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예상을 뛰어넘은 '오겜' 신드롬(2021)

Whitman Park 2022. 2. 28. 20:00

G: 요즘 <오징어 게임>(이하 '오겜')을 안 본 사람은 대화에 끼지 못한다고 해요.

P: 네, 저도 혼자서는 못 보았을 텐데 식구들이 연휴에 전편을 정주행하는 바람에 안 볼 수 없었어요.

 

G: 저도 그랬지요. 나이가 있는 분이나 마음 약한 사람은 무궁화 술래 놀이를 하면서 총으로 쏘아 죽인다는 게 큰 충격이었을 겁니다. 

P: 사실 어려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총을 쏜다 해도 물감 든 탄환을 쏘아 탈락시키면 될 텐데 모두 관에 실려 나가잖아요! 

 

G: 사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말고도 딱지치기, 줄다리기, 달고나, 오징어놀이 같은 거 많이 하고 놀았지요. 나이 지긋한 분들은 아파트가 아닌 동네 골목길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많이 하고 놀았지요. 

P: 이러한 한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놀이를, 얼마나 오래 갈진 모르지만, 전세계적인 게임으로 만든 위력이 참으로 대단해요.

 

G: 황동혁 감독이 이런 각본의 시놉시스를 가지고 10여년 전부터 충무로 일대의 제작자와 벤처투자가들을 찾아다녔지만 다 거절당했다고 합니다.

P: 시종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나오므로 너무 폭력적인 내용이잖아요? 흥행을 고려해야 하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영상물 등급분류 심의를 통과할 수 없거나 관객이 대폭 제한될 것으로 보았을 겁니다.[1]

 

G: 그런데 넷플릭스는 어떻게 제작비를 댔을까요?

P: 넷플릭스는 한국적인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데다 황 감독의 시놉시스가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소재를 담고 있어서 Netflix Original로 만들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전세계 80여 나라에서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므로 몇 나라에서는 19세 이상 관람 제한을 받더라도 제작비 2,140만불 이상 벌어들일 것으로 생각했겠지요.[2]

 

G: 그게 완전 대박이 난 거군요? 

P: 넷플릭스의 정책이 내용은 일체 간섭하지 않고 창의성을 존중하며 충분한 제작비를 지원해준다는 것과 글로벌하게 콘텐트를 발굴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보기 좋게 성공한 거죠.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이 히트를 쳤으니 앞으로는 한국에서 만든 콘텐트가 높은 값을 받을 공산이  크다고 하겠습니다.[3]

 

G: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P: 돈과 사람이 몰리게 해야지요. 요즘은 플랫폼이 대세이잖아요? 이를테면 저작권 관련 플랫폼을 만들어 영상물이나 웹툰 웹소설의 시놉시스를 제안하고 엔터테인먼트 전문 앤젤투자자, 창업투자조합 등도 참여하여 심사를 하여 제작 지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플랫폼을 통한 창작이 활성화되면 원 저작자가 퇴짜 맞는 일도 크게 줄 것이고 재정적으로도 두텁게 보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르별 아티스트들의 협업과 공동작업도 활기를 띠게 될 것입니다. 또한 발행사, 배급사도 플랫폼에 참여시킨다면 큰 위험부담 없이 유망한 작품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수 있지요. 그리고 법률・회계・가치평가・관련물품 제작 등 관련 서비스 제공자도 모두 플랫폼에 참여시킬 경우 합리적인 수수료만 받고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 마지막 생존게임을 벌이는 조상우(박해수), 성기훈(이정재), 강새벽(정호연). 출처: Netflix.

오징어 게임 신드롬

중앙일보 Sunday판 Special Report에서는 국내외 시청자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로서 기이(奇異)한 점, 전세계적인 신드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스포일러 주의! [4]

 

* 참가자 456명 중 200명 이상이 죽어나간 첫 번째 에피소드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은 잔혹한 살륙의 현장이 아니라 각종 패러디나 놀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잔인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이는 헐리우드 영화 'Hunger Games' (2012)이나 건파이팅 게임에 익숙한 관객들이 오징어 게임의 폭력성에 별 거부감이 없는 데다 술래로 로봇 소녀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동화 같은 화면을 만들어 놓아 게임처럼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게임 참가자들이 부의 편재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의 희생자임을 자처하면서도 그들 내부나 게임 주최 측과의 관계에서 신분차별과 불평등한 처우가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동시에 공개됨에 따라 게임 속의 현실이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공통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현상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사소해 보이는 장면이나 소품들조차 아주 세밀하게 설계되고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성기훈(이정재)이 사채업자에게 쫓기다 경마장에서 소매치기 강새벽(정호연)과 부딪혀 바닥에 쓰러지는데 그가 경마에서 딴 456만원을 새벽에게 털린 걸 알고 분해 한다. 오징어 게임의 최종상금 456억원을 예고하는 셈이다.
*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무궁화꽃의 대학살극을 목격한 참가자들이 과반수가 찬성할 경우 게임을 중단할 수 있음에도 자기가 희생될 수 있음을 알면서 상금 욕심에 끌려 결국 게임의 속행에 동의하게 된다.

