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tvN, 2018)

Whitman Park 2022. 2. 20. 08:35

TV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스페인 발음으로는 알람브라)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내 앞에 서 있는 두 젊은이가 나누는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tvN의 환타지 스릴러 멜로 드라마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보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16회로 끝나자 "이제 주말엔 무슨 낙으로 사나"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A: 알함브라의 궁전 웃기지 않아? 증강현실(AR)이라며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잔뜩 올려놓고서 열린 결말로 끝을 맺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

B: 나도 그렇게 생각해. EXO 찬열이를 환생시켰으면 현빈과 박신혜도 뭔가 보여줘야 했잖아?

 

A: 왜 하필 알함브라 궁전이었지? 나도 가보았는데 지하감옥(dungeon)이 있다는 게 사실인가? 무엇보다도 타레가의 아름다운 트레몰로 주법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선율이 이제 AR의 전조(前兆)를 알리는 공포스러운 곡으로 바뀐 건 정말 유감이야.

B: 윤씨네 식당처럼 제작사가 그라나다 시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이번 드라마는 PPL 간접광고가 엄청 심했어.

 

A: 알함브라 궁전이 이국적인 것만은 틀림없어. 몇 년 전에 단체관광으로 갔었는데 하루 출입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찾아갔었지. 궁전을 만든 것은 아프리카 무슬림 무어인이지만, 스페인 왕국이 점령하고 나서는 기독교식 교회 건물을 추가로 증축했지. 한동안 스페인 왕실의 하계별궁으로 쓰이다가 오랫동안 방치되고 말았대.

B: 원경으로 보는 왕궁이 무슨 요새 같았어. 해질녁에 보면 붉게 빛난다고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며?

 

A: 그 때 여행 가이드 설명이 지금도 생각나. 스페인 군대의 포위에도 끄떡없는 철옹성이었는데 궁안에서 일하던 집시가 뒷쪽의 성문을 몰래 열어놓아 기습공격을 당했다고 하지. 때는 1492년 이사벨 여왕이 파견한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니 스페인 왕국으로서는 아침에 떠오르는 해(욱일승천/旭日昇天) 같던 시기였어. 그 때 무어왕이 그라나다를 떠나면서 아름다운 궁전을 다시는 못 본다는 생각에 아주 서럽게 울었다고 해. 북 아프리카의 사막에 돌아가면 분수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를 어떻게 꿈이나 꿀 수 있겠어?

B: 그런 전설같은 이야기가 이 드라마의 모티브였나? 마지막 신에서 박신혜는 현빈이 죽지 않았다고, 그를 다시 볼 수 있다고 믿고 게임에 로그인하여 현빈을 만나러 가잖아?

 

A: 그 때 알함브라 궁전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워싱턴 어빙'이라 팻말이 붙은 방에서 설명해준 것도 기억이 나. 캐츠킬 산속에 들어가 나인핀볼 게임 하고 한숨 자고 내려오니 세월이 한참 흘러 아는 사람은 다 죽고 없었다는 "립 반 윙클" 소설의 작가 말이야. 스페인이 신대륙 교역으로 엄청난 국부가 쌓이자 경제적 중심지는 세비야로, 정치적 중심지는 마드리드로 옮겨가 그라나다는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대. 떠돌이 집시들과 들짐승의 소굴로 황폐해 져 있는 것을 1830년경 영국에 외교관으로 가 있던 어빙이 이곳을 찾아와 보고 깜짝 놀란거지. 아쉽고 서글픈 마음에 옛날 화려했던 궁전의 모습을 자세히 써서 여행기로 알리자 많은 사람들이 그라나다를 찾아왔고 UNESCO에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거야.

B: 그러고 보니 드라마의 스토리 라인하고도 매치가 되네그려. 극 중에서 현빈이 그랬잖아? 이 게임이 대박날 테니 그러면 그라나다가 게임 매니아의 성지가 되어 박신혜의 허름한 호텔도 찾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그리고 평범한 카페인데도 엠마를 비롯한  AR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허접한 화장실 안에서도 무기가 튀어나오는 등 몇 백년 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이야기 거리가 많아. 궁전의 주인, 그러니까 현빈(유진우)이 울면서 떠나고 박신혜(정희주)가 그를 잊지 못한다는 스토리 설정도 똑 같네.

 

A: 나는 송재정 작가가 이미 복선(伏線)을 깔아놓았다고 봐. 작가도 어지간히 게임 마니아였던 것 같고. "게임 오버"라고 영원히 끝나는 것은 아니잖아? 언제든지 다시 스타트할 수 있거든. 시청자들이 열렬히 재부팅 스타트를 요구하면 우선 방송국과 광고주, 제작사가 가만 있을 수 없겠지! 가장 강력한 힌트는 찬열이(정세주)가 마스터는 자신이 위험에 처하면 인던(Instant Dungeon)을 만들어 피신할 수 있다고 했고, 그가 게임개발회사를 이끌게 되었으니 디버깅이 된 게임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첫 번째 임무가 되지 않겠어? 애닯아 하는 누나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을 거야.

B: 나도 동감이야.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넷플릭스가 후원하고 있어서 해외반응을 지켜봐야 하는데 여기에는 게임업체, IT업체가 한 몫을 할 것 같아.

 

A: 맞아. 게임 한류가 대단하다는데 리니지나 LOG(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MMORPG나 임요환 같이 각광 받는 프로게이머에 이어 AR게임으로도 신경지를 개척할 수 있을 걸로 봐. 포켓 몬스터 급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 동상이 단에서 뛰어내려와 그 앞에서 못된 짓 하는 자들을 혼내는 모습은 보기만해도 속이 후련할 거야. 드라마 초반에 높은 동상 단 위에 서 있던 중세 기사가 뛰어내려 주인공에게 싸움을 걸어오는 장면은 슬로베니아에서 찍었다고 하더군.

B: 드라마에서는 스마트 렌즈가 선을 보였는데 현실의 세계에서 그것이 실제로 사용된다면? 한층 더 리얼한 고사양의 기능이 등장하게 되면 송 작가도 다시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을 거야. 아니 노트북 키보드를 다시 두드려야겠지. 아무튼 게임 시나리오 작가들의 인기가 날로 치솟지 않을까?

 

A: 나도 머지 않아 속편이 나온다에 한 표. 그런데 우리끼리는 의견이 같아 내기를 할 수가 없고, 이것말고 다른 MMORPG나 하러 갈까?

B: OK∼. 우리도 황금의 열쇠, 아니 천국의 열쇠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러 떠나자구.

 

두 젊은이가 지하철에서 내린 후 나 역시 어서 속편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토리라인은 점칠 수 없지만 회상 신이 많이 나오니 16회 중의 2/3 분량은 그라나다든 서울이든 이미 촬영해 놓은 것을 편집해서 쓰고 나머지 상당 부분은 CG(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어쨌든 CG를 맡은 디지털아이디어 회사는 대박이 났다. AR게임 제작자들이 이 드라마를 레퍼런스 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 혼자만의 상상이 이어졌다.

꼭 게임으로만 해야 하나?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관광명소에 '인페르노'와 같은 영화와 소설 속 스토리텔링을 덧입히고 VR AR 기기로 그것을 재현해보면 아주 재미있을 텐데……  아니 송 작가가 유진우의 모델이 일론 머스크라고 했으니 그럼 주인공이 전기차나 수소차를 타고 우주(Universe)로 날아가는 걸까? 그보다 나 같은 사람이 해볼 수 있는 게임이 뭔지 그 젊은이들에게 물어나볼 걸 그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