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바디(The Body, 2001)

Whitman Park 2022. 2. 17. 09:45

2002년 8월 초 아프가니스탄을 평정한 미국이 다음 공격목표로 이라크를 선정하고 우방국과의 정책조율에 나선 가운데 노구를 이끌고 중남미를 순방 중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멕시코에서 인디오 출신을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일간신문의 국제면을 장식한, 일견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두 기사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전적으로 조나스 맥코드 감독의 <더 바디(The Body)>라는 영화 탓이었다. 어지간한 할리우드 대작도 한국 영화에 맥을 못춘 2001년 흥행에 자신이 없는 영화 배급사가 개봉관에 올리는 대신 곧바로 비디오로 제작, 배포하는 바람에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지긴 하였지만, 현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라고 생각되었다.

 

영화의 줄거리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팔레스타인 및 아랍 인접국들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예루살렘 외곽의 한 건설현장에서 지하 묘실(고대 무덤)이 발견된다. 전문가로부터 고고학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검증을 받아야 공사를 할 수 있으므로 여성 고고학자인 샤론 골반 박사(올리비아 윌리엄스)가 현장 조사에 나선다. 그런데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유해에는 놀랍게도 십자가형을 당한 흔적이 있었다. 유해 주변에서는 로마총독 빌라도의 초상이 들어 있는 주화, 고대문자가 새겨져 있는 도기 파편, 기름 램프도 함께 발견된다.

당시 이 정도의 호화분묘를 쓸 수 있는 유대인으로서 십자가형을 받았던 인물이라면 예수밖에 없었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반체제 정치범이나 극빈자에게 행하여졌는데 그들은 이와 같은 묘실에 시신을 안치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한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서 평범한 죽음을 맞았다는 말인가. 유대교를 신봉하는 샤론 박사나 그녀가 자문을 구한 고고학을 전공한 라벨 신부나 기독교 교리의 근본을 뒤흔드는 '세기적인 발견'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벨 신부의 보고를 접한 바티칸 당국은 엘살바도르 내전에 참전한 적이 있는 매트 구티에레스 신부(안토니오 반데라스)를 특파한다. 페시 추기경(존 우드)은 구티에레스 신부가 쓴 신앙고백문을 읽고 선발한 것이라며 헛소문이 새나가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신신당부한다. 구티에레스 신부로서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미리 연락을 받고 공항에 마중 나온 샤론 박사는 구티에레스 신부를 그녀의 지프차에 태우고 거칠게 차를 몬다. 금방 전복사고라도 날 것 같은 드라이브였지만 신부는 묘하게도 전장 터에서의 긴장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호텔에서 라벨 신부를 만난 구티에레스 신부는 라벨 신부가 왜 회의에 빠져들게 되었는지 정황을 이해하게 된다. 묘실 깊이 안치되어 있는 유해("The Body") 자체를 분석해보아야 알겠지만, 그 주변에서 발견된 유물을 보면 예수 당대의 다른 사람, 그리스도 추종자라고 볼 수 있는 반대증거물(초기 기독교인들이 애용하던 세 개의 동심원, 십자가 표시, 물고기 표시 등)이 없다는 것이다. 구티에레스 신부는 "하나님이 답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지만 라벨 신부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하 묘실의 유해 발견 소식은 주변의 이해당사자들을 긴장시킨다. 묘실 바로 앞에 있는 골동품 상점의 팔레스타인인 주인은 팔레스타인 지하단체로부터 지하 묘실에 누가 출입하는지 감시하라는 반협박조 지시를 받는다. 이스라엘의 정보국에서는 기독교계와 빅딜을 할 수 있는 재료를 갖게 되었다며 무장군인으로 하여금 경비를 서게 한다. 정통파 유대교도들은 죽은 자의 안식을 훼방하지 말라며 묘실을 찾은 샤론 박사와 신부를 향해 돌을 던진다. 그들로서는 예수의 유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거북한 것이다.

가까스로 돌 세례를 피한 샤론 박사와 신부는 이스라엘 정보국 책임자와 함께 정통파 유대교도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그들이 묘실 입구에서 탈취해간 유물 상자의 반환을 요구한다. 탈무드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끝난 후 그들의 종교지도자로부터 유해는 한 치도 옮길 수 없다는 조건하에 유물상자를 돌려 받는다.

샤론 박사의 집에 가서 상처를 치료받으며 구티에레스 신부는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시인이던 남편이 레바논에 출정 나갔다가 전사한 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생계대책으로 고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공인된 과부' 샤론 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부는 자신이 엘살바도르 내전에서 수행했던 역할을 회고한다.

