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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원에 대하여

Whitman Park 2025. 4. 25. 23:00

크리스천들은 습관적으로 기도를 말하고 기도를 한다.

좋게 말해서 걷는 것, 일하는 것 등 생활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이슬람 교도들이 하루에 몇 차례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는 것에 비하면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매일 아침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식사 전에 기도하고 자기 전에도 기도하는 것이 생활화되어야 한다.

나의 경우 주일 예배 때 소규모 체임버이지만 플룻과 함께 편성되어 있는 트럼펫에서 나오는 선율이 화성이나 대위법적으로 아주 열띤 기도 소리로 들리는 것을 체험하곤 한다.

 

* 양재온누리교회의 주일 2부 예배 찬양

 

그러나 기도생활을 할 때 반드시 그에 따르는 의문이 있다.

과연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주님에게 상달(上達)이 되어 언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될까 하는 점이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금년 들어 열심히 한다고 했던 기도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의기소침해졌다. 

 

링컨의 어록도 생각이 난다. 미국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 때 "하나님께 우리 북군이 이기게 해주시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의로우신 하나님의 편에 서서 싸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My concern is not whether God is on our side; my greatest concern is to be on God's side, for God is always right.)고 말했다.

물론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 인간의 것과 다르니까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더라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하실 수 있다.

또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고, 당장 실현을 요하는 시급한 일이 아니므로 미루시는지도 모른다 .

 

* Grace, Eric Enstrom (1918)의 흑백사진을 유화로 채색

 

바로 이럴 때 백영옥 작가가 '기도에 대하여' 쓴 글을 읽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도가] 길수록 저 사람은 절박함이 깊구나 싶어 가슴이 울렁였다.

어렸을 적 내 기도는 주로 원하는 물건 목록이었다. 간절함을 담아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믿으면서 점점 물건뿐 아니라,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망으로 이어졌다. 직장인이 되자 기도 시간만큼 한탄의 목록도 길어졌다. 문학 공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IMF만 없었다면, 집을 샀더라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라 원망한 것이다.

하지만 야근 때문에 늦잠을 자고 코앞에서 놓친 버스 앞에서 나는 ‘[기도의] 장애물 자체가 내 삶’이란 걸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 간절한 기도의 내용은 모두 틀린 것이었다.

이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을 때 기도한다.

한없이 추락하던 어느 날엔 위로를 줄 단어를 찾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말이 하늘에 닿기 전, 우선 내 귀와 가슴에 닿기를 원한다. 시인 ‘타고르’는 “고통을 멎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성공의 은혜가 아니라 “실의에 빠졌을 때 당신의 귀하신 손을 잡고 있음”을 알게 해달라고 말이다.

나는 이제 작가로 큰 업적을 남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 매일 읽고 쓸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위해 기도한다.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고,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지혜를 바란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하는 이를 많이 봤다. 그러나 포기가 곧 실패는 아니다. 때론 멈추는 게 더 큰 용기일 수 있다. 그러니 기도의 응답은 바라는 걸 이루는 게 아니라, 흙탕물 같은 자기 마음을 정화해 평정과 냉정을 되찾게 하는 것이다. 이젠 기도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이란 생각이 든다.

만약 기도하는 모든 이의 소망이 이루어진다면 세상은 좋아질까.

우리 삶에 맑은 날만 이어진다면 이 땅은 꽃과 나무 없는 사막이 될 것이다. 어둠 속에서는 별을 볼 수 있고, 빗속을 통과하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백영옥의 말과 글 396] 조선일보 2025. 3. 8.

 

정년퇴직 후 나의 삶은 직장생활을 할 때에 비해 훨씬 단순해졌다. 그러한 만큼 나의 기도 제목도 단순해진 것 같다.

이제는 종종 내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가정하며 기도를 하는 일이 많다.

신경림(1935~  ) 시인이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 죽음을 생각하며 썼다는 시를 읽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 Source: Google 이미지

 

낙타  - 신경림

Camel    by Shin Kyeong-nim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다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신경림 시집, 『낙타』, 2008, 창비

 

I’ll ride on a camel, going to the world after death,

Further to the stars, sun and moon,

On a camel that has never seen anything but sands.

When asked about the world, I shrug I haven't seen anything.

And answer with a wave of my hand,

As if I have forgotten all sorrow and pain.

If someone asks me to go out into the world again,

I'll respond to become a camel again.

In addition to the stars, sun and moon,

I could see only sands,

When I come back, I'll carry

The most foolish guy in the world.

I'll pick the poorest man

Who has no idea about what’s fun in the world

To make my companion on the road.

 

* 양재 온누리교회 찬송 슬라이드

 

여기서 신경림 시인이 저승에 갈 때 낙타가 되겠다고 한 것은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기도(pray)가 아니라 기원(wish)에 가깝다. 

브라질 작가 코엘료로 하여금 세계적 명성을 얻게 한 〈연금술사(Alchemist) 〉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네가 뭔가 간절히 원한다면 온 우주가 힘을 합쳐 네가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거다."

When you want something, all the universe conspires in helping you to achieve it.

 

기원이라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나열한 '버킷 리스트'가 떠오른다.

누구나, 특히 나같은 은퇴자들은 저마다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계획을 세운다. 다른 사람 이야기도 들어보고 새로 넣거나 빼기도 한다.

나의 경우 시급하다고 느낀 것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어떻게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일단 자녀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부담을 지워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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