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칠십에 부르는 꽃 피는 4월의 노래

Whitman Park 2022. 4. 11. 09:00

3월 하순부터 카톡 친구들이 여기저기 꽃이 만발해 있는 사진을 보내오기 시작했다.

진달래, 개나리, 벚꽃을 비롯한 수많은 봄꽃과 야생화의 사진들이었다.

코비드19로 집콕하는 친구들을 생각하며, 또 내년에도 이 꽃을 볼 수 있으리라 기약할 수 없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친구들의 배려와 아쉬움 가득한 마음[1]이 느껴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바뀐다고는 하지만 우리들 연령대는 일단 걸렸다 하면 치명률이 높은 위험군에 속하기 때문이다.

 

* 해인사 가는 길. 사진 제공: 송유창

 

꽃구경 하러 멀리 가서 인파와 교통체증에 시달릴 것을 감안하면 좋은 화질로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감상하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나 역시 국내외로 좋다는 곳을 많이 돌아다녀 보았다. 무엇보다도 봄철에 벚꽃과 목련화가 아름다운 캠퍼스에서 20년을 보냈기에 '지금 가서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오히려 처음 들어보는 주병권 (1962~  ) 시인의 시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2] - 주병권 [3]

Spring  by Chu Byeong-gwon

 

지난 시절은 돌아오지 않아도

지난 계절은 돌아오고

Tho’ the past can’t come again,
the previous season repeats itself.

시든 청춘은 다시 피지 않아도

시든 꽃은 다시 피고

Tho’ the stolen youth can’t come again,
the previous flowers revive this spring.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아도

빈 술잔은 채워지고

Tho’ a vacant seat can’t be occupied again,
an empty glass of wine is refilled now.

 

* 현충원에 활짝 핀 산당화. 사진 제공: 김상문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파트 단지를 비롯하여 우리 동네에도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1년 전의 예년보다 일찍 피었던 봄꽃 사진들과 비교해 보니 주병권 시인의 말처럼 (반려견 쁘띠의) 빈자리가 실감이 되어 마음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활짝 핀 봄꽃들 / 하얀 강아지는 / 어디로 갔나

Where spring flowers are blooming,
I have a question
Where's my puppy gone.

 

* 2021. 3. 30 꽃동산을 같이 산책하던 쁘띠의 모습

 

4월 들어 서울에서도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소 완화되어 여의도의 벚꽃길도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며칠 후 비바람이 치면 꽃비가 되어 떨어질 것이다.

일본의 료칸(良寛, 1758-1831) 선사는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지는 벚꽃이나 남아 있는 벚꽃이나 언젠가 모두 떨어지리라고 읊었다. 단 17음절의 짧은 시(하이쿠)를 가지고 벚꽃 사진을 카메라에 담기 바쁜 사람들의 삶을 은유적으로 예언한 것이다.

 

散る桜 / 残る桜も / 散る桜

흩날리는 벚꽃 / 남은 벚꽃도 / 곧 떨어질 벚꽃

Falling cherry blossoms,
Those remaining flower petals
also will fall.

 

* 2022. 4. 6 우리 동네에서 만개한 벚꽃
* 2022. 4. 10 서리풀 공원을 온통 울리게 한 딱따구리의 작업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흥얼거려졌다.

영어로 번역을 시도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베르테르의 편지란 젊어서 마음에 감동을 주었던 책이기도 하고 좋아했던 님이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을 의미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4]

나이 칠십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불고, 고향을 떠나 낯선 항구에서 배를 타는" 심정을 알게 된 셈이다. 그래, 나에게도 빛나는 꿈의 계절과 눈물 어린 무지개의 계절이 있었지 ······.

 

사월의 노래 - 박목월 작시, 김순애 작곡

Song of April  by Park Mok-wol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Under the shade of magnolia,
I’m reading the letter from Werther.
Then I blow a pipe
on a hill of cloud-like flowers.
Far far away from home,
I get on a boat at a port with no name
Incoming April lights up the lantern of life.
It’s the season of shining dreams,
also the season of a tearful rainbow.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바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Under the shade of magnolia,
I’m writing a long letter.
Then I blow a whistle
on a hill of blooming clover.
Far far away from home,
I look up stars under the mountain trees.
Incoming April lights up the lantern of life.
It’s the season of shining dreams,
also the season of a tearful rainbow.

