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

Whitman Park 2022. 2. 19. 10:05

연전에 세계적인 미남미녀 스타 부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결혼 11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그 무렵 개봉된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은 영화 속에서도 부부간의 성적 트러블을 어렵게 풀어나가는 부부로 열연했기에 영화 속의 이야기(fiction)가 현실(reality)로 나타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는 컴퓨터를 통하여 다양한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체험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심지어 섹스까지도 가상현실 속에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다. 감정의 동요, 성병과 임신의 위험이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채팅을 못하게 막는 남편을 살해한 어느 주부처럼 허구와 환상, 가상현실을 혼동하는 사람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1999년 9월 베니스 영화제의 개막식 때 상영되었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은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만든 천재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헐리우드 슈퍼스타 부부를 불러다 1년 이상 공들여 만들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누드 연기와 섹스 신, 마약 장면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허구와 환상, 가상현실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하면 사회생활은 물론 가정생활도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컴퓨터와 인터넷 만능의 21세기 문화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줄거리

뉴욕 맨해튼에서 성공한 의사인 윌리엄 ("빌") 하포드 박사(톰 크루즈)는 주요 고객인 지글러(시드니 폴락)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받아 아이는 보모에게 맡기고 부부동반으로 밤 외출을 한다. 뉴욕의 소문난 갑부 지글러의 맨션에서 열린 파티는 화려할 뿐만 아니라 참석자들의 면면도 가양각색이다. 잘 아는 사람이 없는 빌 부부는 각기 다른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빌은 두 명의 늘씬한 모델로부터 노골적인 구애를 받고, 빌의 아내 앨리스(니콜 키드먼)는 헝가리인 플레이보이와 만나 아슬아슬한 대화를 하며 춤을 춘다. 하지만 빌 부부는 서로 상대방이 무엇을 하는지 곁눈질을 멈추지 않는다. 빌은 파티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던 의과대학 동창 닉(토드 필드)을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지글러의 호출을 받고 2층으로 간다. 별실에서 마약을 흡입한 콜걸과 섹스를 하던 지글러가 파트너가 거의 죽게 되었다며 그를 부른 것이다.

파티 석상에서도 의사 일을 한 빌이었지만 앨리스는 멋진 모델들과 어울리는 남편에게 은근한 질투심을 느낀 나머지 다음날 저녁 마리화나에 취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평소에 잘 생긴 남편에게 멋지고 돈 많은 여성환자들이 유혹을 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던 앨리스는 지난 여름 휴가 때 호텔에서 우연히 마주친 해군장교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와 하룻밤을 보낼 수만 있다면 남편과 딸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한다. 평소 아내가 정숙하다고 믿었던 빌로서는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저녁 환자의 부음을 듣고 그 집으로 달려간 빌에게 뜻밖에도 고인의 딸이 사랑을 고백하며 다가온다. 빌은 앨리스가 낯선 해군장교와 정사를 나누는 환상을 떨치기 위해 뉴욕의 밤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다가 거리의 여인에 이끌려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가 성관계를 갖지도 않고 돈만 주고 나온다. 마음이 울적해진 빌은 파티에서 만났던 의과대학 동창을 찾아 그리니치의 재즈 바로 간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밤에 열리는 섹스 밀교(密敎)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호기심이 잔뜩 동한 빌은 다운타운의 의상점에 가서 주인을 깨우고 웃돈을 줘가며 가면과 망토를 빌린다. 그리고 롱아일런드의 모처로 택시를 타고 간다. 그리고 암호(password)를 대고 밀교 집회의 현장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사제의 지정을 받은 가면 쓴 누드 여성들과 참석자들의 섹스 예배의식이 시작된 직후 그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 대신 처벌을 감수하겠다는 여자(그를 알아본 병원 고객) 덕분에 빌은 무사히 빠져 나온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는 모든 것이 뒤바뀌어 있다. 빌에게 구애를 한 여인하고는 전혀 전화연락도 되지 않고 빌이 돈을 준 창녀는 에이즈에 걸려 자취를 감춘 뒤이다. 그 대신 처벌을 받기로 한 여자는 병원 시체실에 누워 있다. 그가 잊어버린 줄 알았던 가면은 그의 침대 위에 곱게 모셔져 있다. 하는 수 없이 앨리스에게 자초지종을 고백한 빌은 크게 실망하는 앨리스와 함께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백화점으로 간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의 스토리는 본래 꿈 이야기가 줄거리가 없는 만큼 그리 중요하지 않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오래 전부터 영화로 만들고자 했던 아더 쉬니츨러(Arthur Schnitzler 1879-1931)의 "꿈 이야기"(Traumnovelle)는 1920년대의 비엔나가 무대이고 의사인 아내의 꿈 이야기에 질투심을 느낀 남편이 매일 밤 관능적인 모험에 나서다 결국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도 앨리스의 성적 환상에 충격을 받은 빌의 모험담이 중심을 이루지만 그것도 꿈속에서처럼 비현실적인 내용이다. 예컨대 가면을 빌리러 갔을 때 자기 딸에게 추근거리는 두 남자 손님을 감금하고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난리를 치던 의상점 주인이 이튿날 아침에는 그들이 사위라도 된 듯이 살갑게 배웅을 한다. 빌은 의식의 흐름 속에서 그 자신이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던 부부간의 트러블을 직시하게 된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한결같이 섹스를 모티브로 하고 있지만 실제의 성행위로 연결되는 장면은 하나도 없다. 그것은 가상현실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크리스마스 파티 때 마약에 취해서 섹스를 탐닉하던 콜걸, 에이즈에 걸린 창녀, 밀교 의식에서 빌 대신 처벌을 자청한 여인과 같이 지나친 섹스는 죽음을 연상하게 만든다. (큐브릭 감독은 이 영화를 편집하던 중 1999년 3월 7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영화의 결론은 빌이 외도를 한 것도 아니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가족 곁으로 돌아가 딸의 선물을 사러 백화점에 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픽션을 대할 때에는 현실과 혼동해서는 안되고, 환상 내지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이 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상정해보고 현실에 입각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러나 빌로 하여금 방황을 하게 만든 앨리스는 시종 당당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 속의 이야기이고 그녀는 실제로 책임질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스스로 일탈행각을 벌인 빌에게 비난가능성이 더 많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잘못될 경우에는 혼란이 빚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범죄 행동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혼에 합의를 한 크루즈-키드먼 부부는 五感이 살아 있는 현실 속에서는 영화에서처럼 '눈을 질끈 감지'(eyes wide shut) 못하고 부부간의 갈등을 폭발시켜 버린 것으로 여겨진다.

