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Whitman Park 2024. 8. 7. 09:40

폭염(暴炎)이 열흘 이상 지속되고 있다. 열대야로 시달리는 가운데 입추를 맞았으니 가을을 더욱 고대하게 된다.

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조석으로 선선한 바람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랑하는 님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지 않을까?

잘 모르는 일기도를 보면서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을 밀어낼  시원한 기단(氣團)이 언제쯤 나타날까 찾아본다. 그렇다고 슈퍼 태풍이 몰려와 피해를 줘도 곤란하지만 지금의 기상상황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태풍 밖에는 없을 듯 싶다.

 

오래 지속된 긴 장마가 속히 끝나기를 기원하는 한시(漢詩)가 위의 폭염 속에 가을을 기다리는 심정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다.

 

十日長霖  (열흘씩 가는 긴 장마)

- 一朵紅 (일타홍) 취연 (翠蓮)

十日長霖若未晴

鄕愁蠟蠟夢魂驚

中山在眼如千里

堞然危欄默數程

열흘씩이나 긴 장마 왜 안 그칠까

고향을 오가는 꿈은 끝이 없구나

고향이 눈 앞에 있어도 천 리 길 같네

근심이 되어 난간에 기대 길을 헤아려본다

Why won't the long rainy season stop?
The dream of going home never ends.
Hometown is inside my eyes, but the road is thousand miles away.
I lean on the railing anxiously and count the miles.

* 고향을 그리는 마음,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

 

고향 땅이 아니라 멀리 가 있는 님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시도 있다. 

 

相思 (님을 그리워 함)

- 金 氏 (1611~1661, 재상 김육/潛谷 金堉의 딸이자 관찰사 서문리/徐文履의 처)

 

向來消息問如何

一夜相思鬢欲華

獨倚雕欄眠不得

隔簾踈竹雨聲多

요사이 우리 임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밤새 그리움에 머리가 세려 하네

홀로 난간에 기대어 잠 못 이루니

발 너머 대숲에서 빗소리 들리누나

I wonder how my love is doing these days.
All night long, my hair has turned gray because of longing.
Alone, leaning on the railing, I can't sleep.
I hear the rain in the bamboo forest beyond the wall.

 

 

이미 휴가 여행도 다녀왔고 주로 집에서 무더위를 견뎌내려니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더위가 물러가고 풀벌레 울고 단풍이 드는 가을을 맞는 것을 마음에 그리던 고향을 찾고, 멀리 떠나 있는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으로 헤아려 보았다. 

그런데 70 평생 살아오면서 낙엽지는 가을도 70회 이상 겪었지만 이처럼 가을 오기를 학수고대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마침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곡을 플루트와 클라리넷 듀오로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1]

유재하의 원곡에서도 플루트와 클라리넷 반주가 들어 있어 이 곡이 더욱 감미롭고 애조를 띠었다.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내고 슬퍼하다가 다시 재회를 한 후 영원히 헤어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우리가 애창하는 가사가 더욱 애절하게 여겨졌다.[2]

그런 만큼 금년에 맞이하게 될 가을은 더 없이 뜻깊게 보내야겠다 마음 먹었다.  

 

*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1987)

 

사랑하기 때문에 - 유재하 (柳在夏, 1962-1987)

Because I Love You by Yoo Jae-ha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어제는 지난 추억을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다시 돌아온 그댈 위해 내 모든 것 드릴 테요
우리 이대로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3]
나 오직 그대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Was the first look I saw in your eyes a misunderstanding of my own?
You made a fool of me with your bright smile.

The day you left my side,
The countless pink memories I held in my heart
Have faded to blue.

Yesterday, I hated myself for not being able to forget you.
But now I realize that I myself was only yours.

I'll give you my everything for the one who came back again.
We'll never be separated like this forever
Because I only love you.

I'm getting smaller and smaller toward the big you.
I'll follow you quietly no matter what you say.

Yesterday, I hated myself for forgetting past memories.
But now I realize that I myself was only yours.

I'll give you my everything for the one who came back again.
We'll never be separated like this forever
Because I only love you,
Because I love you.

* 사진출처: Independent Shorts Awards 2024, LA

Note

1] 유재하의 1987년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는 기본적인 악기인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등을 바탕으로 그 위에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등 그가 잘 다루는 클래식 악기들을 가미하였다. 한양대 음대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그는 기존 기요들과는 색다르게 클래식 음악을 접목하여 그만의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앨범은 한국형 발라드의 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앨범 〈사랑하기 때문에〉 에 수록된 곡들은 유재하가 사랑했던 여인과의 실제 러브 스토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테면 '우리들의 사랑', '그대 내 품에'는 만남과 사랑에 대한 간절함을 담았고, '텅 빈 오늘 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 날' 등은 연인과의 헤어짐에 대한 서글픔을 '우울한 편지', '사랑하기 때문에'는 연인과의 재회를 통한 더 깊은 사랑의 의지를 담고 있다.

더욱이 유재하가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드럼과 베이스 외에는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가 직접 연주를 맡아 低비용으로 음반을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 앨범 타이틀 곡인 '사랑하기 때문에'는 유재하 작사, 작곡의 발라드 곡으로 유재하가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시절에 만든 곡이었다. 한양대 음대 재학 당시 대중음악 활동이 엄격히 금지되던 시절이었으므로 얼굴을 비치지 않는 조건으로 위대한 탄생 밴드에서 키보드를 맡았다. 그런데 조용필의 일본 공연에는 동참할 수 없어 두 달 만에 그만두었다.

유재하는 그의 첫 앨범이 뜨기도 전에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마신 친구의 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스물다섯의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의 부친은 피해 보상금과 앨범 수익금, 사재를 출연해 유재하 장학 재단을 설립하고, 1989년부터 재능 있는 신인 음악인을 발굴하는 음악경연대회를 만들었다. 2016년부터는 CJ문화재단이 공동주관사를 맡아 지금까지 유재하 가요제가 계속되고 있다.

유재하의 음악에서 동기부여가 됐거나 영감을 받은 조규찬, 유희열, 루시드폴, 김연우 등 유재하 가요제 출신들이 아직까지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3] 이 노래 가사만큼 애절한 사연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유재하가 이 노래를 바친 여인은 이 앨범 제작에 플루티스트로 참여했던, 대학교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 .
그녀의 심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학교에도 나오지 않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부모가 해외여행을 떠나 보냈는데 그녀가 스위스에 갔을 때 관광지의 어느 카페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기절초풍했다고 안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어느 한국 젊은이가 CD음반을 주면서 나중에 한국 여행자가 오면 이 곡을 틀어주라 했다는 것.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의 치유를 얻은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나무위키 '유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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