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NUMBERS: K드라마의 놀라운 변신

Whitman Park 2023. 7. 21. 12:30

이제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할 때 Naver, Google 같은 검색 포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부터 인터넷 검색의 요령이 바뀌었다. 대면(face to face) 접촉이 어려워진 대신 동영상을 통해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는 YouTube를 많이 찾게 되었다.

그런데 YouTube에서는 평소 이용자가 주로 무엇을 찾아보는지 기억해두는 것 같다. 그 다음에 열어보면 검색창에 입력하지 않았는데도 전에 본 것과 비슷한 동영상 채널을 전면에 제시하곤 한다. 바로 알고리즘 때문인데 편리하기보다는 당혹스러울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럴 때면 YouTube 서버를 디톡스(detoxify, 제독/除毒) 시킬 필요가 있다.[1]

 

최근 YouTube에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다가 위와 같은 식으로 한국 드라마 몇 편을 이끌려(?) 보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비디오 가게에서 VHS 테이프를 한아름 빌려다 놓고 정주행하면서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요새는 미니드라마를 주요 대목만 요약하여 간단한 해설과 함께 보여주는 YouTube 채널도 많다. 사실 16부작 드라마의 경우 전편을 다 보자면 족히 2~3일은 걸리지만 요령 좋은 YouTuber들은 이것을 크게 압축해서 스토리 중심으로 보여주기에 인기가 많은 것 같다.

 

* MBC 드라마 공식 포스터

 

이렇게 한두 편 보다가 다음 회차를 기다리게 만든 K드라마가 있어서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MBC TV에서 6월 23일부터 방영하고 있는 금토 드라마  <NUMBERS – 빌딩숲의 감시자들>이다.

16부작 미니 시리즈의 절반까지만 본 것이기에 현 시점에서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별의미가 없다. 이 드라마를 8회분까지 시청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랄까, 보는이가 놓쳐서는 안될 사항을 중심으로 관련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다.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가 들어있는 드라마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주어서일까 시청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러 있어 종방하기도 전에 감상평을 쓰게 된 것이다. 알고 보면 그만큼 더 재밌어질 수 있으니까~.

 

우선 이 드라마는 일일이 예를 들 것도 없이 우리가 많이 보아온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아니다. 의사, 변호사 같이 '사'자가 붙은 전문직(professional)임에도 많이 다뤄지지 않았던 공인회계사(CPA: certified public accountant)가 회계법인 안에서, 클라이언트와 만나면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과 사연 중심으로 엮여져 있다.

TV방송사에서는 '직장내 활극'을 보여줄 것이라 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직장 드라마와도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애환을 그린 <미생>이나 자격에 문제가 있는 변호사가 (미국) 대형 로펌에서 겪게 되는 사건 중심의 <슈츠>[2]와 전개방식이 좀 다른 것 같다. 이 드라마는 회차 별로 새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게 아니다. 처음부터 주인공 장호우(김명수 분)가 고졸 신분으로 국내에서 제일 크다는 태일회계법인에 들어가 실력을 발휘해 출세의 사다리[3]를 타고 올라가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양아버지를 죽게 만든 장본인에게 과연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지가 스토리라인이라고 한다.

 

드라마의 1,2회차에서는 일류대 출신들만 들어가는 회계법인에 변변한 대학 졸업장도 없는 고졸 회계사[4]가 들어와 어싸인(업무 일감)을 받지 못하는 게 조명을 받는 듯 싶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가 경찰대에 합격한 수재였음에도 CPA 시험공부를 하여 태일 회계법인을 지원하게 된 동기가 차츰 밝혀진다. 한 때 선풍처럼 불었던, 출신교와 학력을 가린,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으로 면접을 보았고 장호우와 안면이 있는 한승조 이사(최진혁 분)가 면접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같은 신입사원들로부터도 백안시 당하지만 주인공은 이 기회를 살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복사 제본, 문서 파쇄 일(나중에는 냉동창고 들어가 재고조사하는 일)을 자진하여 도맡아 처리한다.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회사의 온갖 기밀정보를 다 읽어보는 찬스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되레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본 진연아 시니어 어쏘(연우 분)가 뉴스텝이 고생하는 게 안타까워 그를 도와주면서 '썸' 타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 은행장 딸인 진연아는 웬지 고졸 신입사원 장호우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낀다.

