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쇼팽・리스트・파가니니 공연 감상기

Whitman Park 2025. 8. 25. 11:50

처서가 지났음에도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8월 24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쇼팽・리스트・파가니니 공연을 보러 갔다.

우면산 자락에 위치한 예술의 전당은 콘서트가 아니더라도 자주 가볼 만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후에 간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송영훈 첼리스트 같이 좋아하는 연주자라 해도 최근 들어 KBS가 '보이는 라디오'로 해설과 함께 라이브 연주를 보여주기 때문에 비싼 티켓을 사서 보러갈 필요성이 줄었다. 작년부터는 친구들과 중앙박물관, 과천 현대미술관을 찾아다니면서 더 큰 만족을 얻고 있다.

이날 예술의 전당에는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많은 시민들이 문화와 예술의 여유를 즐기러 나와 있었다.

 

 

이날 단 한 차례의 연주가 있을 뿐이고 세 명의 연주자 모두 국내에 잘 알려져 있은 터라 무슨 기획 의도가 있는지 궁금하였다.

피아니스트  케이트 리우는 쇼팽 콩쿠르, 알렉산더 울만은 리스트 콩쿠르, 바이올리니스트 쥬세페 지보니는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1위를 하는 등 위너들이므로 연주곡의 해석이 남다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 다행히 피아니스트의 얼굴을 앞쪽에서 볼 수 있었다.

 

제1부의 첫 연주곡은 알렉산더 울만의 탄호이저 서곡이었다. 잘 알다시피 탄호이저는 바그너의 유명한 오페라가 아니던가.

나로서는 왕년에 고시공부를 할 때 마음이 울적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즐겨 들었던 곡이기에 내 귀에는 피아노 연주곡이 아니라 관현악곡으로 들리는 듯했다. 다채롭고 풍성한 관현악의 멜로디를 마음 속으로 따라 부를 때 리스트가 再해석하여 피아노곡으로 만든 것이 전혀 새롭게 들렸다. 다만, 클라이맥스에서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의 소리가 최고조에 달할 때 피아노를 마치 부셔버릴 듯한 기세로 음량을 높였다.

이와 같이 피아노 울림의 강약에 따라 감동이 사뭇 달라졌다. 순례자 탄호이저가 방황을 할 때면 그가 오롯이 개인적으로 회개와 명상을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이어서 파가니니와 쇼팽의 곡이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케이드 리우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과 끝난 후에 피아노에서 손을 내리고 마치 기도하는 자세로 앉아 있어 이채를 띠었다. 특히 쥬세페 지보니의 비브라토는 아주 특색이 있었는데 파가니니의 카프리스를 연주할 때에는 활과 함께 왼손으로 피치카토를 하는 고난도의 기법이 놀라웠다. 

중간 인터미션 때는 모처럼 이 음악회에 참석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다른 사람들 뒤에 서서 나도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제2부는 파가니니의 곡으로 시작되었다. 오페라 '모세'의 주제에 의한 연주곡 등 우리의 귀에 익숙한 멜로디도 흘러나왔는데 이날 연주곡 선정의 기획의도를 알 것 같았다.

엄청난 고난도 테크닉과 연습량을 요하는 파가니니의 곡을 들었던 낭만주의 음악가 리스트와 쇼팽이 그 느낌을 서정적으로 옮긴 곡들이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곡으로 편곡된 파가니니의 고난도 음악을 당대의 콩쿠르에서 입상하여 기량이 입증된 연주자들이 많은 관중 앞에서 연주하는 셈이었다.

그 절정은 연주하기 정말로 어려운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종소리)를 리스트의 대연습곡과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둘을 비교하며 듣는 것이었다.

YouTube를 보면 '라 캄파넬라'는 노련한 피아니스트들 조차 '핑거 브레이커'라 하여 연주하기 꺼리는 어려운 곡으로 소개되어 있다. [1] 

 

 

이날 연주는 많은 감동을 안겨준 채 앙코르 연주 없이 두 차례의 커튼 콜로 끝났다.

나같은 클래식 애호가들로서도 같은 악보를 놓고도 연주자에 따라 그 기법과 음색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훌륭한 연주회였다.[2]  바이올린 곡은 놀라운 비브라토와 피치카토로, 또한 바그너의 관현악곡은 피아노를 힘껏 내리치는 타건(打鍵)의 강약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콘서트홀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똑같은 문자로 인쇄되어 있는 법령을 가지고도 이를 적용하는 입장에 따라 해석(interpretation)이 달라지는 것도 불가피하겠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Note

1] 아래의 YouTube 해설을 보면 왜 파가니니는 이렇게 어려운 곡을 작곡하고 직접 연주하고 다녔는지, 또 리스트는 이것을 보고 피아노 곡으로 만들어 연주할 생각을 했는지 잘 알 수 있다.

 

 

2] 이날 공연은 원곡을 재해석한 연주곡들이어서 그런지 리스트의 '탄호이저 서곡'을 들을 때부터 음악보다도 그 멜로디를 처음 들었던 당시의 상황과 추억이 자꾸만 연상이 되었다. 나이탓이려니 싶기도 했다.

하지만 '탄호이저 서곡'에서 방황하는 수도자의 고뇌가 깊어지면서 긴장도가 계속 고조될 때의 장면에서는 느닷없이 킹 크림슨(노래)의 'Epitaph' (묘비명) 클라이맥스 대목이 떠올랐다. 힘들었던 청춘 시절에 이 두 곡의 음악은 나에게 카타르시스(Catharsis)를 안겨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