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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무게

Whitman Park 2025. 2. 10. 10:30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시를 한 편 읽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주부가 이삿짐을 옮기다가 오래된 장롱을 보고 만져보며 지은 것이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장롱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고 섬세한 필치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썼다.

시인은 그녀의 친구 같았던 장롱의 과거를 상상해본다. 어느 숲에서 큰 나무로 자랐을 것이다.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라 여기고 우듬지(꼭대기 줄기)로 오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같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에 시인 자신도 많이 변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무에 빗대어 어느 숲 속에서 무성한 가지와 잎을 늘어뜨린 큰 나무를 상상하고 있다.

 

오래된 가구 - 마경덕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의 힘에 밀려
끙, 간신히 한 발을 떼어 놓는다 

움푹 파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 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 본 

허름한 가구의 판화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이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있는 네게 기대어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 아래 무성한 그늘을 늘어뜨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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