 

감상의 포인트

 

이 드라마에서 첫 번째로눈여겨 볼 대목은 대형 회계법인의 업무 분야이다. 

현실에서는 신입사원 연수 과정에서 파트 별로 설명을 하고 연수가 끝난 후 희망부서 신청을 받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친절하게도 진연아 어쏘가 사무실 투어를 시켜주는 것으로 갈음한다. 드라마의 전개를 암시하듯이 택스(세무) 파트, 감사 파트, 딜 파트로 나누어 보여주는데 실제 기능상으로는 많은 회계법인이 회계감사와 컨설팅으로 나누고 후자는 소속 변호사와 함께 세법 자문, M&A와 기업실사, 경영자문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전자는 기업회계의 일반원칙에 따라 재무제표가 기업의 재산상태와 영업성적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라면, 후자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문을 의뢰한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방안을 제시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다시 말해서 그 지향하는 목적과 수임료의 기준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감사 파트가 감사보고서에 적정의견과 의견거절 중에서 어느것을 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것과 딜 파트에서 기업인수 여부를 결정할 때 자문을 하는 것의 목표와 기준이 180도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회계법인의 한제균(최민식 분) 부대표가 매번 회계법인의 이익(수임료)을 앞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 드라마의 결말을 짐작케 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이 드라마가 선사하는 재미는 문제의 해결방법이랄까 실제 업무처리 과정에서 부딪히는 여러 난관을 주인공이 어떻게 헤져나가는지 가장 회계사 답지 않은 방법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회계업무를 잘 모르는 시청자라도 감탄하게 만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선 정석처럼 문제점의 파악 → 여러 해결방안의 모색 → 대안의 비교 검토 → 해결책의 제시를 보여준다. 장호우 쌤(젊은 세대가 즐겨 쓰는 '선생'의 약칭)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로 바꾼 사례를 들어본다.

 

* 조직 내에서 투명인간처럼 대우를 받을 때 누구나 싫어하는 잡무를 자청하여 요령 있게 처리하고 존재감을 드러낸다. 복사도 기계적으로 하기보다 보기 편하게끔 선명도를 조절하고 확대하거나 축소를 하여 칭찬을 받은 경험이 있다.

* 유력한 대안을 제시하였음에도 상대방이 꿈쩍도 하지 않을 때 변죽을 침으로써 상대방을 움직이는 방법도 있다. 부실채권이 없다고 큰 은행이 버틸 때 작은 은행이 선수를 치게 하여 큰 은행도 따라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고전적인 'Wag the Dog' 전술이다. 재무상태를 감추고 싶어하는 경영진이나 대주주로서는 소액주주가 요구하는 장부열람권도 기피 사항 중의 하나이다.

 

* 상대방이 뭔가 감추려하는 기색이 있으면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여 상대방의 허(虛)를 찌르기도 한다. 상대방은 당장의 곤란함을 면하기 위해 감추려 했던 진실을 실토하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는 말단 회계사들이 재고(inventory) 조사를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현장에서 창고에 물건이 없다고 버틸 때 물건을 옮겨놓았다는 곳으로 찾아갈 게 아니라 장호우 쌤은 창고주임에게 운반비 영수증부터 보여달라고 한다. 이때 가까이에 있는 재고품부터 엄격한 기준으로 실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실토를 받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 정중하게 요청하였음에도 상대방이 여러 핑계를 대며 응하지 않을 때에는 그가 감동할 수 있는 제3의 방법을 동원한다. 저 멀리 지방의 은행점포 창구직원이 사전에 압력을 받아 금융기관 잔고증명서를 떼줄 수 없다고 버티자 창구에 몰려 있는 나이많은 고객들의 신청사항을 요령있게 대행 처리해주어 창구직원이 더 이상 거절할 수 없게 만든다.

