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하지요. 그 중에서도 문학의 한 장르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는데 극중에 문학적인 소재를 다루는 경우가 적지 않기에 오늘은 액션 영화의 대사에 명시(名詩)가 들어 있는 이색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G: 최근에 개봉된 무슨 신작 영화를 보셨나요?
P: 아니요, 2015년 여름에 개봉되었던 <미션 임파서블> 제5편 <로그 네이션(Rogue Nation)>이예요. 어제 케이블 주말 영화로 다시 보면서 전에 지나쳤던 장면을 많이 발견했어요. 영화 속에 문학과 음악, 예술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아주 잘 만든 영화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체첸 분리주의자의 수송기에 잠입한 주인공이 가스탄을 탈취하는 장면, 비엔나 오페라 극장에서 투란도트 공연이 펼쳐질 때 무대 뒤에서 활극을 벌이는 장면이 손에 땀을 쥐게 하잖아요?
P: 그래요. 비엔나 극장 측이 제작사의 수차례 거듭된 요청에 마지못해 허락했지만 자기네 훌륭한 시설을 홍보한 셈이 되었지요. 투란도트에게 구애를 하는 페르시아 왕자가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를 때 가장 높은 음정으로 노래하는 순간 공연을 관람하던 오스트리아 총리가 총격을 당합니다. 오페라 내용을 몰라도 이 밤이 지나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다는 스토리 전개를 암시하지요.
G: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이단 헌트(톰크루즈)가 대역도 없이 괴한들과 몸을 부딪히며 싸우는 장면에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오페라의 노래는 무슨 뜻인가요?
P: 투란도트 공주가 내건 세 가지 수수께끼는 그리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가 풀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보다 더 철학적입니다. 왕자가 맞춘 수수께끼의 답은 근심에 싸인 사람 사이로 날아다니는 무지갯빛 유령은 '희망',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이내 식어버릴 수 있는 것은 '피', 끝으로 타오르는 불이요 차가운 얼음이지만 이것의 노예가 되어야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투란도트 공주'였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원치 않는 공주가 자기 이름을 알아맞추면 아침에 그냥 그대로 떠나겠다고 말하지요.
G: 그러고 보니 영화의 스토리를 암시하는 것 같네요. 존폐 위기의 IMF(Impossible Mission Force), 적인지 내 편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모의 여성, 그러나 이 모든 음모를 꾸미고 조종하는 자가 노리는 것은 무엇이냐? 주인공은 온몸을 던져 임무를 수행하지요.
P: TV 드라마에서 <미션 임파서블>이 시작될 때 미션 지령을 내리고선 연기처럼 사라지는 녹음기가 이 번 영화에서는 레코드판이었어요.
G: 재즈 팬들은 안타까웠을 거예요. 존 콜트레인과 델로니어스 몽크, 섀도 윌슨의 희귀 명반 "Ruby, My Dear"가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으니까요.
P: 수많은 액션 씬 중에 시구절이 나온 것 들어보았습니까?
G: 그런 장면이 있었나요? 미션 임파서블 하면 연상되는 것이 가면(mask)을 벗는 장면인데요. 발전소 보안검색대를 통과할 때는 안면인식보다 걸음걸이 패턴을 보고 본인인증을 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P: 나도 그랬어요. 이 영화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것이 보안기술 FIDO(Fast IDentification online)의 발전을 촉진했다고 할까요. 로그 네이션에서는 비밀조직 신디케이트의 비밀장부를 여는 레드박스의 암호가 3중 생체정보(biometrics)로 되어 있어요. 첫 번째는 눈의 홍채, 두 번째는 손바닥 정맥혈관, 여기까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쓰이는 것들데요 세 번째 것이 놀라워요. 영국 총리만이 알고 있는 문장을 정확히 발음해야 풀리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G: 우리도 패스워드를 정할 때 태어난 고장, 어머니 이름 같은 것을 쓰지요. 영화에서는 키플링 뭐라고 했는데……
P: 우리가 소월의 "진달래꽃"을 읊는 것처럼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노벨상 수상시인 키플링의 "If (만약에)"라는 시의 첫 구절입니다. "If you can keep your head when all about you/ Are losing theirs and blaming it on you./ If you can trust yourself when all men doubt you, (만약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너에게 비난을 떠넘기더라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만약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에도)." 어쩌면 영화에서 이단 헌트가 처해 있는 상황하고 딱 들어맞는 시 구절인가요?! 마지막 "You'll be a Man, my Son!"까지 암송하면 끝내줄텐데요.
G: 이것도 뭔가 복선이 깔려 있는 것 같네요. 만일 이게 실제 상황이라면 외교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P: 관객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작진으로서는 성공한 겁니다. 단순히 제작비만 많이 들인 영화가 아니라 고급 교양지식이 이면에 깔려 있어 관객들은 숨은 그림 찾기, 퀴즈문제 풀듯이 접근해야 하니까요.
G: 덕분에 미션임파서블을 볼 때면 톰크루즈의 액션영화로 여기지 말고 무슨 고급교양의 소재가 있는지 파헤쳐 깨알재미를 맛보아야겠군요.
P: 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5>의 부제인 "Rogue Nation"은 오래전 이완 맥그리거가 열연한 <Rogue Trader>(1999년작 '불량거래인', 우리나라에서는 <겜블>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를 연상케 하였습니다. 200년 전통의 머천트뱅크인 베어링 브라더스를 1995년 하루아침에 파산시킨 싱가포르 현지법인의 선물거래 책임자였던 닉 리슨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영국의 첩보기관 MI6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비밀 미션을 수행하던 악당 솔로몬 레인에게 딱 맞는 말이지요.
그리고 키플링의 시 "If" 전문(영문과 한글)은 여기를 클릭하세요. 우리에겐 "정글북"의 작가로 더 유명한 시인이 12세가 된 아들에게 선물한 시인데 기막힌 압운(押韻, rhyme)도 함께 감상할 만 합니다.
* 출처: 에어틴의 brunch "미션 전달로 보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Google Image, YouTube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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