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큐(John Q, 2002)

Whitman Park 2022. 2. 17. 09:40

2002년 6월 서울 도심은 월드컵 대회에서 연승을 거둔 한국 축구선수들을 응원하는 길거리 응원단으로 넘실거렸다. 집에서 TV 중계방송이나 보고 앉았을 사람들을 길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든 것은 중심가 요로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전광판과 여럿이 모여 응원하면 선수들에게 그 파워(念力)가 전해질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 그리고 굿판과 같은 축제 분위기에 동참하려는 군중의식 때문이었다. 똑같이 붉은 티샤쓰를 입은 '붉은 악마들'(Red Devils)의 질서정연한 응원 모습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15년 전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던 '6월 민주화 항쟁'을 떠올렸다.

현행법상 보통 사람들이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장치는 투표를 통해 그들의 의사를 대변해줄 사람을 선출하는 일뿐이다. 같은 달에 실시된 6·13 지방선거에서 입후보자들은 월드컵에 매달려 있는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어다녔지만 투표율은 50%에도 못 미쳤다. 이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될지 확신할 수 없는 선거보다는 매스컴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다른 유력한 방법을 선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의료보험 제도의 부조리에 맞서 병원에서 인질극을 벌인 소시민의 행동을 그린 닉 카사베츠 감독의 영화 "존 큐"(John Q)가 좋은 예이다. 경찰에 포위된 병원 내부의 상황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병원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인질범을 열렬히 응원한다. 그렇다고 모순에 가득 찬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가 개혁될 수 있을까?

 

영화의 줄거리

철강공장에서 일하는 존 Q 아치볼드(덴젤 워싱턴)는 슈퍼마켓의 출납원으로 일하는 아내와 보디빌더가 꿈인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다. 공장에서 중기계를 15년 이상 다뤄온 숙련공이지만 직장에서는 자격과잉(overqualified)이라 하여 그를 계약직 사원으로 재채용한다.

어느 날 동네 리틀 야구단에서 뛰던 그의 아들이 운동장에서 쓰러져 급히 병원 응급실로 데려가는데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명이 내려진다. 의사는 존 큐 내외에게 아이가 심장 이상비대증이라서 당장 심장이식 수술을 받지 않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해준다. 존 큐는 병원과 의료보험회사를 백방으로 찾아다니며 아들에게 수술을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병원비는 최소한 25만달러나 들고 수술대기자 명단에 올리는 데도 7만5천달러를 예치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로서는 매달 꼬박꼬박 의료보험료를 내왔지만 의료보험회사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고작 2만달러에 불과하다.

존 큐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그의 직장 동료와 지역 주민들이 모금운동을 벌이고, 그의 가족도 세간살이를 팔아 입원비에 보태지만 목표액에 턱없이 모자란다. 사랑하는 아들을 병원에서 데려올 수밖에 없는 존 큐를 보고 그의 아내는 "무슨 수를 써봐요"(Do something!)라고 울부짖는다.

존 큐는 병원으로 담당의사인 터너 박사(제임스 우드)를 찾아가 항의한다. 심장 전문의는 퇴원 여부는 원무과에서 결정할 일이고 자신은 그와 무관하다고 발뺌한다. 이에 분개한 존 큐는 갖고 간 총을 빼어들고 의료진과 환자, 그 가족을 인질로 붙잡고 "내가 병원을 접수하였으니 앞으로는 무상으로 의료 서비스(free medicare)를 제공한다"고 선언한다. 그때 마침 구급차가 달려와 총상을 입은 환자를 내려놓고 가는데 존 큐는 그 와중에서도 인질로 붙잡혀 있는 의료진더러 응급환자를 돌보도록 지시한다.

그때 신고를 받은 경찰이 특공대(SWAP)와 함께 출동한다. 인질사건 전문 경감(로버트 듀발)이 워키토키로 현장책임자(인질범)와의 통화를 시도하자, 존 큐는 "어디 다친 사람은 없느냐"는 경감의 질문에 "여기 (응급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쳤다"(Everybody is hurt)고 말한다.

현장을 지휘하던 경찰서장은 범인과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경감의 건의를 묵살하고 특공대원을 보내 범인을 사살하도록 명령한다. 곧바로 병원 에어컨이 가동을 멈추고 환기구를 통해 경찰 특공대원이 내부로 침투하는데, 마침 존 큐의 부인이 비상전화를 통해 병원 측의 협조로 아들을 심장이식 수술대기자 명단에 올려놓았다는 소식을 전한다. 존 큐가 전화를 받는 사이에 경찰 저격수는 존 큐를 사살하는 데 실패하고 이러한 과정은 고스란히 병원의 폐쇄회로를 통해 외부 TV 방송에 생중계된다.