해당 서류를 떼어오도록 처음 지시받았던 일류대 출신의 회계사는 "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내가 그런 일 하려고 이 회계법인에 들어온 게 아니다"라고 항변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내가 팀장이라면 누구와 함께 일하고 싶을까?[5]

 

* 난관에 봉착한 장호우에게 진연아는 "우리가 회계사지 해결사는 아니다"라 위로하는데 호우는 그 말에서 유력한 힌트를 얻고 몸으로 감사를 표한다.

 

* 사람 사는 세상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신념이다. 유력한 고객을 꼭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가 공항 출국장으로 이미 들어갔다고 하자. 그가 전화도 받지 않고 메모 전달이나 공항내 방송도 불가하다면 열이면 열 사람  포기할 것이다. 일반인이 출국장에 들어가려면 여권과 항공권을 소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호우 쌤은 인천공항 민원센터에서 긴급임시여권을 발급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재빨리 움직여 가장 가까운 행선지의 항공권을 산 후 출국장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나도 이 드라마를 보고 이런 방법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러한 임기응변 능력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VIP 수행비서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사실과의 거리감이 있는 장면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Cinematic license'라 하여 허용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토리 전개가 너무 드라이해지거나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우선 회계법인의 경우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Enron Corporation)의 파산 이후 이익충돌(conflict of interest) 방지를 위한 규제가 크게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에서는 이른바 '죽의 장막(Chinese Wall)'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엔론은 세계 5대 회계법인의 하나인 아더 앤더슨(Arthur Andersen)의 회계감사를 받으면서도 은행대출을 더 많이 받아내기 위한 컨설팅도 함께 받았다. 아더 앤더슨이 수임료 등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엔론사의 회계부정을 눈감아 준 결과 사상 최대의 회계부정 사건(Enron scandal, 2001)으로 기록되었으며,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SOX 법(Sarbanes–Oxley Act)의 제정 등 각종 법적 규제를 강화한 바 있다. 

업무차단벽을 쌓기 위해서는 해당 업무 종사자들이 의사결정 및 인사고과 체계를 달리하고 정보의 교류가 불가능하게끔 업무공간도 층이나  사무실을 구분해야 함에도 주인공들이 단지 어울릴 수 없다거나 업무서류를 서로 보지 않는다는 정도로 처리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규제감독 위반 사항이 될 것이다. 

 

작가의 고충이 많았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전당포의 영업을 특허권의 세일앤리스백(Sale and lease-back)에 비견하거나 정치인 등이 합법적으로 현금흐름을 취할 수 있게 하는 특허괴물(Patent troll)을 소개한 것은 너무 앞서 나간 감이 있다. 

하나 더 기업 M&A나 가치평가에서 변호사와 회계사들이 입에 달고 사는 '두 딜리전스'(Due diligence, 실사/實査)[6] 용어가 몇 차례 '실사'라는 말로 언급한 것이나 사모펀드의 LP를 쩐주(錢主)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했다. LP는 합자회사의 유한책임사원인 Limited partner를 뜻하며 무한책임을 지는 GP(General partner)와는 달리 책임이 출자액으로 한정되며, 이름을 숨기는(익명/匿名) 경우도 많다. 

 

이 드라마에는 곱씹어볼 만한 대사가 수없이 등장한다. 메모라도 해놓지 않으면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다. 5, 6회차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라 여겨진다.

* 전에 없던 신기술도 좋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 이익이 얼마나 날지 숫자를 제시하시오.

* 이제는 몸을 써서 돈을 벌기보다 돈을 써서 돈을 버는 세상이 되었다. 

* 부실기업을 굳이 회생 법원에 보내는 이유는 과거의 경영 잘못을 전부 리셋해줄 테니까 마지막으로 한 번 잘해보라는 응원 같은 거다.

