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퀸스 갬빗(Queen's Gambit, 2020)

Whitman Park 2022. 2. 21. 07:55

G: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3차 대유행을 하는 모양이예요. 요즘 볼만한 영화로는 무엇이 있나요?

P: 영화관의 대형화면과 웅장한 사운드를 좋아하신다면 <마틴 에덴(Martin Eden)>이나 <마리 퀴리(Radioactive)>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집에서 시간이 있으시다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퀸스 갬빗(Queen's Gambit)>도 아주 볼만하지요. ''넷플릭스 2020년 최고수작"이라며 화제 만발입니다.

 

* Ending scene: "Let's play. 한 판 두시죠."

 

G: 코로나 시대에 극장과 영화사는 죽을 쑨 반면 넷플릭스는 승승장구한다더군요.

P: 넷플릭스는 7부작 미니시리즈 퀸스갬빗을 지난 10월 23일 전세계 망을 통해 전부 한꺼번에 개봉했습니다. 러닝타임 2시간 안쪽의 영화와는 달리 이용자의 형편에 따라 1~2회씩 나눠 볼 수도 있고 한꺼번에 정주행할 수도 있지요.[1] 후자를 위해 매회분의 첫머리에 여주인공이 퀸스 갬빗을 둘 수밖에 없는 이유랄까 아픈 가정사가 조금씩 공개됩니다. 아주 호기심을 자극하는 편집이라 여겨졌는데요, 제1회 첫머리에서 주인공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체스 시합장으로 걸어갈 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녀의 표정이 이 드라마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지요.

 

체스영화라기보다 성장소설 드라마

 

* 보육원 시절 베쓰는 샤이벨 아저씨의 말을 들은 이웃 고동학교 체스 지도교사의 초청을 받아 12명의 고등학생을 상대로 체스를 두고 모두 쓰러트린다.
* 베쓰는 체스 대회 열리는 곳마다 홍일점으로 남자들의 거친 도전을 받아야 했다.

 

G: 무슨 사연인지 저도 호기심이 동하는데요. 그런데 퀸스 갬빗은 체스 영화라면서요?

P: 네, 저 역시 체스는 문외한이지만, 서양 장기/바둑이라 할 만큼 역사와 전통, 계보를 자랑하고 있지요. 퀸스 갬빗은 바둑의 포석 같은 것인데 체스 오프닝 때 후반에 전세를 뒤집기 위해 초반 희생을 감수하는 전술이라고 해요. 드라마 대사 중에 나오는 '아포페니아(Apophenia)' 또한 이 드라마의 성격과 특징을 잘 나타내지 않나 생각합니다.

 

G: 아포페니아라니요, 무슨 뜻이지요? 적절한 번역어가 없나요?

P: 네, 이것은 서로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나 정보에서 규칙성이나 연관성을 추출하려는 인식 작용을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드라마의 제목인 체스 오프닝 전술이 이점을 시사하고 있지요. 주인공인 "9살 소녀가 아버지와 엄마를 모두 잃고 보육원에서 우연찮게 체스를 배우게 되어 이것에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그녀의 천재성이 알려지기 시작해 전미 선수권 우승을 거머쥐고 체스의 세계 챔피언 그랜드 마스터(Grandmaster)[2]가 된다. 그 과정에서 약물(tranquilizer)중독, 알콜중독이라는 위기를 극복한다"는 스토리가 '퀸스 갬빗' 전술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스에서 아포페니아는 주인공 베쓰의 다음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모두 64개의 칸으로 이뤄진 하나의 세상이잖아요. 그 안에선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으니까. 예측 가능하고요. 지더라도 제 책임인 거죠.” 

 

* 체스의 왕좌를 지켜온 러시아 대표와의 결승 대국에서 베쓰는 고비 때마다 천정을 응시한다.

 

G: 그럼 이 드라마는 체스에 대해 기본지식이 있어야 이해할 수 있나요?

P: 동명의 원작소설(월터 테비스가 1983년에 발표한 심리 스릴러 성장소설)에서는 체스 경기에 대한 설명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다고 하는데 체스를 몰라도 드라마를 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체스는 가로 세로 8x8=64칸에 흑과 백으로 나뉜 16개의 기물(16 pieces: 1 King, 1 Queen, 2 Rooks, 2 Bishops, 2 Knights, 8 Pawns)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며 땅따먹기를 하는 보드 게임입니다. 드라마를 보고나서 체스를 배우기로 했다는 사람도 많다지요.