 

TV를 본 시민들이 병원에 몰려와 경찰에 항의하고 존 큐를 성원한다. 경찰은 인질을 석방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사살 당할 것(jail or death)이라 하고, 존 큐는 내 아들이 몹시 아프니 도와달라(sick and help)고 하소연한다. 시민들은 함성을 지르며 마치 인기 스포츠 게임을 응원하듯 한다. 그 때 마침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젊은 여자의 심장과 간, 폐 등의 장기를 무사히 적출할 수 있었던 의료당국에서는 혈액형이 B+로 같은 존 큐의 아들에게 심장을 이식하기로 결정한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존 큐는 인질들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다른 병동에 있던 그의 아들을 응급실로 데려오게 한다. 그는 놀랍게도 터너 박사를 보고 자기 심장을 떼어내 아들에게 주라고 명령한다. 혈액형, 심장조직 등 모든 조건이 맞아야(compatible) 심장이식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존 큐는 이미 정밀진단을 받아 본 결과 모두 일치한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일은 비윤리적이어서 의사면허를 박탈 당할 우려가 있음에도 그의 놀라운 부성애에 감동한 터너 박사는 심장이식 수술 준비를 시킨다.

존 큐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그의 인질들로부터 동의 서명을 받는다. 그제서야 권총을 내려놓고 탄창에 2발의 탄환을 장전한 후(그 때까지 존 큐는 빈총으로 위협을 했던 것이다) 응급실 수술대에 눕는다. 관자노리에 총구를 겨누지만 아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끊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때 병원 측으로부터 장기이식용 심장이 도착하였다는 연락을 받은 그의 아내가 응급실로 달려오고, 존 큐처럼 생긴 흑인이 총을 버리고 응급실 밖으로 걸어나온다. 경찰은 포위망을 풀고 시민들도 해산을 하는데 경감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술실 쪽으로 걸어간다. 심장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수술과정을 아내와 함께 지켜보던 존 큐는 순순히 경감의 수갑을 받는다.

3개월 후 존 큐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존 큐는 배심원단으로부터 살인기도(attempted murder)는 무죄, 무장을 한 범죄행위도 무죄이지만, 여러 사람을 인질로 붙잡은 행위는 감금죄에 해당한다는 평결(verdict)을 받는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 건강을 되찾고 "Good bye"가 아니라 "See you later"라고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해진다. 그는 아들도 살리고 자신도 큰벌을 받지 않고, 의료보험 제도개혁의 참피온이 된 것이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에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산재해 있다. 다시 말해서 어느 누구도 이 영화 속의 존 큐를 따라했다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교도소로 직행하게 될 것이다. 제 살을 새끼에게 먹이는 가시고기 같은 부성애를 그리고 있지만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우선 장기이식이란 피끓는 부정(父情)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등에 관한 법률]을 보아도 제2조 '기본이념'에서 장기 등의 적출 및 이식은 인도적 정신에 따라 행하여져야 한다(제1항)고 선언하고 있다. 동법은 장기 등을 이식받을 기회는 장기 등의 이식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며(제3항), 장기 등의 적출 및 이식은 윤리적으로 타당하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방법에 의하여 행하여져야 한다(제4항)고 규정하고 있어 영화 속에서 존 큐가 의도한 방법은 하나도 실현되기 어렵다. 존 큐는 권총으로 심장이식수술 예치금을 면제받고, 장기이식의 순번을 가로채려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기 심장을 아들에게 기증한다는 것도 비윤리적인 것이므로 그의 유언은 받아들여지기 곤란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때마침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 여자가 있어 건강한 심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현실에서는 몇 년씩 애타게 장기기증자를 기다리는 환자가 허다하다. 심장이식수술의 경우 병원에서는 환자의 심장상태 뿐만 아니라 몸 상태, 정신과 문제 등 세밀한 사전검사와 경제적 감당 여부를 판단한 뒤 평가회의를 거쳐 대상자로 등록하게 된다. 또한 수술 후에도 거부반응을 억제하는 면역억제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비용을 다른 보험가입자들에게 부담시킨다는 것도 정책적으로 고려할 사항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관객들을 오도할 수 있는 것은 목적이 숭고하다면 수단·방법은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다. 따라서 비록 자기 자식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범죄행각은 양형(量刑)에 참작은 될지언정 범죄의 성립 자체를 부인할 수 없다. 모방범죄가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인공이 살해의 고의 없이 장전이 안된 총으로 위협을 한 만큼 살인죄는 일종의 불능범(不能犯)으로서 무죄 평결을 받았지만, 감금죄에 관한 한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체적 경합범으로서 중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영화에서는 한 TV 리포터가 존 큐의 고뇌에 찬 모습과 다른 환자의 생명을 존중하는 모습을 생중계함으로써 시청자들의 감동을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TV의 공적 기능을 감안할 때 이렇게 센세이셔널한 방송보다는 자선단체와 제휴하는 방식으로 병고에 시달리는 불우이웃 돕기 프로를 편성하여 시청자들의 자비심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제도개혁이란 일시적인 군중의 열기만으로는 추진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영속적으로 지속하려면 선도 그룹을 앞세워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하는 것 이상가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흘러간 영화’(Old Movies) 전체 감상: 리스트는 이곳을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