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겨울에 듣는 피아졸라의 음악

Whitman Park 2024. 1. 27. 17:17

G : 안녕하세요. 손에는 음악회 팜플렛을 들고 남부터미널 역에서 지하철을 타셨다면 예술의 전당에서 무슨 공연 보고 오시는 길인가요?

P : 네, 오늘(2024.01.27) 서울 예술의 전당 IBK홀에서 열린 송영훈의 4 첼리스트 연주회를 보고 나오는 길입니다. 부제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겨울"이었어요.

 

 

G : 그럼 송영훈 씨를 비롯한 네 명의 첼리스트가 겨울 분위기 나는 탱고 중심의 레퍼토리를 연주했겠군요.

P : 잘 아시는군요. 피아졸라의 '항구의 사계' 중 겨울을 비롯하여 클래식의 여러 명곡을 편곡해서 첼로만으로 멋지게 연주해주었습니다.

 

G : 송영훈 첼리스트는 연주솜씨도 뛰어나지만 인물 좋고 언변 좋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Young Song 팬들이 많잖아요?

P : 네, 맞습니다. 저는 송영훈 씨가 진행하는 KBS 1FM 프로의 애청자로서 그가 마이크를 잡고 곡목 해설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첼로 연주로 말을 대신했어요. 딱 한 마디 연주가 모두 끝나고 앙코르 박수가 끊이질 않자 "자꾸 뺄려고 할 게 아니라 한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하고 아주 정열적인 곡조인 "Yo Soy Maria"를 연주해주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날 4 첼리스트의 레퍼토리가 전부 사연(behind story)이 있는 곡들이어서 관객들은 송영훈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짐작하였을 겁니다. 인트로 무대에서는 2명의 첼리스트가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의 스케이트를 타고 얼음을 지치는 모습, 찬 바람에 발이 시러워 동동거리는 모습을 연상케 해주었거든요. 베네치아의 음악교사였던 비발디 사제가 스캔들로 고국을 떠나야 했고 그의 대표곡인 "사계" 역시 20세기 중엽 이무지치 합주단이 발굴하여 연주하기 전까진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거든요.

 

* 1월 27일 공연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 송영훈(맨 오른쪽)과 첼리스트들

 

P : 제가 이날 선곡에 "무엇인가 있다"고 감을 잡은 것은 알레그리의 "Miserere Mei Deus"와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 또 <쉰들러 리스트>의 메인테마 연주를 들을 때였습니다. 첼로로는 연주하기 어려운 고음 파트와 우리 죄를 사함 받은 것 같은 감동을 주는 파트는 이미 청징(淸澄)한 아카펠라와 오보에 또는 관현악 연주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귀에 들어오질 않거든요.

 

G : 첼리스트들이 무슨 사연을 들려주고자 했다고 보시는지요?

P : 우선 미제레레는 시편 51편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노래한 것 아닙니까. 너무나 아름답고 거룩하여 교황이 시스티나 성당 밖으로 악보 반출을 금지했던 곡이었어요. 그러던 것을 어린 모차르트가 로마를 방문했을 때 이 성악곡을 듣고 이 곡을 전부 외웠다고 하죠. 숙소에 돌아와 한 소절도 틀리지 않고 오선지에 옮겨 놓아 그후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는데 오늘날에는 멘델스존이 편곡한 곡이 많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또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영화 <미션>에서 남미 오지 선교에 나선 가브리엘 신부가 원주민들의 마음을 열게 한 아름다운 기악곡이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사라 브라이트만이 모리코네에게 몇 달을 졸라서 가사를 붙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우리에게는 "Nella Fantasia"라는 성악곡 내지 합창곡으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지요. 또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메인테마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사람의 말 한 마디로 사람들의 생사가 오가고 했잖아요.

 

G : 송영훈 씨의 스타일로 미루어 무슨 의도였을지 대강 짐작이 가네요. 거룩함, 자비와 긍휼, 평화와 자유, 삶과 죽음, 죄사함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첼로라는 악기도 사람의 목소리 음역대와 아주 비슷하다고 하지만 그 한계가 있기에 첼리스트들의 도전 정신을 선보이고 싶었겠지요. 

P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첼리스트들의 반란이랄까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12 첼리스트들이 처음 시작했다고 하지요.

오늘 레퍼토리에서 제일 큰 방점은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1921-1992)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무대로 한 탱고에 찍혀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피아졸라가 어려서 일찍 부모를 따라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가서 클래식을 배웠는데 그의 손에서는 아버지가 폰샵(전당포)에서 구해다 준 반도네온이 떠나지 않았다고 해요. 

 

*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탱고의 황제' 아스토르 피아졸라

 

G : 저도 우리나라의 고상지 밴드가 연주하는 반도네온 탱고 곡을 들은 적 있습니다. 앉아서 무릎 위에 놓고 연주하거나 서서 다리를 의자에 올려놓고 그 위에서 연주하더라고요. 반도네온은 아코디언보다 연주하기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P : 피아졸라는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여인의 향기>에 나오는 "Por una Cabeza (간발의 차이로)"를 작곡한 카를로스 가르델과도 인연이 깊었어요. 그의 나이 열네 살 때 가르델 악단의 반도네오니스트로서 연주여행을 같이 떠나기로 했는데 그의 아버지가 나이가 너무 어리다며 반대를 해 그만 뒀지요. 그런데 연주여행을 떠난 가르델 악단 멤버들이 1935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으니~. 

 

G : 저도 피아졸라의 "Libertango", "Oblivion"을 좋아하는데 하마트면 아르헨티나 아니 세계 음악의 보물이 사라질 뻔했네요.

P : 오늘 레퍼토리에 "Adios Nonino"(2014 소치올림픽 때 김연아 선수의 음악으로도 유명), "망각(Oblivion)",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이 들어 있어 첼로 연주곡으로 감상했습니다. 피아졸라가 30대에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고 파리로 유학을 떠나 클래식 작곡에 매달렸답니다. 그때 퐁텐블로 음악원의 불랑제 교수가 그에게 충고를 했다지요. "당신의 재능은 탱고에 있으니 탱고 음악을 더욱 발전시켜 보라"고요.   

 

G :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요즘 종편이나 케이블 방송에서는 트로트 가수 오디션이 열을 띠고 있는데 K-pop처럼 트로트 음악의 세계화도 시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P : 그러자면 K-drama나 K-movie에 OST로 삽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작곡가와 연주자, 가수 등 음악대가들이 나와서 클래식 곡으로도 연주할 수 있게끔 업그레이드 시켜야 할 것입니다. 

 

G : 그때는 송영훈 4첼리스트들도 우리의 노래를 세계 무대에서 연주하며 더욱더 자부심을 느끼겠군요. 

P : 그렇게 되려면 클래식과 대중가요(소위 "뽕짝")의 경계가 좀더 낮아지고 퓨전도 용납이 되어야 할 겁니다. 범위를 넓힌다면 가야금, 창(唱) 같은 국악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오늘의 4 첼리스트 연주는 관현악 중심의 클래식 음악에 익숙한 귀에는 뭔가 2%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그러나 첼로가 낼 수 있는 음색의 高음역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고 본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