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 뒤에 찾아온 가을이어서인지 사방에서 가을을 그리워하고 기다렸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KBS 1FM에서도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 제2악장에 나오는 가곡 "가을에 고독한 자"(Der Einsame im Herbst)를 음악과 함께 소개했다.
그리고 "대지의 노래"에 들어 있는 여섯 곡의 노래가 모두 이백의 비가행(悲歌行) 같은 중국 당시(唐詩)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서 "가을에 고독한 자"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전기(錢起, 722~780?)의 효고추야장(效古秋夜長)이 원전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한시(漢詩)의 제목에 대한 설명은 없었지만, '效古'란 옛것을 본 받는다는 뜻이니 아마도 그 전에 내려오던 '긴 가을밤(秋夜長)'이란 시를 조금 손대서 다시 썼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 힘써 왔던 '우리 시의 세계화를 위한 영역(英譯) 소개'도 세계 어느 곳에선가 이런 결실을 맺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기뻤다. 그래서 말러의 교향곡 2악장의 독일어 가사, 영어 번역, 중국어 원문, 한글 번역을 차례로 소개하기로 한다.
- Mahler: Das Lied von der Erde - Der Einsame im Herbst
이것은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한 비엔나 필하모니커와 비올레타 우르마나가 노래한 앨범이다.
번스타인이 지휘한 비엔나 필하모니커의 피셔 디스카우 판, 그리고 실내악 버전도 있다.
Der Einsame im Herbst - Tchang-Tsi
Herbstnebel wallen bläulich überm See;
Vom Reif bezogen stehen alle Gräser;
Man meint, ein Künstler habe Staub vom Jade
Über die feinen Blüten ausgestreut.
Der süße Duft der Blumen ist verflogen;
Ein kalter Wind beugt ihre Stengel nieder.
Bald werden die verwelkten,
gold'nen Blätter Der Lotosblüten
auf dem Wasser zieh'n.
Mein Herz ist müde.
Meine kleine Lampe Erlosch mit Knistern,
es gemahnt mich an den Schlaf.
Ich komm zu dir, traute Ruhestätte!
Ja, gib mir Ruh,
ich hab Erquickung not!
Ich weine viel in meinen Einsamkeiten.
Der Herbst in meinem Herzen währt zu lange.
Sonne der Liebe,
willst du nie mehr scheinen,
Um meine bittern Tränen mild aufzutrocknen?
The Lonely One in Autumn
Frost flies on the autumn river,
The north wind sweeps away the fragrance of the lotus.
With heart full of longing, she weaves alone,
Until the solitary lamp is extinguished,
And tears fall as she longs for her love,
As the cold night grows long.
Before the steps, the green clouds are still as water,
The moon shines on the roosting crow that begins to cry.
Whose young wife is busy with the loom of love?
The brocade curtain and cloud screen are deeply closed.
Through the white jade window, I hear falling leaves.
One should pity the cold woman who has no clothes.
效古秋夜長 - 錢起
秋漢飛玉霜 北風掃荷香
含情紡織孤燈盡 拭淚相思寒漏長
階前碧雲靜如水 月照棲烏啼鳥起
誰家少婦事鴛機 錦幕雲屏深掩扉
白玉窓中聞落葉 應憐寒女獨無衣
'긴 가을밤' 옛시를 다시 쓴다 - 전기
가을 강 위로 흰 서리가 내리고
북풍은 연꽃 향기를 쓸어가 버렸구나.
정을 담아 베를 짜매 외로운 등불이 꺼져가고
눈물을 닦아도 님 생각에 차가운 눈물 계속 흐른다.
처마에 걸린 흰 구름은 물처럼 깨끗한데
새벽달은 까마귀 깃들어 우는 곳을 비추네.
뉘집 젊은 여인이 수를 놓았는지
비단에 수놓은 가리개가 문을 가려 감추었네.
백옥당 별채에 낙엽지는 소리 들리는데
옷 벗고 추위에 떨며 자는 외로운 여인이 안쓰럽구나.
말러의 교향곡 '대지의 노래'는 교향곡의 형식을 취하면서 오페라, 가곡 등 다양한 요소를 융합하여 교향곡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2악장 '가을에 고독한 자'는 아름다운 선율과 깊은 감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낭만주의 음악의 정수: 말러 특유의 낭만적인 감성과 거대한 스케일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큰딸을 잃고 본인도 심장병을 얻은 암울한 상황에서 죽음과 삶, 고독과 사랑 등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깊은 사색에 침잠케 한다. 또한 중국 시를 바탕으로 한 가사와 동양적인 정서가 서양 음악과 조화를 이루어 독특한 음악적 경험을 선사한다.
여기서 어떤 음악해설가는 말러가 곡을 붙인 가사의 원전이 전기의 한시(漢詩)임을 부인하기도 한다. 노래 가사의 시에서 유사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란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성홍열로 죽은 큰딸을 그리워하며 호반의 별장 창밖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말러가 얼마나 가슴 아파 했을지, 또 옷도 없이 추위에 떨며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그 딸을 그가 얼마나 안타까워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말러의 감정이입이 지나쳐 스트레스성 심장병이 도진 게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말러의 교향곡 2번 '가을에 고독한 자'는 아름다운 음악과 시적인 가사, 그리고 깊은 사색을 통해 청중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곡이다. 서양 음악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어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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