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고성의 조각 미술관 바우지움과 아야진 해변(2021)

Whitman Park 2022. 3. 1. 18:20

강원도에 있는 '고성'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세대별로 다르다.

나이 많은 세대는 '통일전망대', '금강산관광'을 연상하는 반면 젊은 세대는 '바우지움' 조각 미술관, '아야진 해변' 같은 관광명소를 떠올린다. 동해안 해변을 찾아갈 때에도 나이든 이는 화진포, 송지호 같은 해수욕장, 젊은이는 서핑할 수 있는 곳, 바다 전망 좋은 카페로 키워드가 엇갈린다.

 

동해고속도로가 끝나는 속초 IC에서 행선지를 정할 때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명소 두 군데를 골랐다.

처음 찾아간 바우지움은 바위의 강원도 방언인 '바우'와 '뮤지엄'의 합성어라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저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조각전문 미술관이었다. 

 

* 눈 내린 겨울의 울산바위. 사진출처: 한국일보

 

고향이 춘천인 조각가 김명숙 씨가 치과의사인 부군 안정모 박사와 함께 고성군 토성면 7000평의 대지 위에 조각 미술관과 함께 물의 정원, 돌의 정원, 소나무 정원을 만들었다.

건축가 김인철 씨가 설계한 미술관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로 세워져 있어 이 미술관의 컨셉이기도 한 바위돌이 전시작품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 입구는 명백한 시공불량임에도 근사한 조형물을 설치하니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놀라운 것은 김명숙 관장이 소장한 우리나라 여러 근현대 조각작품의 매끈한 대리석과 배경이 되는 거친 콘크리트 벽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점이었다. 그래서 조각작품이 보여주는 여체의 피부가 훨씬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전시된 조각작품은 주로 얼굴의 표정보다는 인체의 곡선미를 강조하는 듯 싶었다.

 

 

콜렉션을 전시해 놓은 A관의 벽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개방적이고 툭 트여 보여 좋았다.

하지만 벽에 멋있는 그림이 걸려 있다면 잠깐이라도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연전에 가 보았던 경기도 양평의 Koo House Museum이 생각 났다.

그 대신 이곳에서는 물의 정원 뒤로 바위돌의 정원, 소나무 정원이 펼쳐져 있고 저 멀리 설악산 자락의 연봉이 병풍처럼 바라다 보였다.  

 

 

아웃도어 전시장에 늘어놓은 바윗돌은 둥근 것, 뾰족한 것, 길쭉한 것, 납작한 것 모양이 가지각색이었다. 제각기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생김새로 보아 아마도 어느 강변에서 실어왔을 것이다. 수만 년 비바람과 강물에 씻겨가며 만들어진 바위돌들이 눈썰미 좋은 사람의 눈에 띄어 트럭에 실려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이리라.

눈길을 끈 조각작품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이것은 문정희 시인이 "치마"라는 시에서 말했던 것처럼 수수께끼를 풀어야 만 통과할 수 있는 문이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제목을 성스러운 '신전의 문'이라고 붙여야 할 것 같았다.

 

* 인정사정 없는 화마는 언제나 시꺼먼 흔적과 재를 남긴다.

 

몇 해 전 이곳까지 산불이 번져 건물 한 동과 소나무 숲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위 사진의 까맣게 탄 고목은 당시 산불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그 주변에 새로 조성한 소나무 숲과 스텐레스 금속과 밝은 재질의 대리석 조각작품들이 새로운 탄생과 부활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 돌담에 갇힌 나비의 꿈

 

그 다음 B관은 관장인 김명숙 조각가의 조형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앞서 보았던 다른 조각작품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각가의 개성적인 면모가 드러나 보였다.

대리석 조각작품 외에도 스텐레스 금속으로 만든 조각과 커다란 쇠구슬이 강한 콘트라스트와 하모니를 이루었다.

  

* 제주마 두 필이 풀밭이 아닌 자갈밭에서 노니는 것이 안쓰러워 보인다.
* 김명숙 관장의 활동을 소개하는 신문 잡지 기사 스크랩

 

테라코타(점토를 구워서 만든 조형물) 정원을 거쳐 길 건너편 아트 스페이스와 아트샵으로 갔다.

지금은 방학 중이지만 지역 주민과 학생들을 위한 테라코타 만들기, 색채를 통한 적성발견 또는 이미지 메이킹, 에코백 만들기 같은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한다.

바위 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소년의 간절한 마음이 보는 이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 앞에는 턱을 고이고 이야기를 나누는 남매의 모습도 보였다.

 

 

누가 지어 놓았나?
첨부터 이곳에 있었던 듯

Who created these artworks?
It seems there existed here
from the outset.

 

 

정기적으로 기획 전시를 하고 있는 아트 스페이스에는 천정에 네모난 창이 나 있고 그 아래에는 사각의 미니 연못이 있었다. 그 사이 공간에는 나뭇잎이랄까 겨울잠 자는 벌레의 고치 또는 새의 둥지 같은 조형물이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떤 공간을 대했을 때 조각가는 "그 곳에 있으면 좋을 무엇인가"(What is supposed to be here?)를 채우는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코스인 카페바우에도 밝은 오렌지 빛깔의 메뚜기 같은 조형물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성인 입장료 9000원에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값이 포함되어 있어서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오늘 감상한 조각작품에 관한 의견을 나누기에 딱 좋았다. 

이 일대는 물 좋은 온천도 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우리는 내친 김에 바다를 보기 위해 해변의 바위가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다는 아야진(我也津) 해변으로 이동했다.

산과 바다, 그곳에 천연 상태로 놓여 있는 바위야말로 하나님이 조각 작품이 아니겠는가! 

Diversely shaped rocks and stones at mountains and seashores must be the sculture of God from the beginning.

 

* 아야진에는 어시장 포구도 있기에 만선을 기원하며 福거북이가 뭍으로 올라오는 조형물이 있었다.

 

물론 강원도는 눈(雪)도 많고 바람(風)이 많은 고장이다. 겨울 스포츠로 각광을 받고 있는 스키장과 풍력발전기가 여기저기 많이 산재해 있다. 산악 지형이 많지만 옛날처럼 고개를 넘지 않고 평탄한 길로 다닐 수 있게 도로가 잘 닦여 있다.

눈이 올 때 자동차로 이동하다 보니 주변 경치는 볼 수 없어도 미끄러질 염려가 없는 터널 안이 훨씬 안전하다고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