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詩唱 신광수의 관산융마(關山戎馬)

Whitman Park 2024. 11. 1. 08:00

요즘 블랙핑크 로제가 YouTube에 올린 "아파트" 뮤직 비디오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미국의 인기 가수 브루노 마스와 콜라보를 하여 더욱 반응이 좋은데 우리 세대에게 익숙한 윤수일의 "아파트" 곡조와 박자가 사이사이 들어 있어 7080 AZ(아제) 세대가 듣기에도 크게 거북하지 않다. 그 동안 한국의 아파트는 영어권에서 apartment, condominium, co-op을 이르는 말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했던 것이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었다. 

 

이 뮤비를 처음 접한 외국의 젊은이들도 로제-브루노 마스의 노래와 율동을 따라 하다가 "Apt가 뭐지?", "오리지널 곡이 있었다고?" 관심이 바뀌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곡 덕분에 대도시 뿐만 아니라 농촌 마을까지도 점령한 한국의 아파트 문화와 오래 전의 오리지널 곡 덕분에 신구 세대의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된 사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러던 차에 최근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변신하여 작곡에도 열심인 외우(畏友) 박시호 행복편지 발행인이 로제의 '아파트'와 윤수일의 원곡을 절묘하게 버무려(remix) MZ세대와 AZ세대에게 동시에 어필할 수 있는 제3의 음악을 YouTube에 올렸다.

 

박시호 (행복편지 발행인)의 리믹스 버전  https://youtu.be/zxRYfKl3oKQ

 

 

얼마 전 KBS 1FM의 국악 프로를 듣다가 300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18세기 조선 시대에 당시 글줄이나 읽은 사람 치고 두보의 '등악양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일찍이 시서화(詩書畵)로 문명(文名)을 떨치던 신광수(申光洙)[1]가 영조 임금의 기로과(耆老科)[2] 시험에 응시하여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시가 장원을 차지했던 것이다.

두보의 시에서 차구(借句)를 한 '관산융마'란 시의 내용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중독성이 있어서 과장에 장원급제의 방이 붙자마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경향각지로 퍼졌다고 한다. 풍류를 좋아하는 선비는 물론 특히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방의 기령(妓伶) 치고 시창(詩唱)을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말까지 돌았다.

 

명창 김광숙의 시창 '관산융마'  https://www.youtube.com/watch?v=6vPn5HiTHFc

 

석북 신광수(石北 申光洙, 1712~1775)는 조선 영조 때 세상에 시와 글씨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그는 사십 가까이에 진사에 합격했으나 말단 벼슬을 전전하다 환갑이 되어서야 비로소 기로과(耆老科)에 장원 급제했다.

곧바로 당상관 승지에 임명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으나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많은 명시를 남겼다. 한국의 법률 문화에 관한 온라인 백과사전 KoreanLII에서도 한국화가 어떻게 그려졌는지 설명할 때 신광수가 당대의 화가 최북(崔北)의 그림 제작 과정을 묘사한 시 "최북의 눈 내린 강(崔北 雪江圖歌)"을 소개하기도 했다.

 

* 가을강(秋江)처럼 단풍으로 물든 오대산 금강연

 

환갑이 지난 신광수가 장원을 한 공령시(功令詩: 과거볼 때 쓰는 詩體)의 제목은 '등악양루탄관산융마(登岳陽樓歎關山戎馬)'였다. '登岳陽樓'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만년에 경승지를 찾아 다니다가 악주(岳州) 동정호의 악양루에 올라 전란(戰亂)에 휩싸인 고향 땅을 안타깝게 여기며 읊었던 시이다.

로제의 아파트와 윤수일의 아파트처럼 이 두 시를 나란히 비교해가며 감상해보기로 한다.

 

登岳陽樓歎關山戎馬  -  申光洙

 

秋江寂寞魚龍冷  人在西風仲宣樓

梅花萬國聽慕笛  桃竹殘年隨白鷗

 

가을 강은 고즈넉하고 물고기는 차갑구나

사람이 서풍을 맞으며 중선루에 서 있네

매화꽃 보러 여러 나라 헤맬 때 들었던 황혼의 피리소리

나무 지팡이를 짚고 남은 인생 흰갈매기나 쫒으려네

 

The autumn river is calm, and the fish look cold.

