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 '님이 오시는지'를 영어로 말해보라고요?
P : 네, 우리 가곡요. 우리 시를 영어로 번역할 때의 문제점, 인공지능(AI) 번역기를 사용할 때의 유의점 등에 대해서는 얼마전에 다룬 적 있어요. 이번에는 우리 말의 특징과 AI가 이를 번역할 때의 애로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G : 요즘 YouTube 강의 채널을 보면 챗GPT나 영어로 된 웹사이트를 이용할 때 "Dont' worry, be happy."라고들 해요. 일단 우리말로 입력한 후 즉석에서 파파고 같은 AI 번역기로 고쳐서 입력하라는 안내를 해줍니다.
P : 네, AI 번역기를 쓰면 언어장벽이 해소될 것처럼 이야기들 하지요. 그런데 실상을 보면 그 반대인 경우가 적지 않아요. 소통이 잘 되기는커녕 오히려 오해와 불신만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고 할까요.
G : 다음 사진은 무엇이지요? 백년설로 덮혀있는 산은 똑 같아 보이는데요.
P : 네, 같은 산이지만 계절과 관점(보는 장소)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사례로 보여 드렸습니다. 위의 것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있는 호엔잘츠부르크 성 위에서 남쪽(독일과의 국경)을 바라본 광경입니다. 아래 것은 산 아래 마을 아니프(Anif) 들판에 노란 유채꽃이 피어 있는 광경인데요. 여기서 잘츠부르크 태생인 지휘자 카라얀이 살았고 그 곳 공원에 그의 묘소가 있다는 것을 알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번역이란 똑 같이(verbatim) 번역하는 것보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까지 담아서 이해하기 쉽게 옮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G : 선생님도 영문 법률백과사전 KoreanLII의 동역자로 파파고, Google, DeepL 번역기를 임명하고 우리말 콘텐츠를 영어로 옮길 때 이들을 이용하겠다고 하셨는데 경험담을 들려주세요.
P : 요즘 시즌에 맞는 "님이 오시는지" 가곡을 미국의 성악가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1]가 우리말로 부르는 것을 들었어요. 발음을 정확히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그 분위기는 훌륭하게 전달되었어요. 같이 한 번 들어보시죠.
님이 오시는지 - 박문호 작사[2] 김규환 작곡
물망초 꿈꾸는 강가를 돌아
달빛 먼 길 님이 오시는가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
내 맘은 외로워 한없이 떠돌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만 차오네
백합화 꿈꾸는 들녘을 지나
달빛 먼 길 내 님이 오시는가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
꽃향기 헤치고 님이 오시는가
내 맘은 떨리어 끝없이 헤매고
새벽이 오려는지 바람이 이네 바람이 이네
P : 첫 연의 첫 문장에서 우리는 직감적으로 물망초가 피어 있는 강변길로 해서 님이 오시나보다 추측한다고 생각하지요. 파파고와 Google은 엉뚱하게도 달빛 먼 길 님을 주어로 이해했어요. 일반적으로 사람 이름에 붙여쓰는 존칭어 '님'으로 오해한 거죠. 놀랍게도 DeepL만큼은 "Will you come from a long way by moonlight"로 번역하여 님을 뒤에 나오는 그대=you로 해석했어요. 또 AI번역기로서는 강가에 물망초가 꿈꾸듯 피어 있는 게 아니고 강가가 물망초를 꿈꾼다고 곡해한 게 무리는 아닙니다.
G : 사실 우리말에서는 상대방도 아는 주어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영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P : 이 시는 상사병에 걸린 화자(話者)가 '갈숲 바람=님의 발자취(발자국 소리)', '물소리=님의 노래'로 환각 비슷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인 AI 번역기로서는 wind in the reeds, sound of running water 다음에 올 적합할 말을 찾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래서 바람이 그대의 발걸음을 따라온다거나 그대의 발아래로 분다고 해석했어요.[3]
G : 제2절은 어땠어요? 엉뚱한 번역은 없었나요?
P : 네, 파파고는 '꽃향기 헤치고 님'을 Fan ID로 인식했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ID 쓰는 이용자가 더러 있잖아요? 우리는 '풀물에 배인 치마 끌고 오는 소리'도 풀밭을 한참 걷다 보면 치마 자락에 풀물이 들고 치맛자락도 무거워질 텐데 하며 미안한 마음이 앞서지요. 또 꽃향기 헤치고 오니 얼마나 향기가 나겠어요? 그리움과 고마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 들어야지요. AI 번역기는 그저 "Passing through the scent of flowers"라고 아주 드라이하게 번역할 뿐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줄 "새벽이 오려는지"는 그리운 님을 생각하며 밤을 새운 심정을 바닥에 깔아야 하는데 세 번역기 모두 "Dawn is coming, but" 단순 중문(重文)으로 처리했어요.
