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고향 산천의 골짜기와 돌

Whitman Park 2022. 11. 15. 11:15

시인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살면서 고국을 그리워 했다. 

재미 의사 마종기 시인은 어느 해 고국을 다녀간 후 강원도 골짜기의 수석을 떠올리며 시를 썼다.

고향산천은 골짜기의 물 냄새도 다른가보다. 그래서 연어는 그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모천(母川)으로 회귀한다지···.

그래서 마종기 시인도 미국 대학병원에서 의사를 하다가 은퇴 후 고국으로 돌아왔다.

 

* 산과 내를 닮은 수석. 출처: 네이버 블로그 '보물섬 남해'의 창선면 돌석이네 갤러리.

 

강원도의 돌   -  마종기

The Stone of Gangwon-do  by Mah Chonggi

 

나는 수석(水石)을 전연 모르지만

참 이쁘더군,

강원도의 돌.

골짜기마다 안개 같은 물 냄새

매일을 그 물소리로 귀를 닦는

강원도의 그 돌들,

참, 이쁘더군.

Tho’ I have no idea about viewing stones (suiseki),
They were so pretty.
The stones of Gangwon-do.
I can smell mist-like waters at each valley.
Who clean the ears with the sound of a creek every day?
They are the stones of Gangwon-do.
Truly, they were so pretty.

세상의 멀고 가까움이 무슨 상관이리.

물 속에 누워서 한 백 년,

하늘이나 보면서 구름이나 배우고

돌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더군.

It doesn’t matter what’s near or far away in the mundane world.
They spend over one hundred years lying in the waters.
While looking up the sky, they learned clouds.
Now I’d like to see the world
With the eyes like a stone.

참, 이쁘더군,

말끔한 고국(故國)의 고운 이마,

십일월에 떠난 강원도의 돌.

Truly, they were so pretty,
Handsome foreheads of my sweet home country.
I left Gangwon-do in November with stones in mind.

 

* 윤용호 변호사(오른쪽)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듣고 11월 초에 만났다.

 

학업과 직장 때문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오래 살았던 대학동기 윤용호 변호사가 새천년이 시작되던 해(2000년) 봄 순창 고향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리산을 종주했다.

젊어서부터 워낙 山과 풍류(風流)를 좋아한 터라 지리산 종주 때 답사했던 지명을 가지고 장문의 지리산별곡을 지었다.

종주를 마치고 노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생생한 기억을 되살리며 불과 두어 시간만에 이 별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왕년에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을 암송하던 실력을 지리산을 떠올리며 되살린 것이다.

 

* 지리산 국립공원의 41.5km 종주구간. 출처: 한국일보 2016.5.16.

 

지리산별곡 (智異山別曲)  - 윤용호

 

홍진(紅塵)을 벗어나 남도로 접어들어

지리산 주능선을 종주할 요량으로

성삼재에 이르러 이정표를 바라보니

동북쪽 천왕봉이 백십여리 거리일세

노고단을 훌쩍 넘어 오솔길로 접어드니

속세를 벗어나 선계(仙界)에 들어선 듯

우거진 산죽나무 푸르름이 더하고

멀리서 산새 소리 청아하게 다가온다

인적 드문 고갯마루 두어 번 넘었을까

어느새 반야봉 산허리를 스쳐가네

늦은 봄 햇살에도 흘린 땀이 흥건하여

큰 소나무 그늘 찾아 적신 몸을 추스리고

겉옷을 벗어 제쳐 갈 길을 재촉한다

산꽃들 형형색색 어우러져 화사하고

길섶에 새순 돋은 방초가 청초하니

나그네 눈길이 이곳저곳 분주한데

상큼한 산내음이 피로를 씻어준다

 

* 노고단에서 내려다 보이는 지리산 능선과 섬진강. 출처: 중앙일보 2021.11.4.

 

울창한 숲을 지나 비탈길에 올라서니

시야가 탁 트이는 넓은 바위 다가오며

삼도봉 푯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산청이고 서쪽으로 구례땅

남으로는 하동 있고 북으로는 남원 함양

삼도(三道) 오군(五郡) 걸쳐 산 둘레 팔백리

수많은 가지능선 수직으로 달리고

저 멀리 천왕봉이 아스라이 비쳐온다

고개를 뒤로 돌려 오던 길 바라보니

수 시간을 온 터이나 노고단이 지척일세

여보게들 서두르세 백리 산길 쉽지 않네

일행을 채근하여 앞장서 내달으니

익숙해진 발걸음이 경쾌하게 이어진다

오르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 내려서고

몇 구비를 헤쳐가니 토끼봉에 이른다

또 다시 내려가고 되오르고 꺾어돌고

쉴 새 없는 오르내림 몇 번이나 하였던가

잔잔한 오솔길이 돌길이 되었다가

어느 곳엔 바위길이 길다랗게 이어진다

 

