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선 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집무 스타일이 여러가지로 화제가 되고 있다. IMF 체제 극복을 위해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찬탄이 국민들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으나, 일흔다섯의 고령에 너무 무리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비근한 예로 대통령이 참모를 시키지 않고 연설문까지 손수 작성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상)미국의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테러범들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비콘 영화사(브에나비스타 배급)의 1997년작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은 대통령직(the Presidency)이 국민의 것이냐, 아니면 개인적인 것이냐 하는 소박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 영화는 <U 보트>를 만든 독일의 영화감독 볼프강 페터슨이 아르미얀 번쉬타인, 존 셰스타크(공동제작자)와 손을 잡고 매우 사실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실제로 미 대통령 전용의 공군 1호기(AFO)인 보잉 747을 타보고 구석구석 견학한 다음에 영화를 찍었다고 하는데, 예를 들어 비행기 뒷부분이 열려도 사람이 버틸 수 있다든가, 비행기 안에서 총격전이 벌어져도 큰 문제가 없다든가 하는 것은 모두 현실의 검증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1,500 피트 상공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놀이공원의 패러슈트를 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옥의 티라고 하겠다.
영화의 줄거리
미국과 러시아의 특수부대원들이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대통령관저에 침투하여 중앙아시아의 독재자 라덱 장군을 납치한다. 그 직후 모스크바를 방문한 미국의 마샬 대통령(해리슨 포드 분)은 "미국은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앞세운 나머지 더 이상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정권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천명한다. 즉, 잔학행위와 테러를 구사하는 정치인의 시대는 끝났으며, 미국 정부는 이들과 어떠한 협상도, 관용도, 두려움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귀국 길에 오른 미 대통령의 전용기에는 일단의 러시아 기자들이 동승한다. 보안검사와 지문감식기를 무사히 통과한 그들은 대통령 공보비서의 안내로 기내를 돌아본 후 지정석에 착석한다. 대통령은 미식축구 녹화경기를 관람하고, 영부인과 12살 먹은 영애는 볼쇼이 발레와 카자흐 난민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세계 어느 곳과 즉시 통화가 가능한 에어포스 원에는 TV 방송과 통신을 통해 이라크 군대의 작전 상보가 전해진다.
전용기가 중간기착지인 독일내 램스타인 공군기지에 도착하기 직전 라덱의 동조자인 비밀경호원 깁스의 배신으로 전용기 납치극이 벌어진다. 기내 대통령 집무실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구역이지만 이곳을 지키는 3명의 경호원이 꼼짝없이 동료의 손에 당하자 기내에 엄중 보관되어 있던 권총과 기관단총은 모두 테러리스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전용기는 일순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대통령은 경호원들의 안내를 받아 전용기 후미의 비상탈출 캡슐로 피신한다.
미 공군기지에 착륙하지 않고 급상승한 전용기는 카자흐스탄으로 기수를 돌린다. 미 전투기들이 엄호비행을 하는 가운데 대통령 수행원들은 모두 인질로 붙잡히고 테러범 대장 이반(올리버 스톤의 'J.F.K.'에서 오스왈드 역을 맡았던 게리 올드먼 분)은 워싱턴에서 대통령직을 대행하는 케쓰린 부통령(글렌 클로즈 분)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한다. 러시아에 구금되어 있는 라덱 장군을 석방하지 않으면 30분에 한 명씩 인질을 처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현정권이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함으로써 공산주의 이념이 땅에 떨어지고 영광스러운 조국은 갱단과 매춘부들이 판치게 되었다고 강변한다.
워싱턴의 백악관 상황실에서는 비상탈출기에 타지 않은 대통령 및 그 가족의 안위와 테러범과의 협상여부를 놓고 부통령과 각료, 군 수뇌들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마샬 대통령이 라덱을 납치하는 특공작전을 재가하였고 테러범과의 협상불가 방침을 선언한 마당에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는 논의가 우세하다. 그를 풀어주면 중앙아시아에 공산주의가 되살아나고 러시아 정권마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다. 러시아 대통령에게 라덱의 석방의사를 타진하는 동안 대통령 안보보좌관이 인질 1호로 처형된다.
그 사이 화물칸에 남아 있던 마샬 대통령은 휴대용 전화로 백악관 상황실과의 통화를 시도한다. 월남전에서 무공훈장까지 받은 역전의 용사인 대통령은 테러범들에게 붙잡힌 몸으로 열려 있는 휴대폰을 통해 계속 지시를 내린다. 이에 따라 엄호중이던 미 전투기가 미사일 공격을 가하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대통령은 연료조절기를 조작, 연료를 누출시킴으로써 비행기의 착륙을 시도한다.