G : 그럼 선생님이 번역하신 것을 보여주세요.
P : '님이 오시는지' 제목부터 의문형이 아니라 가정법 (I wonder) If Love is Coming으로 옮겨 봤어요.
일단 의미와 분위기가 통하게 하고 1절과 2절이 대칭을 이루도록 번역하는 데 주력했지요. 다만, 선율에 맞춰 가사 글자 를 줄이는 것은 차후로 미뤘습니다.
If Love is Coming?
written by Park Moon-ho composed by Kim Gyu-hwan
By the riverside where forget-me-nots're dreaming,
I wonder if my love comes a long way under moonlight.
Is the wind blowing thru the reeds and forerunning your steps?
Is the sound of flowing water resembling your song?
My heart is lonely and wandering aimlessly.
As dawn is coming, only the wind is blowing.
Past the field where lilies are dreaming,
I wonder if my love comes a long way under moonlight.
I hear the sound of a dragging skirt being soaked in the grass
Are you coming through the scent of flowers?
My heart is trembling and wandering endlessly.
As dawn is coming, the wind is blowing. The wind is blowing.
G : 전에 어떤 분이 "번역은 반역이다"라고 했는데 번역은 잘해야 본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말씀하신 피츠제럴드의 영어 4행시(Rubaiyat) 같은 예외적인 사례도 없진 않지만 ······.
P : '님이 오시는지' 노래가사를 번역함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의 분위기를 상상했어요. 어느 봄날 바람이 불 때마다 꽃 향기가 솔솔 풍겨오는데 (짝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며 그가 꿈속에서라도 찾아왔으면 하고 바라는 심정으로 밤을 지새운 사람의 독백이라고요.[4]
G : 선생님이 영역한 가사는 외국인 성악가가 불렀 가곡을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를 때처럼 똑똑히 들을 수 있는 것 같네요.
P : 이런 식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래가사가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영어로 외국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G :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AI 번역기를 사용할 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① 주어-동사를 분명히 할 것, ② 원문에서 빠트린 부분이 없는지 꼼꼼히 대조할 것, ③ 문맥과 상황에 맞는 표현으로 고칠 것, ④ 분사구문을 쓸 때에는 주어가 일치하는지 살필 것, ⑤ 시나 노랫말에서는 운율에도 유의할 것 등.
P : 네, 맞습니다. 그럼 같은 방법으로 봄에 관한 시를 한 편 더 영어로 옮겨 볼까요.
각주에 소개했습니다만, AI 번역기로서는 주어와 술어를 식별하기가 어렵고, 시인이 상상하는 봄날의 서정을 이해하기 곤란한 시라고 할 수 있어요.[5] 첫 연은 바람이 주어로서 시냇물 소리를 듣고, 둘째 연은 노란 꽃이 핀 들판을 반짝이며 흐르는 강가의 흰 모래가 눈에 들어옵니다. 셋째 연에서는 이러한 청각과 시각을 종합하여 봄날의 기운이 꽃을 피우고 조용하면서도 빛이 나게 우리 마음을 뛰놀게 만드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못하면 번역이 어딘가 어색한 거죠.
봄 날 - 김경호
Spring Day - Kim Kyungho
바람은
강을 거슬러 올라
나무들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고
눈을 감으면
언 땅에서 풀려나는
시냇물 소리
The wind,
flowing up the river,
leans back and falls asleep
on the shoulders of trees.
With the eyes closed,
it hears the sound of the stream
relieved of frozen soil.
개나리꽃은 피어서
설레는 마음을 덮고
낯익은 들판마다
천의 젖니를 반짝이며
돌아오는 강물처럼
저 결 고운사구(砂丘)를
건너오시는 그대
Forsythia blooms
covering heart in excitement.
Like a returning river
shining thousand teething teeth
at every familiar field,
you're crossing
those fine sand dunes.
그대 걸음, 걸음마다
꽃씨들은 눈부신 껍질을 벗는데
하얀 발목 빛내면서
잠든 아기의 숨소리처럼
내게 다가오는 이
그대, 누구신가
At your step after step,
the flower seeds shed their dazzling shells.
Showing your white ankles, and
breathing the breath of a sleeping baby,
the one approaches me.
You, who are you?
