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임 투 킬(Time to Kill, 1996)

Whitman Park 2022. 2. 14. 20:50

영화 <타임 투 킬>은 존 그리샴의 처녀작인 동명의 법률소설 <살인을 할 때 (A Time to Kill)>을 영화한 것이다. 미국 사

회의 매우 민감한 흑백문제를 다룬 그의 원고를 처음에는 어느 출판사에서도 출판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그러나 <야망의 함정>, <펠리칸 브리프>, <의뢰인> 등 그의 소설이 연속 히트하면서 이 작품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고 소설과 영화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워너 브라더스사는 원작료로 60여억원을 지급했다). 특히 주인공 변호사역을 맡은 매튜 매코너히라는 신인배우는 이 영화를 계기로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의 줄거리

미시시피주 캔턴 카운티의 법원 청사에 재판을 받으러 오던 2명의 형사피의자가 기관총으로 살해당하고 이들을 호송하던 경관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두 젊은이가 성폭행후 다리 밑에 던져 거의 죽게 만든 흑인 소녀의 아버지 칼 리 헤일리(사뮤엘 잭슨)가 저지른 일이었다. 그는 열 살밖에 안된 자기딸을 짓밟은 짐승같은 두 놈이 얼마후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게 될 것을 참지 못하고 개인적인 복수를 감행한 것이었다.

칼 리는 이내 체포되어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된다. 전에 칼 리의 동생을 변호했던 인연으로 제이크 브리갠스 변호사(매튜 매코너히)가 단 1천불에 이 사건을 수임한다. 브리갠스 변호사는 최소한 5만불은 받아야 하지만 피고의 사정이 딱한 데다 자신도 사무실 전화요금을 못낼 정도로 쪼들리는 상황에서 거절할 계제가 아니다.

주지사의 야심을 갖고 있는 버클리 검사(영화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기막힌 변장술을 보여준 케빈 스파세트)는 칼 리를 중죄에 처함으로써 주민의 인기를 끌려고 생각한다. 브리갠스는 흑백분규 사건에서 '배심원을 잘 고르면 무죄, 그렇지 못하면 사형'이라고 생각하고 배심원 중에 흑인을 포함시킬 수 있는 이웃 카운티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신청한다. 브리갠스가 검사와 사사건건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 미시시피 로스쿨에 다니는 미모의 여대생(산드라 블록)이 결정적인 판례를 알려주어 그는 절차상의 몇 가지 승리를 거둔다.

브리갠스는 피고가 그의 딸이 난행당한 것에 충격을 받아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행동을 한 것이니 무죄라는 전략을 세운다. 그러나 노련한 판사는 절차진행을 엄격히 하고 전원 백인인 배심원들은 흑인 피고에 대해 온정을 베풀 기미가 없다. 칼 리에게 피살된 강간범의 형은 KKK단을 동원하여 브리갠스에게 협박을 가하고 그의 집에 불타는 십자가를 던진다. 반면 흑인단체(NAACP; 全美흑인지위향상협회)에서는 이 사건을 흑인인권 문제로 몰고갈 속셈으로 소속 변호사를 파견한다.

브리갠스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가족을 멀리 처가집으로 피신시킨 가운데 브리갠스의 집은 전소되고 KKK단과 흑인 군중이 충돌, 소요가 일어나자 주방위군이 진주하여 법원 주변을 에워싼다. 누가 보더라도 브리갠스는 사면초가 상태이다. 살인범의 변호사로서 재판에 이길 가능성도 희박하고 백인 주민들의 인심을 크게 잃어 소송의뢰인이 찾아올지도 의문이다. 이런 세상물정도 모르고 영웅(big star lawyer)이 되고자 하는 남편에 실망하고 아내도 떠나버린 터에 새 여자(산드라 불록)가 생겼으니 가정마저 제대로 유지될지 앞이 캄캄한 것이다.

법정에서는 검사와 변호사가 불꽃 튀기는 공방전을 벌인다. 버클리가 피고의 정신감정의가 전에 강간죄 유죄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그의 신뢰도를 깎아내리자, 브리갠스는 그를 돕는 여대생의 기지로 검찰측 정신감정의의 경력을 알아내 그가 정신병자 살인 사건에 편견을 갖고 있는 의사라고 맞받아친다. 정신감정의 요점은 피고가 사건 당시 선악을 판단하고 자기 행동의 결과를 인식할 수 있는 정신능력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냉혹한 의식상태로 두 사람을 살해한 것이라면 유죄를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정을 나서던 브리갠스가 저격을 당하고 로어크는 KKK단에 납치된다. 배심원들이 유죄평결에 관하여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는 동안 칼 리가 총상을 입힌 백인 경관에게 사과를 한 것, 자기 딸을 성폭행한 범인들이 불타는 지옥에나 갔으면 좋겠다고 진술한 것은 그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증거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법정에는 묘하게도 가족애를 으뜸으로 치는 南部의 정서가 넘쳐 흐른다. 칼리에게 총상을 입은 루디 형사 역시 증인석에서 칼 리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서 검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만일 그런 입장이었다면 범인들을 쏘아 죽였을 것이라고 외친다.

