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늑대의 후예들(Brotherhood of the Wolf, 2001)

Whitman Park 2022. 2. 17. 08:50

2001년 우리나라 영화시장에서는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 등의 국산영화가 할리우드 대작을 물리치고 흥행에 성공하였다. 스크린 쿼터를 폐지하면 우리 영화산업은 고사하고 말 것이라는 몇 년 전의 우려 섞인 상황하고는 전혀 딴판이다.

프랑스에서도 2001년에 개봉 첫 주에 2백만명이 줄을 지어 표를 사고 총 7백만명의 관객이 관람하였던 영화 <늑대의 후예들>(Le Pacte des Loups; 감독 크리스토프 강스)이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의 현상과 여러 모로 비교할 만하다. 액션이 스크린을 압도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프랑스 영화는 시대와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사상가들의 이야기인 반면 우리나라 영화들은 한결같이 사회에 기생하는 주먹들의 이야기인 점이 대조적이다.

 

영화의 줄거리

이 영화는 프랑스에서 1764년부터 3년 동안 민심을 흉흉하게 만들었던 <제보당의 야수>(La Bete du Gevaudan)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늑대들의 계약>(피에르 플로 지음, 임 헌 번역, 들녘 펴냄)이라는 소설에서도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25년 전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의 제보당에서 발생한 이름 모를 야수의 주민 습격 사건이다. 시대적으로는 사회 전반에 앙시앙 레짐의 피로현상이 누적되어 민심이 이반되고 사소한 소문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때였다. 첩첩산중인 제보당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수가 100여명의 주민을 죽고 다치게 만든다. 이 사건은 '야수가 왕을 벌하러 온 것'이라는 식으로 전국에 소문이 퍼지고, 급기야 루이 15세는 왕실의 박제담당관인 기사 프롱삭(사무엘 르 비엥)을 현지에 파견한다. 당시 유럽 귀족들은 사냥한 짐승을 박제해 전시하는 취미가 있었으므로 왕실에서도 박제담당관은 중요한 직책이었다(박제동물은 지금도 곳곳의 자연사박물관에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필자가 최근에 방문하였던 프라하 국립박물관은 온통 육해공 동물들의 박제로 꾸며져 있었다). 프롱삭은 캐나다에서 종군할 때 그의 생명을 구해주어 의형제를 맺은 인디언 마니(마크 다카스코스)를 대동한다.

제보당 지역의 영주인 다프셰 후작은 군대를 동원해 야수 포획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주민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프롱삭은 현지 귀족사회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키며 조사에 착수한다. 사람도 동물과 영적으로 교류할 수 있다(totemism)고 믿는 모히칸족의 전사 마니는 야생동물의 생태에 정통한 만큼 그의 훌륭한 조력자이다. 파리에서 온 프롱삭은 모랑지아스 백작 영양인 마리안느(에밀리 드켄)에게 구애를 하고 그의 오빠인 장-프랑스와(뱅상 카셀)는 자유사상의 언변을 늘어놓는 프롱삭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몇 달이 지나도록 수확이 없자 문제의 야수를 잡기 위해 6000프랑의 거금을 상금으로 내건 대대적인 사냥 대회가 열리고, 프롱삭과 현지 귀족들, 군대, 늑대 사냥꾼, 집시들이 모두 참가한다. 집시들은 단순노동을 제공하거나 매춘을 하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결과 송아지만한 늑대를 포함한 늑대 무리가 소탕되고 그 우두머리는 훌륭하게 박제가 되어 베르사이유 궁으로 보내진다. 그럼에도 야수의 피해가 계속되는 것에 의심을 품은 프롱삭은 단독으로 사건을 조사하고 여기에는 현지 귀족들의 음모가 도사려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토착 봉건귀족과 가톨릭 세력이 당시 지식층을 중심으로 계몽사상과 진보적인 개신교가 유행하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비밀결사단체인 '늑대들의 계약'(Le Pacte des Loups)을 결성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민심을 뒤흔들고,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맹수를 훈련시켜 주민들을 공격하게 만든 것이다.