Note
1] 미국 뉴저지에서 태어난 바바라 보니(Barbara Bonney, 1956~ )는 본래 피아노와 첼로를 공부하였다. 그녀의 가족이 메인 주로 이주하였을 때 보니는 첼리스트 영재로서 포틀랜드 심포니 유스 오케스트라의 단원이 되었다. 뉴햄프셔 대학을 거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을 다닐 때 첼로에서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본래 목소리가 고왔던 데다 첼로를 들고 여행을 할 때마다 요금을 2배 이상 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는 고음악까지 공부하며 리릭 소프라노로서 입지를 굳혔다.
바바라 보니는 1998년 데카 음반 Portrait에 '님이 오시는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다섯 곡의 한국 가곡을 함께 수록했다. 그밖에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역시 1995년 내한 공연 홍혜경과 함께 '그리운 금강산' 가곡을 한국어로 불러 호평을 받았다.
2] KBS 합창단 상임 지휘자 김규환은 1966년 어느날 우연히 사무실 휴지통에서 버려진 악보 한 장을 발견했다. 누군가 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 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규환은 가사가 너무 좋아서 곡을 다시 붙이고 소프라노 황영금에게 노래를 부르도록 했다. 그리고 작사자로 되어 있던 박문호를 수소문 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나중에 이 노래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작사자의 아들이 연락을 해왔다. 박문호씨는 문학을 좋아하던 의사 였으며 오래 전에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벽이 다가오도록 잠 못 이루며 님을 기다리는 마음을 한국의 서정적인 감성으로 잘 표현된 곡이다. 출처: Naver 블로그 산하천.
3] 원시(原詩)의 "갈숲에 이는 바람 그대 발자췰까 흐르는 물소리 님의 노래인가"를 세 AI 번역기는 다음과 같이 옮겼다. 한국 이용자가 많은 파파고는 '흐르는 물소리 님'을 한국의 이용자 ID로 인식하여 고소(苦笑)를 금치 못하게 했다.
- Papago : Will the wind in the brown forest follow your footsteps? It's a song by "Running Water."
- Google : Did the wind that blows through the reeds blow your feet? Is it the song of the sound of flowing water?
- DeepL : The wind in the reeds, will you step on it? Is the sound of flowing water your song?
4] 최근 AI의 번역 능력이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함에 따라 AI가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는 분야와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마치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밀어냈던(Video killed the Radio Star) 것처럼 번역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전문 번역가들도 시(詩)라든가 현실 지식에 기반하지 않은 ‘판타지’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하면, AI가 인간 번역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특히 과학서는 정형화된 서술 방식이 있어 AI 번역 친화적인 텍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보전달보다 작품 특유의 문체, 저자의 에너지와 호흡 전달, 문맥이 중요한 문학작품에서는 AI번역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간단한 번역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많지만 AI를 압도하는 ‘고품질’ 결과물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는 인간 번역가의 희소가치가 생겨 오히려 전보다 더 대접받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조선일보, "AI는 번역가를 대체할까?", 2023.4.17.
같은 맥락에서 언어의 장벽이 사라지는 시대에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 서로의 감정까지도 헤아릴 수 있는 친밀함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면 의사소통이 필수적이고 그만큼 외국어는 더 중요한 능력으로 부상할지 모른다. 더 많은 사람을 잇고 연결하는 네트워킹에 있어서는 상대방과 얼굴을 맞대고 표정을 바라보며 그의 육성을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영묵, "번역기의 시대, 외국어 능력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 조선일보 2023.4.14.
5] 김경호의 '봄날'을 DeepL은 다음과 같이 번역을 했다. 위와 같은 봄날의 서정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 것은 주술관계가 틀려 있기 때문이다.
The wind / up the river / on the shoulders of the trees / I lean back and fall asleep / When I close my eyes / the sound of the stream / the sound of the stream //
Forsythia blooms / Covering my heart in excitement / Every familiar field / Shining the teething teeth of cloth / Like a returning river / Crossing the fine sand dunes / across the fine sand dunes //
Your steps, your steps / The flower seeds shed their dazzling shells / Your white ankles shine / Like the breath of a sleeping baby / The one who approaches me / You, who are you
Annex
우리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기는 것의 고충과 애로사항은 다음과 같이 아주 상당합니다.
- 시와 가사의 번역 전체 리스트
- 우리 詩 영역(英譯)의 스무 고개 (2022.12.11)
- 우리의 노래를 세계에 알리려면 (2022.03.23)
- AI가 좁혀주는 법률가와 시인의 거리 (2023.02.17)
- 번역기를 이용한 한국 시의 영역례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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