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화재에서 구한 노트르담 성당의 보물

Whitman Park 2026. 2. 5. 10:00

가족신문 제7호(2025년)를 만들면서 작년 4월 아내가 파리 출장 중에 찍은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2019년 화재로 파손된 대성당(Cathedral)을 복원하면서 중세의 양식을 최대한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현대적 스타일을 가미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들었기에 관심이 갔다. 논란의 핵심은 12~13세기 고딕 양식 성당에 도입되면서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우리나라의 종교 건물 특히 천주교 성당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연광이 들어오면서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색유리창 바로 그것이다.

 

* 센 강변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성당의 복원공사 현장

 

프랑스 정부는 문화계의 반대가 있었지만 파리 교구에서 제안한 대로 예수 부활 50일째 ‘오순절 성령 강림’을 주제로 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2026년 말까지 성당의 남쪽 회랑에 설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아내가 노트르담 사원을 찾아갔을 때는 재개관한지 넉 달이 지났음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그 앞에 운집해 있었고 안에서는 마침 주일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여러 사진 중에서도 스테인드글라스 아래의 황금빛 원판 장식에 눈길이 갔다.

파리 출장 중에 성당을 방문한 것이라서 가이드 해설도 없었다기에 구글 렌즈로 검색해보았다.

이 원형구조물은 제단 뒤쪽 스테인드글라스 창 아래 있으며 중앙의 벽감(niche)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썼던 가시관을 보관한 성유물함을 모셔놓았다고 했다. 

 

 

황금빛 원반은 건축가 실뱅 뒤뷔송(Sylvain Dubuisson)이 설계한 구조물로, 약 400개의 수제 유리 블록으로 장식된 금색 디스크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빛을 반사하고 증폭시켜 빛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예수의 가시관 유물[1]은 평소에는 디스크 중앙의 깊고 푸른색 벽감(niche) 속에 보관되며, 특별한 날에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 가시면류관은 2019년 노트르담 대화재 당시 사제와 소방관들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구출되었고, 복원 기간 동안 루브르 박물관에 보관되었다가 2024년 12월 성당 재개관과 함께 새로운 성유물함에 안치되었다.[2]

 

성가대석 칸막이 벽에는 뜻깊은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디베랴(갈릴리) 호숫가에서 사도들 앞에 나타나신 장면(요한복음 21:1-14)이었다.[3]

2019년 4월 15일 대성당의 보수공사 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해 전면 석조 구조물 등 일부만 남겨놓고 첨탑과 목재 지붕 전체가 소실되었다. 그런데 5년 반 만에 전보다 훨씬 밝고 화사하게 재개관을 하게 되었으니 마치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눈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노트르담 성당은 앙시앙 레짐 귀족 출신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기에 프랑스 대혁명 기간 중 크게 수난을 겪었다. 1804년 나폴레옹이 이 성당에서 황제 대관식을 거행하면서 다시 유명해졌으나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황폐화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태를 반전시킨 것은 문학작품의 힘이었다. 철거위기에 놓인 대성당을 안타깝게 여긴 빅토르 위고가 이 성당을 무대로 쓴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1831)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대성당도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하여 노트르담 성당은 1845년부터 프랑스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복원 공사에 들어갔다.

 

노트르담 성당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도 또 다른 예술작품, 뮤지컬 〈파리의 노트르담〉이었다. 그 도입부에 나오는 "대성당의 시대"는 노트르담 성당의 위상을 웅변으로 말해주었다.

그리고 음악 애호가들은 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을 제일로 친다. 8천 개에 달하는 파이프가 아름답게 설치되어 있을 뿐더러 음색, 음향이 뛰어나고 프랑스의 기라성 같은 오르간 연주자들이 이곳을 거쳐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더욱이 2019년의 화재 피해를 면할 수 있었던 것도 기적같은 일이었다.   

 

* 노트르담 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출처: 나무위키

Note

1] 본래 이 가시관은 로마 병사들이 예수를 보고 '유대의 왕'이라면 면류관을 써야지 하며 머리에 씌운 것이었다. 4세기 말부터 예루살렘에서 성물로 숭배되어오던 것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가 가시관을 발견한 뒤,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져 황실 보물로 보관되어 왔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이 재정난에 빠지자 황제 발두인 2세가 성물을 담보로 사용했고, 1239년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프랑스 왕 루이 9세(성 루이)가 이를 구입하여 파리로 가져왔다.  루이 9세는 가시관을 보관하기 위해 특별히 왕실 소유의 성유물 성당인 생트 샤펠(Sainte-Chapelle)을 건립하기도 했다. 왕정이 끝난 후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져 2019년 화재가 날 때까지 보존되어 왔다.   

 

2]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유물(Holy Relics)로는 예수와 제자들이 최후의 만찬 때 포도주를 마실 때 사용한 잔(Holy Grail), 로마 군병들이 예수를 조롱하기 위해 씌운 가시면류관(Crown of Thorns),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사망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로마 병사 롱기누스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Spear of Longinus), 예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 수의(Shroud of Turin) 등이 있다. 각기 수많은 전설과 설화의 주제가 되었으며, 이것을 다룬 소설과 영화도 다수 등장했다.

 

3] 조각상 아래를 보면 라틴어 명문 "Christus apparel apostolis et discipulis in Gallia"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사도들에게 나타나다)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