* 사냥꾼이 호랑이를 잡는 것은 가죽을 얻고자 함이지 그저 호랑이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아니다.

* 회계법인이 파는 것은 보고서가 아니라 신뢰이다.

* 돈을 쓰는 데도 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 지갑이 열리는 법이다.[7]

* 이미 알고 있는 위험(risk)은 더 이상 투자수익에 영향을 주는 위험요소(risk factor)가 아니다. 진짜 위험은 불확실성이다.

* 상대방을 깨려면 제일 높이 올라갔을 때 떨어뜨려야 그를 산산조각 낼 수 있다.

* 맛있는 케이크를 주는 사람보다 독이 든 케이크를 빼앗아 치우는 사람이 더 대단하게 보인다.

* 채권자는 원리금이 제때 지급될 때는 순한 양이지만 원리금 지급을 못하면 사육사도 잡아먹는 맹수로 돌변한다. 

 

* 진연아, 김명수, 한승조 세 사람의 목적은 달랐지만 목표가 서로 일치해서 공조를 한다.

 

끝으로 출연 배우들의 면모와 연기 역시 화려하고 크게 흠잡을 데 없어 보였다.

평소 액션 연기와 거리가 멀어 보이던 김명수가 벽을 차고 뛰어오르는 장면, 같은 사무실에서 썸을 타는 김명수와 연우가 서로 설레는 감정과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됐다.

두 얼굴의 저명인사 한제균 부대표 역을 맡은 최민식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가 볼만했다. 캐릭터의 성격상 대사는 별로 없이 눈빛이나 표정으로 연기를 해야 했음에도 말이다.

 

평소 K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도 아니고 아직 NUMBERS가 종영되지도 않았지만, 드라마 시청률이 너무 저공비행 중이어서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 믿고 볼 만하다는 견지에서 놓치기 쉬운 이 드라마의 특징을 몇 가지 소개한 것이다.

주인공이 복수의 일념으로 들어간 직장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숱한 일을 겪으면서 이 세상은 이해타산(利害打算)의 숫자(Numbers)가 아닌 보다 가치있는 무엇인가에 의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믿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드라마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같은 결론에 이른다면 재미 이상의 좋은 드라마(from Funny to Great K-Drama)가 될 것 같다.

그렇다면 K드라마가 웹툰 같이 검증된 스토리라인, MZ세대가 선망하는 참신한 직업군, 대리만족을 안겨주는 실력있는 연기자, 두고두고 곱씹어 보는 名대사, 실시간 번역으로 언어장벽을 뛰어넘은 글로벌 팬덤을 갖추고 있어 앞으로도 더 재미있는 작품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는 '근거 있는' 낙관론을 갖게 된다.    

 

Note

1] YouTube에서 최근에 본 콘텐트나 채널을 우선적으로 추천해주는 알고리즘은 일견 편리해 보이지만 은연중 이용자의 의식을 좁혀놓는 폐단이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을 타파하기 위해 챗GTP는 다음과 같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자신이 YouTube의 알고리즘에 길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후 시청기록(Watch History)를 삭제하고 자동재생(Auto-Play) 기능을 회피한다. 의도적으로 다양한 주제를 찾아보고 필요하면 익명(Incognito Mode)으로 들어간다.  되도록 다양한 부류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좋아요', '구독'을 보내며 새로 보기(Explore Tab)를 누른다. 열린 마음(Open-Minded) 자세를 취하고 자신에 대한 추천영상(Recommendations)을 점검하며, 그것이 잘못된 경우에는 YouTube 고객센터에 신고하도록 한다.

