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화가 세간티니의 극적인 삶

Whitman Park 2023. 4. 6. 08:00

G : 라흐마니노프처럼 화가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 1858 – 1899)도 아주 드러매틱한 삶을 살았다고요? 어느 나라 화가인가요? 이름이 생소해서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P : 세간티니와 세렝게티에 공통점이 있다면 자연 그대로의 풍광(風光)이라고 할까요. 그는 무국적자였고, 사후에야 스위스 국적을 얻었던 참으로 기구하면서도 극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생모리츠(독일어 장크트모리츠, St. Moritz)에 그의 미술관이 있어요.

 

* 조반니 세간티니, Spring in the Alps (1897)
* Midday in the Alps (circa. 1895)

 

G : 국적이 없었다니요? 아나키스트(anarchist, 무정부주의자)였다는 말인가요? 화가라면 무슨 작품으로 유명한가요?

P : 저도 이번에 "알프스의 봄"[1]이라는 아주 평화로운 그림을 보고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떠올렸어요. 우리가 알프스 산을 동경하는 것은 다분히 초등학생 때 읽었던 하이디와 클라라의 이야기 때문일 겁니다. 하이디가 몽유병에 걸릴 정도로 그리워했던 아름다운 산 말이예요. 그런데 비엔나의 벨베데레 미술관에는 클림트의 금빛 찬란한 그림 말고도 그만한 비중으로 세간티니의 작품 "Evil Mothers (나쁜 어머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해요. 김정숙 여사의 방문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 미술관에서 저도 클림트 그림만 보고 나왔는데, (사실 벨베데레 정원은 베르사이유 정원만큼 아름답거든요) 그의 삶이 너무 안타까워서라도 다시 한 번 가봐야겠어요. 

 

* Evil Mothers (undated)

 

G : 어떤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데 반응이 그렇게 엇갈렸지요?

P : 클림트의 추천으로 오스트리아 왕실에서 구입하여 궁전에 걸어놓은 그림인데 얼핏 보면 눈 덮인 산과 호수 나무를 그린 풍경화 같아요. 자세히 보면 나무마다 산발한 여인들이 걸려 있어서 어머니의 소임을 저버리고 울부짖으며 자책한다고 할까 아니면 벌을 받는다고 할까, 제목도 "Evil Mothers"(나쁜 엄마들)라고 그림 앞에서 반성하게 만드는 명화예요. 

 

* Self-portrait (1895)

 

G : 세간티니가 필시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된 곡절이 있었겠군요.

P : 네, 맞습니다. 어렸을 적에 세 번이나 버림을 받았어요. 당시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이탈리아 북부지방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다른 아들을 잃고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엄마가 돌보질 않아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해요. 그가 일곱살 때 엄마가 죽자 떠돌이 장수이던 아버지는 그를 밀라노에 사는 이복누나에게 맡기고 사라져 버렸어요. 세간티니에게 아무런 애정도 없던 누나는 호적신고도 하지 않고 그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방치해버렸어요. 결국 그집에서 나온 그는 부랑아로 거리를 떠돌다가 보육원으로 보내졌어요. 그의 그림은 프란츠 요세프 황제에게 감동을 안겨줄 정도로 모성(母性)을 소홀히 여기는 당시 비엔나 상류층 귀부인들에게 크나큰 경종이 되었다고 하지요 

 

G :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신분사회에선 이례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난 셈이네요.

P :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는 밀라노의 명문 브레라 미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는 권위적인 교수들에게는 경계 대상이었으나 학생들한테는 영웅 취급을 받았다고 해요. 그곳에서 밀라노 명문가의 자제인 카를로 부가티를 만났는데 그와 어울려 갤러리로, 고급 레스토랑으로, 라스칼라 극장으로 쏘다녔다고 해요. 부잣집 친구 덕분에 세상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된 거지요. 그러던 중 밀라노의 유명한 패셔니스타인 부가티의 누이동생인 루이자를 알게 됐어요. 그는 루이자를 '비체'라고 불렀는데 천재화가와 밀라노 최고의 멋쟁이가 상대방의 진가를 알아보고 서로 반해 사랑에 빠졌다고 합니다. [2]

 

G : 여자쪽 집안에서 그들의 로망스, 결혼에 반대한 것은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P :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지만 스웨덴의 국민화가 칼 라르손, 영국의 국민작곡가 에드워드 엘가는 신분 차이가 나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내조(內助)에 힘입어 성공한 케이스였죠. 세간티니는 그와 반대로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그가 무국적자였기에 혼인신고도 할 수 없었고, 더욱이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는 적대국인데다 그는 두 나라에서 모두 병역기피자로 몰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은 알프스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지요.

 

* 세간티니가 '빛의 화가'임을 여실히 보여준 햇빛이 화사한 Midday in the Alps (1892)

 

G : 아아, 그래서 세간티니의 그림에는 높은산과 들이 많이 나오는군요. 그의 부인 비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P : 네, 예상과는 달리 비체는 가난한 남편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다고 해요. 네 자녀를 낳아서 키우느라, 또 세간티니가 무국적자인 까닭에 세례도 받지 않은 그들 가족은 가톨릭 교도인 주민들의 냉대를 못이겨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어가야 했습니다. 세간티니는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아내를 위해 '바바'라고 하는 육아도우미 겸 모델을 두고 살았다고 해요.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인은 대부분 비체가 아니라 바바인 겁니다.

