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블 크라임(Double Jeopardy, 1999)

Whitman Park 2022. 2. 19. 08:51

여러 편의 영화를 보노라면 원작을 토대로 한 극의 전개(플롯)에 공을 들였는지, 시각효과(컴퓨터 그래픽 같은 비주얼 이펙트)에 신경을 쓴 것인지, 평범한 줄거리이지만 톱스타, 글래머 여자배우 등의 눈요기 거리에 역점을 둔 것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이 관객들로부터 얼마나 호응을 받을 수 있느냐에 따라 수작(秀作) 여부가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돈을 많이 들인 대작이라고 해서 반드시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를 연출하였던 브루스 베레스포드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더블 크라임(Double Jeopardy)>은 <도망자(The Fugitive)>의 여성 버전이라 할 정도로 예측가능한 스토리 전개에다, 지성적인 배우라고 소문난 애슐리 쥬드, 토미 리 존스를 출연시키고 간간히 시애틀과 뉴올리안즈의 관광명소를 눈요기로 보여준다. 한 마디로 쉽게 만든 것이 역력한 태작(作; 미국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페이퍼백 삼류소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는 누명을 벗고 아들을 찾기 위해 청바지 차림으로 뛰어 다니던 여주인공이 조지 아르마니의 매혹적인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타나는 등의 '깜짝' 장면이 있기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의 줄거리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시애틀 교외의 고급 주택에서 지역유지들이 모인 가운데 가든 파티가 열린다. 사립학교 발전기금을 모금하는 파티로 이 집주인은 미술품 수집가로도 유명한 금융사업가 닉 파슨스(브루스 그린우드)이다. 그러나 자선사업가의 얼굴 뒤에는 대규모 투자의 실패로 언제 파산하게 될지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감춰져 있다.

잘 생기고 부유한 남편과 귀엽고 총명한 아들을 둔 리비 파슨스(애슐리 쥬드)는 주위의 선망을 한몸에 받고 있다. 아들 다니는 학교의 여교사인 친구 안젤라(애나베스 기쉬)가 꿈도 꿀 수 없으리만큼 남편은 고급 요트인 '모닝 스타'까지 선물하겠다고 한다. 태평양 연안의 크루즈에 나선 파슨스 부부는 사랑에 도취되어 축배를 든다.

이튿날 아침 리비가 눈을 떠보니 선실에는 온통 선혈이 낭자하다. 불길한 생각에 남편 이름을 부르며 갑판으로 나가자 피묻은 칼이 떨어져 있는데 저 멀리서 해안경비정이 다가오지 않는가. 남편은 실종되고 남편의 피묻은 칼을 들고 서 있던 리비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남편 살해범으로 몰린다. 4개월 전에 남편이 가입했던 2백만불 짜리 생명보험금을 타기 위해 범행을 했다는 것이다.

"저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어요"라는 호소에도 불구하고 리비는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갇힌다. 졸지에 부모를 잃어버린 아들은 친구인 안젤라에게 부탁한다. 매일같이 울음으로 지새는 리비에게 동료 죄수들은 기운차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들을 맡겼던 친구 안젤라가 처음에는 아들을 데리고 면회도 자주 오더니 얼마 후 소식을 끊고 샌프란시스코로 잠적해버린다.

리비가 이리저리 추적한 끝에 안젤라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그 집에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렇다면 ……? 재수사를 의뢰할 것인가, 사직당국은 과연 옥살이하는 죄수의 신청을 받아줄까 하며 절망에 빠져 있는 리비에게 같은 수형생활을 하는 전직 여자변호사가 자문을 해준다. 재수사는 가망이 없으니 접어두고, "일단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상 그 남편을 타임 스퀘어에서 총으로 쏘아 죽이더라도 거듭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며 남편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이 말에 용기를 얻은 리비는 그날부터 체력단련에 돌입한다. 그리고 모범수로서 가석방 신청을 하여 6년만에 半자유의 몸이 된다. 그녀는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을 생각이다. 그러나 가석방된 출옥수는 기율이 엄격한 보호소에서 감호를 받아야 한다. 감독관(parole officer)은 음주운전으로 가족을 모두 잃어버린 전직 법대교수 트래비스 레만(토미 리 존스)이다.

리비는 안젤라의 소재지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자 하지만 동명이인이 수십 명이나 되어 그만 포기하고, 안젤라가 근무했던 학교를 찾아가 교장에게 그녀 사는 곳을 알려달라고 통사정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밤에 교무실에 잠입하여 안젤라에 관한 서류를 훔쳐갖고 나오다가 보안관에게 붙잡힌다. 가석방규칙 위반으로 가석방감독관에게 신병이 인도되어 페리 보트를 타고 가는 도중 리비는 기지를 발휘하여 차를 몰고 바다 속으로 점프한다. 옆자리에 그녀를 저지하려던 트래비스를 태운 채로.