 

마침 한 친구가 유튜버 '안녕 마음아(Healing 4 U)' 님의 아주 인상적인 동영상을 단톡방에 올렸다. 봄꽃이 피는 순간을 저속촬영 기법으로 찍은 것이었다.

꽃들도 제 철을 맞아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고된 시간을 준비하였는지 지켜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편으로는 나에게도 저런 '리즈 시절'이 언제였던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개나리, 벚꽃, 매화, 백합, 진달래, 튤립, 민들레, 모란꽃

 

 

며칠간 때 이른 초여름 날씨가 지속되었다.

그러자 꽃잔치에서 빠질 새라 라일락 꽃도 그윽한 향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나 역시 우리말과 영어로 하이쿠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꽃은 수수해도
저멀리 번지는 라이락 향기

Though flowers look modest,
lilac’s fragrance spreads further
over the fence.

 

Note

1] 자기가 좋아하는 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한 시로 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처럼 절절한 것도 없다. 그래서 이 시의 모란은 단순히 꽃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이라는 해석도 있다.

일본에서는 ‘학문의 신’이라 일컬어지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의 "비매(飛梅)"라는 시가 유명하다. 미치자네가 57세에 후쿠오카로 유배를 떠나며 교토 자기집에 있는 매화나무를 보며 읊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매화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주인인 미치자네를 따라 500킬로나 떨어진 후쿠오카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로 날아가 꽃을 피웠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 다자이후 텐만구의 비매(飛梅). 이곳을 참배하면 공부를 잘하게 된다는 속설 때문에 연중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飛梅 - 菅原道真

바람에 날리는 매화 -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東風(こち)ふかば にほひをこせよ

梅の花(うめのはな)

主(あるじ)なしとて 春なわすれそ

꽃바람 불거든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꽃이여 
주인이 없어도 봄을 잊지 말아다오.

 

2] 짧지만 폐부를 찌르는 시. 다시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시절의 대비, 다시 피지 않는 청춘의 비유도 훌륭하다. 내용도 좋지만 형식미도 갖추어 더 아름다운 시가 되었다. 두 행이 한 연을 이루는데, 모두 두운을 주었고 서로 상반되는 서술어를 붙였다, ‘지난’으로 시작한 1연, ‘시든’이 반복되는 2연, ‘빈’으로 시작한 3연. 빈자리를 빈 술잔이 메울 수 있을까,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어 더욱 커지는 당신의 빈자리. 봄꽃들을 보기가 괴롭다.

행의 끝에 ‘도’와 ‘고’가 엇갈려 반복되고 세 연이 모두 ‘고’로 끝난다. 보면 볼수록 그 완벽한 짜임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주병권 시인은 누구 못지않게 시를 사랑하고 언어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다.

최영미, “최영미의 어떤 시 – 봄”(65), 조선일보, 2022. 4. 11.

 

3] 최영미 시인이 소개한 주병권의 다른 시 역시 나의 심금을 울렸다.

영어로 옮겨보니 "이제 멀리 떠날 나이가 되어 오래 전의 추억을 정리하고 있구나"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영역할 때의 주어는 나를 포함한 노년의 우리들 'We'로 정했다.

 

사계의 삶 - 주병권

Life of Four Seasons  by Chu Byeong-gwon

 

노년은 겨울

삶도 죽음도 아닌 날들이 지나지

멀리 떠날 준비를 하며

기억들은 잊혀져가지

Old age must be a winter.
Days unlike life or death elapse.
Bein’ ready for a long voyage ahead,
We’re willing to throw away memories.
주병권의 시집 『떠나는 풍경』에서

 

4] 박목월의 "4월의 노래"는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하기 전에는 노래 가사처럼 스쳐가는 그저 낭만적인 시구(詩句)일 뿐이었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편지', '구름꽃 피는 언덕',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 같은 구절에 맞는 영어 표현을 곰곰 생각하다가 이것이야말로 '내 청춘의 4월'에 딱 맞는 시어(詩語)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20대는 고시에 연전연패한 후 첫사랑도 떠나 보내고, 한때는 해외 유학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암담했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취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