 

G: 무슨 내용인지 스포일러는 빼고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P: 저는 얼마 전에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빨강머리 앤(Anne with an E)과 많이 비교가 되었습니다. 같은 고아이지만 앤은 상상력이 풍부한 수다쟁이였던 반면 체스 천재 베쓰는 부모의 사정을 나름대로 눈치 챈 과묵한 소녀가 되었고 체스를 통해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가는 아주 당찬 여성으로 그려져 있지요(feminism). 베쓰는 어리긴 해도 왜 生父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 트레일러 집에서 함께 살아온 미혼모 엄마가 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는지 나름대로 이해하고 조숙한 숙녀로 자랍니다. 그러나 당시 고아원 아동에게 필수적으로 지급했다고 하는 신경안정제의 효능을 알아챈 후 그에 의존하게 됩니다. 알약을 모아두었다가 밤에 몇 알을 한꺼번에 삼키면 천장에 체스판이 펼쳐지고 의문을 가졌던 행마의 기법을 절로 터득하게 되었다(To believe or not)는 거죠.

 

심리 스릴러로 분류되는 이유

 

* 베쓰가 천정을 쳐다보는 이유는 다음 수, 다음다음 수가 거기 펼쳐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겼다.
* 베쓰로서는 전과 달리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마(行馬)를 투시할 수 있었기에 더욱 값진 승리였다.

 

G: 고아원에 들어가기 전에는 체스를 배운 적도 없는데 어떻게 실력이 급상승하였을까요?  

P: 물론 집중력, 암기력 같이 타고난 재능도 있었겠지만 베쓰가 처한 환경이 체스 외에는 탈출구가 없기 때문인 것 같았아요. 무엇보다도 고아원 지하실에서 홀로 체스를 두고 있던 샤이벨 아저씨가 베쓰에게는 결핍된 아버지의 대체인물로서 그의 인정을 받는 것이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베쓰가 세계 챔피언이 된 후 기자들에게 이점을 강조했던 거죠. 그리고 잘난 척하는 남자들, 그것도 동시에 여러 명을 상대로 체스 실력만 가지고 그들을 모두 물리쳤을 때 통쾌함을 느꼈을 겁니다. 불쌍한 생모의 복수를 한다는 심정으로. . .

 

* 뉴욕에 가서 체스의 고수들과 동시에 체스를 두는 베쓰

 

G: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그와 비슷한 여건에 처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요.

P: 베쓰가 사춘기에 이르러 아이가 없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 입양된 후에는 환경이 180도 바뀝니다. 그러나 부부 사이가 냉랭하다 못해 결별을 하고 말았으며, 피아니스트인 양어머니는 무대공포증에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아이를 잃은 후에는 신경안정제와 알콜에 의존하게 되었지요. 이때 베쓰를 일으켜 세운 것은 체스를 잘 두면 어기저기 다니면서 적지 않은 상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체스가 뭔지 모르던 양어머니 역시 이 사실을 알고서 학교는 아프다는 핑계로 빠지게 하면서 베쓰의 매니저가 되어 전국 각지로 많은 상금이 걸린 체스 대회를 찾아 다닙니다. 베쓰는 영리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책들을 모조리 독파하고, 명인열전에 오른 인물들의 기보를 찾아서 연구를 합니다. 말 그대로 '체스에 살고 체스에 죽는 삶'을 살았던 거지요.

 

한 사람의 애인이 아닌 만인의 연인

 

* 베쓰는 혈투 끝에 러시아의 그랜드마스터를 이기고 타이틀을 거머쥔다.

 

G: 포스터를 보니까 주인공 베쓰 역을 안야 테일러-조이[3]라는 아주 예쁜 용모의 여배우가 맡았던데 픽션이긴 하지만 가슴 뭉클한 러브라인은 없는가요?

P: 베쓰가 정상적인 가족관계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뭔지도 모른 채 초경을 겪게 되고, 이성교제 역시 성관계라는 의식이 없이 체스를 잘 하게끔 도와주었으니 가벼운 스킨십을 한다는 기분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세계 챔피언이 되었으니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으로서 로맨스도 잘 만들어가지 않겠어요? 그점은 파리에서 러시아 챔피언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친구를 만나 칵테일 한 잔[4]만 한다는 것이 대취하여 결승시합을 망치게 되지만, 마침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알콜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더라도 믿음직했습니다.

 

* "될대로 되라지" 좌절한 베쓰는 샤킹 블루의 '비너스' 에 맞춰 캔맥주와 담배를 들고 몸을 흔든다.

 

G: 아까 말씀하신 '아포페니아'의 관점[5]에서 이 드라마를 눈여겨 볼 대목은 무엇인가요?

