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하늘에 걸린 무지개

Whitman Park 2023. 7. 28. 14:00

장맛비가 그치고 모처럼 해가 떴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으므로 반대편을 바라보니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어느 시인은 저 무지개가 내일의 희망과 기쁨을 안겨줄 거라 믿으며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어찌 보면 이 시는 학생들에 대한 훈화 같기도 한데 유안진 교수는 1980년대에 수필 같은 장문의 산문시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 서울의 하늘에 뜬 무지개. 사진제공: 김정수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 유안진

The Windflower Will Not Wither - Yu Anjin

 

내일 몫은 기쁨

내일 몫은 환희

내일 몫은 찬란함

내일 몫은 영광

내일 몫은 눈부신 황홀이니

나는 견디리

견디어 이기리

오늘 비록 비가 내려도

내일은 해가 뜨리

저 하늘의 무지개 그 약속을

믿으리

Tomorrow's share is joy.
Tomorrow's share is delight.
Tomorrow's share is splendor.
Tomorrow's share is glory.
Tomorrow's share is dazzling ecstasy.
I will stand out.
I will endure and win.
Even though it rains today,
Tomorrow the sun will rise.
Beholding the rainbow in the sky,
I believe its promise.

 

성경에서 하늘의 무지개는 노아 때처럼 이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창세기 9:13)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비온 뒤에 하늘에 걸린 무지개, 특히 쌍무지개는 무지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품게 되었다.

동화책을 읽던 유년 시절에는 무지개가 뜨는 곳에 보물이 감춰져 있다거나 무지개를 따라가면 재미있는 모험을 하게 된다는 말을 곧이 듣곤 했다.

그러나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프리즘을 가지고 실험을 하면서 무지개란 햇빛이 공기중의 물방울을 통과하면서 빨주ㆍ노ㆍ초ㆍ파ㆍ남ㆍ보 일곱 색깔로 분광이 되는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고학년이 된 후에는 영화와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Over the Rainbow"라는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장성한 뒤에는 '무지개'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아무리 가슴 뛰게 하는 희망이라 할지라도 실천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과 노력하지 않는 한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헛된 꿈(夢想)'이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렇기에 "무지개를 쫓는 사람"은 현실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허황된 꿈을 좇아 허송세월하는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서일까? 나이가 든 지금도 비 갠 후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게 사실이다. 

 

* 비 갠 뒤 비행기 안에서 발견한 원형의 무지개. 출처: 트위터 Vulpes No.9

 

My Heart Leaps Up  - William Wordsworth (1770-1850)

무지개를 보면 내 가슴이 뛴다   - 윌리엄 워즈워드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was it when my life began;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이 뛰나니.

내가 어렸을 때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늘,

내가 늙어서도 그러할지니,

아니면 내 목숨을 거두소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원하노니 내 삶의 하루하루가

천생의 경건한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 나이아가라 폭포 위의 무지개. 출처: Google image

얼마 전 휘파람새(bush warbler)가 여름 철새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 맑고 영롱한 소리를 내는 작은 새가 우리나라에서 부화를 하고 새끼를 키우며 여름을 보낸 후 날이 추워지면 중국 남부와 필리핀으로 날아가 겨울을 난다는 것이다.

기러기나 가창오리처럼 떼를 지어 날아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작은 몸으로 너른 바다를 건너서 갈까?

 

더욱이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호랑나비 같은 북미의 제왕나비(monarch butterfly)는 캐나다에서 여름을 지낸 후 美 대륙을 종단하여 멕시코로 날아가 겨울을 보낸다고 한다. 몇 달에 걸쳐 날아가는 거리는 물경 3200km에 이른다. 무엇이 그 연약한 미물(微物)을 대장정에 나서게 하는 것일까?

일제 시대의 한 시인은 나비가 바다를 건너가는 것이 무지(無知)와 만용(蠻勇) 탓이라고 했다. 그는 일제 하 조선 지식인의 무기력(無氣力)과 염세적인 자세를 은유적으로 비판한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이 시를 읽어보면 이것저것 따지다가 하고 싶은 것도 쉽게 단념해버리는 현대인을 나무라는 것만 같다. 닥치는 대로 일하는 일꾼이 아니라 떠받들어 모시는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는 표현이 특히 그러하다.

그 반대는 "돈키호테처럼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일 테니 흰 나비는 청무우밭의 꽃을 향해 용감하게 날아갔겠구나!

무지개 뜨는 곳을 찾아갈 생각은 엄두도 못내는 무기력한 지식인들에게 바다를 건너는 용감한 나비를 보라고 외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바다와 나비  - 김기림

Sea and Butterfly  by Kim Ki-rim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No one has ever told it how deep the water is

The white butterfly is not afraid of the sea at all.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It saw a green radish field below, and went down.

Its young wings were caught in the waves

So it comes back exhausted like a princess.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It’s sad because the sea in March doesn't bloom.

The blue new moon shines cold on the waist of the butter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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