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양인자 작사, 킬리만자로의 표범

Whitman Park 2023. 12. 13. 10:30

오래 전 회사법 시간에 학생들에게 앞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cash flow)을 얻으려면 노래 작사를 해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음원 저작권료가 상당하므로 히트곡 몇 곡만 나오면 평생 어지간한 월급쟁이보다 나은 수입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바브라 스트레이전드의 '메모리' 예를 들어주었다.

작곡은 음악적 재능을 요하지만, 노래 가사는 자기의 진솔한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면 몇 번이고 고치고 다듬을 수 있으니까 누구나 쓸 수 있는 거라고도 했다. 물론 실력있는 작곡가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모든 작사가(지망생)들의 우상인 양인자 씨가 모 일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자신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소장품을 공개하는 자리였는데 자필로 가사를 적어놓은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노래의 악보를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 작사가 양인자 씨가 직접 손글씨로 가사를 적은 300여 곡의 악보. 출처: 조선일보 2023.12.12.

 

가수 조용필의 긴 읊조림으로 시작되는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1]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많은 이의 뇌리에 박힌 이 가사는 작사가 양인자(78)가 썼다. 서정적인 노랫말로 1980~1990년대 히트곡들에 오랜 생명력과 깊이를 입혔다.

지금까지 작사한 곡이 300여 곡. '그 겨울의 찻집', 'Q', '서울 서울 서울', '타타타', '립스틱 짙게 바르고',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열정', '알고 싶어요' 등 히트곡은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하 조선일보 김민정 기자의 인터뷰, [나의 현대사 보물] [32] 작사가 양인자 "‘킬리만자로의 표범’ ‘타타타’ ‘열정’… 300곡 가사에 인생 철학 녹였어요"에서 발췌 인용함.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당시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걸 꿈꾸며 미리 끄적였던 당선 소감을 가사로 만든 것이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정월 초하루 떨어진 걸 확인한 뒤, 또 1년을 어깨에 걸치고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며 소감을 미리 써봤던 거예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같은 가사가 “사는 게 참 지질했던 시절”에서 우러났다는 것이다.

양인자는 “원래 ‘표범이 굶어 죽기 전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소감 글이었죠”라며 깔깔 웃었다.

“작사는 내가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작사가는 멜로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말로 옮기는 번역가”라며 “제 번역을 좋아해주신 분들이 잘해왔다고 ‘쓰담쓰담’ 해주시는 상 같다”고 했다. 그는 “노래가 잊히지 않고 계속 불리는 것이 너무 좋다”며 활짝 웃었다.[2]

 

*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공항에서 시작하는 5박6일의 킬리만자로 트레킹. 출처: Naver 유럽의 자동자루트

 

킬리만자로의 표범 –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조용필 노래 (1985, 8집)

The Leopard of Kilimanjaro – Lyrics: Yang In-ja

Composed by Kim Hee-gap, sung by Cho Yong-pil (1985 8th Album)

#-denoted verses being recited (낭송 부분)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Have you ever seen a hyena

roaming the foothills?

Looking only for the carrion of the beast,

the hyena was at the foot of the mountain.

I want to be a leopard, not a hyena.

High up on the mountain, it was starved and frozen to death

on the snowy mountain top of Kilimanjaro.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When I arise from slumber, I become great.

Now I'm the one who becomes humble when awakening.

I'm resting for a while in a dark corner of the earth.

I am nowhere to be found in the lights of this ambitious city.

Like this in the center of this big city,

completely alone and abandoned, what does it matter?

There was a man named Van Goch

who once lived in a more unfortunate way than I.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 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 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I can't come like the wind and go like the dew.

I must leave some traces of my life behind.

Even if I disappear like a puff of smoke,

I'll burn with a brilliant flame.

Don't ask me why I try to climb so high,

don't ask why I try to climb.

What if no one knows

the burning soul of a lonely man?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When your life is fruitless and you have a cold back,

There is nothing to comfort it

In this world with few things to be proud of.

What makes such a world

look beautiful

is because of love.

They don't realize

how lonely it makes you feel.

Such love can make you as lonely as you can be.

They can never recognize it.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You said you love crickets.

I love crickets, too.

You said you love lilacs.

I love lilacs, too.

You said you love the night.

I love the night, too.

And again I love

the one colorful but lonely,

apparently full but empty at the same time.

Cheers to my youth.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 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Love is lonely because it risks fate.

It's lonely because it risks everything.

It's lonely because it demands both love and ideals.

It's lonely to risk everything.

Love is a heartbreaking passion that foresees separation.

What is left at the end of passion?

Even if you lose all, love is something never to be regretful.

Then I can say I loved you.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 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Even if it's the deepest night,

with a single strand of light, I will remain.

Even if it's the barren and burnt land,

I will stay with the sound of clear water.

Even if a fierce storm sweeps away the vegetation,

I'll be a tree that wouldn't be broken.

I can survive this world at this moment

for the 21st century is desperately in need of me.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Clouds or snow, high up on Kilimanjaro,

today I wear my backpack made of rick,

shaking hands with the solitude I meet on the mountain.

What does iit mean if I become the mountains?

 

* 키보 산장에서 Uhuru Peak (5895m)까지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 출처: Naver 유럽의 자동자루트

Note

1] 킬리만자로 산이 소재하는 탄자니아 정부는 1999년 조용필을 정식 초청하고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1985년 조용필이 8집 앨범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발표한 이래 매년 400명 이상의 한국인이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자 한국의 국민가수 조용필의 히트곡이 탄자니아의 자연보호와 관광산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한 것이다.

조용필은 당시 탄자니아를 방문하고 ‘세렝게티’ 평원에도 가보고 이를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바 있는데 이번 20집의 서곡에 ‘세렝게티처럼’을 발표하였다. 주한 탄자니아 대사는 신곡 발표회에 초청을 받고 신곡이 세렝게티의 이미지와 매우 잘 어울린다며 "조용필은 탄자니아의 진정한 친구이다”라고 말했다. 스포츠 경향, "주한 탄자니아 대사, 조용필 콘서트 방문한 사연", 2022.12.8.

 

 

2] 2008년 5월 여주에 있는 마임 빌리지에서 열린 조용필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그때의 감흥을 아래와 같이 국영문 단시(短詩)로 적어 놓았었다.  Park's IBT Forum > Travel > 3행시 My Haiku

 

가수 조용필의 2시간 여 열창

음악에 대한 정열이

그를 국민가수로 만들었구나!

Non-stop singing [Cho Yong] Pil's
Unparalleled passion [for music]
Makes him Nation's Singer.

조용필이 열창할 때 

4만 5천 여 관중도 한마음

40년이 하루 같네

When Pil was singing,
Thousands of people were single-minded
Like 40-year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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