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주말에 대관령 국민의 숲 길을 걸었다.
장마철이 시작되었으니 불시에 비가 내릴 수는 있지만 숲 길은 아주 평온하고 고요했다.
어디선가 이름 모를 새 소리가 들렸다. 가냘픈 듯하면서도 똑똑 부러지는 것이 내 주장이 확실한 작은 새인 듯 싶었다.
나무 사이를 찾아보았지만 작은 새 한 마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예상했던 먼 산의 뻐꾸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는 발왕산 애니포레의 가문비나무 숲을 찾아갔다.
여기서도 가냘픈 여린 새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고즈녁한 숲 길
나무 향을 맡으며 걸을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
노래를 부르는 그는 보이지 않아도
처음 들어보는 맑고 고운 노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뻐꾸기도 울지 않고
사방이 고요한데
경쾌하면서도 청정(淸淨)한 품
그가 보는 세상은 아름다울 터
세상 번뇌가 가라앉으니
마음도 절로 가벼워지네
새 소리를 묘사한 연주곡
평창에 도착한 첫 날 점심 때 막국수와 꿩만두국을 먹은 식당 창 밖으로 고랭지 채소밭과 밀밭이 펼쳐져 있었다.
밀밭 어디선가 노고지리가 솟아올라 지저귀는 것 같았다.
비록 종달새 노랫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옛날에 폴모리아가 연주했던 종달새(Alouette) 곡이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1]
그러자 야니의 나이팅게일(Nightingale) 연주곡과 서로 비교가 되었다.
▶ Paul Mauriat, Alouette (1968)
나이팅게일 새 소리에 맞서 소프라노 성악가가 목소리를 뽐내는 장면도 생각이 난다(아래의 M/V).
갑자기 제비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올려다 보니 놀랍게도 어느 상가 건물 처마밑에 제비 둥지가 있었다. 그리고 새끼 네 마리가 어미 제비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입을 크게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어렸을 적 식구가 많은 집안에 아버지가 호떡을 사오실라치면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야 겨우 맛이라도 볼 수 있었던 추억이 새삼 떠올랐다.[2]
▶ Yanni & Lauren Jelencovich, https://www.youtube.com/watch?v=kUukb3TpBiENightingale
새 소리의 시각적 묘사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새 소리를 듣고 이를 시각화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여기 '탐조(探鳥)를 기리는 노래' (Ode To Bird-Watching의 일부)의 원시는 스페인어로 되어 있는데, 숲 속에서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는 소리를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Above,
a wild song,
a waterfall,
it's a bird.
How
from a throat
smaller than a finger
can the waters
of this song fall?
머리 위에는
미친 듯한 노래,
폭포,
아, 그건 새 한 마리.
어떻게
손가락보다 크지 않은
목구멍에서
그런 물이
노래로 떨어질까?
⇒ 네루다의 詩 전문을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3]
Note
1] 음식점 창 밖으로 밀밭을 보았을 때 먼저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가 가족을 그리워하면서 밀밭 사이로 걸어가는 회상 장면이 떠올랐다. 그 다음엔 보리밭, 밀밭에 둥지를 트는 종달새(종달이, 노고지리, sky lark 사진)가 생각이 났다. '종달새' 하면 농촌에서 산 적이 없는 나로서는 폴모리아의 연주곡부터 연상이 되곤 한다. 왜냐하면 그의 연주곡을 처음 들었을 때 그의 현란한 편곡 솜씨와 관악과 현악, 키보드를 멋지게 어레인지하는 것을 듣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폴모리아 악단의 연주곡은 "Love is Blue"를 비롯해 모든 곡이 매력적이고 감각적이었다. 1968년 월남 파병을 마치고 귀국한 형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 포터블 전축/라디오였는데 집에 오면 항상 틀어놓았던 FM 방송에서 폴모리아의 연주곡이 자주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 덕분에 高校 입시에 실패한 소년은 아무탈없이 사춘기를 보낼 수 있었다. 오죽하면 폴모리아의 편곡처럼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2] 그 당시 아버지는 호떡을 나눠주시면서 '배급'을 준다고 하셨는데 종종 '진상'되는 귀한 음식도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우리집에 오시면 오후엔 꼭 홍차를 드시곤 했는데 홍차와 함께 부드러운 스폰지 케이크 '카스테라'가 쟁반에 담겨 있었다. 간혹 내가 차 심부름을 할 때면 할아버지가 진상품의 일부를 나눠주시기도 했다.
카스테라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일화는 아마도 장기려 박사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평양 도립병원 외과과장이던 장기려 박사는 1.4후퇴 당시 엉겁결에 막내아들만 데리고 월남해야 했다. 부모님과 처자를 北에 남기고 온 장 박사는 남한 땅에게 누군가를 돕고 살면 북한에 남은 가족이 무사하리라는 확신 하에 봉사활동에 헌신했다고 한다. 장기려 박사의 아들 장가용 서울의대 교수가 2000년 이산가족 상봉단의 주치의로서 평양에 갔을 때 꿈에도 잊지 못할 모친과 형제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제 시대 때 서울에서 아버지 장기려 박사가 즐겨드셨던 명륜동 제과점의 카스테라 빵을 들고가서 어머님께 드렸다고 한다.
최근 일본에 다녀온 아들 내외가 내가 좋아한다고 카스테라 케이크 한 상자를 사들고 왔다. 일본에서 맨처음 나가사키로 전래되었던 포르투갈 카스티야의 빵(Pão de Castila)을 일본식 카스테라(カステラ)로 개량하여 전국적으로 보급한 元祖 문명당(文明堂 ぶんめいどう 사진) 제품이었다.
3] 파블로 네루다는 이 시에서 새 소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나뭇잎 속에/ 음악의/ 분류(奔流)/ 신성한 대화! "
이와 같이 '새 소리'를 모티브로 삼거나 중요한 소재로 삼은 소설도 있을 듯 싶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만 입안에서 맴돌 뿐 딱이 생각나는 작품이 없었다. 그래서 MS Copilot에 같은 내용을 물어보니 다음 두 작품을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이들 작품은 네루다의 시와는 장르와 체급이 달랐다.
-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The Bird That Drinks Tears), 팬터지 소설, 2003.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연대기 (The Wind-Up Bird Chronicle), 실직한 젊은 남자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하찮아 보이는 태엽 감는 새일 망정 태엽을 감지 않으면 시계도, 세계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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