A man is stands on the commander's tower, facing the cold west wind.

When I traveled around many countries to see plum blossoms, I heard a twilight flute.

With a wooden staff in hand, I'll chase white gulls for the rest of my life.

* 필자가 영어로 번역

 

이 짤막한 시 속에는 그리운 고향이 한때 어려운 시절을 겪었음을 생각하고 임금님과 나라를 사랑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노년의 인생을 고루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시의 내용과 사상이 두보의 '등악양루' 못지 않다는 평을 받으면서 수백 년간 시창(詩唱)으로 애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여러 차례 중건과 개축을 거친 악양루의 현재 모습

 

登岳陽樓 - 杜甫

 

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

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

 

악양루에 올라 - 두보

 

오래 전에 동정호가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게 되었네.

오 나라, 초 나라는 동쪽과 남쪽으로 갈라서 있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물 위에 떠 있네.

 

친한 친구들로부터는 편지 한 통 없고

늙고 병들어 가지만 가진 것이라곤 작은 배 한 척뿐이네.

싸움터의 말들이 관산 북쪽에서 뛰어다니니

악양루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누나.

 

Climbing Yueyang Tower – Du Fu

 

Often I have heard of Lake Dongting, 
And now I am climbing this tower. 
With Wu to the east, and Chu to the south,
I can see heaven and earth floating.

But no word reaches me of family or friends.
Old and sick, I am alone in my boat.
North of the wall are mountains and war.
So, how with my hands on the rails can I not cry?

* Source:100 Tang Poems

 

* 월정사 경내의 오색 단풍을 보러 간 필자

Note

1] 신광수는 이미 5세 때부터 글(漢字)을 읽고 쓸 줄 알았다고 하며 일찍부터 전국적으로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를 흠모한 나머지 어려서 이보경(李寶鏡)이라 불리던 춘원(春園)도 이광수(李光洙)로 개명을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2] 기로과(耆老科)는 왕이나 왕비, 대비가 60세 또는 70세가 된 것을 경축하여 60세 이상의 노인에 한해 응시자격을 준 과거시험을 말한다. 영조 32년(1756)에 처음 시행되었으며, 신광수는 60세이던 영조 48년(1772)에 급제하여 바로 당상관 우승지(右承旨)에 임명되었다. 그는 이미 영조 40년(1764)에 금부도사(禁府都事)가 되어 제주도(耽羅, 탐라)에 가서 그 곳의 풍토·산천·조수(鳥獸)·항해 상황 등을 적어 ‘부해록(浮海錄)을 왕에게 지어 바친 바 있었다. 그 후 연천현감(漣川縣監)을 역임하여 능력은 충분히 인정을 받고 있었다.

 

3] 필자가 중국 동정호의 악양루를 찾아갔을 때 그 앞에 펼쳐진 동정호(洞庭湖)는 양쯔강과 통하여 바다나 다름 없어 보였다. 중국 역사를 보더라도 삼국지 시대에는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로서 악양루는 이 지역의 통치자로서는 경치를 완상하거나 연회를 베푸는 것보다 작전회의나 전략을 구상하기에 적합한 실용적인 2~3층의 누각을 지을 필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시대별로 여러 차례 누각을 새로 다시 짓곤 했었다.

吳-蜀-魏 삼국시대에 동정호는 오 나라에 속했지만 한쪽은 촉 나라와 닿아 있었으므로 오 나라의 도독 노숙(魯肅)은 이곳에 주둔하면서 수군을 훈련시키고 이를 살펴보기 위한 열군루(閱軍樓)를 세웠다. 그러나 노숙은 오 나라의 대도독 주유를 이어 촉 나라의 군사 제갈공명과 지모를 겨루다가 4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악양루 경내에는 절세미인으로 소문났던 주유(周瑜)의 부인 소교(小喬) 기념관도 있다.

나중에 평화가 찾아 왔을 때 그 소문을 듣고 문인재사(文人才士)들이 찾아와 이 지역에서 명멸하였던 인물들을 기리고 자신의 글솜씨를 뽐내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이 곳에서는 지배자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건물을 짓고 문인재사들의 자신의 글을 뽐내며 새로 내걸었던 것이다. 지금의 악양루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등악양루' 친필 휘호 편액도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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