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Book's Day에 강만수 전 경제부총리가 쓴 〈최후진술〉을 소개한 바 있다.
작가가 억울한 심정에서 옥중체험을 소설로 썼다는 점에서는 이병주(那林 李炳注,1921-1992) 의 데뷔작인 〈알렉산드리아〉(1965)가 그 원조(元祖)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병주 씨가 그의 작품 〈마술사〉(1968) 후기를 통해 밝힌 이 소설의 집필동기를 들어보자.
1961년 5월, 나는 뜻하지 않은 일로 이 직업(국제신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그만 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천성(天性)이 경박한 탓으로, 정치적으로 대죄(大罪: 그가 쓴 사설에서 5.16 쿠데타를 비판)를 짓고 10년이란 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런데도 2년 7개월 만에 풀려 나온 것은 천행(天幸)이었다.
이 때의 옥중기(獄中記)를 나는 〈알렉산드리아〉라는 소설로서 꾸몄다. 대단한 인물도 못되는 인간의 옥중기가 그대로의 형태로서 독자에게 읽힐 까닭이 없으리라고 생각한 나머지, 나의 절박한 감정을 허구(虛構, fiction)로서 염색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소설로서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는 나 자신 알 길이 없으나 '픽션'이 사실(fact) 이상의 진실(眞實, truth)을 나타낼 수 없을까를 실험해 본 것으로 내게는 애착이 있다.
그는 지식인으로서 범법자가 되어 재판을 받고 수감되었을 때 두 개의 자기로 분화되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그 난관에 부딪쳐 고통을 느끼는 자기, 또 하나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자기를 지켜보고, 그러한 자기를 스스로 위무(慰撫)하고 격려 하는 자기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웬만한 고통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무하고 지탱하고 격려하면서 견디어냈다. 그리함으로써 한 사람의 겪는 고통을 두 사람이 나누어 견디는 셈이었다.[1]
그는 작품을 쓸 때 "나의 억울함을 어떻게 호소할 수 있을까, 나의 무죄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을 지워 버릴 수가 없었다. 죄없이 재판을 받고 징역을 산다는 것은 법률에 대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사회에 대해서도, 죄 자체에 대해서도 치욕이란 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병주 씨는 소설 속의 분신(分身, avatar)을 통해 알렉산더 대왕이 그의 이름을 따서 건설하였던 이집트의 국제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날아갔다.
비록 작가 본인은 서대문 형무소의 감방에 갇혀 있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활짝 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뒷골목을 무대로 1960년대만 하여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벨리댄스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알렉산드리아의 밤은 묘하게 뜨겁고도 느릿하게 흘러갔다. 내가 발걸음을 옮긴 그곳은 향신료 냄새와 담배 연기가 뒤섞인 공간, 낮은 조명 아래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여드는 무대였다. 북소리가 울리며 현악기의 가락이 길게 늘어지자, 무대 위로 여인이 등장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모래 위를 미끄러지듯 가볍고, 허리의 곡선은 음악의 리듬에 맞춰 물결처럼 흔들렸다.
춤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그녀의 손끝은 공기를 가르며 이야기를 쓰듯 움직였고, 어깨와 허리의 미묘한 떨림은 관객의 숨결을 붙잡아 두었다. 주인공은 그 몸짓 속에서 단순한 관능을 넘어선 어떤 힘을 느꼈다. 그것은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오래된 역사와, 동서양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문화의 긴장과 화해가 한순간에 응축된 듯한 장면이었다.
춤은 점점 격렬해졌다가 다시 느려지고, 그녀의 눈빛은 관객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 순간 나는 자신이 단순히 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의 심장 박동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벨리댄스는 그저 몸짓이 아니라, 이국의 공기와 시간, 그리고 인간의 욕망과 예술이 뒤섞여 만들어낸 하나의 서사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내가 부러워 마지 않았던, 알렉산드리아라는 이국적(exotic)인 도시가 품고 있는 오래된 역사와, 동서양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문화의 긴장과 화해가 한순간에 응축된 듯한 벨리댄스를 내 눈으로 직접 관찰(위의 사진)할 기회가 있었다. 그것은 이집트가 아닌 튀르키예를 여행할 때였다. 바로 그 다음날 아침 열기구를 타고 카파도키아의 독특한 지형을 하늘에서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가 부풀었기에 더욱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벨리댄스가 언제부터 보급되었는지 나무위키를 통해 알아보았다.
벨리댄스가 배꼽과 골반, 하체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춤인 만큼 상의는 배꼽을 노출하는 브라톱이나 꼭 붙는 의상을 입고, 하의는 긴 치마 또는 바지를 입는다. 이 때문에 에로틱하거나 관능적인 춤으로 잘못 알려졌으나 여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춤이자 임신과 출산, 모성애를 표현하는 춤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신체 건강, 정신 건강에 큰 효과를 주는 스포츠 댄스의 하나로서 세계 각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한다 .
