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망의 함정(The Firm, 1993)

Whitman Park 2022. 2. 14. 20:00

최근 들어 법률가가 주인공이거나 법정을 무대로 하는 미국의 법률영화가 우리나라에 잇달아 소개되고 있다. <타임 투 킬>이 1996년말부터 개봉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비디오 가게에서도 <펠리칸 브리프>, <쇼생크 탈출>, <프라이멀 피어> 등이 여전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미국의 법정영화가 우리나라의 실제 재판하고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관객들에게 상당한 재미를 안겨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약간의 기초지식만 있다면 그 재미는 배(倍)로 늘어날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법률소설, 법정영화가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를 잡았다. 그럼에도 1990년대 들어 법률영화가 줄을 잇게 된 것은 '죤 그리샴'이라는 변호사 덕분이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시시피주 고향에서 개업을 한 그리샴은 법정에 출입하면서 기막힌 사건을 목격하고 이것을 소설로 꾸며볼 생각을 했다. 틈틈이 원고를 써나가던 중 그의 부인이 너무 재미있다고 출판할 것을 권유하여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열다섯 군데에서 거절당한 끝에 가까스로 출판은 되었으나 역시 반응은 신통찮았다. 흑백 문제를 다룬 그리샴이 가장 아끼는 처녀작 <타임 투 킬>은 그의 두 번째 작품 <법률회사(The Firm)>가 소설과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한 다음에야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더 펌>과 <펠리칸 브리프>의 성공에 힘입어 그리샴은 이제 변호사 일은 그만두고 자가용 비행기까지 둔 전업 소설가로 변신하였다. 그가 후속타로 발표한 소설 <체임버>, <레인 메이커>는 베스트셀러 예약출판에 이어 영화화가 예정되어 있다.

 

영화의 줄거리

우수한 성적으로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는 미치 맥디어(톰 크루즈 분)는 테네시주 멤피스에 소재한 한 로펌으로부터 최고의 연봉에 고급 승용차와 호화 저택까지 제공받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채용된다. 미치는 아내 애비와 함께 회사가 있는 멤피스로 이사를 가면서 행복에 겨워한다. 불우한 과거를 가진 그로서는 변호사로서의 화려한 출발이 자신의 노력에 대한 당연한 보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미치는 곧 그 법률회사가 마피아 계열의 로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하조직의 탈법행위를 합법적인 것으로 위장하고 역외금융 센터인 케이만을 무대로 돈 세탁(money laundering)을 해주는 법률회사였던 것이다. 이 비밀을 알게 된 변호사들이 차례로 변고를 당하자 미치는 형의 친구인 사립탐정(private detective)에게 뒷조사를 의뢰한다. 출장을 간 케이만 섬의 해변에서 낯선 여자와 충동적으로 정사를 가졌던 주인공은 그 장면이 법률회사 경비반에 사진으로 찍혀 협조하지 않으면 부인에게 알리겠다는 협박을 당한다.

한편 법률회사의 불법행위를 눈치채고 수사에 착수한 FBI 요원은 미치를 찾아와 수사당국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 옥에 갇혀 있는 형을 가진 미치는 형을 석방해주면 FBI에 내부정보를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런데 시드니 폴락 감독은 원작의 마지막 장면을 고쳐 어느 날 한 남자에게 갑자기 밀어닥친 위기를 헤쳐나가는 심리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이 때문에 이 영화에 붙여진 우리말 제목 '야망의 함정'(함정이란 의미의 'pitfall'은 미국 변호사들이 가장 많이 쓰는 용어의 하나임)이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보다 적절한 것으로 여겨진다.

미치는 마피아 두목을 찾아가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우편물에 의한 사기(mail fraud)에 국한하여 FBI에 고발하는 조건으로 사건을 마무리짓겠다고 제안한다. 마피아 두목도 조직이 위해를 받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미치는 자신의 외도를 용서해 준 아내와 함께 멤피스를 떠난다.

이 대목은 주인공이 플로리다를 무대로 법률회사의 마피아 일당과 FBI로부터 쫒기면서 법률회사의 위법 사실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FBI에 넘기고 나름대로 정의를 실현한 다음 케이만 군도의 한 섬으로 잠적하는 원작과는 사뭇 다른 결말이다. 이 때문에 그리샴의 원작을 번역 소개한 우리나라의 소설 제목은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시공사)이다.

 

* 파트너 변호사가 여러 페이퍼컴퍼니의 사원총회가 열리는 케이만에 신참을 데리고 가서 일탈을 맛보게 한다.

감상의 포인트

우리에게 <아웃 오브 아프리카>, <하바나>로 더 유명한 시드니 폴락 감독이 직접 제작을 맡은 1993년도 영화에서 그리샴의 원작을 대폭 변형한 것은 그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영화 속에서 톰 크루즈가 변호사로 남아 있기를 바랬던 것 같다. 변호사는 자기가 대리하는 의뢰인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야 할 '비밀유지의 의무(ethical duty of confidentiality)'가 있는데, 톰 크루즈는 이것을 고수한다. 이점은 FBI로서도 어떻게 강요할 수 없는 법적으로 보장된 변호사의 특권이기도 하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이 법률회사의 탈법행위를 고발한 것은 이러한 변호사로서의 윤리 의무를 위반한 만큼 더 이상 변호사로서 활동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는 마피아로부터 거금을 챙긴 다음 천 개도 넘는 케이만 군도의 어느 한 섬으로 잠적해 버린다.

그리샴의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법조계를 떠나는 것도 법조인들을 곱게 보지 않는 독자들의 공감을 사는 것 같다. 주인공의 선배 변호사역을 맡은 진 해크먼이 '빌링(billing)'이라 하여 고객들에게 변호사 비용을 많이 받아내는 요령을 가르치는 대목은 관객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마피아와 연계되어 있는 법률회사의 변호사들이 회사의 정체를 알고도 저항하지 않는 것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그들이 저항을 못하는 것은 보복이 두려워서이기도 하지만 부유한 생활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리샴의 법률소설이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필요로 하면서도 미워하는(love to hate) 변호사의 내부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고 그의 다른 작품 <펠리칸 브리프>, <의뢰인> 등에서 보듯이 FBI나 권력기관을 무능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는 드라이한 단문이 박진감과 서스펜스를 제공하여 그의 소설책을 잡으면 손에서 뗄 수 없게 만든다.

영화에서도 잘 그려져 있지만 변호사는 유능한 보조원이 있어야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주인공의 부탁을 받고 마피아의 뒤를 캐다가 무참히 살해당한 사립탐정의 비서가 주인공의 보조원이 되어 법률회사의 비밀자료를 수집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이 역을 맡은 홀리 헌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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