 

끝으로 현대사회에서도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처럼 올 누드로 예배를 드리는 밀교의식이 은밀하게 행해지고 있음은 주목을 요한다. 신전의 여사제가 공공연히 매음을 행하였던 고대의 종교의식이 인간의 무의식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가정의 순결, 건전한 성적 관념을 해치는 이러한 음란행위가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 영화는 국내 상영을 위해 두 차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았는데, '노 컷' 상영을 고집한 감독의 유족과 영화사 때문에 자진 철회했다가 음모 노출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으로 하여 국내 개봉이 1년 만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영화는 러시아의 현대음악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재즈"에 나오는 왈츠 제2번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돌고 도는 부부간의 애정과 갈등 구조를 음악적으로도 잘 묘사하고 있다.

 

 

Hieros Gamos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목격한 밀교의식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2>(pp.111-115)에서는 시온 수도회의 지도자인 할아버지의 비밀스런 의식에 충격을 받은 소피 느뵈와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의 대화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히에로스 가모스'란 그리스어로 '신성한 결혼'을 뜻하며, 2천여 년 전에 이집트의 남자 사제와 여 사제들이 여성의 창조적인 힘을 얻기 위해 수행한 성 의식을 말한다. 고대인은 남자가 신성한 여성에 대한 육체의 지식을 알기 전까지는 정신적으로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여성과의 육체 결합을 통해 남자는 정신적으로 완벽해지고, 절정의 순간에는 마음이 완전히 무가 되어 신을 볼 수 있는 영적 직관을 얻는다고 믿었다. 여신 이시스 시절부터 성 의식은 인간을 땅에서 천국으로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로 인식되었다.

물론 불교의 참선과 같은 명상을 통해서도 성교 없이 이와 비슷한 무념의 상태를 얻으며, 종종 끝없는 영적 기쁨을 주는 열반의 상태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인의 성에 대한 시각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섹스는 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었다. 자궁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여성의 능력은 여성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성교는 남자와 여자라는 인간 영혼의 두 반쪽들이 신성하게 결합하는 것이었다. 그 결합을 통해 남자는 영혼의 완벽함을 찾았고, 신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신과 직접 접촉하기 위해 인간이 성을 이용하는 것은 초기 교회의 권력바탕에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교회만이 신과의 유일한 통로라는 그들의 주장을 약화시키고 교회를 곤란에 빠지게 하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성을 악마로 묘사하고, 더럽고 불결한 행위로 주입시켰던 것이다."

 

그럼에도 전 세계의 열두 개 이상의 비밀단체들은 아직도 성 의식을 행하며, 이를 통해 고대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여자들은 잠자리 날개 같은 얇은 가운을 걸치고, 금색 신발에 손에는 금색 구슬을 든다. 그리고 남자들은 검은색 신발에 검은색 가운을 입는다.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 톰 크루즈는 맨해튼 상류층의 은밀한 사적 모임에 들어가 '히에로스 가모스' 의식을 목격하였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세세한 사항을 틀리게 그렸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핵심은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분별한 혼전·혼외의 섹스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분간할 수 있어야 한다. 성을 신비롭고 영적인 행위로 접근할 수 있는지, 오직 신성한 여성과의 합일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성스러운 불꽃을 찾아낼 수 있는지, 아니면 호기심에서 한 번 해보자는 것인지, 충동적이고 본능적으로 육욕만 채우고자 하는지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후자의 경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큰 폐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행할 때에는 실정법에도 저촉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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