 

G :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아쉽게도 비체가 모델로 나오는 그림은 없는 모양이네요. 

P : 저의 추측입니다만, 비체는 그에겐 좀 어려운 상대였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태생적으로 알프스의 풍경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회적인 여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그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밤마다 위고와 괴테, 니체의 책을 읽어주던 선생님이었거든요. 세간티니는 밀레를 아주 좋아했는데 화풍을 서로 달랐지만 밀레 역시 농촌에서 살며 가난했고, 밀레 부부도 정식부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동류의식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 두 번의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유명한 생모리츠의 명소 세간티니 미술관 입구
* 세간티니가 직접 설계하였던 생모리츠 미술관 내부 전시공간
* 생모리츠 부근 말로야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 내부. 인터넷 예약을 하고 지정 요일 오후 4~6시에만 입장할 수 있다.

 

G : 세간티니는 무슨 일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졌나요? 그것도 서유럽에 제한된 범위에서만요.

P : 조반니 세간티니는 스승도, 동료도, 비평가도 없이 홀로 자신의 미술 세계를 발전시켰어요. 그럼에도 그의 부인에 대한 부채 의식에서인지 큰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는 꾸준히 출품을 했다고 하지요. 189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 국가상을 받은 데 이어 1896년에는 비엔나 분리파(Divisionism) 전시회에 초대되어 그 대표격인 클림트의 극찬을 받았어요. 1900년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에서는 스위스 대표로 선발되었지요.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엥가딘(Engadin)을 그린 풍경화 세 점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삶', '죽음', '자연' 3부작이었는데 그 전시를 위해선 12.5m의 벽이 필요하다고 주최 측에 통보하고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무리한 탓에 어느날 저녁 급성복막염으로 쓰러졌어요. 의사도 없는 산속에서 비체의 품에 안겨 41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G : 1900년의 파리 세계박람회에서는 체코의 알폰스 무하가 스타가 되었는데 세간티니의 작품이 완성되었더라면 그와 자웅을 겨루었겠는데요.

P : 조반니 세간티니의 로맨틱한 면모는 그가 비체에게 쓴 편지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매년 봄이 오면 알프스에 핀 첫 제비꽃을 당신에게 바치겠소. 당신이 그 꽃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내가 세상에 없기 때문일 거요."

 

Take these unsightly flowers,

these violets, as a symbol of my great love.

When a spring comes in which I fail to send you such violets,

you will no longer find me among the living.

 

비체는 그가 죽은 후 35년을 더 살면서 그의 작품을 한 데 모아 전시해 놓은 미술관옆에 살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무덤에 꽃을 바쳤다고 해요. 세간티니는 그토록 원했던 스위스 국적을 사후에야 수여받았어요.[2]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비체는 그의 사랑을 고이 간직하고 그의 작품세계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애썼으니 그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3]

 

G : 웬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고생 끝에 겨우 유명해지기 시작했는데 건강 때문에, 아니 알프스 산골에 살았기 때문에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말았으니까요.

P : 영웅도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고 그러지 않아요! 알폰스 무하는 그의 파트롱이었던 스타 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미국 무대에 진출하면서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되었고 체코가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고 나서는 애국자가 되었지요. 또 칼 라르손은 세계대전을 겪은 젊은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그의 그림책을 품고 지내면서 가정을 으뜸으로 여기는 그의 화풍이 각광을 받았던 겁니다.

반면 세간티니는 그의 말년과 사후에 스위스가 철저하게 그의 작품세계를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내세운 게 강점이자 약점이 되었어요. 그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그는 인기순위가 밀리는 화가였던 거죠.

 

Note

1] 세간티니의 "Spring in the Alps"는 멀리 알프스 고산연봉을 배경으로 봄을 맞아 농부와  말은 물론 목양견까지 농사준비에 바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그가 세계화단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때 캘리포니아의 미술품 컬렉터 제이콥 스턴의 의뢰로 그린 것이다. 2019년 로스안젤레스의 폴 게티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구입함에 따라 게티 뮤지엄에서 누구나 볼 수 있게 되었다. Paul Getty Museum Newsletter, Art & Object, January 15, 2019.

 

2] 박종호(풍월당 대표), "어린 시절 세 번 버려졌지만 … 아내의 사랑으로 예술혼 불태운 천재화가", 조선일보 2022. 2. 14.

 

3] 1900년 무렵 프랑스 파리는 벨 에포크(belle époque, 19세기 말~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의 기간을 이르며 프랑스 파리에 풍요가 깃들고 예술과 문화가 번창하면서 평화를 구가하던 "좋은 시대"라는 뜻)를 구가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한편으론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나름대로 행복했다고 평가되었다.

영화로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덴마크 작가 헨릭 폰토피단의 대하소설을 영화로 만든 <A Fortunate Man>(2018, Netflix 방영, 2018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도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덴마크 시골의 가난한 목사 아들인 주인공이 야심을 품고 고학으로 코펜하겐 폴리테크닉을 다니며 엔지니어로 입신한다. 학교 친구인 부유한 유대인 가정을 드나들다 친구의 누이와 약혼을 한다. 처가의 후원을 받아 그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직전 정부 관료와의 불화로 인해 사업도 망하고 약혼녀와도 헤어진다. 홀로 연구를 거듭하다 헤어진 약혼녀가 운영하던 학교에 그의 사업제안서와 관련기술을 기증하고 약혼녀의 애도를 받으며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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