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2001)

Whitman Park 2022. 2. 17. 09:50

2002년 말의 대통령선거는 워낙 많은 변수가 가로놓여 있는 탓인지 선거를 두 달 앞둔 현재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아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고 한다. 뒤늦게 대선 출마선언을 한 모 후보는 이제서야 선거를 치를 전국 규모의 정당을 가까스로 조직한 상태이다. 이럴 때 조직의 귀재가 선거참모로 합류하여 유능한 인재를 끌어모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면 그 후보자는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조직관리론에서는 어느 조직이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면 소그룹의 팀을 구성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팀제에서는 팀장의 리더십 아래 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칸느 영화제와 아카데미 영화제의 대상 수상 경력을 가진 재주 많은 감독이다. 그가 감독한 영화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은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았다. 우선 1960년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 스타를 여러 명 동원하여 그것만으로도 흥행이 되었다는 점과, 금고털이에 관한 한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구성된 '드림팀'을 선보인 점이었다. 요즘은 '어벤져스(Avengers)'란 호칭이 더 친숙해졌지만~

 

영화의 줄거리

여기 어느 프로 범죄자가 4년여의 옥고를 치른 후 출옥하였다고 하자. 그는 감옥 안에서 억울하게(?) 잃어버린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뭔가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 이때 그가 시간과 함께 잃어버린 것을 돈이라 생각한다면 돈을, 사랑이라 생각한다면 사랑을 단시일 내에 얻고자 할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서 절제를 하지 못하면 무리를 범하고 다시 전과를 추가하는 일도 흔하다.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은 가석방으로 출옥한 후 아틀랜틱 시티로 간다. 감옥에 있을 때 부인으로부터 이혼 청구를 당한 그는 아내의 사랑도 되찾고 싶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일확천금을 하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 그는 아틀랜틱 시티의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하는 옛날의 부하를 만나 계획을 다듬는다. 성공가능성을 예견한 대니는 이 계획을 믿음직한 후배 러스티 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상의한다. 러스티는 카지노에서 도박 초보자들에게 돈 따는 필승전술을 개인지도 한다고 하지만 명성에 견줄만한 소득이 없는 실정이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범행대상을 라스베가스 초호화 카지노 호텔의 지하금고로 정하고 이 작업에 필요한 전문가들을 선발한다. 벨라지오, 미라지, MGM 그랜드 세 곳의 카지노를 소유한 테리 베네딕트(엔디 가르시아)가 공격 타깃이다. 자금을 대줄 사람은 테리에게 라스베가스 카지노의 대부 자리를 빼앗긴 루벤 티쉬코프(엘리엇 굴드)이고, 테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역할은 이미 은퇴하였지만 말솜씨가 탁월한 왕년의 사기꾼 사울 블룸(칼 라이너)에게 맡기기로 한다. 여기에 치밀한 준비 부족으로 결정적 순간에 일을 그르치고 마는 폭발물 전문가 배셔 타르(돈 치들), 1인 10역을 거뜬히 소화하는 형제 사기꾼, FBI에서 구박만 받고 사는 외곬수 전자기기 전문가, 고난도의 연기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중국인 곡예사를 합류시키고, 마지막으로 지성적인 소매치기 라이너스 캘드웰(멧 데이먼)을 설득하여 라스 베가스행 티켓을 받아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라스 베가스로 몰려든 각 방면의 전문가 열한 명은 루벤의 집에 모여 대니로부터 작업계획을 듣는다. 대니는 위험이 크지만 배당 수익도 그에 비례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범행대상 카지노의 구조, 설비, 경비상황, 암호운영체계 등을 샅샅이 조사, 연구할 것을 지시한다.

그 다음날부터 카지노 호텔의 지하에 설치되어 있는 금고를 창고 안에 똑 같이 만들어 놓고 모의 연습을 실시한다. 마치 핵탄두 보관창고처럼 삼엄한 경비를 서고 곳곳의 출입문 패스워드가 하루에도 두 번씩 바뀌는 지하금고를 과연 어떻게 털 수 있을까.