P: 네, 매회 첫머리에 나오는 주인공의 회상 신이 힌트를 제공합니다. 이를테면 생모가 베쓰에게 주입시키는 관념과 신조, 결국 생부에게 버림 받고 생모가 자포자기한 것과 베쓰가 파리에 가서 절제하지 못하고 음주 대취한 것, 체스 결승전에서 패배한 후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술독에 빠진 것 등은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던 것 아닐까요? 그런데 베쓰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술에 절은 모습을 감추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하고 체스 대회에 나갔을 때 친구들이 찾아와 그녀를 조용히 응원합니다. 결정적인 것은 그녀에게 체스를 가르쳐 준 샤이벨 아저씨의 부음을 전해준 보육원 친구와 아저씨의 장례식에 참석한 일입니다. 전미 챔피언이니 자랑할 만한데도 고아원 원장한테는 인사 한 마디 안하고 지하실로 내려가지요. 아저씨가 떠난 관리실 벽에는 그녀에 관한 신문기사 스크랩과 함께 아저씨가 그녀와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어요. 베쓰는 아저씨가 그 사진을 바라보면서 늘 자기를 응원하고 계셨다는 것을 알고 오열합니다. 다시 전의를 불태우지만 현실의 벽은 냉엄하였습니다. 모스크바 인비테이션 참가비 3천불이 없어서 쩔쩔맬 때 보육원 친구가 자기 학비 저축해둔 것을 아무 조건 없이 선뜻 내어줍니다.  

 

아포페니아의 결말

 

*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베쓰에게 인터뷰 요청이 쇄도한다. LIFE지 여기자는 '아포페니아'에 능한 천재와 광인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 베쓰는 첫 대회참가비 10달러를 빌려주고 받지도 못한 샤이벨 아저씨가 자기를 응원해준 걸 알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아버지 모습을 발견한다.

 

G: 네, 뭔지 알겠습니다. 말하자면 클라이맥스에서 아포페니아가 깨지는 셈이군요. 그밖에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P: 드라마의 배경이 1960년대입니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패션과 팝송, 자동차 모델과 화폐가치, 백화점의 모습 등이 오늘날과 비교해서 매우 흥미롭습니다. 요즘 레트로(복고풍) 경향도 있는 만큼 구식이나 촌스럽다고만 볼 게 아니라 요즘젊은이들의 감각을 일깨울 만한 것은 없나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미-소 냉전관계를 보면 이런 때도 있었나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런데 女주인공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남성 본위의 체스 판도를 바꿔놓았어요. 무엇보다도 모스크바에서 체스대회가 열렸을 때 일반시민들이 대회장 밖에서 적국(敵國)의 젊은 여성을 '리즈베쓰'라 부르며 열렬히 응원[6]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베쓰가 공항 가는 길을 멈추고 공원 한쪽에서 국민 스포츠인 체스를 두는 은퇴한 시민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지요. 그리고 샤이벨 아저씨를 닮은 어느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러시아 말로 "한 판 두실까요"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저는 이것을 여주인공의 앞날을 보여주는[7] 아주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았습니다.

 

* 체스 대회가 열리는 행사장 밖에서 모스크바 시민들이 상황판 중계를 지켜보며 베쓰를 응원했다.

 

* 체스로 성공가도를 달릴 때 베쓰는 체스판을 연상케 하는 격자무늬의 옷을 즐겨 입었다.
* 마지막 장면의 흰색 롱코트는 백색 여왕(White Queen)의 대관식이나 다름 없었다.

Note

※ 위의 사진들은 모두 넷플릭스의 미니시리즈 장면을 캡쳐한 것임

1] 퀸스 갬빗은 7부작 미니시리즈로 넷플릭스가 처음부터 제작에 참여했다. 동명의 원작소설이 나온 뒤로 여러 차례 영화화가 시도되었고 여러 감독과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다. 결국 넷플릭스가 판권을 사들여 당초 6부작 미니시리즈로 만들 작정이었다고 한다. 제작팀은 마지막 회 End Game을 집중 조명하고자 1회를 늘린 모양인데, 체스 경기 내용을 몰라도 전혀 지루함 없이 손에 땀을 쥐개 하면서 전개되었다.

