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시를 한 편 읽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주부가 이삿짐을 옮기다가 오래된 장롱을 보고 만져보며 지은 것이다.
같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장롱에 얽힌 사연을 떠올리고 섬세한 필치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썼다.
시인은 그녀의 친구 같았던 장롱의 과거를 상상해본다. 어느 숲에서 큰 나무로 자랐을 것이다.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라 여기고 우듬지(줄기 꼭대기)로 오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같다고 말한다.
그러는 사이에 시인 자신도 많이 변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무에 빗대어 어느 숲 속에서 무성한 가지와 잎을 늘어뜨린 큰 나무를 상상하고 있다.
오래된 가구 - 마경덕
Old Furniture by Ma Kyung-deok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의 힘에 밀려
끙, 간신히 한 발을 떼어 놓는다
움푹 파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 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 본
허름한 가구의 판화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이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있는 네게 기대어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 아래 무성한 그늘을 늘어뜨리고
A cabinet that stands on short legs,
Pushed by the force of two guys,
Grunting, barely keeps one foot off the ground.
Four pitted footprints,
The weight of twenty years of staying in the same place,
Are imprinted on the vinyl floorboard.
To cool my sweat for a moment, I peek in
A print of shabby furniture
With scratches and bruises exposed.
The wood has never been so scarred.
The furniture has a crack on its door,
And slowly leaned in, I noticed.
Leaning against you standing by the bedside,
I read books, gave birth to children, watched TV
Waiting for my husband to come home late.
With its ten-foot trunk under the roof,
Rooted in the floor of the room,
One old tree has been placed.
When I hug its shoulders,
I hear the sound of water rushing up to the top.
I wonder if the furniture still remembers the forest
With its leafy shadows hung over the feet.
석양이 질 무렵 일제히
가창오리떼가 날아오른다.
새들이 하늘에서 펼치는 매스게임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름답기 보다 무섭게 보인다.
하늘을 까맣게 뒤덮은 그림자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잠재우려 하는 것 같다.
아직은 햇빛이 남아 있고
황혼이 빛나는 한
나는 살이 있음으로 해서
온 힘을 다해
세상을 마주한다.
아주 흐린 날의 기억 - 이성복
Memories of a Very Cloudy Day by Lee Sung-bok
새들은 무리지어 지나가면서
이곳을 무덤으로 덮는다
관 뚜껑을 미는 힘으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The birds pass by in flocks
covering this place like graves.
With the force of pushing the coffin lid,
I look at the sky.
사과 - 원재훈
단단한 사과가 품고 있는 것은 씨앗이다
나보다 더 큰 나무가 되라고
열매가 된 것이 사과이다
제 몸을 사람들에게 다 내주어도,
씨앗만은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과라는 어미의 마음이다
붉은 마음의 껍질을 벗겨도 벗겨도
어느 땅에 떨어져내릴 씨앗을 위해
더 큰 사과나무를 위해
오늘도 사과는 눈물보다 더 진한 과즙을 품고 있다
사과여, 붉고 붉은 모성이여
당신은 거대한 사과나무보다 거룩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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