D-데이는 MGM 그랜드에서 헤비급 권투시합이 열리는 날로 정한다. 왜냐하면 이날에는 스포츠 도박에 참여한 고객의 인출요구에 대비하여 평소보다 2배인 1억5천만 달러의 현금이 지하금고 속에 보관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테리 베네딕트가 사귀는 연인이 박물관의 큐레이터인 테스(줄리아 로버츠)라는 미모의 여성이고 대니 오션의 전부인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테스는 전남편인 대니가 4년 만에 라스 베가스에 나타나자 그가 뭔가 일을 꾸미고 있음을 직감하고 말리려 든다. 테리는 그를 배신한 사람에 대해서는 고통을 주고 끈질기게 복수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계획을 착착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심각한 장애가 등장한다. 이 문제는 베셔 타르가 묘안을 내 라스 베가스 일원에 정전을 일으킴으로써 해결하기로 하고 캘리포니아 고등과학연구소의 실험장비를 탈취한다. 이 과정에서 라이너스가 자칫 실수를 할 뻔하지만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된다.

헤비급 권투시합이 열리는 D-데이 날 평소와는 달리 이상한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3개 호텔의 대소사를 직접 챙기는 테리 베네딕트 사장이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다. 정체불명의 갑부인 노신사가 지하금고를 빌리겠다고 하더니 갑자기 심장발작으로 쓰러지질 않나, 카지노의 딜러에게 전과가 드러나 네바다 도박위원회(NGC) 조사원이 사장 입회 하에 종업원면담을 하겠다고 하질 않나, 테스의 전남편이 길을 가로막고 집적거리질 않나 신경 쓰이는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급기야 저녁에 테스와 함께 권투시합을 관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전이 되고 지하금고에 괴한들이 침입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911 경찰에 신고를 하자 곧 이어 기동타격대(SWAT)가 출동하는데 범인들은 오리무중이다. 행낭 속의 현금을 챙겨 공항으로 도피한 범행 차량을 추적해보니 폭발물이 터지고 현금은 온데간데 없다. 범인들과 전화로 협상하면서 돈을 찾기 위해서라면 테스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데 이 상황은 유선방송으로 테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테스는 떠나가고 부하에게 손을 봐주라고 한 대니는 별 수상한 점이 없어 가석방 조건 위반으로 경찰에 인계한다.

그날의 사건들은 오션의 11인조가 미리 작성된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각자 연기를 한 결과였다. 폴 뉴만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스팅>이나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을 방불케 하는 속고 속이는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러나 케빈 스페이시의 <유주얼 서스펙트>와 같은 반전은 없다. 오직 라스 베가스의 화려한 야경과 톱 스타들이 옷차림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에서 카지노 호텔의 지하금고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보기 좋게 창이 이긴다. 창의 경우 구성원들을 차별없이 대우하고 상당한 자율을 허용하는 등 강점이 많다. 반면 방패에는 여러 가지 허점이 노출되어 있다.

첫째, 사장이 출입문의 패스워드가 변경되는 것까지 챙기고 사장의 지시가 있어야 지배인이 행동에 옮기는 체제이기 때문에 위기관리능력이 형편없다. 사장 한 사람의 주의를 흐트러뜨리자 일사분란해 보이던 호텔 경영 시스템이 마비되어 버린다.

둘째, 경비원들도 카지노 호텔의 환락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평소에 근무기강 점검이 형식에 흘렀음을 짐작케 한다.

셋째, 비상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예컨대 지하금고에 외부인이 침투하였음에도 내부적인 보안장치 외에는 경찰과의 비상연락망 구축이 전혀 안돼 있었던 것이다. 지배인이 사장 지시에 따라 휴대폰으로 911 신고를 하지만 그대로 오션의 일당에 가로채이고 만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재주꾼들이 여러 흥행요소를 버무려 만든 것임에도 2002년 대선을 목전에 둔 우리나라의 현실을 희화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국민의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대통령이 행정의 세세한 것까지 챙긴다는 말이 많았는데 대통령의 두 아들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대통령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국정의 누수 현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감사 기간 중의 온갖 폭로 사태는 "온나라가 새고 있다"는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낼 정도이다. 공무원들의 기강확립도 구호에만 그치는 것 같다. 다음 정권에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야당에 비밀정보를 유출하고 있다니 말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전과자가 일등 전문가"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도 '병풍'을 폭로하고 나선 K 씨의 경우 사기 등의 전과가 매우 화려하다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아무리 치밀하게 작성되었다 해도 엉성한 구석이 있다. 범죄수사의 ABC에 의하면 모의실험장소에 관한 단서만 포착해도 범인들의 일망타진은 시간문제인데 이에 관한 언급이 전무하다. 아무리 라스 베가스라 해도 그와 같이 엄중한 금고를 설치하는 공사란 흔치 않을 터인데 그렇다. 오션스 일레븐 멤버가 화려하기는 하지만 해피 엔딩은 당치 않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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