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10일 우리나라 영화 100년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에겐 넘을 수 없는 벽 같았던 아카데미 오스카상을 무려 4개 -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 - 나 받은 것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나라가 온통 사회적ㆍ경제적으로 위축된 가운데 전해진 이 소식은 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나 역시 TV 생중계를 지켜보다가 이 소식을 전했더니 다들 “Unbelievable”, “소오름~”이라고 각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운영하는 KoreanLII 웹사이트도 모처럼 대박이었다.
평소에 있는지 없는지 들어오는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여러 부분 후보에 오른 후 ‘Parasite (2019 film)’ 방문자가 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에는 평소의 10배까지 급증했다. 정말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보기에 영화 "기생충"이 2019년 칸 황금종려상에 이어 제92회 아카데미상을 석권한 것은 디테일에 강한 봉준호 감독(별명이 ‘봉테일’)의 고도로 지적인 영화적 은유법(Cinematic mataphor)에 서구의 관객들이 호응한 결과라 생각된다.
스포일러가 많이 들어 있으니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들은 마지막 단락으로 건너뛰시기 바란다.
이미 영화를 보신 분들은 KoreanLII에 소개된 관련 기사(영문, 아래 글은 그의 번역임)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20개가 넘는 보물찾기 하는 재미를 맛보실 것이다.
⇒ KoreanLII의 Parasite (2019 film) 참조.
[ 세팅 도구ㆍ장치 ]
1. 박 사장(이선균)의 호화 맨션과 김기택(송강호)의 반지하방 = 빈부격차, 소득양극화
2. 집에 어울리지 않는 수석(水石)과 계획 세우기 = 둘 다 기택의 식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았음. 그러나 일단 기택의 집에 들어온 후에는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가족들이 망가지기 시작함
3. 알러지 기침발작을 일으키는 복숭아털과 핏물 같은 토마토 캐첩 = 적폐청산, 사법농단 처벌의 구실로 삼기 위해 없는증거도 만들어내는 검찰의 과잉수사 방식을 풍자함
4. 가든파티에 등장한 인디언 천막(티피)과 기택의 인디언 추장 모자 = 인디언 학살극의 전조
[ 상징 기법 ]
5. 계단 = 박 사장의 집은 계속 올라간 반면(기택 가족의 신분상승 방법은 증명서 위조뿐?), 폭우가 내리던 날 기택 가족은 ‘추락’하듯이 황급히 계단을 내려가야 했음
6. 피자가게 매니저의 '갑질' = 피자 박스가 잘못 접힌 것을 트집 잡아 값을 깎으려 함
7. 짜파구리와 소고기 채끝살 = 짜파게티 라면과 너구리 우동은 기택과 문광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고급 소고기는 박 사장의 유족한 살림을 각각 나타냄
8. 번개 생일파티를 준비할 때 박 사장 부인(조여정)이 정원의 좌석배치를 학익진(鶴翼陣)으로 지시 =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방불케 한 참극의 예고편
9. 기택은 왜 박 사장을 칼로 찔렀는가? = 평소 기택은 박 사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지녔음. 그런데 막상 박 사장이 “이게 무슨 냄새지?”하고 차별하는 어조로 “선을 넘지 말라”고 할 때 ‘욱’하고 폭발함. 한국의 노사관계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임
10. 지하 벙커에서 보내는 모르스 신호 = 국가적 위기에서 한국민이 SOS 메시지를 보낼 데라곤 보이스카웃의 원조 나라 (미국?)
[ 등장인물 ]
11. 기택은 한때 사업계획을 세우고 대왕 카스테라 사업을 벌이기도 했으나 쫄딱 망하고 백수가 되었음 = 그는 대학 졸업장을 위조한 아들(최우식)을 보고 “너는 계획이 있구나”하고 대견해 함. 하지만 이것이 다른 사람의 가정교사 취업기회를 빼앗는 것임에도 모른척 함
12. 기택의 딸 제시카는 이 모든 거짓된 상황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음 = 그러니 가든파티 참극의 희생자가 된 것은 사필귀정이라고 할까, 제일 먼저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음
13. 박 사장은 성공한 벤처 사업가이고, 그의 부인 역시 유족한 환경에서 자라고 살았기에 빈궁의 실체를 몰랐음 = 박 사장이 기택에게서 나는 '가난'의 냄새를 모르고 이를 탓하자 기택은 모멸감에서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여 칼을 들게 된 것임
14. 일하는 사람은 많은 데도 직업윤리나 ‘할 수 있다’는 구호가 전무함 = 봉준호 감독은 한국 사회에 그러한 기풍이 이미 사라졌음을 통렬히 풍자하고 있음
[ 스토리 ]
15. 기택이 딸(박소담)의 문서위조 솜씨를 보고 “서울대에 위조학과가 있으면 수석으로 합격하겠다” 칭찬함 =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처럼 사회지도층 인사의 학종서류 위조를 풍자함