 

샤론 박사와 신부는 정체불명의 유해의 신원을 규명하기 위해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로 하고 이스라엘 박물관에 유물 중의 하나인 도기 파편의 연대분석을 의뢰한다. 신부는 도기의 이름을 마사다라고 붙인다. 마사다는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저항하여 최후의 1인까지 싸운 유대인들의 항전지로 박물관 벽에 붙어 있는 마사다 유적지 사진을 보고 즉흥적으로 명명한 것이었다.

지하 묘실의 유해는 급기야 폭발물 테러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이스라엘 정보국이 유해 반출을 기화로 바티칸을 비롯한 서방세계로부터 예루살렘 수도를 인정받으려 한다는 것을 탐지한 팔레스타인 지하단체에서 문제의 유해를 빼돌리려 한 것이다.

과연 이 유해가 예수의 것으로 밝혀진다면 기독교는 무너지고 말 것인가. 종교가 인간이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놓은 것이라면 기독교 역시 일부 사람은 떠날지라도 계속 살아남지 않겠는가. 구티에레스 신부는 예수에게서 부활을 빼면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절망한다. 샤론 박사가 신부를 보고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했다고 하자, 신부는 샤론 박사에게 자신은 과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고 싶다고 말한다.

며칠 후 박물관의 분석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점토 벽에서 추출된 씨앗의 탄소연대를 측정한다 해도 오차가 80년이니 별 신빙성이 없고, 도기 내면의 물질은 의식에 쓰인 기름 성분이니 그렇다 쳐도 도기를 발광곡선으로 분석해보니 서기 70년의 것으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확인 끝에 신부가 말한 마사다의 연대(마사다 함락은 AD73년)와 일치하는 것이므로 서기 32년의 도기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그 유해는 정녕 예수의 것이란 말인가.

사태는 급진전되어 이스라엘 당국의 음모를 저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단체는 통학버스를 타고 가던 샤론 박사의 아이들을 납치하여 그녀로 하여금 지하 묘실의 유해를 훔쳐내오도록 한다. 샤론 박사가 위험에 빠져 있음을 알게 된 신부는 이스라엘 군경과 함께 팔레스타인 단체의 아지트를 급습하고 유해가 든 가방을 들고 도망치는 지하단체의 리더와 몸싸움을 벌인다. 그 틈에 수류탄이 터지면서 유해 가방은 산산조각이 나고 신부도 중상을 입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를 조장한 바티칸 지도부에 대한 신부의 신뢰감도 큰 상처를 받는다. "내 방식대로 예수를 믿겠다"며 신부의 휘장을 내던지는 구티에레스를 보고 추기경은 침묵의 계율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요즘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 시각효과, 액션, 스피드, 선정성 등의 요소는 하나도 없고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몇 사람의 톱스타에 의존하여 "기독교인들이 부활한 것으로 믿는 예수의 유해(The Body)가 발견된다면 어찌 될까" 하는 매우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에서는 바티칸과 이스라엘 정보국, 정통 유대교도, 팔레스타인 단체의 반응을 그리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그것은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작전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우방국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 세력을 축출하는 데 성공하자, 여세를 몰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려 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의 테러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을 넘어서 중동 산유 지역에서의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미국은 일찍이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에 군사원조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 군이 화학무기를 쓰는 것조차 묵인한 적이 있다. 그러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결코 도의적인 명분 때문만은 아닌 것이 확실하다.

바티칸 역시 2차 세계대전 때 이태리를 점령한 히틀러 군대에 협조적인 자세를 취하였고, 독일 점령군은 로마 시내의 베드로 성당 주변 바티칸 영지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러한 전례로 보아 이스라엘 당국은 문제의 유해를 바티칸에 보내주면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는 일에 가톨릭 국가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팔레스타인은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방해책동을 나설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바티칸이 지금도 여전히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 상황에 맞게 변신을 거듭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로마 교황이 역사상 최초의 인디오 출신 성인을 선포한 것도 중남미에서의 교세 확장을 위해 인디오 대상의 전도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470년 전에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마리아가 후안 디에고 앞에 세 번씩이나 나타난 것은 오늘날 빈곤과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인디오들이 존중 받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러한 교황의 언급은 멕시코의 사회현실에 비추어보면 혁명적이라 할 수 있다. 갈색 피부의 마리아가 현현한 곳에 세워진 과달루페 성당 앞에 세워진 기념조각상의 마리아는 인디안 추장의 깃털처럼 후광이 뻗쳐 있고 그 앞에는 스페인 신부와 귀족, 백인 시민이 마리아를 향해 차례로 서 있으며 아랫도리만 가린 인디오는 뒤에서 머리를 숙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예수의 것으로 믿어지는 유해가 구티에레스 신부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수류탄의 폭발로 사라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는 화근을 없애려고 한 측에서는 박수를 쳤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이 전투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고 자신을 보낸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구티에레스 신부는 사제직을 내던지고 교황청을 떠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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