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짝사랑을 다룬 시나 소설, 영화

Whitman Park 2024. 7. 5. 17:00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 - 1805)이 연애시(戀愛詩)를 썼다니~!

조선 후기에 이용후생(利用厚生)을 강조한 실학자요 청나라에 다녀온 기행문 《열하일기(熱河日記)》와  《허생전(許生傳)》, 《호질(虎叱)》같은 소설을 쓴 근엄한 선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한 여인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이렇게 곡진(曲盡)하게 표현한 것이다(안대회, 《조선의 명문장가들》, Humanist, 2016에서 인용). 

'썸' 타는 사람의 마음은 조선 시대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대는 오지 않고 [1]

 

저물어 용수산(龍首山)에 올라 그대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소.

강물은 동쪽에서 흘러왔지만 그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더이다.

밤이 이슥하여 달빛을 받으며 돌아오는데,

정자 아래 늙은 나무가 하얀빛을 띠며 사람처럼 서 있더군요.

또 그대가 저기 먼저 와 있구나 생각했지요.

 

You didn't come

At sunset, I climbed the Yongsu Mountain and waited for you,

but you didn't come.

The river flowed from the east,

but I saw no sign of its flowing out.

When night fell and I returned by moonlight,

the old tree under the pavilion stood white-lit like a man.

I suspected that you had been there before me.

 

* 쓸쓸하게 홀로 앉아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는 여인

 

이러한 감정은 분명히 '사랑'인데 상대방에게 전달되고 공명(共鳴)을 일으키지 못하는 미완(未完)의 사랑이라 여겨졌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짝사랑', 영어로는 'unrequited love'라고 한다.

우리 시에서도 연암처럼 달빛 아래 허연 빛깔의 고목을 보고 사랑하는 님이라고 생각한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황지우의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첫 연을 보면 위의 연암의 시와 같은 느낌이 전해 온다.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 소리가 가슴에 쿵쿵거린다니 그것은 얼마나 애절할까! 

그 느낌을 오롯이 전달 받기 위해 영어로도 옮겨보았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At the place where you’re to come,

I arrived earlier and was waiting for you.
All the steps approaching me
Make my heart thump.
A little leaf flies briskly to me.
Those who once waited for someone understand
What on earth heartbreaking moment while awaiting someone!

 

우리나라에서 짝사랑을 다룬 영화라면 "라면 먹을래요?" 대사로 유명한 이영애, 유지태 주연의 <봄날은 간다>(2001)가 있다.[2] 바이칼 호수부터 연상하게 되는 춘원 이광수의 장편소설  《유정(有情)》도 친구의 딸 남정임을 데려다 키우는 교장선생이 외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 괴로워하는 금지된 일방적인 사랑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문득 서양에서 짝사랑을 다른 시나 소설, 영화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MS Copilot과 Google Gemini에 시, 소설, 영화 별로 3편 이상 예시해달라고 물어보았다. 

 

 

먼저 Copilot이 대답했다.

짝사랑의 아픔을 다룬 시, 소설, 영화는 많습니다. 여기 몇 가지 추천해드릴게요.

 

1. 존 키츠 (John Keats) - "You Say You Love; But With a Voice"1

2. 사라 티즈데일 (Sara Teasdale) - "I Am Not Yours"1

3.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 "Never Seek to Tell thy Love"1

소설

4.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 F. 스콧 피츠제럴드 (F. Scott Fitzgerald)

5.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 - 레프 톨스토이 (Leo Tolstoy)

6. “제인 에어 (Jane Eyre)” - 샬럿 브론테 (Charlotte Brontë)

영화

7. "500일의 썸머 (500 Days of Summer)"2

8. "인 더 무드 포 러브 (In the Mood for Love)"3

9. "노트북 (The Notebook)"4

이 작품들이 짝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어, 그 남자분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드실 것 같나요?

 

여기서 주1, 2, 3은 각각  "15+ Best Poems about Unrequited Love", "Best Movies about Unrequited Love", "Movies about Unrequited Love that touched our Hearts"을 가리킨다. 미국에는 이런 식으로 순위를 매긴 사이트도 있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4는 주2와 같다.

 

* 영화 500 Days of Summer (2010)에서 두 남녀가 캐주얼한 사랑에 빠지는 장면

 

한편, 장르 별로 5편씩 예시해달라고 영어로 물어본 Gemini에서는 대체로 Copilot와 같은 작품을 추천했으나 좀더 고전적인 작품이 포함돼 있었다. 

 

Poems:

1. "Annabel Lee" by Edgar Allan Poe - This classic poem speaks of a love lost too soon, capturing the haunting beauty and enduring pain of unrequited love.

2.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by John Milton - Though not a traditional love poem, this sonnet by Milton explores the feeling of wasted potential, which can resonate with someone experiencing unrequited love.

3. "She Walks in Beauty" by Lord Byron - A melancholic poem about an admired woman, "She Walks in Beauty" portrays the bittersweetness of loving someone from afar.

4. "One-Sided Love" by Carol Ann Duffy - This contemporary poem offers a more relatable and frank look at unrequited love, acknowledging its frustration and complexity.

5. "Sonnet 138" by William Shakespeare - Shakespeare's sonnet explores the idea of loving someone who is flawed, but still holding onto that love despite the lack of reciprocation.

 

Novels:

1. "The Great Gatsby" by F. Scott Fitzgerald - This iconic novel paints a tragic picture of Jay Gatsby's relentless pursuit of Daisy Buchanan, a love that is ultimately unattainable.

2. "The Notebook" by Nicholas Sparks[3] - A love story spanning decades, "The Notebook" explores the enduring power of love, even if it goes unrequited for a time.

