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5분(Fifteen Minutes, 2001)

Whitman Park 2022. 2. 16. 10:15

2001년 9월 11일 오전 9시경(현지시간) 아랍계 테러리스트가 장악한 2대의 민간 여객기가 20분의 시차를 두고 뉴욕 맨해튼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 그리고 1시간여 후 화염에 휩싸여 있던 110층짜리 뉴욕의 상징건물은 맥없이 무너져내렸다. 자욱한 먼지와 연기,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지상에서 사라졌다.

전세계의 TV 시청자들은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이 장면을 CNN 뉴스를 통해 보면서 경악과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화면이 크게 흔들렸다. 빌딩이 불타고 잔해가 쏟아져 내리는 현장 주변에서 시청자들의 눈이 되기 위해 카메라맨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전율과 당혹감 속에서도 몇 시간이고 TV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처럼 TV는 사건 현장에서 시청자의 눈과 귀(耳目)가 되어준다. 변덕스러운 시청자들은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사건보도를 원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TV 방송은 시청율을 높이는 일이라면 선정적인 뉴스 보도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저널리즘의 속내를 파헤친 영화 <15분(Fifteen Minutes)>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투 캅스'(2인조 형사) 이야기이지만 영화가 끝나기 훨씬 전에 주인공 형사가 먼저 죽어 버리는 것 자체가 엽기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줄거리

유럽에서 갓 도착한 비행기에서 수상쩍은 동구출신 두 30대 남자가 입국심사를 받고 있다. 한 사람은 입국심사대에서까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기록을 위해서라나. 입국심사관은 영화 <멋진 인생(Wonderful Life, 1946)>을 만든 프랑크 카프라를 존경하며, 자유와 용기의 나라를 동경해 마지않았다는 러시아 남자 올렉과 체코 남자 에밀에게 입국허가 스탬프를 찍어준다.

고국에서 형기를 마친 이들은 범행자금을 갖고 앞서 이민 온 공범자로부터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 뉴욕에 온 것이다. 그러나 어렵사리 찾아간 그들에게 먼저 와 있던 공범은 돈을 줄 게 없다고 한다. 그 대가는 칼부림이었고 에밀은 살인의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지른다. 올렉은 자신도 엽기적인 영화를 찍어 돈을 벌기로 작정한 터라 사건의 전과정을 훔쳐온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로 만들어 돈을 벌자(Make your own movie)!" 낮에 타임스퀘어에서 보았던 TV에서 범행이 엽기적일수록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뉴스쇼 감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TV 뉴스쇼 '탑 스토리'에서는 광란의 살인극을 저지른 범인이 정신과 의사가 퇴원해도 좋다고 하였기 때문에 살인의 책임은 의사에게 있다고 뻔뻔스럽게 말한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손가락이었지 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 갓 도착한 올렉과 에밀은 "미국에서는 살인자도 저렇게 돈을 버는구나!"하며 감탄을 한다.

뉴욕의 민완형사 에디 플레밍(로버트 드 니로)은 탁월한 사건해결 솜씨로 매스컴의 총아가 된지 오래다. 아니 범죄수사 현장에 카메라 맨을 대기시켜 놓고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니 에디 형사는 '피플'지 커버스토리에도 등장하는 등 인기 연예인을 방불케 한다. 살인과 화재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현장마다 에디 형사 외에도 뉴욕시 소방본부의 수사관 죠디 와르소(에드워드 번즈)도 나타난다. 노회한 형사 에디 앞에서 젊은 죠디는 치밀하고 냉정한 화재감식안을 보여준다. 이후 살인과 화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사건 현장을 에디와 죠디는 한 조가 되어 뛰어다닌다.

 

에밀은 월드 에스코트라는 명함을 보고 체코 출신의 콜걸을 불렀으나 미국 여자가 나타나자 사정없이 난자 살해한다. 이들이 거쳐간 곳마다 살인과 방화가 잇따르자 에디와 죠디의 2인조 역시 행동을 빨리 한다. 첫 범행현장의 목격자인 체코 출신 미용사 다프네를 보호하려는 총각 수사관 죠디에게 에디는 "불법체류자인 여자 증인을 잘못 건드리면 망신살이 뻗친다"고 주의를 준다. 그럼에도 에디에게는 아직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연인이 있다. 그의 사건수사 보도를 전담하는 탑스토리의 여기자이다. 그녀에게 선물을 주려고 카드를 쓰고 있던 에디의 집에 올렉과 에밀이 나타난다.

