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간만에 부산 해운대에 놀러갈 일이 있었다.
부산시에서 폭염 경보를 내릴 정도로 더위가 계속되자 해운대 해수욕장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바닷물 속에 뛰어드는 내외국인 수영객들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가을 절기가 시작되어서인지 아침 저녁으로는 소슬바람이 불었다.
밤이 되자 백사장에 마련된 버스커 공연무대에서는 여기저기서 버스킹을 하는 가수들이 공연을 하여 산책로를 오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기타를 치며 혼자 또는 듀엣으로 노래하는 가수도 있고 MR 반주음악을 틀어놓고 간이 드럼을 두드리며 신나게 부르는 가수도 있었다. 흥겨운 나머지 청중석에서 뛰어나와 모래밭에서 함께 춤을 추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한국의 제일 유명한 피서 관광지에서 한여름밤에 일어날 수 있는 유쾌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문득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이 떠올랐다.
이들이 지금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노래를 하고 있지만 1만 시간 이상 노래 부르는 기량을 갈고 닦는다면 언젠가는 정식 가수로서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하는 성공 스토리 말이다.
이런 버스킹 가수들이 지금은 비록 십여 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영화 Once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거리에서 연주를 하다가 그 장면이 영화로 만들어져서 세계적인 스타 가수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운수 탓으로 돌릴 것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비틀즈처럼 함부르크 항구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세계적인 밴드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첫째는 노래 부르는 소질과 가수로서 성공하려는 열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노래를 따라서 그저 잘 부르기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부르는 창법을 요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컬 트레이너 같은 전문가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명 작곡자로부터 좋은 곡을 받을 기회가 있다면 행운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자기 나름대로 작사나 작곡을 할 줄 아는 창의성(creativity)이 있어야 하리라고 생각되었다.
이와 같은 소질과 정열, 적절한 지도와 트레이닝, 창의적인 노력이라는 삼박자가 갖추어져야 거리의 버스킹 가수가 SNS나 공연무대에서 각광을 받는 가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해운대 백사장의 버스킹 무대보다 더 많은 기회가 널려 있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YouTube와 숏폼의 발달로 누구든지 뉴미디어에 음원을 올려 잠재적인 청중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침 8월 마지막 주말 해운대 야외 무대에서는 이 지역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주최하는 32회 청소년 가요제가 열렸다.
스무 명이 넘는 14살에서 19살까지의 미래 가수 지망생들이 지원을 하여 그 중 10명의 예선통과자들이 해운대 비치를 찾는 관광객들 앞에서 노래 솜씨를 뽐냈다. 내가 보기에도 만만치 않은 노래 실력을 가진 청소년도 여럿이었다.
지금은 공부에 여념이 없는 중고등 학생들이지만 그들이 가수나 연예인에 뜻을 두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위에서 말한 3박자의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 행운의 여신이 그에게 미소를 던질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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