 오랜 연인인 것처럼 가장하고 호텔에 투숙한 후 카지노 로얄 측에 1천만 달러를 예치한다. 게임에서 이기면 그가 6자리의 비번으로 지정한 계좌로 거액의 상금이 입금될 예정이다. 

 

* 큰 판돈이 걸린 포커 게임에서 베스퍼로부터 격려의 키스를 받는 제임스 본드

 

10만불, 20만불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포커 판에서 숨막히는 기싸움 수싸움이 한창이다. 중간 휴식 시간에 르 쉬프는 아프리카 LRA측 투자자로부터 그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엄포를 듣는다. 호텔에서 LRA 행동대원들에게 정체가 탄로난 본드는 몸싸움을 벌이고 가까스로 그들을 제압한다.

토너먼트 둘째 날 르 쉬프의 거짓 블러핑에 속은 본드는 그가 가진 돈을 올인하지만  승자는 르 쉬프였다.

돈을 모두 잃은 본드에게 같이 포커를 하던 신사가 CIA 요원임을 밝히고 그에게 르 쉬프를 넘겨주면 추가로 판돈을 대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이를 수락한 본드는 방심한 나머지 르 쉬프의 애인이 건네준 술잔을 받아 마셨다가 죽음 직전에 이른다. 승용차에 넣어둔 해독제와 심장 충격기를 이용해 때마침 달려온 베스퍼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살아난다.  

목숨을 건진 본드는 필사의 각오로 포커를 하여 총 판돈이 1억 5천만 달러까지 올라간 가운데 스트레이트 플러시로 최종 승자가 된다.

 

 

 

최고의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던 본드와 베스퍼는 누군가의 호출을 받고 나간 베스퍼가 괴한에게 납치되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그녀를 쫓아가던 본드는 차가 전복되고 실신 상태에서 끌려가 르 쉬프에게 고통과 수치심을 안겨주는 고문을 당한다. 르 쉬프는 비밀번호를 알아내 그의 돈을 가로챌 속셈이었던 것이다. 본드는 밑이 뚫려 있는 의자에 결박 당한 채로 르 쉬프가 정확히 밧줄을 휘둘러 공격을 가하는 통에 그의 음낭은 무사할 수가 없다. 그때 의문의 사나이가 나타나 본드와 베스퍼만 살려둔 채 모조리 처치하고 떠난다.  

코모 호반의 휴양소에서 몸을 추스린 본드는 베스퍼에게 판돈을 모두 이체(비번이 V-E-S-P-E-R)해주고 두 사람은 베니스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본드는 베스퍼와 장래를 약속하고 영국 정보국에서 은퇴할 결심을 굳힌다.

그러나 M의 호출을 받은 본드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은행에 간 베스퍼가 영국 정부의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로 돈을 빼돌려 모두 인출하였기 때문이다. 본드는 베스퍼를 미행해 돈을 건네주는 곳으로 향하지만, 상대방의 무장 경호원들이 그를 발견하고 복원 공사 중인 베네치아 궁전 안으로 유인한다. 본드는 건물의 부양 장치를 쏴서 운하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게 만들고 경호원들을 모두 사살한다. 그 사이 베스퍼는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본드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애쓰지만 베스퍼는 문을 잠그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현금이 든 가방은 지금까지의 모든 일을 막후에서 조종했던 의문의 인물이 손에 넣고 무너진 건물에서 유유히 빠져 나간다.

M은 의기소침하여 돌아온 본드에게 르 쉬프의 배후 조직이 베스퍼가 이중 첩자가 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음을 알려준다. 본드가 베스퍼가 자기를 배신한 거라고 비난하자 M은 베스퍼가 본드의 목숨과 상금을 맞바꾼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베스퍼가 자신을 위해 휴대폰을 놓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본드는 베스퍼의 휴대전화에서 그 인물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코모 호반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호숫가의 한 저택에서 상금을 모두 가로채 간 조직의 책임자가 화이트임을 알아차린다. 그는 화이트의 다리를 쏘고 신음하는 그에게 자신이 제임스 본드라고 차갑게 내뱉는다: 

 

* 르 쉬프의 고문 후유증에서 회복하려면 코모 호반의 아름다운 풍광이 제격일 것이다.

 

감상의 포인트

오래 전에 개봉된 영화이기에  Wikipedia와 YouTube의 영화 소개를 참고하여 스포일러일 만큼 줄거리를 상세히 정리하였다. 다시보기가 어려운 판국에 법적인 측면에서 검토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플레밍 원작 소설의 세 번째 리메이크(2006) 작품으로서 원작이 출간된 1953년, 007 시리즈(제작사가 달라 비공인)로 만들어졌던 1967년과 시대상황, 국제첩보전의 양상, 스파이들이 사횽하는 무기가 모두 달라졌다.