 

2] 체스 플레이어로서 최고등급인 그랜드 마스터(Grandmaster: GM)는 세계체스연맹(FIDE)이 공식적으로 부여하는데 2020년 1월 현재 전세계적으로 1,692명이다. 프로바둑의 공인 9단과 같이 타이틀을 평생 쓸 수 있다. GM이 되기 위해서는 체스 대회 처음 나가는 베쓰가 "그게 뭔대요?" 물어본 Elo 레이팅 2500 이상, 월드 챔피언십 16강에 들거나 FIDE 공인 토너먼트에서 9회 이상 소정의 성과를 올리고 토너먼트 참가자의 레이팅이 평균 2380 이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3명 이상의 GM과 대국한 후에 FIDE에 정식 등록해야 한다. 2017년 기준으로 GM을 많이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 236명으로 드라마에서처럼 정부가 엘리트 스포츠로 육성 관리해 온 덕분이다. 미국(89명), 독일(89명), 우크라이나(87명)와 큰 차이가 난다. 한국에도 GM이 1명 있는데 우즈벡 고려인 4세인 알렉세이 김으로 그는 2005년 대한민국에 귀화했다. FIDE는 온라인 상에서 아리나 그랜드 마스터(Arena Grandmaster) 등급도 부여하고 있다. 출처: Wikipedia (영문), 나무위키.

 

* 베쓰가 체스 투어를 다닐 때마다 매니저로 동행한 양어머니는 아주 우아하게 깁슨 칵테일을 마셨다.

 

3] 본명은 Anya-Josephine Taylor-Joy. 1996년생으로 스코틀랜드계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스페인-남아공계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미국 마이애미에서 태어났고 아르헨티나와 영국에서 살았다. 본래 패션모델로 출발했는데 TV 드라마와 영화에 벌써 스무 편 가까이 출연했다. 23 Identity에서 납치된 소녀 역, Marie Curie에서는 화학자인 딸 역을 맡았다.

 

4] 파리지엔느가 가볍게 한 잔 마실 수 있는 칵테일 '파스티스'는 대공황 당시 마르세유의 폴 리카르가 아니스, 감초 등을 사용해 만든 식전주이다. 물을 타면 뿌옇게 변하는데, 이것도 많이 마시면 취하게 마련이다. 베쓰의 양어머니가 좋아한 칵테일은 '깁슨'이었다. 이 술을 좋아한 뉴욕의 화가 찰스 깁슨에게서 이름을 딴 깁슨은 드라이진과 드라이베르무트를 3대 1 비율로 탄 후 펄어니언을 넣어 만든다. 미니양파 대신 올리브를 넣으면 마티니가 된다. 출처: 조선일보, "'퀸스 갬빗'의 칵테일 '깁슨'", [이혜운 기자의 드라마를 마시다], 2020.11.17.

 

5] '아포페니아'가 체스 두는 법이 인생살이와 비슷해서 체스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라면 우리의 정치 사회에서 비슷한 사건과 현상이 반복되는 것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언행을 조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자고로 "큰 뜻을 가진 사람은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한다"고 선현들이 말씀하셨다. 현 시국과 관련하여 여러 정치인들이 몇 해 전에 했던 말이 부머랭이 되어 자기 발등을 찍는 사례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상황이 바뀌었다"고 변명들을 하지만 체스 경기에 비유한다면 이미 상대방에게 수를 다 읽힌 다음이니 패배를 인정하는 거나 진배없다.

아포페니아의 렌즈를 통하면 정치인의 위선(僞善, hypocrisy)이 금방 드러난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바로 형제 눈속의 티와 자기 눈속의 들보를 말씀하신 예수님의 경책(警責, 마태복음 7:2)이다.

 

6] 모스크바 시민들이 미국 선수를 응원하는 장면은 픽션이므로 팩트 여부를 따질 계제는 아니다. 하지만 소련(USSR) 붕괴 전의 체스 선수들을 국가(KGB)가 관리하고 대표선수단은 개인이 아닌 팀으로 운영되었다. 반면 미국 선수는 여성이 그것도 고아 출신임에도 후원자 없이 자력으로 국가대표가 된 사실을 알고 대회장 밖에 모인 일반 서민들은 베쓰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다.

 

7]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1997년 5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체스 테이블 맞은편에 전혀 새로운 차원의 지능 IBM의 딥블루가 앉아서 16년간 체스 세계 챔피언 왕좌를 지켜온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기 때문이다. 카스파로스 GM은 "체스 게임을 하는 6시간 동안 기싸움을 벌일 수도 없고, 허기가 지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도 않으며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는 상대와 겨루는 것은 매우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딥블루를 의인화한다면 처음 체스 시합장에 나온 베쓰하먼 같았을 것이다. 다시 20년이 흘러 프로 바둑에서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겼다. 현재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인간과 기계의 의사결정을 연구하고 있는 카스파로프는 AI Machine을 '이길 수 없다면 함께 하라'고 조언한다. 자료: 넥슨 컴퓨터박물관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