그들은 인기있는 형사를 소재로 범죄영화를 만들어 TV 방송국에 팔면 이미 받지 못하게 된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설령 붙잡히더라도 철저하게 미친 척하면 변호사가 정신착란으로 몰고 가 조기 석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에디 형사와 한바탕 격투를 벌이지만 에디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유명인사 에디의 피살극은 그 전말이 비디오에 담겨져 1백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탑스토리의 담당 앵커에게 전해진다.

형식적으로 자수를 한 에밀은 TV 방송국에서 소개해준 변호사를 만나 그가 쓸 책과 영화화 판권을 5대 5가 아닌 7대 3으로 나누자고 한다. 정신이상 진단을 받으면 곧바로 석방될 수 있을 것으로 믿은 까닭이다. 그리고 자기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 공범인 올렉에게 책임을 미룬다.

주인공이 조기 퇴장하고 난 뒤 범인들과의 대결은 죠디의 몫이 된다. 에밀의 책임 떠넘기기에 분개한 올렉은 에밀의 정신상태가 극히 정상이라는 비디오 증거를 탑스토리에 제공하기로 한다. 에밀이 재판을 받고 난 직후 법원 밖에서는 다시 생사가 교차하는 활극이 벌어지고, 탑스토리의 여기자(죽은 에디 형사의 연인)는 에밀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가 죠디의 활약에 힘입어 구조된다. 그 와중에서 탑스토리의 앵커는 특종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범인 상호간의 갈등 끝에 올렉은 총에 맞아 죽어가면서 자신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의 엔딩을 선언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실화(true story)를 바탕으로 여과없이 리얼한 장면을 보여줄수록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TV 리얼리티 쇼의 전형을 보여준다. 외딴 섬(미국의 <유혹의 섬>)이나 외딴 집(프랑스의 <다락방 이야기>), 1차 대전 당시의 참호 속(영국의 <참호>)에서 젊은 남녀가 생존·생활하는 모습을 수십 대의 카메라를 통해 TV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리얼리티 쇼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다큐멘타리 프로는 시청자들에게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서버이벌 게임 같은 스릴을 맛보게도 해주지만, 최근 들어 시청자들에게 남의 사생활 엿보기(집단관음증), 참가자들의 경우 스타가 된 듯한 자기현시욕·노출증을 자극하는 극히 상업적인 프로로 변질되어 버렸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5월 20대의 젊은 남녀 11명의 욕실, 침실 장면까지 여과없이 보여주는 '다락방 이야기'를 둘러싸고 언론매체의 찬반 양론이 무성했고 심지어는 촬영장 주변에서 규탄데모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프랑스 방송위원회가 개입하여 하루 2시간씩 카메라를 끄도록 명령했다.

오늘날 많은 나라가 국민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헌법 차원에서 보장해주고 있지만(우리 헌법 제17조), 각 개인은 돈을 받고 자신의 기본권(fundamental right)을 팔아 넘기는 양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 속의 한 장면으로 소개된 한 장면처럼 살인자가 자신의 정신착란 증세를 가볍게 보아 넘긴 정신과의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극히 위험한 TV 교육이 아닐 수 없다. 틀림없이 이것을 모방한 범죄가 잇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정신이상을 가장하면 형사책임을 면하게 될까? 유능한 변호사라면 미국의 O. J. 심슨 사건처럼 온갖 증언과 증거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여 진짜 범인인 의뢰인의 무죄 판결을 받아낼지 모른다. 설사 나중에 정상임이 밝혀져도 이중위험(double jeopardy) 금지의 원칙에 따라 무죄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정신이상 주장이 가짜(make-believe)라는 것을 공범이 폭로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각종 심리 테스트 기준을 동원하여 피고측의 가증스러운 위장을 파헤치는 것은 검사의 몫이다. 스스로 책임을 감당할 수 없는 개인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정신이상을 가장한 진짜 범인이 석방되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은 매우 소름끼치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 범인들에게 거액의 대가를 지불하고 수기의 출판과 영화화를 약속하면서 변호사를 알선해주는 TV 방송의 비윤리성도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죠디 수사관이 탑스토리의 앵커를 주먹으로 때려눕히는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갈채를 보낸다. TV라는 언론의 파워가 커지고 그것이 비상식적으로 흐를수록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세력(그것이 정부의 개입이든지 시민단체의 조직적 항의이든지 간에)의 등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는 몰상식한 범죄자의 행동을 너무도 리얼하게 묘사하여 모방범죄의 우려를 낳고 있는데 존 허츠펠드 감독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결말로 이러한 비난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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