이반의 요구로 공중급유기가 연료를 보급하는 도중 대통령이 기지를 발휘하여 기내의 인질은 대부분 낙하산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인질로 잡혀 있는 가족을 구출하기 위해 기내에 남는다. 테러범들에게 다시 붙잡힌 대통령은 딸의 생명을 위협하는 테러범 두목의 협박에 못이겨 러시아 대통령에게 라덱의 석방을 요구하고 라덱은 즉시 석방된다. 그러는 동안 대통령은 두 손을 묶은 테이프롤 깨진 유리조각으로 끊고 테러범들과 몸으로 싸워 상황을 역전시킨다.
예비낙하산을 모두 내던진 후 영부인을 인질로 잡고 탈출하려던 테러범 이반은 대통령과 결전을 벌이지만 그는 낙하산 줄에 목이 걸려 떨어진다. 전용기를 다시 장악한 대통령은 라덱 석방요청을 취소하고 라덱 장군은 탈출기에 탑승하려는 순간 사살되고 만다. 카자흐 영공에서 미그기의 요격을 받은 전용기는 호위기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후미방향타가 파손되고 연료도 거의 바닥 나 추락위기에 직면한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항공활주팀의 공중곡예로 대통령 가족은 비상탈출하고 대통령은 그를 배신한 경호원과 최후의 일전을 벌인 다음 무사히 구조된다.
감상의 포인트
이 영화는 비슷한 시기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과시되었듯이 근엄한 미국 대통령이 여차하면 '람보'같이 활약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통령이 비록 자기 가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여느 보통 사람처럼 자기 몸을 내던질 수 있는가(take a chance of his life?) 하는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하여 헌법상 문제가 대두되는데, 첫째는 군사적인 상황에서는 대통령의 유고시 부통령과 국방부장관 누가 결정권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부통령은 처음 겪는 일이라 즉시 법무부장관('Minister of Justice'가 아니라 정부의 법률고문이라는 의미의 'Attorney General'이라 함)을 불러 이 문제를 상의한다. 급히 달려온 법무부장관은 군사적인 상황에서는 국방부장관이 대통령 다음으로 군 통수권(Second in Command)을 갖고 있다고 답변한다.
뿐만 아니라 법무부장관은 이렇게 조언한다. 전화상으로 확인하였듯이 대통령이 감금되어 있고 본인과 가족이 인질로 붙잡혀 있는 상황(under duress)에서는 사실상 대통령직의 수행이 곤란(incapacity)하므로 마치 대통령이 심장마비를 일으킨 때처럼 부통령과 각료들의 다수결로 결의하여 대통령유고 상황을 속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장면은 미국 수정헌법 제25조를 극화하고 있다. 1967년에 제정된 이 조항에 의하면, 대통령의 면직·사망·사임의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승(1항)하는데, 만일 대통령이 상원의 임시대통령(즉 상원의장을 겸임하는 부통령) 및 하원의장에게 그가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서면으로 선언(written declaration)·통보하는 경우 대통령이 같은 방법으로 이를 철회할 때까지 부통령이 대통령권한대행(Acting President)으로서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한다(3항)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이 서면으로 선언·통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부통령 및 행정각부의 장관 또는 의회에서 법으로 정하는 다른 기구대표의 다수가 대통령이 그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상원의 임시대통령 및 하원의장에게 서면으로 선언·통보할 경우 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를 수행(4항 전단)하게 된다는 점이다(4항 후단에서는 이에 관한 다툼이 있는 경우의 처리방법을 규정).
결국 캐쓰린 부통령 앞으로 각료 전원이 연서한 대통령 직무수행불능 선언서(Presidential Incapacity Declaration; 자막은 이를 '대통령 권한대행서'라고 번역)가 제출되고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여기에 서명할 것을 재촉 받는다. 이미 전용기 안에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핵미사일 발사암호는 변경되었고 새로운 블랙케이스가 부통령한테 인계되어 있기는 하다. 모든 각료가 대통령이 위태로운 전용기 안에서 테러범들에 붙잡혀 있는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부통령이 이를 주저하는 사이 마샬 대통령은 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없이 테러범과는 타협하지 않는다는 미 정부가 25년 이상 지켜온 외교원칙을 깨뜨린다. 결국 대통령은 자력으로 테러범들을 격퇴함으로써 이 원칙을 고수하지만, 대통령이란 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직책(the Presidency)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인디펜던스 데이'에서도 보았듯이 헐리웃 영화는 일반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대통령의 영웅적인 모습을 곧잘 그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싸움 잘하는 만능의 대통령보다는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국가이익을 앞세우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대통령이 훨씬 바람직한 것이다. 아무튼 오락 위주의 영화에서도 헌법의 위기상황을 계도하는 미국의 법률문화는 '극히 선진화'되어 있음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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