 

* 주인공 성기훈이 최종상금을 다 차지하게 되었음에도 뛸듯이 기뻐하거나 그 돈을 다 쓰려하지 않고 돈이 필요한 주변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한국식 신파극 같았다.
* 오징어 게임을 지구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넷플릭스 OTT 플랫폼을 통해 전편이 일시에 공개된 데 이어 트위터, 틱톡을 통해 해시태그 게시물로 바이럴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흥미진진한 입소문은 국경을 넘어 전세계로 증폭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이러한 오징어 게임 신드롬은 K-드라마, K-팝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지난 수년간 미국의 아시아계 시청자를 비롯해 전세계에서 쌓아올린 팬덤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 요컨대 콘텐트만 좋으면 생산국이나 언어와 관계없이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을 통해 모든 나라의 크리에이터들이 동등한 조건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실증했다.

 

세트장의 공간과 색상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오징어 게임> 세트장의 공간과 채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다.[5] 각본을 쓴 황동혁 감독과 채경선 미술감독이 그렇게 철저히 계산을 하고 준비했을까 싶을 정도로 디테일한 기호(sign)가 숨겨져 있다.

 

* 우선 색상에서 지배하는 자와 당하는 자를 보색(補色) 관계로 대비시켜 놓았다. 즉 참가자는 녹색 츄리닝, 관리자는 빨간색 유니폼과 복면을 썼다.

* 참가자들은 밝은 곳에서 모든 게 노출되어 있는 반면 권력을 가진 지배하는 자들은 어두운 곳에서 모니터로 참가자를 감시하고 있고, 역시 검은 복면을 한 프론트맨은 하이어라키 상의 최종 감시자로서 일선 감시자들을 지켜본다.

* 참가자들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리우며 인격은 도외시된다. 인격이 무시되자 언어만으로는 소통이 힘들어지고 갈수록 권력을 가진 관리자 앞에서 비굴해진다. 그들이 연대하여 힘을 갖기 위해서는 기침소리 같은 모르스 통신수단이 필요하다. 

 

* 참가자들의 침실은 콜로세움(원형경기장) 같은 ㄷ자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들은 모두 일종의 관음증(voyeurism)의 표적이 된다. 감시자에게 노출되는 만큼 그들은 힘을 잃어가는 것이다.

* 참가자들이 차지하고자 애쓰는 거금이 들어있는 돼지저금통은 투명하게 황금빛이 비치는 둥근 통으로 천정 높이 달려 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처럼, 이스탄불 소피아 사원처럼 높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숭배하는 듯하다. 마치 해와 달을 경배하듯이 참가자들은 하늘에 솟아 있는 돈통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황금만능 물질만능의 사상에 젖어든다. 

 

* 참가자들이 건물 안에서 이동하는 통로는 시야가 막혀 있고 앞 사람을 한 방향으로 좇아가야 한다. 뫼비우스 띠 같이 무한반복 걸어가는 것 말고는 자유가 없다. 입소 후에 이와 같이 꾸불꾸불한 통로를 오르내림으로써 참가자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해버리고 지배자(Control Freak)의 권력에 쉽게 굴복하고 만다. 

* 세트장이 밝은 파스텔 톤으로 채색되어 있음에도 기분이 명랑해질 수 없는 것은 밝기만 하지 그림자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데도 숨지 못하고 밝은 공간 속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은 힘과 의지를 상실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에어로 브리지를 걸어갈 때 사방이 다 보이고 앞사람을 따를 필요도 없으며 되돌아설 수도 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완벽한 자유로움을 실감하게 된다.

 

Note

1] 종래 국내 온라인 영상물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통하기 전에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의 등급분류 심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는 국내외 구분 없이 국내 유통되는 모든 유료 영상물에 대해 등급분류를 하고 있으므로 유튜브, 넷플릭스 등 해외 사업자들의 모든 영상물도 등급분류 대상이다. 향후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을 위해 정부는 국내외 구분 없이 OTT 영상물에 대해 자율적으로 등급분류를 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0.6.23.

 

2] 2021.10.16.자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에 253억원을 투자해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릴 전망이라고 하니 엄청난 잭팟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황동혁 감독이 말한 것처럼 어딘가 묻힐 뻔한 시나리오를 용기를 갖고 시도할 수 있게 적극 지원해주었다. 설령 문제 많은 시나리오를 수용했다 해도 국내 제작자 같으면 200억 이상의 제작비를 들여가며 러닝타임 제한 없이 몇 부작이 되었든 감독 마음껏 드라마로 만들어보라고 했을지 의문이다.

 

3] 2022년 9월 1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리스 MS극장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동이 감독상을, 주연 이정재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非영어권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어 이유미가 게스트상을 수상했으며, 시각효과상과 스턴트 퍼포먼스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부문을 수상하며 6관왕에 올랐다. 황동혁 감독은 세브란스:단절, 석세션, 옐로우자켓, 오자크 등의 작품을 제치고 감독상을 수상했다. 작품상은 <석세션>에게 돌아갔다.

 

4] 신준봉ㆍ원동욱ㆍ윤혜인ㆍ오유진, "불평등 세상, 루저들 고통 '데스게임'에 버무려 … 외국인도 "바로 내 얘기" 공감", 중앙일보, 2021.10.30; KoreanLII "Squid Game" 항목에서 같은 내용을 한국경제와 비교해 가며 영어로 설명하고 있다.

 

5] 셜록 현준의 "오징어 게임 속 돼지저금통의 비밀", YouTube, 20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