지속적으로 YouTube 콘텐트 소비 형태를 다양화하고 의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YouTube 알고리즘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2] <슈츠>는 뉴욕의 가상 대형 로펌을 무대로 한 미국의 인기 TV드라마이다. 2011년 처음 방영된 이래 시즌 9까지 제작되었으며 2019년 10편의 에피소드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주인공 마이크 로스는 로스쿨 중퇴자이지만 사진을 찍은 것 같은 기억력을 무기로 어느 변호사 못지 않은 법률과 판례 지식을 갖고 있다. 경찰에 쫓기다가 엉겁결에 로펌의 채용면접을 보게 되어 자부심이 강한 하비 스펙터 파트너 변호사의 조수가 된다. 마이크는 그 로펌의 법무보조원(para legal)인 레이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그 역을 맡은 배우가 영국의 해리 왕자와 결혼한 메건 마클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2018년 장동건, 박형식, 진희경 주연으로 한국판 <슈츠>가 리메이크되었다. 여기서 'Suits'란 제목은 변호사들이 항상 입고 다니는 정장 또는 변호사들이 다뤄야 하는 소송(lawsuit)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3] 이 드라마에서 태일 회계법인의 직급은 1년차 뉴스텝(New Staff)에서 어쏘(Associate Accountant), 시니어 어쏘(선임), 인차지(팀장, Accountant-in-Charge), 이사(Director), 부대표(COO), 대표(CEO)로 올라가는 하이어라키 구조로 되어 있다.

드라마에서 한제균이 사내에서 엄청난 권위와 권력을 휘두르고 있음에도 여전히 파트長인 부대표에 머물러 있는 것은 나중에 그의 책임을 묻겠다는 복선(伏線)이 아닌가 생각된다. 

 

*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화신 같은 한제균 부대표(최민식 분)가 아들 한승조와는 견원지간이다.

 

4] 우리나라의 공인회계사 자격시험은 금융위원회의 위탁에 의해 금융감독원에서 출제하고 관리한다. 1차시험에 응시하려면 2007년 이후 학점은행제, 독학사, 방송통신대학 수업을 통해 경제원론, 경영학, 회계학 등 소정 과목의 필수학점 이상을 취득하여야 한다. 일정 점수 이상의 TOEIC, TOEFL 등 공인영어시험 성적표도 제출해야 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풍비박산이 난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못했어도 자신을 거두어준 해빛건설 장 사장의 원수를 갚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절치부심 CPA가 되기 위한 공부를 폭넓게 하였으리라고 짐작된다. 그럼에도 고졸이 강조된 것은 태일회계법인에서 주인공의 행동이 놀라움의 연속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5] 사실 직장 상사로서는 업무를 잘 모르는 신입사원에게 단순한 복사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또 자부심이 강한 사원은 "이런 일하러 들어오지 않았다"며 노골적으로 반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답잖은 일'을 잘해서 대박을 터뜨린 사례 또한 적지 않다.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에서 에린은 승소를 확신했던 자동차충돌 사건에서 패소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일자리를 달라고 떼를 쓴다. 그녀가 받은 업무는 변호사가 프로보노(pro bono, 공익 봉사)로 수임한 지역 주민들의 부동산 거래 서류를 정리하는, 단순하지만 아주 지겨운(boring) 일거리였다. 에린은 서류더미 속에 병원진료비 영수증이 많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그 가정을 찾아가기까지 하여 마침내 발전회사 PG&E가 관련된 엄청난 공해 사건의 단초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6] 'Due diligence'란 본래 상당한 주의의무(exercise of due care)라는 뜻인데 유가증권 발행 시 투자자들에게 사업설명서를 만들어 배포하는 경우 또는 M&A에 있어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경우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조사(investigation)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국의 1934년 Securities Exchange Act에 의거한 SEC Rule 10b-5에서 의무자가 Due diligence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인정될 경우 허위 또는 부실한 보고서나 실사로 인해 손해를 입은 투자자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면책을 주장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일종의 법률적인 의무로 일반화되었다.

 

7]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자 사람들은 그동안 억제되었던 '보복소비(revenge spending)'에 열중했다. 특히 명품 메이커들은 슬그머니 값을 올렸는데 소비자들이 값이 더 오를 것을 예상하고 당장 지를 때 돈을 절약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도록 광고와 마케팅에 주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