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공동체 별로 지교회를 섬기고 있다.
수도권에도 未자립 교회가 있다니? 그것도 아파트 村에!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다.
이주노동자(migrant worker)들이 많이 거주하는 김포와 안산에는 이들에게 한글도 가르쳐주고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복지기관이 여럿 있다. 온누리교회에서도 이주 근로자, 다문화 가정을 위한 M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주근로자들도 쉬는 일요일에는 점심도 제공하며 원하는 사람들은 캄보디아어, 미얀마어 등 모국어 예배도 드릴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온누리교회의 각 공동체에서는 이들 M센터와 자매결연을 맺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후원을 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주일 날 점심 때면 설거지 일손을 거들어 여러 사람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일손이 필요하다니"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우리 공동체의 순(筍) 차례가 되어 현장에 가보고서 알게 되었다. 한정된 수량의 식기를 가지고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야 하므로 일시에 쏟아져 나오는 식기를 그 다음 사람들을 위해 바로바로 세척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설거지의 개념이 달랐다. 먹은 것을 치우는 게 아니라 다름 사람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었다.
사실 끝이 있어야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도 대단원의 막을 내려야 하고, 즐거운 여행도 종착지가 있게 마련이다.[1]
소설책을 덮어야 더 재미있는 다른 소설책을 찾게 되고 여행 캐리어를 푼 다음에야 다음 여행계획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다.
금년 2월은 28일까지만 있다. 입춘이 지나고 강추위가 엄습하여 한강물이 얼기도 했지만 하순에 접어들자 날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머지 않아 꽃소식이 들려오고 천지 사방엔 봄꽃이 만발할 것이다.
어느 날 신문에서 백거이 (白居易 772∼846)의 한시가 눈길을 끌었다.[2]
뜰 앞에 쌓여 있던 흰눈이 바람에 날려 치워졌나 했는데 나무 위에 서식하던 학이 짝을 찾아 멀리 떠나 갔는지 며칠째 보이지 않아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었다.
이 겨울 그런 대로 추억에 남을 만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나 나이가 들어가는 시인은 섭섭해진 마음을 잃어버린 학(失鶴)에 빗대어 심경을 읊고 있었다.
失 鶴 - 白居易
失為庭前雪, 飛因海上風.
九霄應得侶, 三夜不歸籠.
聲斷碧雲外, 影沉明月中.
郡齋從此後, 誰伴白頭翁.
잃어버린 학 - 백거이
뜰 앞 하얀 눈이 사라진 건,
세찬 바닷바람에 날려갔기 때문.
높은 하늘에서 분명 제 짝을 얻은 듯,
사흘 밤을 둥지로 돌아오질 않네.
푸른 하늘 구름 너머로 사라진 울음소리,
밝은 달 속으로 가라앉은 그림자.
내 관사에서 이후로는
그 누가 이 백발노인의 벗이 되려나.
Lost Crane by Bai Juyi
Lost like snow before the courtyard,
Flying away by the sea breeze.
In the highest heaven, it should find a mate.
For three nights, it hasn't returned to its cage.
Its voice fades beyond the blue clouds,
Its shadow vanishes into the bright moon.
From now on, in the county residence,
Who will accompany the white-haired old man?
따지고 보면 값지고 좋은 것을 곁에 두었더라도 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그것들이 주변에서 사라지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젊음도 마찬가지다.
위의 시에서도 시인은 자기같은 백발 노인을 누가 상대해주려 하겠느냐고 탄식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어느 날엔 초라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질긴 생명력을 가진 것이 나의 쓸쓸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3]
아래의 시에서는 시멘트 바닥 틈 사이로 자라난 풀 한 포기를 보며 안타까워 하는 시인의 마음이 느껴진다.
풀에게 - 문효치 (1943~ )
시멘트 계단 틈새에
풀 한 포기 자라고 있다
영양실조의 작은 풀대엔
그러나 고운 목숨 하나 맺혀 살랑거린다
비좁은 어둠 속으로 간신히 뿌리를 뻗어
연약한 몸 지탱하고 세우는데
가끔 무심한 구두 끝이 밟고 지날 때마다
풀대는 한 번씩 소스라쳐 몸져눕는다
발소리는 왔다가 황급히 사라지는데
시멘트 바닥을 짚고서 일어서면서 그 뒷모습을 본다
그리 짧지 않은 하루해가 저물면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별빛을 받아 숨결을 고르고
때로는 촉촉이 묻어오는 이슬에 몸을 씻는다
그 생애가 길지는 않을 테지만
To the Grass by Moon Hyo-chi
In the crevices of the cement stairs,
A blade of grass is growing.
In a tiny blade of malnourished grass,
But one delicate life flutters through it.
Barely extending its roots into the cramped darkness,
It supports and erects its frail body.
Every now and then, a thoughtless shoe tip treads over it,
The grass squirms once more and lies down.
Footsteps come and go as quickly as they came.
It stands up on the cement floor and looks behind them.
When the sun sets on a not-so-short day,
It catches its breath in the light of the stars flying from far away.
And sometimes it washes itself in the dew that moistens its skin.
Its life will not be long.
But it must be a beautiful life, and flutters by without a word.
Note
1] 튀르키예의 시인 나짐 하크메(1902-1963)는 그가 감옥 안에 있을 때 '진정한 여행'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시 전편을 보려면 이곳을 참조.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후략)
2] 이준식의 漢詩 한 수, 동아일보, 2025. 1. 30.
3]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조선일보, 2020. 9. 14.
'Tal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출 수 없는 세월의 무게 (0) | 2025.02.10 |
---|---|
오직 사랑에 매여 (0) | 2025.01.29 |
Horrific accident in troublous times (12) | 2025.01.04 |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Someday (1) | 2024.12.11 |
독서와 책 읽기, 괜찮아 (13) | 202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