3. "Jane Eyre" by Charlotte Brontë - Jane Eyre's unwavering love for Mr. Rochester, despite his social standing and marital ties, is a testament to the strength of unrequited love.

4. "The Remains of the Day"(남아 있는 나날/日の名残り) by Kazuo Ishiguro - This poignant novel explores the weight of unspoken emotions and missed opportunities, depicting a love story that remains unfulfilled.

5. "The Wind in the Willows" by Kenneth Grahame - While not a romantic love story, "The Wind in the Willows" portrays the deep bond of friendship between Mole and Rat, offering a comforting reminder of the different forms of love and connection.

 

* 폐간을 앞둔 잡지사의 소심한 사원 월터 미티는 회계과 여직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모험 길에 나선다. 영화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의 한 장면

 

Movies:

1. "Her" - This thought-provoking film explores the complexities of love in a unique relationship between a man and an intelligent operating system.

2. "Chungking Express" (중경삼림/重庆森林) - A visually stunning and quirky film by Wong Kar-wai, "Chungking Express" features two interwoven stories of unrequited love and longing.

3. "500 Days of Summer" - A modern take on unrequited love, this film explores the subjective nature of relationships and the lingering effects of heartbreak. [4]

4.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An adventure comedy with a heartwarming core,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explores themes of self-discovery and finding purpose, even amidst unrequited love.

5.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 This mind-bending film explores the complexities of love, memory, and moving on, even after a heartbreak.

 

Gemini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잊지 마세요. 짝사랑은 보편적인 경험이고 여기 소개한 시와 소설, 영화는 위안과 격려를 줄 겁니다. 짝사랑을 하면 가슴이 아플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며 멀리 떨어져 있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아름다움과 힘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5]

Remember, unrequited love is a common experience, and these poems, novels, and movies can offer comfort and validation. While it may hurt, these stories show that you are not alone and that there is beauty and strength to be found even in loving someone from afar.

 

* 칠갑산 아래 콩밭의 콩 수확 거들러 온 도시녀에게 첫눈에 반할 수도 있을 것이다.

Note

1] 연암의 이 글은 척독(尺牘)이라 하는 짤막한 편지글로  20, 30대 젊은 시절 연암의 소품문 가운데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에 실린 것 중의 하나이다. 그가 50편의 짤막한 편지글을 모아 엮은 척독집은 젊은 연암의 취향과 사고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관심을 끌었다. 산마루에서 강물이 동쪽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이고 서울 동대문 밖 청량리 쪽으로 용두동이 있으므로 용머리산(龍首山)은 서울 강북의 어느 산이 아닌가 추정되지만 정확한 소재지는 미상이다. 이 글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答蒼厓
暮登龍首山,候足下,不至,江水東來,不見其去,夜深,泛月而歸,亭下老樹,白而人立,又疑足下先在其間也.

 

2] 짝사랑의 사례를 찾기 위해 YouTube에 들어가 보았을 때 요즘 한국 젊은이들이 매력적인 외국 여성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름난 '유튜버'라는 것을 무기로 말을 걸으니 빼고 자시고 밀당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저쪽에서 손사래 치고 거절하면 영상을 찍을 수 없으니 실패 사례는 원천적으로 나올 수 없는 거지만, 외국의 젊은 여성들은 BTS, Black Pink 같은 한국의 아이돌 그룹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는 유튜버 개인과 동일시하기조차 했다. 그네들은 대부분 한국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였으므로 언어장벽도 문제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은 동영상 촬영에 응한 댓가로 유튜버의 수입의 일부를 선물로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 같았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할꺄 6070세대가 처음 해외 여행할 때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3] 니콜라스 스팍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로맨스 소설 작가이다.  스무 편이 넘는 그의 원작 가운데 영화화된 것은 이 블로그에서 소개한 'The Lucky One' (2012) 말고도 'Message in a Bottle' (1999), 'The Notebook' (2004), 'Dear John' (2010), 'The Best of Me' (2014), 'The Choice' (2016) 등 10편도 넘는다. 대중적인 인기와는 달리 뻔한 스토리 전개 때문인지 평론가들의 평점은 아주 박하기 일쑤였다.

 

4] 영화 <500일의 썸머>는 영국 젊은 남녀의 사고 방식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다. <비벌리 힐스 캅>으로 유명한 조셉 고든-레빗이 주인공 톰으로 나와 그의 관점에서 사내 연애를 했던 썸머와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지 되돌아 보면서 제 길을 찾아간다는 내용이다.

다만, 이 블로그에서 관심있게 다루는 법률적인 이슈가 별로 없기에 영화평은 생략하고, 제대로 연애를 하려면 자기중심적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도외시해서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유튜버의 감상평으로 갈음하기로 한다. 그리고 연애할 때 개입하기 쉬운 가스라이팅과도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5] Gemini의 마지막 코멘트에 힌트를 얻어 짝사랑의 아픔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나로서는 반백 년도 지난 시절의 감정이 되살아날 일은 없고 지난 5월 이탈리아 여행 중에 통풍으로 고생할 때의 통증과 맞먹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위의 동영상을 보면  (버킷 리스트의 하나인) 로마 제정 시대의 황제와 귀족들이 별장을 두었던 카프리 섬에 당도하여 내 얼굴에는 기쁨과 고통이 동시에 서려 있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산정에 올라 푸른 지중해의 풍광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 半 안타까움 半의 심정이 엿보인다.

그것은 가까이 하기엔 멀리 있는 님으로부터 과연 "네 좋아요"란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초조해 하는 심정과 진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