힘겨워 지칠 즈음 명선봉에 당도하니

웅장한 산세가 일망무제 탁 트인다

백두산 맥세(脈勢)가 흘러내려 머무른 곳

두류산 별칭은 그리하여 생겼는가

말로 듣던 백두대간 예서 보니 경탄일세

절경을 뒤로 하고 계곡으로 내려서니

연하천 산장이 눈 앞에 다가선다

석간수 한 사발을 순식간에 들이켜니

오장육부 구석구석 찬 기운이 스며드네

나그네 하룻밤을 산장에 의탁하고

동트자 채비차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석간수 덕분인지 심신이 상쾌하다

콧노래 절로 나와 서너 마장 가노라니

검은 구름 다가오며 빗방울이 듣는다

이 비가 거세지면 큰일일 듯 염려되어

우장을 꺼내들어 만반대비 하려는 차

빗줄기 이내 멎고 하늘이 밝아오니

산신의 배려로고 감사할 따름일세

 

* 지리산의 고사목과 운해(雲海). 사진출처: 산청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산비탈 돌고 돌아 길은 계속 이어지나

산에 취한 이 몸이 산과 함께 하나 되니

광대한 산봉우리 인자한 부모 같고

곳곳의 기암괴석 든든한 형제일세

벽소령 고갯마루 힘겹게 올라서서

스쳐온 주능선을 찬찬히 굽어보니

이제 하루 지났는데 수삼일 된 듯하네

평평한 산길 따라 하염없이 가노란데

바위틈의 진달래 연분홍이 한창이고

저 멀리 산자락엔 운해(雲海)가 넘실댄다

치솟는 듯 내려앉고 뭉치는 듯 풀어지니

순백의 구름 공연 두고 가기 애석하다

숲길로 접어들자 고개가 다가온다

오르면 내려가고 다시 올라 내려서고

멀고 먼 나그네 길 기약없는 행군일세

옛날에는 어느 누가 이 길을 걸었을까

백제 유민 이곳 찾아 부흥의 꿈 되새기고

섬진강변 왜구들 도망길에 숨어들며

퇴각하던 동학군은 깊은 골을 찾았으리

반세기 전 빨치산의 발자국은 남아 있나

 

덕평봉에 이르니 다시 앞이 트이고

천왕봉 저 고지가 멀지 않아 보인다

산모퉁이 감아돌아 칠선봉에 이르러

기괴한 바위 모습 요모조모 뜯어보고

다시금 올라서니 영신봉이 맞이한다

봉우리를 넘어서 세석평전 당도하니

햇살은 따스한데 철쭉은 침묵일세

철이 아직 이른 탓에 그러리라 짐작하고

철쭉 동산 중간길로 촛대봉에 다다르니

지리산 온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노고단이 희미하게 드러나고

지나온 연봉들이 줄줄이 새겨지네

남쪽으로 눈 돌리니 백운산이 선명한데

강 너머 산자락이 구름 속에 나락들락

지호지간 거리의 천왕봉을 응시하며

한 걸음 두 걸음 다시 길을 나서는데

웬 작은 새 한마리 홀연히 땅에 내려

좁다란 오솔길을 두어 마장 앞서간다

사뿐사뿐 깡충깡충 걷고 뛰고 하는 품이

나그네 환영하며 산길 인도하는 듯

범상찮은 거동에 정체가 궁금하다

조난 당한 산악인이 산새로 환생하여

이곳을 뜨지 못해 홀로 사는 건가

 

* 최정철, 지리산 황금능선의 가을. 사진출처: 국립공원관리공단.

 

삼신봉 지나가니 연하봉이 다가서고

구상나무 군락지를 가로질러 내려가니

장터목 산장이 바로 앞에 나타난다

서산에 해 기울고 하룻밤을 또 묵는데

밤별이 총총하나 바람 소리 우람하다

일출을 보리라 이른 새벽 눈 떴으나

바람소리 혹독하여 엄두 내지 못하고

해가 뜬 연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고사목 밭을 지나 통천문에 이르르니

어두운 구석에 눈덩이가 남아있네

마지막 남은 길을 내달아 올라서니

이곳이 천왕봉 백십리길 끝이로다

가슴을 활짝 펴고 하늘을 바라보니

오월의 태양이 바로 위에 서 있도다

(2000. 5. 29. 씀)

 

* 장흥 천관산. 사진출처: 산림청.

 

윤 변호사가 전남 장흥의 천관산(天冠山, 723m)에 올라가서 기암괴석을 보고 경탄하며 지은 시조를 한 편 더 소개한다.

지리산, 월출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며, 수십 개의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있는 것이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신라 화랑 김유신(金庾信)과의 비련의 여주인공 천관녀가 숨어 살았다는 말이 전해온다.

 

 

탄성이 절로 이는 천관산(天冠山)  - 윤용호

Exciting Cheon-gwan-san  by Yoon Yong-ho

 

부엉이 울음 소리 새벽 산중 적막 깨고
피어오른 아침 안개 풍광 온통 삼키운다

환희대 올라서건만 못 지르는 환호성

Owl hoots break the silence in the mountains at dawn.
The morning mist swallows the entire landscape.
At the Exciting Podium, few exclamations can be heard.

기암괴석 하나 하나 탄성이 절로 인다

월출산 진배 없는 한 폭의 조각동산
산 이름 범상치 않아 하늘 뜻을 알리라

Every single rock formation is breathtaking.
It must be a sculpture park just like Wolchul-san.
The name of the mountain is unusual as indicated by Heaven.

 

4-4조 운율의 가사체 시가를 더 보려면 권효가 (작자 미상). 배추 농사의 애환 (유양수/박훤일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