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미술관의 예술 작품으로 인정 받으려면

Whitman Park 2026. 6. 19. 10:00

며칠 전 DG23 Forum의 카톡방이 떠들썩해졌다.

성형외과 전문의인 이기룡 원장이 Minimalism Line Art 한 점을 올려놓고 "세 개의 선 (線) 으로도 멋진 누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면서 초년, 중년, 노년의 획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완성하고 싶었다고 말했다.[1]

이 원장은 평소에도 여성의 아름다움을 찾아주거나 되찾는 수술 뿐만 아니라 나이 들면서 겪는 안검하수 같은 불편을 해소하는 수술도 많이 한다고 했다. 본래 성형외과(plastic surgery)는 1차 대전 후 얼굴이 크게 훼손된 군인들의 안면재건수술(reconstructive surgery)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한 까닭에 그는 평생 동안 환자들의 수술 대상 부위에 수백 수천 가지의 선(線)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메스를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포럼방 회원들은 미니멀리즘 누드 드로잉에 더 많은 관심을 표했다.

한 친구는 비록 독창성은 인정할 수 있다 할지라도 이렇게 단순한 드로잉이 미술 작품으로 인정 받을 수 있으며, 또 미술시장에서 돈 주고 살 사람이 있겠느냐며 의문을 표했다.

다른 친구는 이와 같은 미니멀리즘 라인 아트가 앙리 마티스의 Blue Nude 연작을 통해 미술사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에곤 실레, 피카소 같은 화가도 간단한 소묘만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오늘날에는 이러한 경향의 미술 작품이 실내 인테리어에 널리 쓰임에 따라 판화 못지 않게 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2]

 

* Henri Matisse, Blue Nude II (캔버스에 종이를 오려붙이고 구아슈 페인트), 1952 (파리 퐁피두센터 현대미술관)
* Egon Schiele, Female Nude with Raised Forearms (종이에 흑색초크), 1910..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

 

그 다음의 화제는 이렇게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 과연 전시(exhibition) 및 소장(collection) 가치가 있는 미술 작품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로 발전했다.

이기룡 원장은 2016년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있었던 자그마한 소동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평생 아름다움(美, Beauty)을 추구해온 전문가 답게 장문의 에세이를 카톡방에 올렸다.

왕년에 한때 미술학도였던 필자로서는 우리끼리만 알고 있을 수 없다면서 에세이를 토대로 이 원장의 허락을 받아 멀티모달 팟캐스트(對談) 형식으로 만들어 블로그에 올리기로 했다.

 

다음은 문제가 된 마르셀 뒤상의 설치미술 "샘(Fountain)"과 2016년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서의 실험적 해프닝을 보도한 The Guardian 지의 보도사진이다. 아울러 이것을 논평한 대담을 들어보기로 한다.[3] 

 

 

 

진행자: 안녕하세요! 오늘은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視線)'에 대해 조금은 날카롭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평론가: 혹시 2016년에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에서 있었던 '안경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10대들이 장난으로 바닥에 둔 안경을 사람들이 작품으로 착각했던 일 말입니다.

 

진행자: 기억하죠! 그런데 당시 관람객들이 그 안경을 보며 나눈 대화가 정말 압권이었다고 해요. 단순히 "안경이네?"가 아니라, 아주 현란한 미학적 수사를 동원했다면서요?

 

평론가: 맞습니다. "프레임의 투명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시선이 갖는 파편화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거나, "안경이라는 일상적 오브제를 바닥에 배치함으로써 시각적 권위주의에 대한 실존적 저항을 표현했다"는 식이었죠.

 

진행자: , 듣고 보니 정말 그럴싸한데요? 하지만 실상은 그냥 평범한 안경이었잖아요. 왜 사람들은 그런 복잡한 의미를 억지로 부여한 걸까요?

 

평론가: 그게 바로  '의미의 과잉 투사'(overprojection of meaning)입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있으니 분명 심오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권위에 순응한 거죠. 예술 앞에서 무지해 보이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 압박이, 우리로 하여금 주체적인 직관 대신 제도가 만든 '미학적 수사'를 소비하게 만든 거예요.

 

진행자: 결국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를 통해 보여준 "예술은 정신적 선택이다"라는 혁명이, 오늘날에는 "무엇이든 미술관에 넣고 말만 잘 갖다 붙이면 예술이 된다"는 기묘한 부작용으로 변질된 셈이군요.

 

평론가: 그렇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작품과 온전히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길들여진 '문화적 사회화'의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내가 진짜 그렇게 느끼는가?"라는 주체적인 질문이 사라진 감상은 권위라는 껍데기에 압도당한 것일 뿐이죠.

 

진행자: 그렇다면 참된 예술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평론가: 개념있는 관객이라면 단호하게 말할 것입니다. 미술관의 벽, 그리고 그럴듯한 수사가 나열된 해설이라는 포장지를 걷어내고도 대상과 마주할 수 있는 '우리 안의 주체적인 시선'이 살아날 때 비로소 예술의 가치가 증명된다고요.

 

진행자: "이게 왜 예술이야?"라고 당당하게 묻는 것부터가 진짜 감상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네요.

 

평론가: 그렇지요. 실험적인 설치작품일지라도 적어도 다음과 같은 요건은 갖춰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첫째로, 작가의 고유한 시각과 해석이 담겨 있고, 둘째로는 미술사적으로 의미를 지녀야 하며, 셋째 이를 감상하는 사람들과 예술적 미적 정서의 교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Note

1] 필자는 이기룡 원장의 Original Work를 여기 전재하고 싶었으나 삼가기로 했다. 왜냐하면 수년 전 그와 비슷한 영화 포스터 사진을 올렸다가 Tistory 운영자의 엄격한 모니터링 단속에 걸려 1주일간 블로그 이용을 제한 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영화 〈유스〉(2015) 에서 스위스 휴양지 호텔 온천에 미스 유니버스가 올 누드로 입욕하는 장면으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뒷모습이 '청소년 유해물'(NSFW: Not Safe For Woman) 기준에 저촉된 탓이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두 남자 주인공이 호텔 스파에서 미스 유니버스의 누드를 보면서 "지상에 강림한 여신같다"며 감탄하는 장면이었다. 영화 자체가 '15세 이상 관람가'이고 해당 포스터가 인터넷 상에서 공공연하게 돌아다니기에 영화의 줄거리 해설에 꼭 필요한 사진이라고 소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결국 문제의 영화 스틸 사진을 블로그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다.  

 

2] 미니멀리즘 라인 아트 작품은 etsy.com 같은 플랫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3] 당초 팟캐스트 형식의 mp4 파일을 생성했으나, Tistory 블로그에는 동영상이나 mp4 파일을 올릴 수 없으므로 대신 그 대본을 전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