16. 쫒겨난 가정부(문광 역 이정은)가 기택 가족의 난장판 술 파티를 동영상으로 촬영 = “이것이 김정은의 핵무기 발사 단추”라며 박 사장 부인에게 전송하겠다 위협함
17. 문제의 스마트폰을 뺏기 위한 두 가족의 싸움 = 만일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공멸(共滅)의 길이 될 것임
18. ‘기생충’ 같은 기택 가족의 생존전략 = 같은 계층(class)에 속한 운전기사는 변태, 입주 가사도우미 (문광 이정은)는 결핵환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부도 내고 피신해 있는 벙커의 유령인간 문광의 남편까지 제거함. 봉 감독이 처음 생각했던 영화제목은 데칼코마니(Décalcomanie, 대칭그림)였다고 함
19. 지하에 사는 기택의 가족과 문광 부부는 공존할 수 없었을까? = 그것은 불가능함. 왜냐하면 다툼이 생겼을 때 잘잘못을 가려줄 제3의 권위가 부재하고 위반 시 제재할 방도가 없기 때문임
20. 마지막 장면에서 기택 아들이 문제의 저택을 구입하는 백일몽(Daydream) = 그의 능력으로 보아 실현불가능한 일. 아무튼 기택은 핵폭발 같은 사건의 전개로 영원히 지하벙커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됨
[ 영화음악과 미술소품 ]
21. 기택 가족의 음모로 문광(이정은)이 쫒겨날 때 흐르는 바로크 스타일의 음악 “신뢰의 벨트” = 음악감독 정재일은 널리 알려진 바하나 헨델의 (진짜) 음악을 쓰지 않고 그와 비슷하게 새로 작곡하여 '가짜' 바로크 음악이 진짜 음악을 대체하였음을 드러냄
22. 기택 부인(장혜진)이 8분 안에 짜빠구리를 만들 때에도 인스턴트(가짜) 바로크 음악이 BGM으로 흘러나옴 = 박 사장 가족 도착 전 8분 동안 거짓 평화가 찾아오고, 싸울 때와는 달리 서로 도와 거실을 말끔히 치워놓아야 했음
23. 가든파티에서 부르는 축가, 헨델의 “내 사랑하는 이여” 아리아는 궁정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칼부림 난동을 부린다는 오페라 <로델린다>의 3막에 나오는 음악임. 노래 제목과는 달리 그 이후 전개될 유령인간과 기택의 칼부림 난동에 대한 놀라운 예견력을 보여줌
24. 박 사장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제시카가 부르는 노래 = 제시카가 인맥 확인을 위해 외우듯이 부르는 노래 가사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니 사촌"은 한국사람이면 다 아는 "독도는 우리 땅"의 멜로디를 빌린 것임
25. 박 사장의 아들이 그린 기괴한 그림 = 기택의 딸 제시카(박소담)가 박 사장 부인(조여정)으로 하여금 아들의 천재성을 믿게 하려고 유명 래퍼 정재훈의 그림을 차용하였음. 정재훈은 쟝 미셸 바스키아의 정신분열증 같은 그림을 모방한 것인데, 지하 벙커의 유령인간을 목격하고 열성엄마에 내몰리는 박 사장 어린 아들의 심리상태에서는 그렇게 그리는 것이 당연했을 터임
시상식에서는 미국의 아카데미 회원들이 봉준호 감독을 잘 뽑았다고 마음 놓았을 감동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봉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후에 밝힌 수상소감에서 미국 영화의 거장들과 나란히 후보자로 지명된 것만 해도 영광이었다면서 마틴 소코세이지 감독의 어록을 인용한 대목이다.
젊어서 영화 공부를 할 때 마음에 새겼던 말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이었다고 하면서 객석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손으로 가리켰다. 손을 모아 답례를 한 마틴 스코세이지에 대해 청중도 모두 기립박수를 보냈다. 일본의 거장 쿠로사와 아키라(黒澤 明)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를 얼마나 존경했던지 그에게 아예 영화 <Dreams> (1990)"의 중요한 배역(빈센트 반 고흐 역)을 맡기기까지 했던 게 연상되었다.
봉준호 감독의 하이센스와 한국적인 겸양지도는 이 장면을 지켜본 세계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그는 이날의 수상소감에서 BTS 밴드까지도 언급을 하였으니 한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영화감독임에 틀림없다.
“한국에는 갤럭시폰, LG TV, 산타페 SUV 말고 BTS와 봉준호도 있다.” (so-called "Soft Power")
기생충 수상의 감격과 흥분이 가라앉을 때 즈음하여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시기를 앞당겼지만) 이런 의문이 든다. 한국사회에는 정말 다른 이에게 빨대 꽂고 사는 '기생충'같은 사람이 많지 않을까?
봉준호 감독이 본래 의도한 것과는 달리 이 영화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마치 법언 가운데 "항구를 떠난 배"라는 말처럼 입법자가 만든 법률이 일단 공포되면 나머지는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들의 몫인 것이다.
예컨대 이 영화는 2020년 4월의 총선을 앞두고 한국 관객 특히 젊은 유권자들을 크게 각성시키는 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겉만 번지르르한 "XXX 후보는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는 일이 성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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