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조형물을 이노베이션한다면?

Whitman Park 2022. 12. 15. 09:20

12월 14일 오후 논현동 소재 토브 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 콘텐츠 기획사 FLOW의 '유연한 공존'(Flexible Coexistence)이라는 주제의 이색(異色) 전시회를 보러 갔다.

토브 홀은 잡지출판사인 더북컴퍼니의 지하에 마련된 다목적 복합문화 공간이다. 성경 창세기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가 하신 "보기에 좋았다"는 히브리어의 영어 표기 Tobe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쉬운 점은 12월 15일이 전시 마지막 날이기에 더 이상 토브 홀에서의 관람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자리를 빌어 전시장에서 큐레이터에게 설명을 들은 대로 여러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올리고자 한다.

 

 

전시품은 홍성철 작가의 다채로운 'String hands'와 은판을 망치로 두들겨 여러 모양으로 만드는 강웅기 작가의 '조명 오브제'였다.

우선 'String hands'는 여기 소개한 대로 두 사람의 손, 구슬 같은 공예품을 모티브로 한 것이 많았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스폿라이트를 받은 것도 아닌데 손이 보여주는 메시지가 아주 강렬해 보였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사랑의 손길, 싸운 다음 화해의 제스쳐, 가벼운 터치, 염주 알을 굴리는 간절한 기원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되어 있는 조형물은 알루미늄 제 육각 유니트에 '손' 같은 이미지를 전사(轉寫)하고 육각 유니트 여러 개를 합쳐서 어떠한 이미지를 표출할 수 있도록 봉(棒)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마치 물방울이 모여서 강물을 이루듯이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전사된 이미지와 육각 알루미늄 봉이 합창을 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조형물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아주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대리석 덩어리 속에서 천사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자기가 할 일이라고 했는데 이번 전시의 작가는 새로운 조형물의 소재를 찾아 그 시각적 효과를 시험해보려는 것 같았다.

멀리서 보면 이차원적 평면 같지만 다가갈수록 그림이 움직인다는 착각을 일으키고 바로 옆에 서면 공기의 미세한 흐름에 가늘게 떨리는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헝클어진 듯한 아주 길다란 천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면서 수백 개의 알루미늄 스틱에 하나씩 표출하여 전체적으로 조합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공력을 요하는 작업임에 틀림 없었다. 

 

 

이 작품은 아주 이색적이었다.

사람 등 뒤로 마주 잡은 두 손은 분명히 한 사람 것인데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

이를테면 나이든 사람의 뒷짐, 아픈 손을 위무하는 다른 손, 굳은 의지의 표현, 마지못해 보여주는 협력의 표시 등 실제로 똑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느낌이 달랐다.

이 작품을 세 개로 나누었다가 다시 연결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작품 하나하나를 모듈화하여 마치 세라믹 타일을 붙이는 것처럼 여러 다양한 모양을 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작품은 유연한 공존을 보여주었다.

천장에 걸린 은으로 된 반짝이는 조명이 벽 쪽에 걸려 있는 스트링 핸즈와 어울려 (여기에 천정의 LED 조명등까지 합세하여)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관람객이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두 손이 보여주는 이미지때문에 제비가 물어다 준 흥부의 '박' 같이 원하는 것이 쏟아질 듯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도 천정에 매달린 알루미늄제 육각 유니트의 표면에는 각각 하나씩 이미지가 전사되어 있는데 이것을 한 군데 모으니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는 것이 이채로웠다. 

주로 전시장 벽에 작품을 걸어놓는 것과는 달리 전시장 홀 중앙에 천정에서 작품을 매달아 놓으니 전시홀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작품을 배치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알루미늄으로 된 유니트에 이미지를 전사한 것이므로 마치 3D 프린터처럼 무슨 형상이든지 시간과 공력은 많이 들더라도 변화 무쌍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토브 홀의 어두운 공간에 은판을 주재료로 사용한 조명 오브제로 바닥까지 활용하니 아주 근사한 입체적인 전시작품이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동안 조형물이 재질(진흙, 석고, 바위, 대리석, 청동, 스틸. 유리, 세라믹 등)에서 소재(신상, 인체, 동물, 사진 프린트 등), 표현기법 등에서 무한한 발전을 해왔는데 앞으로는 작가의 크리에이티브 이노베이션이 어느쪽으로 튈까 예고편을 보는 것 같았다.

 

* FLOW 전시회를 보러 온 어린이의 눈빛에서 AI와 공존하게 될 디지털 전환시대의 예술표현 방식을 예감했다.

 

도움말: FLOW 전시회의 후원사인 더북컴퍼니에서 발행하는 마리끌레르와 마리끌레르 메종의 기사를 일부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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