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트럼펫 연주와 No More Art

Whitman Park 2024. 1. 11. 07:00

아침 기상 나팔도, 군대의 진격 나팔도 트럼펫이 맡는다.

그렇기에 트럼펫 소리를 들으면 벌떡 일어난다거나 힘차게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조건반사적으로 들곤 한다.
내 경우 어려서부터 루이 암스트롱의 재즈곡, 김인배의 "밤하늘의 트럼펫" 같은 경음악을 들으며 한때 트럼페터(trumpeter)를 동경하기도 했다. 전에 직장에서 모셨던 상사가 고등학교 밴드부에서 트럼펫을 불으셨기에 평소에 트럼펫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영향도 있었다.

 

 

트럼펫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자연히 국내외의 트럼펫 연주자들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트럼펫은 여러 관악기 중에서도 입술과 호흡의 강약으로 음의 높낮이, 아티큘레이션을 조절하는 만큼 연주하기 힘든 악기로 알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특히 여성 연주자들은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특히 바로크 음악에 필수적인 트럼펫을 그 시절 관(pipe)이 긴 악기로 연주하는 영국의 앨리슨 발솜의 고음악(古音樂) 연주는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 영국의 고음악 트럼페터 Alison Balson
* 미국의 재즈 트럼페터 Chris Botti

 

그런데 미국의 크리스 보티 같은 트럼페터는 팝송과 퓨전 음악을 아주 감각적으로 연주하여 엄청 인기를 끌었다

예컨대 크리스 보티가 바이올리니스트 루치아 미카렐리와 함께 듀오로 연주한 Emmanuel이라는 곡은 트럼펫이 바이올린 못지 않게 풍부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또 들려 주었다.

바이올린 같은 독주 악기뿐만이 아니었다. 2016년에는 영국의 다재다능한 가수 스팅의 보칼하고도 잘 어울리는 협연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트럼페터의 역량에 따라 클래식이나 재즈, 군대 행진곡, 팡파레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인 것이다. 

 

* Chris Botti가 Lucia Micarelli와 함께 연주한 Emmanuel 보스톤 공연 장면
* 2016년 Chris Botti가 영국의 가수 Sting과 같이 공연을 펼쳤다.

 

아마도 이러한 프로급 트럼펫 연주자들은 어려서부터 트럼펫을 가지고 놀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일반 사람이 보기에 삑사리 나기 쉬운 트럼펫을 음정 박자 틀리지 않고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연습을 통해 무한한 내공이 쌓여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 이상 악기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도구처럼 손에 익은 것처럼 여겨졌다.

 

내가 다니는 양재 온누리 교회에서는 주일 2부 예배 때 소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인 체임버가 성가대 반주와 찬양 특순을 맡고 있다.

지난 1월 7일은 온누리교회가 역점을 두고 있는 해외선교에 필요한 헌금 작정 주간이었다. 이날 사도행전(1:1-11)에 나와 있는 "땅끝,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관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은 후 금년도 헌금 약정서를 써서 제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때 교회 측에서 마련한 특순에서는 체임버(2부)가 보칼 없이 찬양을 들려주었는데 곡명도 "은혜 아니면 나 서지 못하리"였다. 오케스트라의 합주 속에 트럼펫의 음색은 '찬양하라(Praise)', 그리고 '용감하게 나아가라(March bravely)'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았다. 3부 예배에서는 여성 트럼피터의 솔로 연주가 예정된 것 같았다.

1주일 후에도 여성 트럼피터의 솔로 연주가 있었다. 1주일 간격으로 트럼펫 솔로 연주를 듣게 된 것이다. 같은 복음성가인데도 트럼펫의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 때문인지 여성 트럼피터 홍민희 씨의 "내 삶의 이유라", 조소영 씨의 "사명"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씩씩하게 나가는 그리스도 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 2024.1. 7 주일 2부예배의 체임버 특순 장면
* 주일 3부예배 특순 트럼펫 솔로 홍민희의 "내 삶의 이유라" 리허설 장면
* 1.14 주일 2부예배 특순 트럼펫 솔로 조소영의 "사명" 연주

 

마침 1월 5일부터 1월 30일까지 강남구 역삼동 소재 더북컴퍼니 (강남구 봉은사로 226) TOBE 홀에서 열리고 있는 제2회 FLOW 전시회를 가서 보았다.

어찌 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고 그냥 버릴 수도 있는 소재들을 미술가의 안목으로 고쳐서 재활용한 것이 "The New Olds"라는 새로운 미적 개념으로 선을 보인 것들이다. 오래된 것, 낡은 것도 새로운 안목으로 고치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니 . . . . .

 

 

예컨대 박지현 작가의 여러 작품은 을지로 인쇄소에서 쓰고 버린 인쇄기 부품들인데 이것을 가공한 다음 레진을 붓고 컬러링하여 새로운 조형과 색상으로 재탄생한 작품들이었다.

또 지누박 작가의 작품은 미술대학에서 학생들이 학기 중에 만든 습작품을 버리던 것을 손질하여 신 개념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황혜현 작가의 거리를 걷는 젊은이들을 자작나무 조각으로 형상화한 것 역시 우리가 강남에서 흔히 마주치는 휴대폰을 들고 바삐 걸어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조각 작품같이 만들어 놓으면, 마치 장난꾸러기 요정같이, 이것들이 놓여 있는 장소를 갑자기 부산하게 바꿔놓을 것 같았다.    

 

* 스타워즈의 광선총 같아 보이지만 작가의 의도는 위에서 본 맨해튼 건물 모습이라 한다.
* 강남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이 하나같이 손에 핸드폰을 들고서 걷고 있다.
* 흰천을 둘러쓴 유령도 "No More Ghost"라 외치면 과연 꼼짝 못할까?

 

이번 전시회에서 홍익대 지누박 교수가 내건 "No More Art"라는 슬로건이 참으로 그럴 듯하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를 가지고 우리 주변을 활기차게 만들어 놓는다면 이것은 더 이상 미술작품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소품이 되는 셈이다.

지난 주일 트럼펫 연주를 듣고 더 이상 음악이 아니라 (No Longer Music)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감상소감이었다.

음악이 우리 일상생활의 BGM이 되어 생활에 때로는 안정감을, 때로는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했다. 

 

 

P. S.

FLOW 전시회에서 The New Olds를 보고 온 탓일까?

1월 14일 주일 2부 예배에서 '고전적인' 정장을 입고 트럼펫 독주를 하는 여성 트럼페터의 모습을 '현대적인' 그림으로 재현해 보았다. AI 그림생성기인 ArtGuru를 이용하여 트럼펫 부분이 빛이 나게 보여달라는 Prompt를 덧붙였다.  

 

* AI 그림생성기 ArtGuru가 표현한 여성 트럼페터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