 

시골에 있는 친정집으로 피신해 도피자금을 마련한 리비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BMW 승용차를 사는 척 하면서 안젤라의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우리나라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를 알려주고 그녀의 주소를 알아내는 데 성공한다. 천신만고 끝에 그 집을 찾아가보니 안젤라는 몇 년 전에 가스폭발 사고로 죽고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이사를 떠났다는 게 아닌가. 직감으로 남편의 계획적인 살인임을 알아차린 리비는 트래비스에게 쫒기는 몸으로 남편을 찾아나선다.

리비는 궁리 끝에 남편이 칸딘스키 작품의 소문난 콜렉터이므로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술품 갤러리를 찾아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남편으로 짐작되는 인물이 뉴올리안즈에서 칸딘스키 작품을 거래하고 있음을 알아낸다.

리비와 트래비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뉴올리안즈로 날아가, 살인마 남편을 찾는 리비와 현지 경찰과 함께 리비를 쫒는 트래비스 간에 숨박꼭질의 추격전이 벌어진다. 뉴올리안즈의 명물 총각경매 파티(Bachelor Auction Party)에 리비가 아르마니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여 미남 총각 행세를 하는 니크를 1만불에 낙찰 받는다. 감옥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리비가 나타나 아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니크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지 않게 하면서 그녀를 처치할 궁리를 한다. 그리하여 아들을 돌려주겠다고 리비를 공동묘지로 불러낸 다음 속임수로 석관 속에 쳐박는다. 리비는 품 속에 간직했던 트래비스의 권총으로 탈출한 후 니크를 찾아간다.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트래비스가 니크를 찾아가 1백만불을 내놓으라며 마음을 떠보는 사이에 니크는 트래비스에게 총격을 가하고 뒤따라 등장한 리비로부터 복수의 권총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리비는 진짜 자유로운 몸으로 트래비스와 함께 조지아주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찾아간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도망자> 1, 2편에서 죄수호송 도중에 도주하는 주인공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연방집행관(U.S. Marshal) 역을 열연한 토미 리 존스에게 같은 배역을 맡김으로써 관객들에게 비슷한 줄거리, 심지어는 '도망자 3편'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묘미는 자신을 살인범으로 몰아 감옥에 거둬놓고 두둑한 보험금을 챙겨 잘 살고 있는 남편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인가 고민하는 주인공이 제3의 해결방안을 찾는 데 있다. 교도소 안에서 당국에 재수사 및 재심을 청구해 봐야 성공가능성은 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너무나 억울하다. 이때 제3의 대안은 남편을 찾아가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국의 수정헌법 제5조(Fifth Amendment)의 "어느 누구도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생명 또는 신체의 위험을 받지 아니한다"는 이중위험(二重危險, 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이다.

 

전직 변호사인 동료죄수로부터 귀띔을 받고 여주인공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복수의 집념을 불태운다는 것이 상투적이긴 하지만 묘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이와 같이 법은 무슨 일을 저지하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니라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제3의 대안을 제시하는 기능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법이란 허용되는 것과 금지되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리비는 돈 때문에 자신을 수 차례 사지로 몰아넣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전직 법대교수인 트래비스는 이것이 '이중위험'에 해당함을 인정하여, 비록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상황이었지만, 살인자가 버젓이 살아날 수 있게 한다.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재판을 받은 이상 또 다시 남편 살해범으로 처벌되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이중위험의 근본취지는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하여 형사책임을 묻지 아니한다"는 커먼로 상의 원칙(Nemo debet bis vexari)으로서 일반 시민들을 부당한 국가형벌권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 경우 최초의 위험은 배심사건의 경우 배심원단이 구성되어 선서를 하였을 때, 非배심사건의 경우에는 최초의 증인이 선서하였을 때 시작된다고 본다. 따라서 판결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하여 형사소송절차가 개시된 때에는 피고인을 이중위험에 빠뜨리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판력(旣判力)의 효과로서 "동일 사건에 대하여 거듭 기소(처벌)할 수 없다"(헌법 13조 1항 후단)는 대륙법의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과 약간 다르다.

따라서 지능적인 범죄자인 경우에는 동일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자백하는 척 하면서 가벼운 죄로 처벌을 받고 이중위험(일사부재리)의 원칙을 기화로 정작 무거운 죄로 처벌받지 아니하는 허점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런데 비디오 영화의 제목을 "더블 크라임"으로 한 것은 주인공이 이중범죄를 저지르거나 또는 죄의 경합을 초래한 게 아니므로 이 영화의 주제를 몰각한 것임은 물론 일반인의 법률상식을 오도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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