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아침에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의 왕정복고 연극 〈요정 여왕〉 (The Fairy Queen, 1692) 제4막에 나오는 "Now Winter Comes Slowly"를 들었다.본래 세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의 가사를 개사하여 만든 노래였는데 이를 극작가 토마스 버튼이 시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Now Winter Comes Slowly
- written by Thomas Betterton, composed by Henry Purcell
Now winter comes slowly,
Pale, meager and old,
First trembling with age,
and then, quivering with cold;
Benumb'd with hard frosts,
and with snow cover'd o'er,
Prays to the Sun to restore him
and sings as before.
겨울이 천천히 오고 있네
늙고 메마르고 창백하게
처음엔 나이가 들어 떨다가
나중엔 추워서 떨고 있네
매서운 서릿발에 감각마저 잃고
눈도 잔뜩 뒤집어 썼네
다시 함나게 해달라고 햇님에게 기도하네
그리고 예전처럼 노래하네
우리나라에도 그 못지 않게 12월의 아쉬움을 노래한 시가 적지 않다.
그 중 몇 편을 골라 영어로 옮겨보았다.
12월은 - 하영순
December - Ha Young-soon
해마다 느끼는 일이지만
한 장 남은 달력 속에 만감이 교차한다
정월 초하룻날 어떤 생각을 했으며 무엇을 설계했을까
지나고 보면 해 놓은 일은
아무것도 없고 누에 뽕잎 갉아먹듯
시간만 축내고 앙상한 줄기만 남았다
Each year I used to feel something.
It's a mixed feeling with one more calendar to go.
What did I think and plan on the first day of this year?
When I look back, I realize that I've done nothing.
Nothing remains as if a silkworm gnaws on a mulberry leaf,
Only time was wasted; with a thin stalk left.
죄인이다 시간을 허비한 죄인
얼마나 귀중한 시간이냐
보석에 비하랴
금 쪽에 비하랴
I am a sinner, who wasted time.
How precious time is!
It can't be compared with jewelry, nor
Compared to a piece of gold.
손에든 귀물을 놓쳐 버린 듯
허전한 마음
되돌이로 돌아올 수 없는
강물처럼
흘러버린 시간들이 가시 되어 늑골 밑을 찌른다
I feel like I've lost the precious thing in my hand.
Empty hearted,
I can't go back
Like a river.
The times that have passed are thorny and poke under my ribs.
천년 바위처럼 세월에 이끼 옷이나 입히자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문틈으로 찾아드는 바람이 차다
서럽다
서럽다 못해 쓰리다
어제란 명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가?
Like a thousand-year rock, let's dress the years& in mossy clothes
The more I think, the more I guess.
The wind that comes through the door is cold.
I feel sorrow,
I'm so sad, rather I'm painful.
Can the proposition of Yesterday never come back?
아래 소개하는 오정방 시인은 미국 오래곤 주에 살고 있다.
일찍이 에스페란토 어에 관심을 갖고 학회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에게 12월은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시간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는 포인세티아의 빨간 꽃을 보면서도 반성의 의미로 낯을 붉히고 끄덕인다고 생각했다.
12월 중턱에서 - 오정방
At the Midpoint of December by O Jeong-bang
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12월, 마지막 달
달려온 지난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결산의 달
December, the last month when the mind is more urgent than the body.
Quietly looking back at the road I've traveled,
I spend a month of settlement to summarize the year.
무엇을 얻었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
What have I gained,
What have I lost,
Who did I love, and
Who did I hate?
이해할 자를 이해했고
오해를 풀지 못한 것은 없었는지
힘써 벌어들인 것은 얼마이고
그 가운데서 얼마나 적선을 했는지
Did I understand whom I needed to understand,
What misunderstandings were not resolved,
How much have I earned, and
How much have I done good in the midst of it?
지은 죄는 모두 기억났고
기억난 죄는 다 회개하였는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한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Have I remembered all my sins,
Did I repent of all my sins which I remember,
Did I do my best with what I was assigned, and
Am I satisfied with what I've done?
무의식중 상처를 준 이웃은 없고
헐벗은 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있고
꼭 기억해야 할 일은 잊고 있지는 않는지
Is there any neighbor whom I hurt unknowingly,
Did I turn away from those miserables,
Do I remember what I should forget, and
Do I forget what I have to remember?
이런 저런 일들을 머리 속에 그리는데
12월 꽃 포인세티아
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While I draw things this and that in my head,
Poinsettia, a December flower, is
Blushing her face and nodding her head.
'공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唱 신광수의 관산융마(關山戎馬) (2) | 2024.11.01 |
---|---|
말러의 '가을에 고독한 자' (4) | 2024.10.06 |
Haeundae Buskers and 10,000-hour Rule (6) | 2024.09.01 |
부산 해운대의 버스커와 1만 시간의 법칙 (1) | 2024.08.31 |
The End of August (5) | 2024.08.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