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새벽 서울 방학동에서 일어난 아파트 화재로 어린 딸을 안고 뛰어내린 젊은 아빠의 이야기가 온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뉴스가 연상이 되어서일까, 때마침 TV조선의 트롯 오디션 프로에 나온 9세 소녀가 부른 "울 아버지 보고 싶어요"라는 노래가 이 나라 부모 특히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아무리 시절을 타는 유행가라 해도 개인적인 이벤트와 결부되면 시간을 뛰어넘는 명곡이 되기 마련이다.
내가 64세가 되었을 때 결혼기념일을 맞아 시내 호텔에서 가족회식을 하고 들었던 노래가 비틀즈의 "내 나이 예순넷이 되면" 이었다. 비틀즈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놀랍게도 61세가 아닌 16세 때 작사하고 존 레논과 함께 만든 곡이다. 이 노래는 1967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에 수록되어 재미있는 가사와 흥겨운 멜로디로 많은 인기를 끌었 다.
When I'm Sixty-Four - Paul McCartney, The Beatles
내 나이 예순넷이면 - 폴 매카트니, 비틀즈
When I get older losing my hair,
Many years from now.
Will you still be sending me a Valentine
Birthday greetings, bottle of wine?
If I'd been out till quarter to three,
Would you lock the door?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세월이 많이 흘러
내가 나이 들어 머리가 빠져도
발렌타인을 기념하고
생일을 축하하여 와인 한 병 선물해줄 거죠?
내가 새벽에 집에 들어오더라도
문을 잠그진 않을거죠?
내 나이 예순넷인데
여전히 나를 원하고 밥상도 차려줄 거지요?
You'll be older, too.
And if you say the word, I could stay with you.
I could be handy, mending a fuse
When your lights have gone.
You can knit a sweater by the fireside
Sunday mornings go for a ride,
Doing the garden, digging the weeds.
Who could ask for more?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당신도 나이가 들겠지요.
그 말만 해주면 당신 곁에 있을 거요.
전등불이 나가면
가까이서 퓨즈 나간 것도 고쳐주리다.
당신은 난로가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일요일 아침에는 드라이브를 하거나
정원도 손질하고 잡조도 뽑겠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소?
내 나이 예순넷인데
여전히 나를 원하고 밥상도 차려줄 거지요?
Every summer we can rent a cottage
In the Isle of Wight. If it's not too dear,
We shall scrimp and save.
Grandchildren on your knee
Vera, Chuck & Dave.
Send me a postcard, drop me a line
Stating point of view.
Indicate precisely what you mean to say
Yours sincerely, wasting away.
Give me your answer, fill in a form.
Mine for evermore.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해마다 여름이면 비싸지 않은
와이트 섬의 펜션을 하나 빌릴 수도 있겠지요.
우리가 열심히 절약하고 저축한다면 말이요.
베라와 처크, 데이브 귀여운 손자들이
당신 무릎에 앉아 재롱을 부리겠지요.
엽서에 한 줄 적어 보내줘요
당신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상투적인 인사말은 빼버리고.
대답해 줘요, 종이에 적어서.
영원히 나의 것이라고.
내 나이 예순넷인데
여전히 나를 원하고 밥상도 차려줄 거지요?
비슷한 가사인 듯하면서도 분위기가 전혀 딴판인 우리 가요가 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는 비틀즈의 노래와는 달리 아주 구슬픈 곡이다.
1995년 김광석이 리메이크하여 히트하였기에 요절한, 이 재능 많은 가수를 추모하는 노래처럼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곡을 몇 해 전 임영웅이 휘파람까지 넣어 다시 불러 YouTube 누적 조회 수가 1억뷰가 넘어 새롭게 화제를 모았다.
이 곡의 가사를 쓰고 작곡까지 한 김목경은 20대 시절 홀로 영국에 가서 공부를 했다.
주말이면 맞은편 집에 사는 영국 老부부한테, 비틀즈 노래 가사처럼,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찾아와 놀다 가곤 했다. 아들네 식구가 돌아갈 때면 노부부가 밖에 서서 오래오래 배웅하는 것을 보고 문득 고국에 계신 부모님 생각을 했다.
자기 집안 사정을 담아 만든 이곡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어느 집에나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노부부는 막내아들의 수험공부, 큰딸의 눈물바다 결혼식 등 삶의 고비고비를 함께 헤쳐나왔다. 그런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당신 혼자 떠났느냐는 가사는 바로 우리 부모님의 사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광석아 아니더라도, 임영웅이 부르지 않았어도 이 곡은 온 국민의 애창국이 되었을 것이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 작사 작곡 김목경, 노래 김광석
The Story of an Old Couple in Their 60s
- Lyrics & composition Kim Mok-kyeong, sung by Kim Kwang-seok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 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When you tied my necktie with those fine, white hands,
I vaguely remember, Honey, I remember those days.
Those nights, I spent with my youngest son's college exam with my eyes open.
I can vaguely remember, Honey, I remember those days.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딸아이 결혼식날 흘리던 눈물 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Many years have gone by like that and I've come here.
Life flows like that, leaning into the dusk.
The teardrops fell on my eldest daughter's wedding day
Now they're all dry, Honey, I remember those tears.
세월이 흘러감에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다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My gray hairs increase as the years go by.
Everyone's leaving, Honey. You were holding my hand.
The years have gone by and I've come to this place
Life flows like that, leaning into the dusk.
다시 못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 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That long way that will never come again,
How can I go alone,
Leaving me here alone.
Honey, why don't you say a word?
Goodbye, Honey, goodbye.
Goodbye, Honey, goodbye.
이런 정서와 맞닿은 우리의 고대 가요가 있다.
한자로 전해 내려왔지만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는 그대로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1]
백발을 풀어헤친 어떤 미친 사람(白首狂夫)이 강물을 건널 때 그의 아내가 소리쳐 건너가지 말라고 애원을 하였으나 결국 물에 빠져 죽자 그의 아내가 공후를 타며(箜篌引) 통곡하며 부르는 노래였다고 한다.[2]
公無渡河 그대여, 물을 건너지 마오.
公竟渡河 그대 결국 물을 건너셨도다.
墮河而死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當奈公何 가신 임을 어이할꼬.
Thou shalt not cross the water.
Thou crossed the water at last.
You drowned and died,
What shall I do cause you're dead?
⇒ 우리의 아름다운 시와 노랫말을 영어로 옮긴 것을 더 많이 보려면 이곳을 탭하세요.
Note
1] 고조선 시대의 가요로 알려진 이 노래는 강에 나갔던 곽리자고가 이 사건을 목격하고 집에 돌아와 아내 여옥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 여옥이 슬퍼하며 공후를 안고 그 노래를 따라 부르니 이웃에 사는 여자들에게 널리 전파되었다. 중국 진(晋)나라의 최표(崔豹)가 이 설화와 노래를 한역(漢譯)하여 "공후인(箜篌引)"이라는 제목으로 『고금주(古今注)』에 수록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공무도하가 [公無渡河歌] (외국인을 위한 한국고전문학사, 2010. 1. 29., 배규범, 주옥파)
2] 2014년 말 개봉된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공무도하가"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 이 영화는 본래 2011년 KBS 인간극장에서 방송되었던 '백발의 연인'편에 출연한 강원도 횡성에 사는 노부부의 인생 황혼기의 사랑과 사별을 그린 다큐 영화다. 2014년에 개봉되어 <인터스텔라> 같은 대작 영화와 겨루었음에도 독립영화로서는 기록적인 관객 수 300만을 돌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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