배심원들의 입장에서 무슨 말을 해야 칼 리를 석방시킬 수 있겠는지 골몰하던 브리갠스는 최종변론에서 뜻밖에도 배심원들에게 사과의 말을 한다. 자신이 "전과가 있는 의사에게 일부러 피고의 정신감정을 의뢰했겠느냐"며 그 의사는 검찰이 性폭행하였다고 주장한 여자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말한다. 법정에서 법률적 책략(legal maneuvering)이 만연하다 보니 진실이 가려지게 되었다면서 "법의 눈도 사람의 눈을 가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브리갠스가 칼 리의 딸이 어떻게 성폭행을 당하였는지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할 때 일부 배심원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처참하게 능욕당한 딸이 백인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변호사의 마지막 한 마디에 배심원들은 피고가 '무죄'라고 평결한다.

 

감상의 포인트

조엘 슈마허 감독이 호화배역을 동원하여 꼼꼼하게 만든 이 영화는 미국의 형사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브리갠스 변호사가 구사한 소송전략을 보자. 실체면에서는 피고가 정신착란 상태에서 범행을 한 것이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절차면에서는 그의 사부인 루션(도널드 서덜랜드)이 코치하는 대로 흑인 피고는 백인 일색인 배심원들에게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없다며 흑인이 많이 거주하는 다른 카운티에서 재판을 받겠다(change of venue)고 신청하고, 피고의 정신감정을 한 검찰측 증인이 편견을 갖고 있으므로 그의 감정은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몰고 간다.

이 영화에서 법정 공방이 치열했던 것은 피고가 의식분열 상태에서 살인을 한 것이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하는 이슈였다. 미국법상 피고에게 책임능력이 없다고 보아 석방하는 경우는 행위 당시 피고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정신이상(insanity)과 약물중독(intoxication), 형사미성년(infancy) 세 가지이다. 죄를 범하였다고 기소된 피고는 일단 정신이 멀쩡하다고 추정되므로 피고측 변호사가 정신이상을 주장해야 한다.

정신이상을 판별하는 기준은 주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미시시피주에서는 맥노튼 룰(M'Naghten Rule; 자막은 맥노튼法이라고 번역하였으나 법률이 아닌 판단 기준을 가리킨다)이 적용되고 있다. 즉 맥노튼 룰은 피고가 그의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몰랐거나 그의 행위의 본질·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질환 또는 결함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책임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주에 따라서는 다른 기준인 저항할 수 없는 충동 테스트(Irresistible Impulse Test;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그의 행위를 통제할 수 없거나 적법하게 행동할 수 없었는가), 더햄(Durham/New Hampshire Test; 정신질환이 없었더라면 범죄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되는가), ALI 테스트(미국 법률협회가 마련한 모범 형법안(Model Penal Code)에 의거 정신질환 또는 결함이 있는 피고가 그로 인해 범죄성을 인식하거나 또는 그의 행동을 법에 맞게 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없었는가) 등이 고려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미시시피주의 주민이나 법률이 매우 보수적이라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주인공 변호사가 자원봉사를 자청하고 때로는 도발적이기도 한 보스턴 출신의 여대생과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가정을 지키는 것은 오늘날에도 보수적인 남부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또 피고측 정신감정의가 검사에 의해 강간(statutory rape) 전과자라고 망신 당한 것도 1960년 당시의 미시시피법에 의하면 18세 미만의 여자와 여관에 투숙한 것만으로도 자동적으로 강간죄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남부주에서는 지금도 自然에 반하는 성행위자를 형사처벌하는 19세기 형법조문을 그대로 두고 있다. 마지막에 브리갠스가 무죄 평결을 받아낸 것 역시 가정과 자녀를 소중히 여기는 배심원들의 남부정신에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흑인에 대한 호칭이 흑인의 인권향상에 따라 니그로(Nigger)에서 흑인(Black),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 American)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선례구속의 원칙(doctrine of stare decisis)의 지배를 받는 미국 법정에서 변호사의 판례조사(research)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고 있다. 실제로 많은 로스쿨 학생들은 도서관의 판례집이나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충분히 조사할 시간이 없는 변호사들을 위해 재판부가 수긍할 만한 선결례를 리서치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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