엄청나게 흉포해진 맹수와 대결하다가 마니는 죽고, 프롱삭은 그의 영혼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화장을 해준다. 비밀결사를 이끌고 있는 장-프랑스와는 죽이고 싶도록 여동생에게 집착하다가 연적관계에 놓인 프롱삭과 생사를 걸고 칼싸움을 벌인다. 비밀 음모를 꾸미기 위해 외팔이로 가장하였던 장은 마침내 프롱삭의 칼에 쓰러지고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프롱삭은 국왕의 윤허를 얻어 죽음 직전에 살아난 마리안느와 함께 배를 타고 아프리카의 세네갈로 떠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흥행의 요소를 골고루 배합하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대혁명 전야에 호화의상을 입은 귀족들이 등장하는 시대극에다 괴수가 등장하는 호러와 스릴러, 동양식 무술 액션과 젊은 남녀의 로맨스까지 버무려 놓았다. 타이틀 백은 대자연에도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감돌고 있음을 보여주고, 영화가 시작되는 장면에서는 혁명 전야의 긴박감을 느끼게 해준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눈만 빼놓고 전신을 검은 비옷으로 감싼 왕실기사 프롱삭과 그의 인디언 형제는 집시 부녀를 괴롭히는 시골 건달들과 한 판 싸움을 벌이는데 쏟아지는 빗속에서 중국 무협영화에나 나옴직한 액션을 화려하게 펼쳐 보인다. 이때 상대방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상대가 될 수 없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대혁명의 폭풍 전야에 앙시앙 레짐의 봉건귀족사회가 어떻게 해체되어 갔는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제보당 전설은 근대시민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구 세력의 욕심을 '야수'로 상징하고 있다. 야수를 출몰시켰을 때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이상으로 무슨 소득이 있을까 싶지만, 공포심이 만연될 경우 사회불안으로 이어지고 반대파를 억압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하는 등 통치기술(우리나라의 북풍/北風, 세풍/稅風, 총풍/銃風 등)을 발휘할 수 있는 까닭이다.

 

* 이 영화에서 빠질 수 없는 색주가에 등장한 모니카 벨루치

이러한 사정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소문에 떠도는 야수를 키우고 부리는 사람은 과거 한창 때에 연연하는 집권세력이거나,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자유언론일 수 있으며, 변혁을 희구하는 일반민중이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시기심에 불탄 나머지 동생을 죽였던 <카인의 후예>(황순원 소설)인 우리 모두가 '늑대의 후예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금-권-언이 유착된 각종 게이트(비리 사건)가 속출하는 것도 풀어놓은 야수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좌충우돌 물어뜯고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첫 대목에 나오는 모노로그처럼 "세상은 변해야 하지만 자칫 여기에만 매달리면 자신의 심장을 갉아먹고 야수로 돌변"하게 된다. 혁명이 과격해지면 이념이 아닌 광기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잇달은 게이트 사건도 처음에는 현 정권이나 특정 그룹에 흠집을 내려고 시작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광분하는 야수에 물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형국이 되었다. 이를테면 자기 아내를 죽이고 납북기도 사건으로 위장하려 했던 윤 모라는 인격파탄자를 비호한 배후세력을 공격하려다 보니 권부(權府)에 앉아 있는 어느 누구도 그의 돈을 받아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사건이 확대되어 버렸다. 그 결과 지문인식 기술 같은 첨단 생체인식(biometrics) 기술을 활용하는 벤처사업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인상을 주고 이제 겨우 옥석이 가려지고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한 벤처 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음모와 흉계를 꾸민 자들은 결국 자기가 만들어놓은 덫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 영화에서 놀라운 것은 지금으로부터 2백년도 넘은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신대륙과 아프리카가 일상적인 화제로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유럽의 지도자, 선각자들은 식민지 개척과 영토확장에 앞장서고 있었다. 과연 우리는 가상세계로까지 지경을 넓혀야 하는 국제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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