우선 007이 속한 영국 정보국 MI6와 CIA는 서로 우호적인 경쟁관계에 있지만 상대방은 러시아(구 소련)이 아니라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의문의 거대 조직이다.  그 정체는 그 다음 007 시리즈 ''Quantum of Solace'' (2008)에서 밝혀질 예정이다. 제임스 본드가 첩보원이 된 후 007로서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다니며 활약을 펼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그러나 007 시리즈의 단골 비서 역 마니 페이가 나오지 않고 그의 첫 사랑 본드 걸이 사망하는 차이점이 있다.

다름이 없는 것은 제임스 본드가 매력 만점의 근육질 뇌섹남이란 점이다. 이 영화로 007 시리즈에 선 보인 다니엘 크레이그는 고난도의 액션 장면도 훌륭히 소화해 냈다. 그가 모는 승용차 역시 애스턴 마틴이다.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특수 첩보원에게는 살인 면허가 있는 것일까? 영화나 소설을 보면 각국의 정보기관은 적국과의 첩보전, 反테러 대응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내부 규칙을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긴급피난 또는 정당방위 같은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하여 처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에서는 재무부 회계관이 따라간다고 되어 있는데, 첩보 활동에 필요하다곤 하지만 국내법 상 불법인 도박판에 들어가 나랏돈으로 거액의 판돈을 걸고 도박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불거졌지만 우리나라 정보기관에서도 영수증으로 증빙하지 않아도 되는 특수활동비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예를 들어 국제 테러단체에 침투하기 위해 그들이 요구하는 불법 거래를 하는 데 필요한 돈은 이러한 특수활동비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 돈을 청와대에 갖다 주었기에 정보기관의 수장이 그것도 둘씩이나 단죄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이 쓸 돈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으로서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확산 금융방지'(Anti-Money Laundering and Combating the Financing of Terrorism: AML/CFT)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테러자금조달 억제를 위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for the Suppression of the Financing of Terrorism)에 따라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特定金融去來情報法)과  '공중 등 협박목적 및 대량살상무기확산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테러資金禁止法)이 제정되었고, 금융정보분석원(KoFIU)가 중심이 되어 테러관련 자금이 한국계 은행을 통해 자금세탁(money laundering)아 되지 않는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 1967년 오리지널 <007 카지노 로얄>의 포스터

 

끝으로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을 일으킨 Netflix가 2023년 영화 <아담스 패밀리>(1991)의 파생 시리즈 <웬즈데이>로 전 세계적 흥행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작 영화는 Netflix에서 볼 수 없다고 한다. 실베스터 스탤론의 액션물 <람보>나 공포물 <스크림> 시리즈부터 <마진 콜>, <셔터 아일랜드>, <에어포스 원> 모두 사라져버렸다. Netflix 사용자들은 이 영화들을 보려면 다른 OTT에 가입하거나 이들 영화를 틀어주는 IPTV를 찾아서 VOD(주문형 비디오)로 별도 구매해야 한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OTT와 콘텐츠의 홍수 속에 온데간데 없이 증발해버리는 영화와 시리즈 물이 부지기수다. <007 카지노 로얄> 외에도 <아바타: 물의 길> 이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만든 최고의 바다 배경 영화였던 <어비스>(1989)도 더 이상 OTT에서 볼 수 없다고 한다 . 인공지능 스포츠카 ‘키트’가 등장했던 <전격 Z작전> 같은 추억의 시리즈들도 한때 OTT에 얼굴을 내밀었으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이것은 모두 방영권(right to broadcast)이 없으면 영화를 틀어줄 수 없도록 저작권법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애호가들은 화제작을 감상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긴 셈이다. 

옛 명작이나 독립 예술영화는 이런 ‘콘텐츠 증발’에 가장 취약하다. 비디오테이프나 DVD 같은 물리적 실체가 있었던 시절과 달리, 이제 OTT의 클라우드(온라인 저장공간)에서 사라진다는 건 콘텐츠에 사실상의 사형 선고가 될 수도 있다. 영화 <빅피쉬>(2003)의 작가 존 어거스트는 한 잡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OTT에서 사라진 영화들을 단지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타임캡슐에 묻어버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출처: 이태훈 기자, "'007′ 사라지고 '워리어 넌' 속편 취소… 넷플릭스, 거대한 블랙홀로", 조선일보, 202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