한국에서 벨리댄스가 여러 협회의 활동을 통해 조직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현재 전체 벨리댄스 인구는 10만명~20만명으로 추청되며, 각 협회는 마스터들이 여러 제자들을 가르치고 육성하여 전국에 지부를 두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들 협회는 일년에 수 차례 대회를 개최하며, 대회 당 평균 200~400팀 정도 참여할정도로 매니아 층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YouTube나 Instagram을 찾아보면 여성들이 아름다운 몸매와 매혹적인 동작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춤으로 각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2]
한국의 벨리댄스가 점차 활성화됨에 따라 세계적인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 무대에서도 한국의 벨리댄서들이 활약 중이다. 전 KBS 아나운서 정다은 씨는 자아실현을 위해 벨리댄스에 도전하였다고 하며 국내외 무대에서 멋진 춤을 선보였다. 특히 임성미(아래 사진) 같은 젊은 댄서들의 활동이 두드러 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SNS와 TV를 통해 널리 전파 되고 있다.


⇒ KBS TV 도전! 골든벨에 나온 벨리댄스 세계대회에서 1위를 한 정발고등학교 박지윤 양 (2017.6.11)
⇒ 노래까지 부르는 세계적인 인기 벨리댄서 샤키라(Shakira)의 2025 GRAMMY's 무대
⇒ JSJ 벨리댄스 팬미팅에서 임성미의 I Wanna Dance (2018.12.5)
아래 동영상은 2016년 6월 어느 지역축제에서의 공연 장면
Note
1] '소설 알렉산드리아'의 이병주 작가가 작중 인물을 통해서 밝힌 소설 집필의 변(辯)을 더 들어보기로 한다.
감옥살이에서 체험한 일이지만, 지식인과 무식자는 똑 같은 곤란을 당했을 때 견디어내는 정도가 월등하게 다른 것 같다. 지식인의 경우 감옥 속에 있어도 꼭 죽어야 할 중병에 걸리지 않은 한 호락호락하게 잘 죽지 않는다. 그런데 무식자의 경우는, 육체적으론 지식인보다 훨씬 건장해도 대수롭지 않은 병에 걸려 나뭇가지가 꺾이듯 허무하게 쓰러져 버린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옳을까. 여러 가지 원인을 들출 수 있겠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답안을 내보았다.
교양인 또는 지식인은 난관에 부딪쳤을 때 두 개의 자기로 분화되어 하나는 고통을 느끼는 자기와, 그러한 자기를 스스로 위무하고 격려하는 자기로 나뉘어 웬만한 고통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무하고 지탱하고 격려하면서 견디어낸다. 반면 무식한 사람에겐 고난을 당하는 자기만 있을 뿐이지 곁에서 위무하고 지탱하고 격려하는 자기가 없는 것이어서 모든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다가 그만 쓰러져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일찍이 로고테러피(Logotherapy)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Victor Frankl, 1905~1997)도 설파한 바 있다. 비엔나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 외투 속에 집필 중인 논문 원고뭉치를 품고 있었다. 나치 심사장교가 잡혀온 유대인들을 강제노역을 시킬 노역장 행과 그대로 처형할 가스실 행으로 구분할 때 그는 원고를 지키려고 부동자세를 취한 결과 노동능력이 있는 것으로 비쳐져 당장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수용소 안에서도 프랭클은 압수 당한 논문을 복원하기 위해 무슨 종이에든지 여백에 깨알 같이 메모를 남기려고 했다. 그리하여 건장한 사람들도 자기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석방될 것으로 희망을 품었다가 그만 실망하고 쓰러진 반면 자기는 논문을 새로 써야 한다는 生의 의미를 찾았기에(Man's Search for Meaning, 우리나라에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출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암환자들이 겪게 되는 심리상태의 변화를 DABDA 5단계로 정리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박사 역시 로고테러피의 열성 지지자였다.
프랭클은 니체의 말을 빌어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감당할 수 있다 (He who has a why to live for can bear almost any how)"라고 말했다.
2] SNS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벨리댄스 동호회가 많은 것처럼 두터운 팬덤이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프로 야구장의 치어리더 앞에 카메라를 들고 포진해 있는 열성 팬들과 같다.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벨리댄서의 공연을 찾아다니면서 직접 동영상을 찍어서 YouTube 등에 즐겨 올린다. 위에 올린 벨리댄서 사진들도 이들 매니아의 '직캠' 결과물인 것이다.
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프랑스와즈 사강이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자주 거론되는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1949~ )처럼 우리나라에는 왜 "나림 이병주를 좋아하세요"라는 팬덤(fandom)이 생기지 않았을까 아쉽게 생각된다. 물론 이병주 씨에게는 정식 문단 등단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다작에 따른 인세 수입으로 유달리 부르조아적 생활을 했으며 말년에 전두환 전기를 쓰려고 했다는 개인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동서고금에 통달한 지식과 역사의 제물이 된 약자들을 변론하고 발자크 못지 않게 스토리텔링에 능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해질 소지가 많은 작가였다. 「이병주 평전」을 쓴 전 서울대 안경환 교수는 "몽블랑 만년필 한 자루에 71년의 정과 한(情恨)의 삶과 수백 년 통분(痛憤)의 나라 역사를 실었던 대한민국의 작가"였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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